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 4주년 기념일, 정루아는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남자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눈빛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분노와 당혹감이 서려 있다. “고작 형수님 출산 지키느라 네 곁에 못 있어 줬다고 지금 이 난리야?” “그래!” 형이 죽고 바로 다음 날, 구태윤은 미망인이 된 형수를 돌보러 외국으로 떠났다. 그 이후 해외를 오가며 4년을 보냈다. 정루아가 그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순간, 언제나 형수와 조카가 우선순위였다. 사흘 전, 형수가 귀국하던 날 두 여자는 동시에 물에 빠졌다. 위기의 순간에도 그녀는 늘 뒷전이었다. 조카에게 손을 댔다는 오해를 받아 자갈길 위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조차 철저히 외면당했다. 8년 동안 단 한 번도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여자.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그만해.” 남자는 이혼 합의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형의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에 챙겨줬을 뿐이야. 앞으로 안 그러면 되잖아.” “다시 가져다줄게. 당신이 사인할 때까지 계속.” 남자의 눈에 서린 냉기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번개 같은 속도로 정루아의 손목을 낚아챘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우리 8년을 함께했어. 진짜 이혼할 수 있어?” 정루아는 무덤덤하게 손을 빼내며 대답했다. “세상에 못 내려놓을 건 없어.” ... 지구가 네모나다는 사실을 믿을지언정 정루아의 이별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구태윤. 함께한 8년. 정루아는 결혼 허락받기 위해 빗속에서 대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고, 해외 연수 기회마저 포기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내주었던 여자. 구태윤은 그녀가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이혼 신고서가 손에 쥐어지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자존심도 체면도 모두 버린 남자는 매일같이 그녀의 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제발 문 좀 열어줘. 한 번만이라도 들어가게...”
View More여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진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마침 잘됐네, 같이 나가자.”“응.”두 사람은 함께 병원을 나섰다.뉘엿뉘엿 저무는 석양이 대지를 물들이고, 거리는 차와 사람들로 북적였다.배진욱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잘 안됐나 보네?”“뭐, 그럭저럭.”정루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끌어도 너무 오래 끌었다.배진욱이 물었다.“구 대표 또 마음 바꿨대?”“모르겠어.”정루아가 한숨을 쉬었다.“이혼 수속을 끝내기 전까진 절대 소송을 취하 안 할 거야. 이 일은 어떻게든 끝을 보려고.”배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단호하네. 이렇게 울적해 하는데, 내가 맛있는 저녁이라도 사야겠다.”이내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아는 사람이 괜찮다고 추천해 준 술집이 있는데, 안주가 꽤 맛있대.”정루아의 눈빛이 반짝였다.“좋아.”안 그래도 지금은 술 한잔이 간절하던 참이었다.가슴속의 응어리를 어떻게든 풀어야만 했으니까.배진욱이 말했다.“내 차 타고 가자. 나중에 같이 들어가면 되겠네.”정루아는 잠시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할 수 없기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술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따뜻한 색감의 조명이 켜졌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은은한 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대표님, 오셨어요?”술집 사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가게 한편에 마련된 오픈 키친에서는 사장이 앞치마를 두른 채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다.배진욱이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여기 시그니처 메뉴로 먹을래?”“그래.”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배진욱은 사장에게 주문을 넣고 돌아왔다.어느덧 그의 손에는 와인 두 병이 들려 있었다.“사장님이 아껴두던 거라네. 십 년 넘게 숙성해서 맛은 보장하지.”정루아는 어두운 빛깔의 병을 바라보며 물었다.“아껴두는 거라면서, 그냥 진욱 씨한테 줬어?”배진욱이 눈썹을 까딱했다.“내가 여자랑 같이 온 게 드문 일이라 그런
한민혁은 깊게 숨을 몰아쉬며 변명을 꺼냈다.“대표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길래... 사모님 오시면 좀 나아지실까 해서요.”“업무 처리 능력이 상당하시네? 이제 내 머리 꼭대기라도 앉으려고?”구태윤이 웃는 둥 마는 둥 그를 바라보았다.등골이 오싹해진 한민혁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구태윤이 싸늘하게 덧붙였다.“지금 난 저 여자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 나니까, 앞으로는 찾아와도 무조건 시간 없다고 해.”“알겠습니다.”구태윤이 말을 이었다.“출장 건 마저 진행해.”“네.”...정루아는 차에 올라타고도 여전히 찜찜하고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구태윤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은 더없이 무감했다.그의 말대로 정말 마음이 싹 다 식어버린 모양이었다.‘원하던 바야!’하지만 당장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 못하고, 출장 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속을 긁었다.‘진짜 짜증 나네.’정루아는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를 몰아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배진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타이밍도 참, 내가 오자마자 딱 나타나네. 우리 진짜 운명 아니야?”배진욱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정루아가 대꾸했다.“그런가 보네. 볼일은 다 봤어?”배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래서 이 친구 상태도 볼 겸 들렀지.”여나은은 병상에 기대어 누운 채, 겁을 먹은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정루아가 다가가며 말했다.“난 정루아라고 해. 내가 차로 치는 바람에 사고가 났으니까, 당분간 마음 놓고 쉬어. 어머니 걱정은 안 해도 돼.”여나은이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벅찬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감사합니다... 정말 저의 은인이시네요.”정루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딴생각 말고 푹 쉬어. 빨리 나아야 돈도 갚지.”“돈이라니?”옆에서 듣고 있던 배진욱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정루아는 그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이야기를
정루아는 화가 울컥 치밀었다. 하지만 지금은 꼬투리를 잡고 늘어질 여유가 없었다.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구태윤을 응시하며 내뱉었다.“됐고, 일단 법원부터 가자.”구태윤의 서늘한 시선이 한민혁을 향했다.그는 곁에 있던 사람에게 몇 마디 지시를 남기더니, 곧장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시종일관 정루아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정루아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그녀는 곧바로 뒤를 쫓아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구태윤,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발뺌이라도 하려고?”문이 닫히자마자 참았던 불만이 튀어나왔다.구태윤은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들었다.칠흑 같은 눈동자에는 어떠한 온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설마 내가 일부러 안 가고 미루기라도 할까 봐? 아직도 너한테 미련이 남았을 거로 생각해?”정루아는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지만, 눈썹을 치켜올리며 받아쳤다.“아니라고 잡아뗄 거야? 내가 어제는 3시간이나 기다려줬는데, 당신은 왜 그 잠깐을 못 기다려 주는데?”구태윤은 코웃음을 쳤다.“내 시간은 금쪽같이 비싸거든.”정루아가 냉소를 지었다.“그럼 시간이 금쪽같으신 구 대표님, 지금은 그 비싼 시간 좀 내서 이혼 도장 찍으러 갈 수 있으신가?”구태윤은 한 걸음씩 다가갔다.남자가 풍기는 익숙한 체취가 거대한 그림자처럼 가까워지며 그녀를 서서히 에워쌌다.정루아는 무심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툭하면 나를 다른 여자한테 떠넘기던 사람한테 아직도 미련이 남았을까 봐?”구태윤은 그녀의 코앞에 멈춰 서서 나지막하게 읊조렸다.정루아가 쏘아붙였다.“그럼 헛소리 말고 앞장서.”“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거든.”구태윤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당장 출장이 잡혀 있어서 일주일 뒤에 돌아와.”정루아의 맑은 눈동자에 화가 치밀었다.“당신 진짜...!”하지만 그녀가 따져 묻기도 전에 구태윤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안 그래도 저번에 다쳐서 오래 입원하느라 밀린 일이 산더미야. 그것부터 먼
한민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으나, 별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구명 그룹.정루아는 회사에 안 온 지 오래되었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구태윤과 이혼 소송 중이라는 소문이 돌긴 했어도 아직 법적으로 남남이 된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도 공손하게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썼다.정루아의 표정은 담담했다.원래는 이혼 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회사로 돌아가 밀린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으나, 오늘 안으로 글렀다는 직감이 들었다.결국 발걸음을 돌려 정호를 찾아갔고,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남은 업무는 내일 마저 이어서 하겠다고 말했다.정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어차피 마무리는 지었고 남은 건 모니터링뿐이니 먼저 볼일 봐요.”“네, 감사합니다. 감독님.”정루아는 뒤돌아서 곧바로 위층으로 향했다.대표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안은 텅 비어 있었고, 구태윤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한민혁이 도시락까지 챙겨줬지만, 구태윤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점심을 대충 때우고는 밖으로 나가 물었다.“회의는 언제 끝난대요?”한민혁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회의는 국내외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거라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아요.”정루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오후 3시 전에는 끝날 수 있나요?”한민혁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그건 저도 장담을 못 드립니다.”정루아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다시 기다리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김철웅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정신을 차린 여자아이가 울면서 가겠다고 난리를 친다는 내용이었다.정루아는 휴대폰을 바꿔주라고 했다.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정루아가 입을 열었다.“몸도 많이 다쳤잖아. 내가 사고를 낸 거니까 다 나을 때까지는 책임질게. 뭐가 그리 급해서 당장 나가려고 해?”여자아이는 울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정루아는 다그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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