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Capítulo 1 - Capítulo 10

30 Capítulos

제1화

결혼 4주년 기념일, 정루아는 구태윤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겨우 결혼기념일에 너 말고 형수님 좀 챙겼다고 그게 이혼할 일이야?”구태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루아야, 우리 무려 8년을 사랑한 사이야.”정루아는 덤덤히 대답했다.“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물론 지금 당장 떠오른 이유는 이거 하나뿐이지만.”어제저녁, 그녀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정성껏 음식을 차리고 꽃과 선물까지 사두었다.오직 남편과 로맨틱한 기념일의 밤을 보내기 위해서.지난 4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그들만의 소중한 관례였다.심지어 정루아는 새로 산 비장의 속옷까지 챙겨 입었다.하지만 그녀가 옷을 벗으려던 찰나, 구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기 너머로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구태윤은 즉시 동작을 멈추고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물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정루아는 한껏 달아오른 몸으로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구태윤이 나오자 그녀가 물었다. “꼭 가야 해?”남자는 이미 셔츠까지 다 차려입은 상태였다.선이 굵고 잘생긴 얼굴은 진지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준이가 열이 심하대. 금방 가서 얼굴만 보고 올게.”말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그날 밤 정루아는 끝내 그를 보지 못했다.새벽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녀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사진 속 구태윤은 병원 침대에 누운 구하준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었다.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지독하리만치 다정하고 깊어서 마치 제 핏줄인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아래에는 정시연의 메시지도 보였다.[루아야, 먼저 자. 태윤 씨가 하준이 걱정이 많네. 아무래도 나 외국에서 애 낳을 때 직접 와서 지켜봐 줬던 게 컸나 봐. 조카를 자기 친자식처럼 생각하더라고. 오늘 밤은 못 들어갈 것 같아.]정루아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살짝 풀린 동공과 휘둥그레진 두 눈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곁에서 출산을 지켜봤다니?당시 구태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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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녀는 병실 문 앞에 서서 정시연이 구태윤에게 물을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심지어 구태윤은 잔을 받지도 않은 채 다른 여자가 들고 있는 컵에 그대로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셨다.정루아는 이혼 합의서를 꽉 움켜쥐었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구하준이 몸을 움찔하더니 구태윤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그녀가 나타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구태윤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졌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다그치듯 물었다.“여긴 왜 왔어? 하준이 이제 겨우 잠들었는데.”“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정루아가 되물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당신이랑 또 무슨 상관이고? 당신 친아들이라도 돼? 왜 이렇게까지 유난인데?”“정루아!”구태윤이 큰 소리로 호통쳤다.“애 아픈 거 안 보여? 할 말 있으면 나중에 집에 가서 해. 하준이 지금 푹 쉬어야 하니까 떠들지 마.”이혼 합의서를 전하러 온 건 둘째치고, 보통 숙모로서 아픈 조카의 병문안은 당연한 권리 아닌가.하지만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구태윤은 무의식중으로 평화를 깨뜨리는 불청객으로만 여기고 있었다.정신을 차린 정루아는 이혼 합의서를 내밀었다.“사인해. 빨리 할수록 숙려 기간도 짧아질 테니까.”구태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마치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때 정시연이 다가와 말을 거들었다.“루아야,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니야? 태윤 씨는 정말 하준이 보러 왔어. 이제 고비는 넘겼으니까 어서 태윤 씨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그리고 허리를 숙여 구하준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하준아, 엄마한테 와야지. 작은아빠 이제 집에 가서 쉬셔야 해.”고작 세 살인 아이는 아픈 탓에 얼굴이 핼쑥해진 채였다.구하준은 구태윤의 옷깃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아빠랑 있을래요. 으앙, 작은아빠 가지 마세요.”정시연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평소보다 엄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하준아, 말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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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구태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짙은 눈동자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정루아, 이혼하고 나서 후회하지 마.”정루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이내 단호하게 내뱉었다. “사인이나 해.”후회라니, 가당치도 않았다.매일 밤 저 모자의 곁을 떠나 자신에게 돌아오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릴 수 없는 법이다.그녀는 결코 대인배가 아니었다.오히려 지독할 정도로 속이 좁은 여자였다.그를 사랑했기에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참아왔고, 그 정도면 충분히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구태윤은 그녀의 진심을 쓰레기 취급하며 내팽개쳤다.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줄 마음 따위는 없었다.정루아는 구태윤이 사인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뼈마디가 굵은 손이 만년필을 쥐고 휘갈기듯 이름을 써 내려갔다.사인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이혼 합의서를 낚아챘다.“내일 가정법원에서 봐. 바람맞히지 말고.”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섰다.구하준은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다.구태윤은 아이를 내려다보며 달래주었다. “하준아, 울면 대장부가 아니지. 대장부는 늑대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거야.”구하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아이는 울음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저 대장부 할래요. 늑대 때려줄 거예요.”“그래, 우리 하준이 장하구나.”구태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칭찬을 건넸지만 눈에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정시연이 자책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다 제 탓이에요. 하준이가 갑자기 열이 펄펄 나니까 너무 당황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나 봐요. 나 때문에 루아가 이혼 소리까지 하게 된 것 같은데... 태윤 씨, 얼른 가서 붙잡아요. 하준이는 어떻게든 내가 돌볼게요.”“됐어요.”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고작 애를 상대로 화를 내다니, 아직도 철이 저리 없어서야. 이참에 루아도 교훈을 좀 얻어야 해요.”“하지만 이혼하겠다고 하잖아요.”정시연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그럴 리 없어요.”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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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정루아는 눈을 깜빡이며 눈시울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참았다.그때, 휴대폰이 진동하며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내용을 확인한 정루아의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커졌다.수십 장의 사진 속엔 온통 정시연의 곁을 지키는 구태윤뿐이었다.배가 살짝 부른 그녀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드나들고, 만삭인 여자를 옆에 끼고 다정하게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까지.심지어 출산하던 날, 그는 병실 밖에서 누구보다 초조하게 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사진 아래 찍힌 날짜들은 전부 정시연이 아이를 낳았던 그해였다.유독 출장이 잦았던 이유가 출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임신 기간 내내 그 여자의 곁을 지켰던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옆에 누워 그녀를 끌어안을 수 있단 말인가.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뒤늦게 몰려왔다.겨우 참아냈던 눈물이 결국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무려 8년을 함께했는데, 정녕 단 한 순간이라도 그녀를 사랑하긴 했을까?정루아는 벌떡 일어나 앉아 잠든 구태윤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정신이 번쩍 든 구태윤이 화를 내려다 정루아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발견하고 멈칫했다.“루아야...”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구태윤은 몸을 일으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왜 그래? 악몽이라도 꾼 거야?”“구태윤, 당장 이혼 서류 접수하러 가자.”정루아는 시선을 떨구고 몸을 틀어 그의 손길을 피했다.남자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루아야,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이혼까지 운운하는 거야? 우리 아무 문제 없었잖아. 제발 그만 좀 해, 응?”정루아의 눈물은 어느새 멎어 있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되물었다.“지금 내가 그냥 삐져서 투정 부리는 것 같아?”구태윤은 묵묵부답했다.침묵이 곧 긍정이었다.정루아는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질투에 눈먼 아내를 대충 달래기만 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정작 본인은 계속해서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생활이라도 즐길 셈인가?정루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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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정루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내가 뭐 하러 억지 부려? 어차피 곧 이혼할 사이인데. 얼른 가서 이혼 서류나 접수하자. 이제 와서 구하준이 네 자식이라고 고백한대도 난 아무 상관 없으니까.”“너...!”구태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이혼은 네가 좀 진정한 다음에 다시 얘기해.”말을 마치고는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며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가 떠난 뒤, 정루아는 벽에 걸린 사진을 빤히 쳐다보다가 액자를 집어 들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날카로운 파편음과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고, 다정하게 웃고 있던 그녀와 구태윤의 모습이 처참하게 갈라져 있었다.사진을 부수고 나자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의 전화였다.“루아야, 혹시 오늘 무슨 날인지 잊은 건 아니지?”정루아는 휴대폰 달력을 확인하고서야 오늘이 아빠 생신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당연하죠. 아빠 생신이잖아요. 선물도 미리 준비해 뒀거든요. 지금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어요.”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 짜냈다.임혜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딸이 잊었을 리 없지. 올 때 운전 조심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정루아는 간단히 씻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거울 속의 여자는 눈이 퉁퉁 붓고 안색이 초췌하니 마치 악에 받친 아낙네 같은 몰골이었다.정씨 가문의 귀한 외동딸이 어찌 이런 모습으로 밖에 돌아다니겠는가.그녀는 정성껏 화장하고 립스틱까지 발랐다.결국 두 시간 가까이 공을 들인 뒤에야 화장실에서 나왔다.이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고 이번에도 임혜숙이었다.“루아야, 아빠가 올해 생신은 그냥 넘어가자고 하시네. 번거롭기도 하고 귀찮으시대. 그러니 너도 고생스럽게 오지 마.”갑자기 취소라니?방금 전까지만 해도 잊지 않았냐며 생일을 챙기던 사람이?순간,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네, 알겠어요. 선물은 사람 시켜서 보낼게요. 마침 저도 몸이 좀 안 좋았는데, 오늘은 그냥 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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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임혜숙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루아야, 오해하지 마. 시연이도 방금 막 도착했어. 우리 정말 이번엔 생일 그냥 넘기려고 했었어.”정루아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어느덧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그러니까 정시연이 있으면 난 여기 껴서는 안 된다는 소리네요? 사실 쟤가 엄마 아빠 친딸이고, 제가 주워온 자식이죠?”“정루아!”정석주가 버럭 호통을 쳤다. “네가 시연이 싫어하는 거 뻔히 아니까 일부러 부르지 않았어. 이왕 왔으면 조용히 있다 가라. 내 생일 괜히 소란 피워서 기분 망치게 하지 말고.”정루아는 사람들을 한 명씩 차례대로 훑어보았다.자신을 향한 시선은 하나같이 날 선 경계와 방어, 그리고 신중함으로 가득했다.마치 공공의 적이라도 된 듯.그녀는 걸음을 옮겨 탁자 위에 선물 상자를 내려놓았다.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정석주는 딸이 비로소 고분고분해진 줄 알고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그래, 네 마음은 잘 받았다. 얼른 앉아.”정루아는 의자에 앉는 대신 정시연을 뒤돌아보았다.“축하해, 네가 이겼어. 이제 더는 나한테서 뺏으려고 안달복달 안 해도 돼. 내 남편? 너 줄게. 우리 곧 이혼할 거야. 그리고 엄마 아빠도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그냥 다 가져.”정시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루아야, 난 그럴 생각 없었어...”“정루아!”정석주가 불같이 화를 냈다.“허튼소리 하지 마. 애 앞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야!”정루아의 눈시울이 발갛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텼다. 공들여 한 화장을 망칠 수는 없으니.“아이요? 쟤한테 어제 누구랑 있었는지 직접 물어나 보고 그런 말씀 하시죠.”이내 정시연의 품으로 파고든 구하준을 내려다보았다.“하준아, 어젯밤에 작은아빠가 너랑 같이 있어 줬지?”구하준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네...”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루아는 부모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정석주와 임혜숙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주위는 소름 끼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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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정루아.”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먼저 정시연과 구하준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그러고는 그녀의 팔을 거칠게 낚아채며 서슬 퍼런 기세로 추궁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무지막지한 힘에 정루아의 몸이 휘청거렸다.정작 그녀는 구태윤의 분노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오히려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당신이 여길 왜 와? 아... 부모님이 당신한텐 얘기 안 했나 보네? 올해 생일 파티는 건너뛰기로 했다고.”말을 마치고 임혜숙과 정석주를 바라보자, 두 사람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그렇구나, 나만 해당한 거였네.”정루아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내 말 맞지? 정시연이 진짜 정씨 가문 친딸이고, 둘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는 거. 생일도 당신이랑 정시연한테만 살짝 귀띔해줬잖아.”이내 입꼬리를 비틀며 웃더니, 다시 정시연을 향해 다리를 치켜들었다.“보면 몰라? 나 지금 사람 괴롭히는 중...”“악!”정루아는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밀려났다.결국 중심을 잃고 등이 나무 기둥에 거칠게 부딪혔다.“루아야!”구태윤의 눈빛이 흔들리며 목소리가 금세 누그러졌다.“오늘은 아버님 생신이야. 할 말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얘기해.”정루아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할 말 없어. 가족끼리 오붓하게 생일 파티하겠다는데, 나 같은 외부인이 끼어들어서 뭐 하겠어?”그녀는 자세를 바로잡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밥 다 먹고 가정법원부터 가자. 이혼 도장 찍고 나서 당당하게 집에 드나드는 게 보기 좋지 않겠어?”“루아야!”이혼이라는 말에 임혜숙은 당황한 나머지 급히 다가왔다. “그런 소리 함부로 내뱉는 거 아니야. 너희가 같이 보낸 세월이 몇 년인데, 어떻게 이혼을 그리 쉽게 운운하니?”“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엄마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딸이 사모님 취급받으면서 살 거 아니에요. 설마 애까지 딸린 상간녀 노릇이나 시키고 싶으신 건 아니죠?”말을 마치고는 턱을 치켜든 채 구태윤을 빤히 바라보았다.“끝까지 이혼 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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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남자는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이내 날카로운 검은 눈동자로 그윽하게 바라보더니, 정석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아버님, 제가 일 처리를 명확하게 못 하는 바람에 루아가 마음이 많이 상했나 봅니다. 나머진 저 믿고 맡겨주세요.”정석주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았다.“자네가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아주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 거 아닌가!”구태윤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제 아내잖아요. 평생 아끼고 보듬어 주면서 사는 게 남편 된 도리죠.”정석주는 그제야 회초리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임혜숙이 한 걸음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태윤아, 등은 좀 어때? 많이 아프지? 약이라도 좀 발라줄까?”구태윤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선물은 사람 시켜서 이미 보냈으니, 전 이만 루아랑 돌아가 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그는 정루아의 손을 단단히 움켜쥔 채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루아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직접 맞아본 적이 있기에 얼마나 아픈지 뼈저리게 잘 알았다.살점이 뜯겨 나가는 듯 화끈한 고통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니까.하지만 구태윤이 매질을 대신 받아냈다고 해서 감동할 그녀가 아니었다.자신의 인생에 불어닥친 비바람은 모두 이 남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니 대가를 치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정루아는 구태윤의 차에 억지로 올라탔다.남자가 허리를 숙여 안전벨트를 채워주려던 순간,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정시연이랑 잤어?”구태윤의 눈동자에 머물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내 형수님이야.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속담에도 있잖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정루아가 눈을 깜빡이며 능글맞게 말했다.“어때? 맛은 좀 있었어?”“정루아!”구태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적당히 좀 해.”“근데 말이야, 둘이 잔 게 아니라면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왜 그 여자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기를 쓰는지.”정루아는 붙잡혔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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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가정법원에 도착했을 때, 정문 앞은 이미 차들이 즐비해 있었다.정루아가 내리려 했지만 문이 잠긴 걸 발견하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문 열어.”구태윤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서늘한 한기를 뿜어냈다.차 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이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잠시 후, 통화를 마치고 정루아를 향해 말했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며칠 출장 가야 해. 나 돌아오면 그때 처리하자.”“지금 해.”정루아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더는 지체하기 싫어.”하지만 구태윤은 요지부동이었다.“지금 신청해도 어차피 숙려 기간 때문에 기다려야 해. 며칠 일찍 한다고 달라질 거 없어.”그러고 나서 잠금을 해제했다.“내려.”“얼른 하고 나오면 되잖아. 시간도 얼마 안 걸리는데.”그녀의 말투도 점차 퉁명해졌다.구태윤은 대답 대신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길가로 걸어가 택시를 잡아타고 그대로 떠났다.정루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안전벨트를 꽉 움켜쥐었다.그녀는 홀로 차 안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어느덧 밖은 어둠이 내려앉았다.결국 정루아를 현실로 불러낸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우리 예쁜이, 나 오늘 일찍 퇴근했는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절친 이연희의 연락이었다.정루아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나 데리러 올래? 지금 가정법원 앞이야.”친구의 심상치 않은 말투에 이연희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곧장 달려왔다.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루아는 그제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 있었던 탓에 다리에 감각이 없었고, 이연희를 보자마자 그대로 품에 안겨버렸다.“루아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제 너랑 구태윤 결혼기념일 아니었어? 제대로 못 보낸 거야? 이혼이라도 하게?”이연희가 다급하게 물었다.정루아는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힘없이 중얼거렸다.“나... 정시연한테 졌어. 아주 처절하게.”클럽 안, 번쩍이며 흔들리는 조명 아래 술잔들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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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구하준은 혼자 차에 남겨졌다.엄마는 금방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한잠 자고 일어나도 나타나지 않았다.결국 그는 차에서 내려 엄마를 찾아 나섰다.다만 이곳은 너무 넓었고,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입술을 삐죽거리던 구하준의 눈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고개를 치켜든 아이는 그중 한 명을 알아보고 중얼거렸다.“숙모...”이연희가 팔꿈치로 정루아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다.“어떡할 거야?”정루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어느덧 술기운이 올라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다.그녀는 허리를 숙여 구하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여긴 웬일이야?”구하준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으앙... 엄마 찾으러 왔어요...”“흥, 그럼 직접 찾으라고 해. 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구씨 가문 사람들이 정시연을 가만두지 않겠지. 그때 가서 뭐라고 변명하나 보자고.”이연희가 비아냥거리며 정루아를 끌고 가려 했다.하지만 정루아는 꿈쩍도 안 했다.번쩍이는 조명과 취객들이 가득한 클럽에서 세 살배기 꼬마의 등장은 그 자체로 이질적이었다.정루아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일단 너희 집으로 데려다줄게. 가서 도우미 아줌마한테 전화해 달라고 해.”이연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너 미쳤어? 해주고도 욕먹기 딱 좋은 상황인 거 몰라?”그러나 정루아의 생각은 달랐다.“정시연이랑 나, 악연 맞아. 물론 구태윤이 죽도록 미운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이제 겨우 세 살짜리 꼬맹이잖아. 이런 위험한 데 혼자 방치된 걸 보고도 어떻게 그냥 가? 난 그렇게는 못 해.”이내 구하준의 손을 잡고 클럽 밖으로 걸어 나갔다.“루아야, 내 말 좀 들어봐. 너 진짜 오지랖도 병이야. 정시연이 아들을 앞세워서 구태윤 동정이나 사고 너한테 대못을 박았는데 네가 왜 얘를 챙겨?”이연희가 다급하게 만류했지만 정루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직진했다.문제는 술이었다.취기 때문에 문 앞 계단을 내려가다가 몸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그만 발을 헛디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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