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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Author: 시열

제1화

Author: 시열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내가 이토록 더럽고 처참하게 죽을 줄은 몰랐다.

납치범에게 온갖 험한 일을 다 당한 나는 바닷가에 버려졌다. 차가운 바닷물은 한 번, 또 한 번 내 몸을 스쳐 갔다. 내 주변으로 피가 흩어져서 점점 피바다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구재인의 눈에는 양채민밖에 없었다. 나는 안중 밖에 있는 듯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몸에 남아 있는 피가 없었다. 골절한 다리도 부스러진 인형처럼 덜렁거렸다.

의사와 간호사는 이 지경이 된 인간을 처음 보는 듯했다. 나의 몸을 앞두고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한 간호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교수님을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교수님 실력으로는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요.”

다른 간호사가 말했다.

“교수님은 친구한테 있어요.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을 놔두고 낯선 사람을 구하러 오겠어요?”

나는 구재인의 아내다. 낯선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하도 억울하게 죽어서 그런지, 나의 영혼은 떠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나의 시체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영혼은 강제적으로 어딘가로 이끌렸다.

어지러운 것도 잠시, 다시 눈을 떴을 때 치료실에 있는 구재인과 양채민이 보였다. 양채민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구재인은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다.

상처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구재인이 직접 나설 필요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구재인의 눈빛에서 불안을 보아냈다.

“걱정하지 마, 지율아. 흉터 안 남게 잘 꿰맬게.”

처치가 끝난 다음 구재인은 직접 양채민을 일반 병실에 데려갔다. 그리고 두 사람만 있는 틈을 타서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나는 처음 보는 다정함과 부드러움이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와서 상처 부위를 소독해줬다. 간호사는 구재인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운명이라는 게 참 알 수 없어요. 똑같이 납치당했는데도 이 환자분은 아주 건강하네요. 같이 온 여자분은 이미...”

간호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재인이 가로챘다.

“채민이 앞에서 그 얘기 꺼내지 마요.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구재인은 간호사가 말하려는 사람이 나인 걸 알았다. 그는 나에 관한 아무것도 듣기 싫었던 것이다.

간호사는 깊게 잠든 양채민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채민을 지극정성 보살피는 구재인을 보고 나는 웃음만 나왔다.

그는 모델 일을 하는 양채민에게 흉터가 남을까 봐 걱정하고,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걱정했다. 함께 납치당한 내가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긴, 구재인은 날 혐오하니까.’

납치범이 요구한 돈을 들고 구재인이 양채민을 구하러 왔을 때, 나는 모든 힘을 다해 그의 앞으로 기어갔다. 기어가서 뱃속의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선심 써서 다른 구급차를 불러준다고 하며 말했다.

“양채연, 너 진짜 최악이다. 이게 이젠 살려고 존재하지도 않은 애를 지어내네. 역겨워. 이번에도 너 때문에 채민이까지 납치당했어. 절대 넌 용서 못 해. 네가 날 살려준 은혜는 이렇게 갚았어. 이따가 병원에서 이혼협의서에 사인 해.”

말을 마친 그는 겁먹고 우는 양채민을 안고 구급차에 올랐다. 그러고는 나도 데려가려는 구급대원의 말을 무시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구급차 문이 닫히는 순간에도 나는 있는 힘껏 바다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바닷가의 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하체에서는 피가 멎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새 불어난 바닷물은 나를 거의 잠그고 있었다.

이토록 처참한 꼴을 봤으면, 마음이라는 게 있는 인간이라면, 나를 도왔을 것이다.

외력으로 부러진 사지에서 전해진 통증으로 나는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물은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복부는 칼로 반복해서 찌르는 듯이 아팠고, 내가 담가져 있는 바다도 피바다가 되어갔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멍청해서 잘못된 사람을 사랑했어. 그래서 널 태어나지도 못하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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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6화

    어느날 갑자기, 구재인이 정신을 차렸다. 눈빛도 전처럼 혼탁하지 않았다.그는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검은색 정장도 입었다. 그리고 꽃다발을 사들고 나의 묘지에 찾아갔다.오늘따라 햇빛이 강렬했다. 나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나의 묘지 앞에 서서 그는 참회하기 시작했다.“내가 왜 빨리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인간적인 행동은 하면 안 됐어. 내가 멍청해서 연채민의 수에 넘어갔어. 나만 아니었어도 너랑 아이는 무사히 지냈을 거야. 내가 우리 행복을 파괴했어. 내가 너랑 아이를 죽였어.”그의 고백이 나에게는 웃음거리로만 느껴졌다. 감동은 하나도 없었다.“이제 내가 대가를 치를 게.”‘양채민이 다 죽었는데 무슨 대가를 치른다는 거야?’나는 구재인 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차에 오른 그는 갑자기 가속 페달을 밟아 기둥으로 돌진했다.곧이어 그의 영혼이 스르르 몸에서 빠져나왔다. 나의 영혼도 드디어 흩어지기 시작했다.그는 눈을 떠서 나를 바라봤다. 눈빛에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는 있는 힘껏 나를 향해 날아왔지만 이미 늦었다.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구재인이 나의 이름을 부르며 무언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사랑 따위 이제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다음 생에는 절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다.(끝)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5화

    “왜긴 왜야. 당연히 복수하려고 그랬지. 당신들한테.”연채민은 우느라 눈이 퉁퉁 부은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결혼한 사람, 해외에 있는 내내 폭력을 휘둘렀어요. 날 사람 취급도 안 하더라고요. 자기 고객한테 날 그냥 내던져 버려서, 나 이제 임신도 못해요. 내 인생이 이 꼴 난 건 다 두 사람 때문이에요. 그러니 친딸을 죽여버리는 건 당연한 거죠. 걔가 잘 사는 꼴은 절대 못 봐요.”그녀는 단단히 미친 모습이었다.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모님은 내가 죽었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이 아니다. 그들 마음속의 진정한 친딸은 양채민이기 때문이다.양채훈은 주먹을 꽉 쥐며 양채민을 향해 외쳤다.“친자식도 아닌 널 키워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 결혼 네가 원해서 한 거야. 우리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경고했었어.”이 세상에서 나를 걱정해줄 사람은 양채훈 밖에 없다. 내가 죽은 다음 속상해 하는 것도 양채훈뿐이다.양채민은 끝까지 자기 생각이 맞다고 우겼다. 경찰은 긴급 체포해서 그녀를 데려갔다.나의 시신은 화장 되었다. 양채민은 20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공인이 되어서 납치를 사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형에 처하라는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영혼은 계속 구천을 떠돌았다. 그것도 구재인의 곁에 붙어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야위는 그의 모습을 억지로 봐야 했다.구재인은 망가진 팔찌를 고치려고 엄청 노력했다. 하지만 팔찌는 영혼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그는 팔찌를 꽉 붙잡은 채 눈물을 흘렸다.“채연아, 제발 날 용서해줘. 난 진심으로 널 사랑해.”그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여전히 변함 없었다. 그가 어떻게 되든 나는 상관 없었다. 그저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었다.구재인의 정신상태는 점점 위태로워졌다. 그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고 도우미를 부르지도 않았다.그는 공기에 대고 말을 해댔다. 그리고 베개를 안고 아이 대하듯이 했다. 어떨 때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4화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이 왜 갑자기 왔는지 몰랐던 것이다.그러나 양채민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누가 양채민 씨죠?”경찰이 진지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신가요?”경찰이 대뜸 양채민을 찾는 것을 보고 내 어머니가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양채민은 어머니가 갓난 아기 시절부터 키웠다. 그래서 나보다도 양채민을 더 사랑했다.“조사 결과 양채민 씨가 납치의 주범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같이 서에 가주셔야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구재인은 넋이 나간 얼굴로 경찰을 바라보다가 뒷걸음질 쳤다.“그, 그럴리가요. 채민이는 제가 직접 돈을 내고 구해낸...”그는 말을 마저 하지도 못했다. 후회에 잠긴 것도 잠시 무언가 추측 가는 바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양채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살벌했다.경찰이 양채민을 데려가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일어서서 말렸다. 그러자 경찰은 단도직입적으로 영상을 틀어줬다. 내가 납치된 이후 일어난 일이었다.쓰러진 채 차에 올랐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낡은 창고에 있었다.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했지만, 가면을 쓴 다섯 명의 남자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그렇게 얼마나 시달렸을까, 나는 온몸이 부스러질 것 같았다. 아랫배는 찢어진 것처럼 아팠고 피가 흘러나오는 것도 생생하게 느껴졌다.태아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절망에 휩싸였다. 납치범을 붙잡고 아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내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또다시 일어났을 때는 양채민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나도 납치됐어. 재인 오빠랑 같이 있다가 네가 불러내서.”나는 겁에 질려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적 없었다.양채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광기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오빠는 너 때문에 내가 납치 됐다고 생각할 거야. 날 그렇게 사랑하는 오빠니까 널 얼마나 증오할까?”양채민의 말이 맞았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3화

    나의 시신은 해부되었다. 경찰은 적극적으로 내 죽음의 진실을 조사했다.납치는 양채민이 꾸민 짓이다. 그래서 구재인에게 구해질 때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구재인은 진짜 신고하지 않았다. 그저 돈만 들고 그녀를 구하러 왔다. 동시에 납치범에게 도망갈 시간도 줬다.대부분 증거가 양채민에 의해 악의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래서 진상 조사는 훨씬 어려워졌다. 구재인의 선택이 나를 더 큰 고통으로 밀어넣은 것이다.검사 결과가 나오고 나의 시신은 남겨둘 필요가 없어졌다. 부모님과 양채훈은 화장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구재인에게 알리지도 않았다.어떻게 장례식 소식을 알게 된 구재인은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수염까지 깎았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내 영정사진을 바라봤다.“채연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 뿐이야. 난 내가 양채민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잃고 나니 알겠어. 난 너를 사랑했어. 나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너야.”나는 구재인의 곁에 서서 그의 고백을 들어줬다. 조금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뒤늦은 고백 따위, 나는 필요 없었다.“내가 자기 마음도 모르고 멍청한 짓을 했어. 난 너한테 마음이 흔들렸어. 근데 그게 양채민한테 못된 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널 일부러 더 무시했던 거야. 난 양채민에 대한 집념을 사랑으로 착각했어. 그래서 너한테 상처주는 짓을 했어. 만약 한 번만 더 기회가 온다면 오직 너한테만 집중할게.”죽어도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게 참 한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다음 생이 있다면 그냥 썩 꺼져버려. 채연이 눈 더럽히지 말고.”양채훈은 내 마음의 대변인이었다.“채연이 이번 생은 사람 잘못 믿어서 망쳤어. 다음 생에는 꼭 사람 가릴 줄 알아야지.”구재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눈도 빨갛게 충혈되었다. 그렇다고 한들 딱히 할 말은 없었다.오늘은 장례식 마지막 날이다. 나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부모님은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 찾아온 사람이라고는 시부모님과 양채민만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2화

    구재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양채민은 바로 찾아왔다. 문이 열린 순간 그녀는 구재인의 품에 안겼다.“오빠, 요즘 연락이 안 돼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구재인은 그녀를 딱히 밀어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도록 내버려뒀다. 한참 후에야 울음을 그친 양채민은 빨개진 눈시울로 말했다.“오빠 지금 언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근데 이미 일어난 일에 과하게 신경 쓰지 마. 오빠 원래도 언니랑 이혼하고 싶어 했잖아. 앞으로는 내가 오빠를 챙겨줄게.”이렇게 말하며 양채민은 구재인의 옷 단추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먼저 그녀의 손을 꽉 틀어잡았다.양채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구재인을 바라봤다. 정말 순수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구재인은 냉정하게 그녀를 밀어냈다.“채연이는 한 번도 너한테 나쁜 마음을 품은 적 없어. 근데 넌 채연이를 모함하려고 계단에서 혼자 굴러떨어지기까지 했더라?”양채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했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오빠는 날 알잖아. 내가 왜 언니한테 그런 짓을 하겠어? 그리고 이번에도 언니가 날 불러냈기 때문에...”“잠깐, 너 나 안 좋아하지? 좋아하는 척한 건 그냥 사랑받는 기분을 즐겨서지? 맞지?”양채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재인이 끼어들었다. 시선에는 증오로 가득했다.양채민은 몸을 굳히더니 안색이 빠르게 변했다. 입술은 파르르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눈물은 안타까울 정도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구재인은 면역이라도 된 것처럼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집 밖으로 내쳤다. 밖에서 아무리 울음소리가 들려와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그렇다고 해도 나는 감동하지 않았다. 그가 양채민을 밀어내는 이유도 전부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양채민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또 받아줄 게 분명했다. 그는 양채민에게 원칙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1화

    구재인은 이틀 연속 외출하지 않았다. 전화가 오는 것도 받지 않았다. 그는 침실에 틀어박혀서 문을 잠갔다. 청소하려는 도우미조차 들이지 않았다.그는 서랍에서 나의 일기장을 찾았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장에는 구재인을 향한 마음도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나는 그 어리석은 과거를 구재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기를 써서 막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내가 구재인을 좋아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잘생기고 공부를 잘해서 좋았다. 모두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좋아해 본 기억이 있지 않는가? 나도 마찬가지다.어두운 조명 아래, 10대의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나는 구재인이 좋다. 재인이는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가 착하기까지 한 것 같다. 가난한 아이를 위해 기부하는 모습이 참 멋지다.][나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재인이는 재벌가 아들이다. 우리는 영원히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다.]후에 친부모를 찾은 다음에는 이렇게 적었다.[채민이 대신 결혼하게 된 게 참 불편하다. 구재인은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결혼 안 하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가 내 뺨을 때렸다. 너무 아팠다.][채민이가 양아치 같은 애한테 고백하는 걸 봤다. 채민이는 재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인이가 참 불쌍하다. 차라리 내가 결혼을 해야겠다.][양채민 혼자 계단에서 떨어졌다. 근데 재인이는 내가 밀었다고 한다. 나를 더 미워하게 된 것 같다.][재인이 다리를 다쳤다. 내가 잘 챙겨줘야 한다. 입맛이 까다로우니 학원에 다녀야겠다. 무조건 재인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고 말겠다.][양채민이 귀국했다. 조용히 나를 불러내서는 재인이한테서 멀어지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양채민은 분명히 재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양채민이 전화를 해서 울었다. 전화 한 통으로 재인이를 불러냈다. 내가 진짜 빠져줘야 하는 건 아닐까? 세 사람의 연애는 감당 못 하겠다.]일기장의 마지막 기록은 이랬다.[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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