INICIAR SESIÓN종업원은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저한테 유니폼 치마가 있어요. 일단 화장실로 같이 가시죠, 제가 금방 새 옷으로 사 올게요.”허벅지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정루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업원을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커피로 엉망이 된 바지를 벗자, 하얀 피부 위로 벌그스름하게 부어오른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종업원이 여분의 치마를 들고 들어왔다.“손님, 우선 이거라도 입고 계세요. 제가 금방 다녀올게요.”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배한 명품 옷을 보며 여자는 한층 더 안절부절못했다.정루아가 한마디 덧붙였다.“오는 길에 화상 연고도 하나 사다 줘요.”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아... 네! 알겠습니다.”정루아가 미소를 지으며 달래주었다.“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뭘. 화 안 났으니까 걱정 말고 천천히 다녀오세요.”종업원은 눈물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급히 돌아서서 나갔다.정루아는 휴지를 돌돌 말아 물에 흠뻑 적신 뒤, 붉게 부어오른 피부 위에 가볍게 대었다.그제야 화끈거리던 통증이 한결 가라앉았다.근처에 쇼핑몰이 있으니 아무리 늦어도 10분 안에는 돌아올 터였다.차가운 물로 몇 번이나 씻어내자, 마침내 피부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하지만 이미 10분이 넘게 지났음에도 종업원은 돌아오지 않았다.정루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김철웅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네, 철웅 씨.”수화기 너머로 김철웅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루아 씨, 지금 어디예요?”“카페 화장실에 있어요.”김철웅이 한마디 보탰다.“알겠습니다.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화장실 입구에서 기다리세요.”“네.”전화를 끊자 코끝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다. 화장실 방향제와 뒤섞인 생경한 향취였다.이질적인 냄새였기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금 화장실 안에는 자신뿐이었다.그렇다면
옆에 서 있던 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구태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깊고 그윽한 눈동자에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그럼 며칠 뒤에나 씻을 수 있죠?”의사가 상처 부위를 대략 가늠해 보고는 답했다.“다음 주 정도면 괜찮을 겁니다.”워낙 회복력이 좋은 편이라, 일주일이면 간단한 샤워는 가능한 상태였다.구태윤이 그윽한 눈빛으로 정루아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선생님 말씀대로 하죠.”정루아는 왠지 모르게 수상쩍은 느낌이 들었다.아무래도 이 남자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생각할수록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일부러 날 괴롭혀서 얻는 게 뭔데? 내가 뭐 어쨌다고!’의사가 나가자, 정루아는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잠깐 밖에 다녀올게.”“어디 가는데?”구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네 신변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서 그래?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진욱 오빠 좀 떠보려고.”정루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어젯밤에 받은 경고 문자 때문에라도 당장 배진욱의 태도를 확인하고 싶었다.구태윤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오빠라, 참 다정하게도 부르는군.’그는 싸늘해진 시선을 거두었다. 잘생긴 얼굴에 어느덧 먹구름이 드리웠다.정루아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김철웅과 곧장 병원을 떠났다.곧이어 배진욱에게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린 뒤 통화가 연결되었다.“루아야, 왜?”정루아가 입을 열었다.“오빠, 오늘 잠깐 짬이 나서 그런데 같이 여나은 보러 갈래? 시간 괜찮아?”배진욱이 말했다.“지금 곧 회의라 1시간 뒤에 끝날 것 같은데.”“그럼 내가 회사로 갈게.”“알았어.”배진욱이 흔쾌히 대답했다.“비서한테 1층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할게.”“아니야, 근처에서 시간 좀 때우고 있을게. 회의 끝나면 문자해.”정루아가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그래.”약속을 마친 정루아는 곧장 배성 그룹으로 향했다.차로 20분 남짓 달려 도착
정루아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이따위 문자를 보낼 사람은 구태윤뿐일 텐데...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설령 오늘 거래에서 이혼을 거절했더라도 안전을 위해서라면 결국 조건을 수용했을 수밖에 없었다.그렇다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분명 내부자였다.정루아는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기계적인 통화음만 흘러나올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내 목숨을 노리는 놈들조차 구태윤의 눈치는 본다는 소린가?’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체불명의 인물이 굳이 경고까지 날릴 이유가 뭐 있겠는가.정루아의 머릿속에 의심이 들던 인물들이 떠올랐다.허도준은 이미 간을 보았으니, 이제 남은 건 배진욱이었다.정루아는 문자를 삭제한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다음 날 아침, 미리 출력해 둔 이혼 합의서의 조항들을 꼼꼼히 확인한 후 병원으로 향했다.하룻밤 사이에 기력을 회복했는지, 구태윤의 안색은 어제보다 한결 좋아 보였다.정루아는 이혼 합의서를 무심하게 내밀었다.구태윤은 서류를 받아 들고 진지하게 읽어 내려갔다.잠시 후,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재산 분할은 안 할 거야?”정루아의 눈썹이 까딱했다.“내가 달라고 하면 주게?”“아니.”구태윤이 단칼에 거절했다.곧이어 펜을 집어 들고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사인했다.일말의 미련도 없는 단호함에 오히려 정루아가 살짝 당황했을 정도였다.동시에 그의 확고한 결의가 느껴졌다. 구태윤 역시 이 결혼을 진심으로 끝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차라리 잘됐어.’정루아는 이혼 합의서를 챙겨 넣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 다시 도장 찍자.”“그러든가.”구태윤은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그는 긴급 결재 서류 몇 건을 빠르게 처리하고는 소파에 앉아 있던 정루아를 힐끗 쳐다보았다.“나 씻고 싶은데.”그 말에 정루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내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쏘아보았다.“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무슨 목욕이야. 안 돼.
“네. 우리 가요.”정루아가 나지막이 말했다.김철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민혁이 다급히 병실로 찾아왔다.창백한 낯빛으로 누워 있는 구태윤을 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상처는 좀 어떻습니까?”구태윤이 무심하게 대꾸했다.“죽을 정도는 아니야.”그러자 한민혁이 참지 못하고 혀를 찼다.“휴, 그렇지만 계속 이러다간 진짜 큰일 납니다.”구태윤이 칠흑 같은 눈동자로 그를 서늘하게 쏘아보았다.“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거야?”한민혁이 헛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에이, 설마요. 당연히 농담이죠. 아, 참. 도망치지 못한 놈 중 하나를 저희 애들이 확보해서 신원을 파악했습니다. 블루 호크 소속이더군요.”블루 호크는 해외에서 악명 높은 유명 용병 기업이었다.의뢰비만 넉넉히 준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놈들이었다.구태윤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신배후한테 연락해서 정루아 암살 의뢰는 거절하라고 전해.”한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이내 말을 이었다.“하지만 신 대표님이 이번에도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 텐데... 그래도 받아주실 생각이에요?”구태윤이 눈을 질끈 감았다.“나한테 직접 연락하라고 해. 어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지 들어나 보게.”한민혁이 대답했다.“네!”구태윤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블루 호크 놈들한테 의뢰 넣은 게 누구야? 배후는 알아냈어?”한민혁이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대표님, 그건 아무리 저희라도 알아내기 어려워요. 의뢰인 정보는 절대 유출하지 않는 게 철칙 아닙니까.”만약 의뢰인의 신상을 털었다는 소문이 돌면 그 바닥에서 매장당할 게 뻔했다.하지만 구태윤은 실소를 흘렸다.“어차피 돈에 따라 움직이는 놈들 아닌가. 블루 호크 책임자더러 동성으로 들어오라고 해.”“네, 알겠습니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정루아는 외할머니에게 어떻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할지 깊은 고민
“뭐?”울음기가 묻어난 정루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속눈썹에 눈물이 아슬아슬하게 맺힌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구태윤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내가 전부 파헤쳐서 밝혀줄게. 네 안전도 확실하게 책임지고. 대신 조건이 있어. 정수원으로 다시 들어와.”칠흑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라 응시했다.무심한 목소리는 어느덧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이혼이야 언젠간 하겠지. 나라고 뭐 이 관계를 계속 질질 끌고 싶은 줄 알아? 하지만 네 일에 나까지 말려든 건 사실이잖아. 몇 번이고 널 구하다 보니, 이미 놈들의 표적이 되었을지도 모르고.”정루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말을 유심히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구태윤은 눈을 감았다. 미간 사이에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천천히 생각해도 돼.”병실 안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창밖으로 퍼붓던 빗줄기는 어느새 그쳤다.정루아는 어지러웠던 감정을 차분히 가다듬었다.한 가지 사실만큼은 명확했다. 제힘으로는 이 거대한 진실을 파헤칠 능력이 없다는 것을.그리고 구태윤은 여전히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단지 ‘거래’일 뿐이다.어차피 손해 볼 건 없었다.오히려 매번 피를 흘리고 다친 쪽은 구태윤이었다.그는 정말로 자신을 완벽하게 지켜냈다.긴 침묵 끝에 정루아는 다시 그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정수원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조건은 없어?”“응.”구태윤은 눈을 감은 채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읊조렸다.“거창하게 뭐 해 달라는 거 아니니까 그냥 돌아오기만 하면 돼.”정루아는 답답한 숨을 천천히 내쉬며 입을 열었다.“좋아. 하지만 그전에 이혼 합의서부터 작성해.”그 말에 구태윤이 스르륵 눈을 떴다. 눈빛이 유난히 어두웠다.“지금 나한테 추가 조건을 운운하는 건가?”정루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당장 이혼 신고는 못 하더라도 서류는 미리 작성할 수 있잖아. 당신도 방금 이 관계 끝내고 싶다고 했으니까, 모든 일이 다 해결되고 나
정루아가 말했다.“나 지금 일이 좀 있어서 바로 가 보지는 못할 것 같아. 여나은 잘 부탁할게.”배진욱이 대답했다.“다친 곳은 없고 많이 놀란 모양이야. 며칠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이내 멈칫하더니 난처한 듯 덧붙였다.“그나저나... 내가 계속 붙어 있는 건 모양새가 거시기하잖아.”정루아가 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아, 미안. 내 정신 좀 봐.”배진욱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아니야.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쉬려고.”지금은 여유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틈이 없었다.정루아는 적당히 둘러대며 대화를 마무리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김철웅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루아 씨, 먼저 집에 들어가서 쉬는 게 어때요?”정루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수술 끝나는 거 보고, 상태 괜찮은지 확인한 다음에 갈게요.”정루아는 착잡한 심정으로 수술실 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다행히 2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구태윤이 나왔다.치명상은 피했고, 상처들도 무사히 봉합을 마쳤기에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입원실로 옮겨진 후, 의료진이 차례로 나가자 정루아는 의자에 앉았다.그리고 의식을 잃은 채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 있는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생각해 보면 최근 들어 그는 단 한 순간도 피를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물론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었다.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 현실을 외면하려 했지만, 명백한 사실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구태윤이 몇 번이고 피범벅이 된 몸으로 자신을 막아서던 잔혹한 광경들이 뇌리에서 맴돌았다.머릿속이 뒤죽박죽 한 정루아는 서둘러 잡념을 털어냈다.적막한 병실 안, 들려오는 것은 오직 그녀의 얕은 숨소리뿐이었다.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만 응시하던 와중에 구태윤이 천천히 눈을 떴다.하지만 정루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루아야.”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정신을 퍼뜩 차리고 고개를 돌리자, 의식을 되찾은 구태윤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