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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의 반격

조용한 아내의 반격

โดย:  소피온จบแล้ว
ภาษา: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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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첫날, 유서린은 신흥 재벌 남편에게 미리 분명히 못 박았다. “언젠가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게 돼도 상관없어. 다만 그 일이 내 눈앞까지 밀려오는 순간, 당신은 두 번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거야.” 그래서 훗날 남편은 한 학교의 여교사에게 마음이 흔들리고도, 끝내 그 여자를 서린 앞에 세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쥐여 주면서도, 서린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만큼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그녀’는 고작 한 남자의 비호만 믿고 선을 넘었다. 태아가 자라면서 불룩해진 배를 내밀고 서린 앞에 나타나, 보란 듯이 웃었다. “재현 오빠가 직접 말했어. 언닐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결혼한 건 순전히 유씨 집안 돈 때문이라고.” “눈치가 있으면 얼른 애 지우고 이혼해. 안 그러면 재현 오빠한테 버려질 때, 한 푼도 못 받을 테니까!” 서린은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기 전, 이미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내 둔 뒤였다. [다음 주에 도원테크에 들어간 투자금, 다 회수해 주세요. 저... 이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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บทที่ 1

제1화

유서린은 네일숍 VIP룸에 앉아 있었다.

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고객님, 방금 주신 멤버십 카드의 잔액이 부족합니다.”

서린은 멍해졌다.

지난달, 남편 도재현이 카드를 건네며 500만 원을 충전해 뒀다고 했었다.

오늘이 첫 사용이었다.

직원이 노트북을 조회하더니 말했다.

“고객님, 지난주 목요일 오후에 460만 원 결제 내역이 있네요.”

“지난주 목요일에? 460만 원?”

서린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날 나 회사에 있었는데.”

직원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 그게... 도재현 대표님께서 어떤 여자분이랑 같이 오셨어요. 가실 때 그 여자분이, 430만 원은 담당 직원 팁으로 하라고 하셨고요.”

서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귓가가 웅웅 울렸다.

지난주 목요일, 재현은 분명 거래처 직원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밤 8시에야 들어와서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거래처였다며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서린은 분명히 기억했다. 그날 일부러 회의를 일찍 끝내고 들어와, 힘들었다는 재현에게 해장국을 끓여서 챙겨준 것을.

“CCTV 좀 보여 줘요.”

목소리는 낮았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화면 속에서 재현이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의 어깨를 감싸안고 들어왔다.

여자애가 고개를 들어 뭐라고 말하자, 재현은 웃으며 그 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서린은 굳어 버렸다. 남편의 다정한 손짓 하나로, 두 사람은 영락없이 풋풋한 연인처럼 보였다.

도재현이 자기 남편만 아니었다면.

돌연 화면 속 재현이 네일 아티스트의 안내에 따라 한쪽 무릎을 꿇더니, 제 손으로 여자애의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 주기 시작했다.

약을 다 발라 준 뒤에는,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여자아이의 발을 조심스레 받쳐 들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서린의 온몸에서 피가 얼어붙었다. 재현이... 남의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 주다니.

심지어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는, 남의 발에 입 맞춘 그 입으로 자신에게 입을 맞췄다.

서린은 치미는 헛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화면은 계속 흘러갔다. 재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애 곁을 지켰고, 나갈 땐 아주 자연스럽게 그 애가 건네는 흰색 핸드백을 받아 들었다.

서린은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저 가방은 틀림없이 자기 옷장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이었다.

지난주 재현이 출장에서 돌아오며 일부러 서린을 위해 챙겨준 선물.

알고 보니 자신에게만 준 게 아니었다.

“이 영상, 내 메일로 보내 줘요.”

서린은 일어섰다.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방을 움켜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

집으로 돌아온 서린은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사설탐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재현의 최근 일정, 전부 조사해 주세요.”

3시간 뒤, 메일함으로 사진 십여 장이 도착했다.

재현이 한소율이라는 이름의 여자애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영화관에서 열 손가락을 깍지 낀 사진들.

가장 눈을 찌른 건 혼인신고 서류 사진이었다.

날짜를 보니, 두 사람이 ‘결혼'한 지 벌써 1년이 넘어 있었다.

서린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결혼식장에서 재현이 자기 앞에 무릎 꿇고 맹세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서린아, 난 평생 당신을 배신하지 않아.”

그의 평생은... 이토록 짧았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탐정이 보낸 추가 정보였다.

[한소율, 24세, 청운국제중학교 교사. 혼인 서류는 도재현이 5만 원 주고 만든 위조 서류.]

[도재현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에 한소율의 아파트를 주기적으로 방문함.]

서린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아빠, 도원테크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서 투자를 뺀다면...”

[무슨 일이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대번에 굳었다.

[혹시 도재현이 너 못살게 굴었어?]

그 한마디에 서린은 무너질 뻔했다.

결혼식 날, 아버지는 붉어진 눈으로 딸의 손을 재현에게 넘기며 말했었다.

“내 딸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자네는 재계에서 발도 못 붙이게 될 줄 알게.”

“그 사람이...”

서린의 목구멍에 솜뭉치가 걸린 듯했다. 문득 작년에 폐렴으로 고열에 시달렸을 때가 떠올랐다.

재현은 한밤중에 서린을 둘러업고 응급실로 달려갔고, 병상 옆에 무릎을 꿇다시피 사흘을 지켰다.

자기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눈이 벌게지도록 밤을 새우던 그 남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을까?

“아직은 아무 일 아니에요.”

서린은 손등을 세게 깨물고서야 울음을 삼켰다.

“아빠, 제 연락 기다려 주세요.”

전화를 끊자,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현은 서류 봉투를 든 채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은 일찍 왔네?”

“응, 오늘 네일 받으러 갔었어.”

서린이 손을 내밀어 보였다.

“당신이 준 멤버십 카드로.”

재현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

금세 자연스러움을 되찾긴 했지만, 서린은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참...”

서린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직원이 그러던데, 지난주 목요일에 당신이 어떤 여자애를 데리고 왔었다며?”

재현의 표정이 일 초쯤 멎었다. 조심스레 서린의 기색을 살폈다.

서린의 안색이 평소와 다름없자,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옆집 장경순 여사님의 딸이야. 네일 받고 싶은데 혼자 가긴 무섭다길래, 당신이 자주 가는 데를 추천해 줬지.”

“...”

재현이 다가와 서린을 안았다.

“배고프지? 내가 밥 차릴게.”

서린은 주방으로 향하는 재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속이 쓰디썼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나를 영원히 바보 천치 등신으로 만들 셈이었을까?'

서린은 곧장 핸드폰을 들어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음 주에 도원테크에 들어간 투자금, 다 회수해 주세요. 저... 이혼합니다.]

문자를 보내고 고개를 들어 주방을 봤다.

재현이 채소를 썰고 있었다. 손놀림이 능숙했다.

‘지난 1년 남짓, 그 여자애 집에서 갈고 닦은 요리 솜씨이겠지.’

서린은 일어나 결혼반지를 빼서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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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유서린은 네일숍 VIP룸에 앉아 있었다. 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고객님, 방금 주신 멤버십 카드의 잔액이 부족합니다.”서린은 멍해졌다. 지난달, 남편 도재현이 카드를 건네며 500만 원을 충전해 뒀다고 했었다.오늘이 첫 사용이었다.직원이 노트북을 조회하더니 말했다. “고객님, 지난주 목요일 오후에 460만 원 결제 내역이 있네요.”“지난주 목요일에? 460만 원?” 서린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날 나 회사에 있었는데.”직원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 그게... 도재현 대표님께서 어떤 여자분이랑 같이 오셨어요. 가실 때 그 여자분이, 430만 원은 담당 직원 팁으로 하라고 하셨고요.”서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귓가가 웅웅 울렸다.지난주 목요일, 재현은 분명 거래처 직원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밤 8시에야 들어와서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거래처였다며 투덜거리기까지 했다.서린은 분명히 기억했다. 그날 일부러 회의를 일찍 끝내고 들어와, 힘들었다는 재현에게 해장국을 끓여서 챙겨준 것을.“CCTV 좀 보여 줘요.” 목소리는 낮았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화면 속에서 재현이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의 어깨를 감싸안고 들어왔다.여자애가 고개를 들어 뭐라고 말하자, 재현은 웃으며 그 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서린은 굳어 버렸다. 남편의 다정한 손짓 하나로, 두 사람은 영락없이 풋풋한 연인처럼 보였다.도재현이 자기 남편만 아니었다면.돌연 화면 속 재현이 네일 아티스트의 안내에 따라 한쪽 무릎을 꿇더니, 제 손으로 여자애의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 주기 시작했다.약을 다 발라 준 뒤에는,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여자아이의 발을 조심스레 받쳐 들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서린의 온몸에서 피가 얼어붙었다. 재현이... 남의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 주다니.심지어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는, 남의 발에 입 맞춘 그 입으로 자신에게 입을 맞췄다.서린은 치미는 헛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화면은 계속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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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서린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의 조명을 바라봤다.은은한 불빛. 눈이 상하지 않는다며 재현이 일부러 고른 조명이었다.몸을 뒤척여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숨 쉴 때마다 익숙한 세제 냄새가 났다.재현이 바꾼 세제였다. 이 브랜드가 순해서 서린의 피부에 자극이 없다고 했었다.아무리 눈을 감고 외면하려고 해도 머릿속엔 온통 CCTV 화면뿐이었다.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를 감싸안고, 고개 숙여 웃어 주고, 다정하게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던 재현.그 미소를... 서린은 너무나 잘 알았다.3년 전, 처음 서린을 만났을 때도 재현은 그렇게 웃었다.그때 재현은 도씨 집안에 갓 입적된 혼외자였다. 파티에서 찬밥 신세였는데도 용기를 내 서린 앞으로 걸어와서는, 귀까지 빨개진 채 물었다. “유서린 씨, 저와 춤 한 곡 춰 주시겠습니까?”서린은 상대해 주지 않았다.그래도 재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직접 싼 도시락을 들고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 서린이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도.석 달 뒤, 서린이 마침내 데이트 제안에 응하자 재현은 어린애처럼 기뻐했다.다음날 제시간에 데리러 오겠다며, 밤새 서린 집 아래에 서 있기까지 했다.결혼식 날, 재현은 버진로드에 무릎을 꿇고 서린의 손을 쥔 채 말했다. “서린아, 난 평생 당신을 배신하지 않아.”서린은 믿었다.결혼 후 3년간, 재현은 정말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남편이었다.서린이 화를 내면, 달랬다.서린이 원하면, 뭐든 줬다.한밤중에 시내 반대편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면, 기꺼이 차를 몰고 도시 절반을 가로질러 사다 줬다.서린은 믿었다. 이 남자가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고.그런데 지금은?문이 살며시 열리고 재현이 들어왔다. 재현의 몸에는 아직 주방의 온기가 배어 있었다.침대 가에 앉아 손을 뻗어 서린의 뺨을 만지려 했다. “여보, 밥 먹자.”서린은 그 손을 피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서린은 고개를 저었다.“눈이 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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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빗물이 차창을 거세게 두드렸다.재현이 차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빗소리를 뚫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내 말 좀 들어 봐!”서린은 운전석에 앉아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창밖에서 비에 젖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문득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천천히 차창을 내리자, 재현의 목소리가 곧바로 파고들었다. “언제 온 거야?”“방금.” 서린이 차갑게 웃었다.재현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갑자기 말이 빨라졌다. “쟤가 그 옆집 여자애야! 오늘 갑자기 집에 정전이 됐다길래 보러 온 것뿐이야!”서린은 더 듣고 싶지 않아 창문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언니!” 한소율이 갑자기 달려와 차 앞을 막아섰다. 빗물에 젖은 흰 원피스가 몸에 달라붙어 애처로워 보였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저희 정말 아무 사이 아니에요. 재현 오빠한테 화내지 마세요!”서린은 미간을 찌푸리고 시동을 걸어, 핸들을 꺾어 소율을 돌아 나가려 했다.쿵!둔탁한 소리가 났다. 소율이 별안간 차 앞머리로 몸을 던지더니, 부딪힌 듯 비틀비틀 물러나 젖은 바닥에 주저앉았다.서린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소율아!” 재현이 달려가 소율을 부축해 일으키고는, 고개를 돌려 서린을 노려봤다. 눈에 시뻘건 분노가 이글거렸다.“난 괜찮아.” 소율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오빠, 얼른 가서 언니 달래 줘.”“내가 저 여자를 몇 년이나 달래며 살았는데!” 재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 여자 눈엔 내가 개나 다름없어! 네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너는 나 때문에 저 여자 걱정을 해? 넌 어떻게 이렇게까지 착해!”서린은 운전석에서 굳어 버렸다.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오그라들었다.재현의 저런 말투는 처음이었다.날카롭고, 혐오에 차 있고. 마침내 가면을 찢어 버리고 맨얼굴을 드러낸 사람 같았다.“쟤가 제 발로 차에 와서 부딪힌 거야.” 한참 침묵하던 서린이 입을 열었다.“그만해!” 재현이 말을 잘랐다. “오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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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서린이 눈을 떴을 때, 눈부신 흰빛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여보!” 재현의 얼굴이 시야에 불쑥 나타났다. 눈에 반가운 빛이 번쩍였다. “당신 임신했대!”서린은 멍해졌다.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납작한 아랫배를 쓸었다.이번 달 생리가 늦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다 내 잘못이야.” 재현이 병상 곁에 앉아 조심스레 서린의 손을 감쌌다. 목소리가 온화했다. “당신이 오해한 거야. 소율이 임신한 아기는 그 몹쓸 전 남자친구 애야. 나는 걔가 혼자라 딱해서 챙겨 준 것뿐이고.”서린은 손을 빼내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현이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푹 쉬고 있어. 당신 먹을 것 좀 사 올게.”재현이 돌아서서 나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서린은 굳게 닫힌 병실 문을 응시하며,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옆 병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간드러진... 소율의 목소리였다.이어서 재현의 낮은 음성이 들렸다. 서린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 다정한 말투로.서린은 핸드폰을 들어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재 서랍에 있는 이혼 서류, 가져다줘요.”30분 뒤, 경호원이 소리 없이 병실에 나타나 서류봉투를 건넸다.서린은 서류를 펼쳤다. 서명란 위에서 손끝이 잠깐 머물렀다.알고 있었다. 재현은 지금 순순히 서명하지 않으리라는 걸.문이 벌컥 열렸다. 서린은 재빨리 손에 든 것을 감췄다.재현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들어왔다. “여보, 내가 당신 대신 소율이한테 사과했어. 걔가 용서해 준대.”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얼음장 같았다. “내가 걔한테 용서받을 일이 있어?”재현의 얼굴에서 웃음이 잠시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다시 다정한 표정을 되찾았다.“내가 사과하는 뜻으로 연극 티켓 사 놨어. 오늘 저녁에 소율이랑 셋이 같이 보러 가자.”서린은 몇 초간 재현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극장 안, 소율은 흰 원피스를 입고 얌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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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연극이 끝나자, 재현과 소율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서린은 시큰한 속을 감춘 채, 무표정하게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해서 짐을 싸는데, 핸드폰이 울렸다.아버지의 문자였다. [투자금 회수 절차 끝났다. 사흘 뒤 효력 발생이야. 그때 사람 보내서 널 데리러 가마.]“네”서린은 답하고, 계속해서 캐리어에 옷을 개어 넣었다.이날 밤, 재현은 돌아오지 않았다.[급한 일이 생겼어. 먼저 자.]문자 한 통만 왔을 뿐.다음날 아침, 서린이 막 세수를 마쳤을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재현이 시뻘건 눈으로 들이닥쳐 서린의 손목을 낚아챘다. “따라와!”“뭐 하는 거야?” 서린은 끌려가며 비틀거렸다.재현은 말없이 서린을 거칠게 차에 밀어 넣었다.차는 미친 듯이 달렸다. 신호를 몇 개나 무시하고 내달렸다.서린은 알아봤다. 소율이 일하는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교문 앞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소율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옷은 엉망으로 더러워졌고, 뺨엔 눈물 자국이 흘렀다.두 사람을 보자 소율이 벌떡 일어나 서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언니, 저 정말 재현 오빠 유혹한 적 없어요. 제발 절 놓아주세요.”“이래도 할 말이 있어?” 재현의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했다.“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서린이 재현의 손을 뿌리쳤다.재현이 차갑게 웃으며 안경 쓴 어린 남자애 하나를 끌고 왔다. “말해 봐. 누가 시켰어?”어린 남자애가 겁먹은 눈으로 서린을 흘끔 봤다. “저, 저 아줌마가 돈 주면서, 한소율 선생님한테 잉크 뿌리라고 시켰어요.”“거짓말!” 서린은 분해서 떨었다. “난 널 알지도 못해!”“그만!” 재현이 매섭게 말을 잘랐다.“소율이한테 사과해.”서린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왜 사과해?”재현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서린을 학교 운동장까지 끌고 갔다. 머리 위로 땡볕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소율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뒤를 따랐다. 치마엔 흙먼지가 잔뜩 묻었고, 무릎은 시퍼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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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서린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속에서 깨어났다. 아랫배엔 아직 묵직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이어 자신도 모르게 배를 더듬다가, 손끝에 차가운 링거 바늘이 닿았다.“깼어?”오른쪽에서 재현의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돌리니, 재현이 침대 곁에 앉아 있었다.몸을 숙여 서린의 배를 만지려다가, 도중에 우뚝 멈췄다.“이제 잘못한 거 알았어?” 재현이 물었다.서린은 눈을 감았다.대답이 없자, 재현이 손을 뻗어 서린의 뺨을 쓸었다. “진작 이렇게 얌전했으면 얼마나 좋아.”엄지로 서린의 갈라진 입술을 훑는 목소리가 다정했다. “이런 고생도 안 했을 거 아니야.”“옆집 동생 하나 때문에, 임신한 아내를 무릎 꿇게 하다니.” 서린이 고개를 틀어 그 손길을 피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재현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미간이 좁혀졌다. “난 옳고 그름만 따져. 사사로운 감정 같은 건 안 따져.”“나 쉬고 싶어.” 서린이 이불을 끌어 올렸다. “나가 줘.”재현의 표정이 확연히 멎었다.몇 초간 서린을 응시하다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따 다시 올게.”문 앞까지 갔다가 불쑥 돌아봤다. “내일 무슨 검사 받아? 아까 의사랑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일반 산전 검사.” 서린이 잠깐 멈칫했다.재현의 시선이 서린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더니, 갑자기 되돌아와 협탁에서 서린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비밀번호.”“생일.” 서린이 차갑게 웃었다. “기억은 해?”재현은 두 번을 틀리고, 세 번째에야 잠금을 풀었다.통화 기록을 빠르게 뒤져 이상이 없자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졌다. “소율이 옆 병실에 있어, 괜히 가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서린이 대답하지 않자, 재현이 픽 웃었다. “질투쟁이. 걘 진짜 그냥 옆집 동생이라니까.”서린은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문이 닫히자, 서린은 곧바로 침대 옆에 있는 벨을 눌러 의사를 불렀다.“수술은 내일 9시로 확정할까요?” 의사가 차트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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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잠을 자던 유서린을 누군가가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눈을 뜨니 재현의 음침한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그 눈엔 온기라곤 한 점도 없었다.“소율이 출혈이 심해서 수혈이 필요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너랑 혈액형이 같으니까, 지금 바로 가.”서린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 원래 빈혈이야. 피까지 뽑으면 큰일 나.”재현이 차갑게 웃었다. “걜 해칠 땐 뒷일은 생각 안 했어?”서린이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재현을 바라봤다. “내가 걜 해쳤다고?”“시치미 떼지 마.” 재현이 짜증스레 손을 내젓자, 경호원 둘이 곧바로 다가와 양쪽에서 서린을 들어 올렸다. “피 뽑고 나면, 이 일은 갚은 걸로 쳐 줄게.”서린은 몸부림쳤지만, 건장한 남자 둘의 힘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강제로 침대에서 끌어내려져, 비틀거리며 채혈실로 끌려갔다.복도의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사이에 신혼 시절이 아득하게 떠올랐다.그땐 서린이 빈혈로 어지러워하면, 재현이 밤새 죽을 끓여 한 숟갈씩 떠먹여 줬고, 서린을 보는 눈에 안쓰러움이 가득했다.“여보, 다음부터 어디 안 좋으면 꼭 말해야 해.” 그때 재현은 다정하게 말했다. “난 당신이 조금이라도 고생하는 게 싫어.”지금 그 남자는... 서린이 채혈 의자에 짓눌리는 걸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바늘이 혈관을 파고들었다. 새빨간 피가 관을 타고 혈액 팩으로 흘러 들어갔다.서린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 입술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손끝이 차가워졌다.의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재현에게 낮게 말했다. “이분은 몸이 너무 쇠약합니다. 더 뽑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재현은 서린의 창백한 얼굴을 응시했다. 미간이 살짝 좁혀지고, 아주 잠깐 망설이는 듯했다.하지만 이내 차갑게 내뱉었다. “뽑으세요.”서린은 눈을 감았다. 심장이 사납게 조여들었다.이 남자는 정말... 자신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는 거였다.채혈이 끝나자 서린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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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서린은 병상에 누워 있었다. 온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재현이 보내온 죽은 침대 머리맡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온기는 벌써 다 사라지고 없었다. 손을 뻗어 한술 뜨려 했지만, 손끝이 심하게 떨려 숟가락조차 쥘 수 없었다.아랫배의 통증이 점점 거세졌다. 칼로 뱃속을 휘젓는 것 같았다.서린은 이를 악물었다. “선생님...” 힘없이 불렀다.의사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서린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곧바로 이불을 걷어 상태를 살폈다. 이내 표정이 확 굳어졌다.침대 시트가 온통 피였다.“빈혈 환자가 이렇게 피를 흘리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더군다나 방금 그렇게 많은 양을 강제로 뽑았잖아요!” 의사의 목소리가 조여들었다.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위험합니다!”서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잠깐 뜸을 들이고, 낮게 덧붙였다. “제 남편한텐 알리지 마세요.”서린은 차가운 수술대에 누웠다. 의식이 흐려지는 사이에 5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처음 만났을 때, 재현은 빗속에 서서 서린을 기다렸다. 두눈 가득 다정한 웃음을 담고서.결혼할 때, 재현은 서린의 손을 쥐고 말했다. “서린아, 평생 잘해 줄게.”하지만 언제부턴가, 재현은 서서히 변해 갔다.서린이 너무 드세다고, 부드럽지 못하다고, 늘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못마땅해했다.서린은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유순해지려 했고, 필사적으로 재현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맞춰 줬다.이제야 서린도 알았다. 자신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재현은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던 거였다.마취약이 서서히 퍼졌다. 차가운 기구가 몸에 닿았다. 서린은 눈을 감았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아이는 사라졌다.5년의 결혼도,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다....수술이 끝나고, 서린은 병실로 옮겨졌다.간호사가 이불을 여며 주며 나직이 말했다. “푹 쉬세요.”서린이 힘없이 물었다. “혹시 제 남편... 왔었나요?”간호사는 잠깐 머뭇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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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병원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닫혔다. 재현은 소율을 부축한 채 계단으로 올라오는 참이었다.소율은 온몸을 재현에게 기대고 있었다.“오빠, 더는 못 걷겠어.” 소율이 몸에 힘이 없는지 흐물흐물 재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재현은 미간을 좁히며 뻣뻣한 팔로 소율을 받쳤다. “조금만 참아. 병실 다 왔어.”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쪽을 본 재현의 심장이 별안간 바늘에 찔린 듯 저릿했다.“왜 그래?” 소율이 얼굴을 들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재현은 시선을 거뒀다. “푹 쉬어. 나 오후에 중요한 회의 있어.”소율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럼 언제 보러 올 건데?”“회의 끝나고.” 재현은 병실 문을 열고 소율을 눕혔다. “얌전히 있어. 전화 너무 자주 하지 말고.”“알았어.” 소율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은 몰래 이불깃을 움켜쥐고 있었다.“참, 어제 나한테 수혈해 준 거 서린 언니 맞지? 가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문을 나서려던 재현의 몸이 멎었다. “응. 우리 관계는 절대 입 밖에 내지 말고.”“알아.” 소율이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재현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미간을 더 좁혔다. “가 봐야겠다. 프로젝트팀이 다 기다리고 있어.”재현은 돌아서느라 보지 못했다. 소율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는 것을....회의실에서 재현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기획서를 리신그룹 임원 앞으로 밀었다. “박 이사님, 이 신재생에너지 방안은 저희가 석 달을 준비한 겁니다.”“도 대표님, 서두르실 것 없습니다.” 박홍근이 느긋하게 서류를 넘겼다. “유서린 이사님은 오늘 안 오셨습니까?”재현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말이 끝나자마자, 주머니 속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발신자에 뜬 ‘소율’ 두 글자에 재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죄송합니다.” 재현은 전화를 끊고 기술 사양 설명을 이어 갔다.3분도 안 돼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소율에게 서린을 보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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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도재현은 발로 서린이 있던 병실 문을 걷어차 열었다. 텅 빈 침대 위엔 환자복이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협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재현의 손이 떨렸다.손끝이 종이에 닿기 무섭게 확 움츠러들었다. 데기라도 한 것처럼.흰 종이 위 검은 글씨, ‘이혼합의서’ 네 글자가 눈을 찔렀다. 맨 아래의 서명에 재현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말도 안 돼!” 재현은 서류를 낚아채 펼쳤다가, 돌처럼 굳었다.합의서 하단에 버젓이 자신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그날 극장에서 서린이 내밀던 종이가 떠올랐다.서린 몰래 곁의 소율과 손을 잡다가, 고개를 돌리는 서린의 시선을 피하던 자신도 떠올랐다.그때 재현은 허둥대던 참이라, 또 서린이 어리광으로 내민 각서인 줄만 알았다.들여다보지도 않고 서명하고는, 웃으며 이마에 입까지 맞췄다. “내가 당신이랑 한 약속 어긴 적 있어?”재현의 가슴속에서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쳤다.‘알고 있었어. 서린이는 이미 내 외도를 전부 알고 있었던 거야.'“오빠!” 소율이 문틀을 붙잡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이혼 서류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그 여자도 드디어 눈치가 생겼네!”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재현의 팔짱을 꼈다. “우리 내일 혼인신고 하러 가자.”“저리 가!” 재현이 소율을 뿌리쳤다. “내가 언제 너랑 결혼한댔어?”소율은 밀쳐져 비틀거렸다.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쪽이 먼저 이혼하자고 한 거잖아. 게다가...” 배를 쓰다듬으며 수줍게 웃었다. “우리 애를 혼외자로 만들 생각이야?”재현은 문득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 소리쳤다. “맞아, 아기! 서린인 아직 임신 중이야. 이혼할 리가 없어.”‘질투가 난 거야. 내가 달래 주길 바라는 거야.'‘그래, 분명 그럴 거야.'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서린에게 전화하려던 재현은... 소율의 다음 한마디에 그 자리에 못 박혔다.“그 여자, 아예 애 낳을 생각 자체가 없었어.” 소율이 입을 삐죽였다. “그날 복도에서 들었거든. 의사한테 중절 얘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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