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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방을 떠나는 이승하 뒤로 그의 개인 비서 소수빈이 쟁반 위에 올린 약을 들고 나타났다.

“서유 씨, 부탁드립니다.”

공손한 태도로 약을 건네주며 그가 입을 열었다.

피임약이었다.

서유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길 허락하지 않는 이승하였다. 그래서 매번 일이 끝나면 소수빈을 시켜 약을 건네주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먹게 했었다.

하얀 알약을 바라보며 서유의 마음이 다시 아려왔다.

심장이 허약해져서인지 아니면 이승하의 무정함에 마음이 아파서인지 숨쉬기가 가빠졌다.

“서유 씨…”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가 혹여나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 봐 소수빈이 다그치듯 그녀를 불렀다.

그런 그를 흘긋 보던 서유는 조용히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

그제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살짝 풀며 소수빈은 가방에서 집문서와 수표들을 꺼내 테이블에 배열했다.

“서유 씨, 대표님께서 드리는 보상입니다. 부동산과 고급 자동차 외, 현금 백억 원을 준비하셨습니다.”

실로 놀라운 액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돈이었던 적은 없었다.

서유는 고개를 들어 소수빈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거 필요 없어요.”

약간 놀란 듯,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소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성에 차시지 않은 겁니까?”

그 말에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소수빈마저 내가 돈을 위해서 승하 옆에 있는 거로 생각하니 이승하는 오죽할까. 이렇게 많은 이별 비용을 내는 건 앞으로 더는 돈 때문에 들러붙지 말라는 뜻이겠지?’

“이건 승하 씨가 줬던 건데 다시 전해주실래요? 그리고 카드에 있는 돈은 건드린 적이 없다고 알려주세요. 지금 주신 돈과 부동산 모두, 전 받지 않을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 안에 있던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며 서유가 말했다.

‘5년 동안 대표님께서 주신 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은 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수빈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가 믿든 말든 서유는 블랙 카드를 집문서와 수표들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8호 맨션을 빠져나왔다.

서울의 겨울은 추웠다. 맨션 구역의 거리를 걷고 있는 서유의 가녀린 뒷모습은 유난히 앙상해 보였다.

흰색 코트를 여미고 입술을 앙다문 서유가 아파트로 돌아가는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문을 열었을 때, 아파트 1층을 점유한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한 인테리어였지만 차갑기 그지없었고 온도라곤 느껴지지 않아 서유의 마음이 더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일어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 역시 이승하가 준 것이었다. 그녀를 버렸으니 그가 줬던 그 무엇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옷장을 열어 모든 옷을 캐리어에 쓸어 담았다. 서유는 많은 물건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간단하게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캐리어를 들고 아파트를 떠났다.

차에 올라탄 후, 소수빈에게 문자를 보냈다.

「킹스 가든 아파트 비밀번호는 0826이에요. 」

눈치가 빠른 소수빈은 문자를 보자마자 그 뜻을 알 수가 있었다.

서유는 대표님의 준 돈을 일절 받지 않으면서도 그가 줬던 아파트마저 돌려주려는 것이다.

이토록 깔끔하게 떠나다니. 그녀가 5년 전 대표님 앞에 무릎을 꿇고 2억 원에 자신의 하룻밤을 사달라던 여자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신속하게 회사로 돌아와 모든 것을 그대로 이승하에게 돌려주었으며 서유가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그에게 전달했다.

이승하의 차갑고 거리감 느껴지는 눈빛이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훑었다. 그리다 블랙 카드 한 장 위에 시선이 내리꽂혔다.

“카드에 2억이 더 들어있다고?”

그가 서늘한 목소리로 묻자 소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사에 돌아오기 전 블랙 카드의 금액을 확인했었는데 대표님께서 매달 그에게 보내라고 했던 돈 외에 2억이 더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 돈에는 서유가 자신의 몸을 팔았던 값을 되돌려 주려는 의미가 다분히 담겨있었다.

이승하의 짙은 눈썹이 구겨졌다. 한참 말이 없던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 블랙 카드를 집어 들더니 이내 부러트렸다.

그리고 집문서와 수표를 소수빈 앞으로 밀어내며 차갑게 명령했다.

“깨끗하게 처리해.”

서유를 위하는 말 몇 마디 하려고 입을 벙긋하던 소수빈은 이승하가 곧바로 시선을 모니터로 향한 채 업무를 보려 하자 눈치껏 입을 닫아버렸다.

그는 물건들을 챙기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 대표님 사무실에서 물러났다.
Komen (1)
goodnovel comment avatar
소사랑
기왕 헤어질거면 쿨하게 돈 받고 통쾌하게 떠나는게 낫지 않나? 오히려 나 돈따위 관심 없는 여자야하고 어필하는 느낌 그리고 멋지게 필요한곳에 기부해부러~그남자도 어차피 버리는 돈인데 너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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