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할머니한테서 얻은 정보

“제가 갈게요!”

남동생은 선하윤의 손에서 헬로 머니 1000장을 낚아채고 할머니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겁에 질려 휠체어 뒤로 몸을 움츠렸다.

[가족들은 모두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마세요.]

선하윤은 남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열쇠 꼭 챙겨. 네가 아무리 문 두드려도 누나는 안 열어줄 거야.”

“네, 누나.”

남동생은 돈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제 집에는 발코니에서 자는 척하는 할머니 혼자 남았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선하윤은 왠지 계속 자신을 노려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 어젯밤에 저한테 오신 적 있으세요?”

할머니가 천천히 눈을 떴는데 좀 전에 헬로 머니를 봤을 때와는 달리 기력이 없어 보였다.

그런 할머니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선하윤은 헬로 머니 1000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곧이어 할머니가 마치 구걸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시커먼 치아와 치아 사이의 정체불명 생물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미안... 끄흐흐... 내가 몽유병이 있어서 혹시... 끄흐흐... 우리 강아지 자는 데 방해한 건 아니야?”

고장 난 테이프 녹음기 같은 끔찍한 목소리로 사과하고 있으니 실로 우스꽝스러웠다.

“그럼 블랙캣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침실 문은 밤의 이질화된 가족들을 막아줄 수 있지만 문 잠금장치가 견고하지 않아 7일을 버티지 못한다.

그녀는 던전의 스토리를 빨리 파악하고 이 던전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때 할머니가 마치 공포에 질린 듯 말했다.

“네 엄마가 고양이를 싫어해... 끄흐흐... 엄청 싫어하니까 절대 고양이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마...”

“괜찮아요. 엄마 집에 안 계시잖아요.”

선하윤은 시간을 잘 조절하며 할머니를 유도했다.

“할머니, 우린 가족인데 가족끼리 뭘 숨길 게 있어요? 이 헬로 머니들 좀 보세요. 이것들 모두 제가 할머니께 드리는 거예요.”

어젯밤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던 것은 블랙캣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할머니는 몹시 망설이는 듯해 보였다.

밤이 되면 할머니는 변이하며 힘이 강해지고 휠체어에서 일어설 수도 있다.

낮의 할머니는 중립적인 사악한 성향이지만 밤에는 혼란스러운 사악 성향으로 변한다.

돈 앞에서 눈이 뒤집혀 던전의 핵심 정보를 제공하거나, 선하윤을 이곳에 영원히 붙잡아 두려는 것, 할머니는 깊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단란한 대가족인지라 할머니는 결코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 집에는 선하윤이 필요하다.

마지못한 선하윤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할머니, 저는 할머니와 우리 가족 모두 너무 사랑해요. 블랙캣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면 아빠와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할머니는 한숨을 쉬더니 이번에는 휠체어를 움직이지 않고 창밖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우리 강아지, 너에게 고양이를 선물한 그 남자애는 좋은 사람이 아니란다. 너는 미래가 창창한데 그 아이는 너를 나락으로 끌어들이려 하는구나. 바깥세상은 위험하단다. 나쁜 사람들이 아주 많아. 오직 이 집만이 너를 보호할 수 있어. 그러니 그 고양이를 찾지 마렴. 그 아이는 너를 유괴하려 한단다.”

할머니는 핵심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에 선하윤은 남동생과 아빠, 엄마가 없는 틈을 타 분홍색 방에 들어가 단서를 찾기로 결심했다.

룰 오브 괴담에서, 탐험하지 않은 영역은 미지의 위험을 의미했다.

회색 침실은 아빠와 엄마의 방이고 안에는 창문이 있다.

분홍색 침실은 남동생의 방이고 따로 창문이 없다.

이 두 방 모두 신채린이 첫날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

선하윤은 남동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의 책상 위에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도자기 인형이 놓여 있었고 인형 아래에는 쪽지가 깔려 있었다.

그 쪽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가 네 곁에 없을 때, 이 인형이 나를 대신해서 함께해 줄 거야. 우리 항상 최선을 다하고 함께 좋은 대학에 가자.]

서명은 [사랑하는 곰돌이]였다.

이 인형은 틀림없이 곰돌이가 이 집 딸에게 선물한 것이다.

다시 아빠와 엄마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 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억압적으로 느껴졌다.

벽에 걸린 결혼사진은 반으로 찢겨 있었고 검고 끈적한 액체로 다시 붙여진 상태였다.

선하윤이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물건을 찾으려 할 때, 사진 속 아빠와 엄마가 갑자기 눈을 깜박였다. 곧이어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방이 너무 답답해. 우리 딸, 창문 좀 열어 주렴...”

“창문 열면 너는 자유로워질 거야...”

“나는 새야, 날고 날아서 이 집을 벗어나게 될 거야...”

‘창문 열어, 창문 열어, 창문 열어...’

선하윤의 몸이 통제 불가능하게 창문 쪽으로 움직였다.

‘안 돼, 나 오염됐어.’

일촉즉발의 순간,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세게 꼬집으며 그 통증으로 애써 정신을 차렸다.

극심한 고통이 뇌로 전해지자 선하윤은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는 감히 더는 사진을 쳐다보지 못하고 방에서 나왔다.

문밖을 나서자 머릿속의 목소리가 멈췄다.

쾅, 쾅.

별안간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저예요. 문 열어줘요.”

남동생이 외출할 때 분명 열쇠를 챙기라고 당부했었는데, 가족들 모두 열쇠가 있기에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문밖의 존재가 한사코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누나, 왜 문 안 열어줘요? 손에 짐이 너무 많아서 열쇠를 못 꺼내겠다고요. 얼른 좀 열어줘요.”

문을 두드릴 손은 있으면서 열쇠를 꺼낼 여유가 없다고?

똑똑한 선하윤은 그의 헛소리에 넘어가지 않았다.

집안에 아무런 응답이 없자 문밖의 소리도 멈췄다.

오후 두 시, 남동생이 드디어 돌아왔다.

그는 과자 여러 봉지에 도시락을 두 개 들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선하윤이 원했던 ‘건강식품’이었다.

선하윤은 두 봉지의 과자를 힐긋 보았는데 봉지 밑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안에는 잘린 손가락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때 남동생이 불평을 쏟아냈다.

“누나가 좋아하는 건 너무 비싸요. 내가 산 과자 한번 먹어볼래요?”

선하윤은 건강식품의 포장을 확인했는데 플라스틱 밀봉에 손상된 흔적이 없었다.

“아니, 난 이거 먹을게.”

선하윤은 발끝으로 바닥의 핏자국을 가리켰다.

“더럽혀진 곳은 깨끗하게 치워. 엄마한테 들키면 네 과자들 전부 뺏어갈지도 모르니까.”

남동생은 손가락 하나를 입에 넣고 오도독 씹었다.

점심을 먹은 후, 선하윤은 계속 온라인수업을 들었다.

수업 패턴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시간도 정확히 맞췄다.

오늘 수업은 소리가 컸다가 작았다를 반복했고 선생님도 의도적으로 선하윤을 겨냥하는 듯했다. 하여 그녀는 수업 내용을 듣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 선하윤은 선생님의 마무리 멘트를 무시하고 서재를 나왔다.

저녁이 되자 아빠와 엄마가 함께 돌아왔다.

아빠는 몹시 지치고 먼지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선하윤은 다정하게 아빠와 엄마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계명 부동산 개발 회사... 끄흐흐... 프로젝트가 전부 무산됐어. 그놈들 죄다 나만 물고 늘어지잖아!”

아빠는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점점 할머니와 비슷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심지어 선하윤이 내민 물을 밀치며 소리쳤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술은? 끄흐흐... 내 술 어디 갔어?”

엄마의 얼굴도 점점 망가져 갔다. 꼭 마치 아빠의 말을 듣지 못한 듯 터벅터벅 부엌으로 걸어갔다.

“저녁 준비, 저녁 준비, 젠장! 이 집에서 내가 제일 많이 희생했어! 짜증 나 죽겠어, 빌어먹을 저녁 준비!”

부엌에서는 도마질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한편 남동생은 방에 숨어 나오지도 못했고 할머니는 소음 때문에 머리가 점점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