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092화

작가: 김원호
문벌 사람들은 장백웅이 모든 이를 처리해 버리겠다는 말에 놀라 어찌할 바 몰랐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장백웅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말을 끄는 허름한 노인 하나 때문에 그들을 죽이려 하다니!

“됐구만, 마차 안의 아가씨께서 피 냄새를 싫어하시니 길을 내주고 우릴 보내주면 돼.”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께서 도량이 넓으시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장백웅이 말을 마친 뒤 문벌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모두 자리를 비켜라!”

그러자 모든 문벌 멤버들이 주동적으로 정양문에서 큰고 넓은 길을 내어주었다.

그리고서야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마차를 끌고 천천히 경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마차를 향해 장씨 가문의 절정 강자 장백웅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잘 다녀오세요.”

달그락!

달그락!

마차는 장백웅과 다른 사람들의 놀라운 시선 속에서 천천히 정양문을 지나 경성으로 들어갔다.

마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장백웅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장백웅 님,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저 마부가 누구기에 장백웅 님처럼 존귀하신 분이 이처럼 존경스러운 태도로 맞이해야 하는 겁니까?”

이때 다른 절정 강자가 장백웅 곁으로 다가와 의아해하며 물었다.

“모 선생은 저분을 알아 봤습니까?”

모 씨 성을 가진 절정 강자가 고개를 저으며 장백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40년 전, 육도 절정에 다다른 한 명의 강자가 갑자기 나타나 천하를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보여줬다고 들어본 적 있을 것입니다.”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술과 사랑에 미쳐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곤륜하에 화진 제일 강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아무도 그 강자의 소식을 알지 못했답니다.”

장백웅의 말을 들은 그 모 씨 성을 가진 절정 강자는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육도 절정이라니!

신급의 정점이 바로 절정이다.

하지만 절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구주, 왕의 귀환   제1093화

    “이럴 수가!”“어쩐지, 장백웅 님마저도 공손히 대해주더니……이제야 알았습니다.”모 씨 성을 가진 절정 강자는 드디어 자초지종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가마가 사라진 쪽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깊은 인사를 올리며 존경을 표시했다.장백웅은 멀어져 가는 마차 쪽을 그윽이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태평성세가 도래한 지금, 사십 년 전에 이미 천하를 뒤흔들었던 육도 주도가, 뜻밖에도 경성의 황성에 숨어 버리다니, 정말 생각지 못할 일이군.”...... 서울.마차 한 대가 많은 사람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마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그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었다. “주도님, 아까 그 사람들이 어르신을 알아본 것 같은데요?”은방울을 굴리는 듯 은은하고 듣기 좋은 나긋한 목소리가 가마 안에서 흘러나왔다. 손에 채찍을 들고 술을 마시면서 마차를 몰고 있는 주도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이 늙은이는 40여 년 동안이나 이름을 숨기고 살았으니, 설사 알아낸다고 해도 지금은 그때의 제가 아닙니다.”“허허!”“제 앞에서 시치미 떼지 마세요!”마차 안에 있는 사람이 대답했다.“허허, 이 늙은이는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강산은 수백 년 동안 대대로 인재를 배양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 화진의 소년 인왕, 이 녀석은 수많은 강자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온몸의 내공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물론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 제가 어찌 그에게 마음을 줄 수 있겠습니까?”그 사람이라고 말할 때 가마 안의 목소리는 분명 원망하면서도 애정이 들어있었다.“여섯째 공주님이 참 부럽네요. 이 세상에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직 존재하니까요.”주도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 하세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나요?”가마 안의 사람이 호통을 치자 주도는 급히 말을 돌리며 사과했다. “예, 공주님의 말씀이 맞으십니다. 하지만 저도 공주님이

  • 구주, 왕의 귀환   제1094화

    “이봐요, 근데 문벌들이 왜 모두 서울에 모여있는 거죠?”가마 안에 있던 여섯째 공주님이 물었다. 마차를 몰고 있던 주도가 코끝을 만지며 대답했다. “아마도 공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인왕 때문인 것 같은데요.”“윤구주 말입니까?”“예, 제가 들은 바로는, 얼마 전, 서울의 문벌 절정이 제멋대로 뛰쳐나왔다가 정양문 아래에서 참살당했다고 합니다. 그 사건에 육도진도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바로 그 소년 인왕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그가 곤륜에서 왕으로 봉해질 때 서열들은 세가를 비롯하여 종문까지 정치에 관여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게다가, 그의 사망 소식이 세상에 널리 퍼져서 3대 서열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나서서 소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그들은 이 소년 인왕이 살아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공주는 주도의 말을 듣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죠. 제 남자는 쉽게 목숨을 잃을 사람이 아니에요.”“공주님 말씀이 맞으십니다.”“이 무식한 놈들이 감히 제 남자를 상대하다니 죽여야 마땅하지요.”공주는 화가 나는지 말투가 점점 거칠어졌다. “이 문벌들은 걱정할 게 못 됩니다. 하지만, 만약 세가와 종문이 참여한다면, 일이 번거로워질 것입니다.”“흥! 제 아버지는 너무 인자하세요. 그러니까 문벌, 세가와 종문이 이리 창궐하죠! 제 뜻대로라면 그들을 모두 죽여버릴 것입니다.”주도는 급히 공주를 말리며 대답했다. “공주님,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화진은 당시 3대 서열에 뒷받침받고 현재의 번화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공주님의 이 한마디는 천하의 무인들을 모두 단번에 때려죽이는 것입니다.”“안됩니까? 누가 그들더러 제 남자를 건드리라고 했습니까?”주도는 공주의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됐어요. 듣기 싫은 말은 그만하고 빨리 윤씨 일가로 가요.”마차 안의 공주가 말을 끝냈다.주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차를 몰고 윤씨 일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 구주, 왕의 귀환   제1095화

    화진 여섯째 공주가 마차에서 내린 뒤 그녀는 아름다운 눈으로 윤씨 일가의 금으로 쓰인 간판을 보았다. 예전에 이 금으로 된 간판은 윤씨 가문의 자랑이었다. 왜냐하면, 이 간판 위에 글을 쓴 사람이 바로 화진의 오늘날 국주이기 때문이다.하지만 16년 전에 사고가 난 뒤로 윤씨 일가는 간판에 대해 더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게 바로 아버지께서 직접 하사하신 간판이군요. 참 아쉽게 됐네요.”공주는 윤씨 일가의 금으로 쓰인 간판을 보며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주도가 눈을 비스듬히 뜬 채 그 간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든 국주님의 글은 아주 예술입니다.”공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어릴 적 기억에 빠져들어 갔다. “어렸을 때 저는 항상 그를 따라 대문 앞에 와서 함께 놀았어요.”“그는 저를 누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고, 저는 구주 오빠라고 불렀어요.”윤씨 일가의 대문을 바라보는 공주는 마치 10여 년 전 윤구주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공주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도는 그녀가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주가 드디어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다. “들어가죠.”말을 마친 공주가 발걸음을 내디디며 먼저 윤씨 일가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 있던 주도도 빠른 걸음으로 공주를 따라갔다. 윤씨 일가에 들어서자 갑자기 4줄기의 센 기운이 감돌았다.뒤이어 네 사람의 모습이 마당에 나타났다.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사람은 50살 좌우지만 온몸에서 고위 신급 강자의 기운을 뿜어냈다.나머지 세 사람도 모두 윤씨 일가의 신급 강자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윤씨 일가의 안위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분이시다. “두 분이 말도 없이 무슨 일로 윤씨 일가를 침입하셨나요?”네 사람이 나타나기 바쁘게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공주는 그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하 할머니를 찾으러 왔는데요?”“하미연 님 말씀입니까?”“실례지만 그쪽 성함이 무엇입니까?

  • 구주, 왕의 귀환   제1096화

    “나는 이홍연이라고 해. 꼬마야 너는 이름이 뭐야?”공주가 윤하율에게 물었다. “저는 윤하율이라고 해요.”윤하율은 물음에 대답하고 공주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정말 예쁘세요. 하율이는 지금까지 언니처럼 예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요.”이홍연은 윤하율의 칭찬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홍연은 윤하율에게서 아름답다는 칭찬을 받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너는 입이 참 달콤한 꼬마구나.”“그러면 언니한테 하 할머니께서 집에 계시는지 알려줄 수 있어?”“제 할머니 말씀하시는 거예요?”“그래 맞아.”“할머니께서는 지금 오빠 장난감 정리하고 계세요. 예쁜 언니, 제가 같이 찾아 줄게요.”윤하율은 대답하며 그네 위에서 뛰어내렸다. 이때 이홍연의 시선이 윤하율이 손에 쥐고 있던 흙인형에 꽂혔다. 그 흙인형을 보자 이홍연은 흠칫하더니 물었다. “하율아, 저 흙인형 어디서 가진 거야?”이홍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윤하율은 오른손으로 흙인형을 들고 신이 나서 대답했다. “이 흙인형은 할머니께서 갖고 놀라고 주신 거에요.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건데 이 흙인형은 구주 오빠가 어렸을 때 소꿉친구랑 같이 놀던 거래요.”소꿉친구? 이 네 글자가 이홍연 머릿속에 들어가자 그녀가 갑자기 몸을 살짝 떨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입에 붙인 적 없는 네 글자였는데 지금 다시 들으니 이홍연의 어릴 적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녀는 넋을 놓은 채 윤하율 손에 있는 인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율아, 그 인형을 언니한테 보여줄 수 있어?”윤하율은 잠깐의 고민 뒤에 대답했다. “좋아요.”그리고 손에 있던 흙인형을 이홍연에게 건네주었다. 이홍연은 인형을 건네받고 복잡한 표정으로 인형을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 인형은 이홍연이 어렸을 때 윤구주와 같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흙인형이 하나는 남자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이다. 남자는 윤구주를 뜻하고 여자는 이홍연을 뜻했다. 그들은 두 손을 맞

  • 구주, 왕의 귀환   제1097화

    하미연은 뒤에 서 있는 이홍연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섯째 공주님이시죠?”이홍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이가 공주님을 뵙습니다.”하미연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겨우 다섯 살 먹은 윤하율이 이 장면을 보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께서 왜 예쁜 언니를 만나자마자 갑자기 무릎을 꿇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어서 일어나세요.”이홍연은 급히 말리며 하미연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이 늙은이가 이번 생에 다시 공주님을 뵐 수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습니다.”하미연이 일어선 뒤 흐릿한 눈을 뜨고 후들거리며 말했다. “할머니, 왜 이러십니까? 벌써 잊으셨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제 친할머니라고 생각했는걸요.”이홍연이 웃는 얼굴로 하미연의 팔을 껴안았다. 하미연은 매우 흥분했다. 그녀는 화진의 가장 아름다운 이홍연 만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십여 년 전, 이홍연이 황성으로 돌아간 뒤, 몇 년 동안 윤씨 일가에 한 번도 발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오시다니!“공주님, 어서 들어오세요.”하미연은 감격에 겨워 이홍연을 끌어당기면서 대나무 의자를 들고 그녀를 앉혔다.이홍연도 사양하지 않고 의자 한쪽에 앉았다.“오랜 시간 못 뵈었더니 공주님께서는 정말 점점 예뻐지셨네요.”하미연은 한쪽 눈을 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이것이 십여 년 전의 이홍연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할머니, 칭찬 감사해요. 근데 왼쪽 눈은 어떻게 되신 거예요?”이홍연은 그제야 하미연의 한쪽 눈이 실명했다는 것을 알았다. “괜찮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눈이 나빠졌습니다.”하미연은 그녀의 눈이 윤구주를 위해 울어서 실명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홍연은 그 말을 듣고 더 묻지 않았다.“공주님.”하미연이 입을 열려 하는데 이홍연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 “할머니, 저를 홍연이라고 불러주세요. 어릴 적에 계속 이렇게 불러주셨잖아요.”“하지만.”하미연이

  • 구주, 왕의 귀환   제1098화

    하미연의 물음에 이홍연은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하미연도 자기의 말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이 늙은이가 말을 잘못했네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이홍연은 당연히 조그마한 일에 화를 낼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손을 저으며 고개를 들고 물었다. “할머니,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무슨 일입니까? 물어보세요.”“할머니 구주 오빠 지금 서울에 있나요?”이홍연는 예쁜 눈으로 하미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미연은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구주는 지금 서울에 있어요.”이 말을 들은 이홍연은 순간 감격에 겨워 할머니의 투박한 두 손을 잡아끌었다. “진짜로 살아있어요? 죽지 않았어요?”“예, 살아있답니다.”이홍연의 가냘픈 몸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아름다운 눈이 너무 흥분된 나머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쁜 놈! 살아있으면서 저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어요.”이홍연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억울해져서 눈물이 줄 끊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렸다.화진의 공주님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하미연이 얼른 말했다. “공주님 용서하소서. 확실히 구주가 잘못했습니다만 구주에게도 고초가 있습니다.”“알고 있어요.”“십여 년 전 그 일은 제 아버지 잘못이에요. 하지만 구주 오빠가 곤륜에서 왕이 된 후로부터 아버지께서 더는 책임을 묻지 않았잖아요.”이홍연도 사실 십 여년 전 사건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홍연은 윤하율만한 아이였기 때문에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 “공주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공주님도 아시다시피 구주가 고집이 세요. 고생을 너무 많이 한 아이인지라, 제가 제멋대로 결정해줄 수는 없어요.”하미연의 말속에는 온통 윤구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를 무시하면 안 되죠.”“예전에 저랑 결혼할 거라고, 저만 사랑할 거라고 약속했으면서 곤륜에서 왕이 되고는 문아름이랑 결혼했잖아요.”말하는 이홍연의 목소리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녀는 주먹

  • 구주, 왕의 귀환   제1099화

    이홍연은 아버지 생각에 갑자기 안색이 나빠졌다. 왜냐하면, 이홍연의 아버지께서 확실히 그녀와 윤구주가 사귀는 것를 반대하며 막으려 했었다. 그가 이홍연을 황성에 가두어 윤구주를 만나지 못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이홍연은 순간 뭔가 깨달았다. “홍연아, 구주는 너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생각했어. 비록 너를 입에 올린 적은 없지만 그 애의 마음은 이 할머니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하미연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홍연은 하미연의 말에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렸을 적에 이홍연은 윤씨 일가를 찾아와 윤구주를 만나기 좋아했다. 윤하율이 가지고 놀던 흙인형마저 이홍연이 어릴 때 윤구주와 함께 만든 것이였다. 하지만 16년 전 윤구주 모자가 윤씨 일가에서 쫓겨난 뒤로부터 이홍연은 윤구주를 만난 적이 없었다. 줄곧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이 될 때까지 말이다. 그때 화진의 공주인 이홍연은 멀리서 윤구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홍연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왕을 배후하고 화진의 제1인왕이 되었는데 여전히 그와 상봉하지 못했다.윤구주가 문씨 가문과 결혼한 뒤에야 이홍연은 슬픈 나머지 홀로 화진을 떠나 세계 각지를 유람하게 되었다. 이제 그녀가 드디어 돌아왔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이홍연의 마음속에는 온갖 신맛, 단맛, 쓴맛이 다 있었다. 다만 지금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모습일지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다. “할머니, 제발 구주 씨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이홍연은 깊은 생각에서 잠깐 빠져나와 눈물을 닦고 하미연을 바라보았다. “구주는 지금 예전에 엄마가 살던 곳에 머물러 있을 거야.”“할머니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이홍연은 하미연을 향해 큰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했다. “할머니, 저희가 만나면 구주 오빠가 저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이홍연이 갑자기 물었다. 어릴 적에 이홍연은 윤구주를 졸졸 따라다니던 여자아이였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 윤구주가 이홍연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미연은

  • 구주, 왕의 귀환   제1100화

    “얼른 어머니를 보호해야 해요.”둘째 윤창현이 급히 소리쳤다. 윤신우는 갑자기 동생을 말리며 말했다. “창현아, 조급해하지 마. 내 느낌으로 상대방의 절정 기운은 아마 오약을 넘었을 거야. 설마 그가 어머니에게 해를 입힌다 해도 우리 셋의 힘으로는 그를 막을 수 없어.”윤신우의 말에 윤창현과 윤정석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 오약 절정을 뛰어넘는 강자라니! 이는 오약 절정을 넘어 육도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이 아닌가?이런. 이 얼마나 다단한 강자인가! “형님, 이 서울에 언제부터 이처럼 강한 절정 강자가 나타났습니까? 혹시 황성 안에 있는 늙은 내시 한진모 일가요?”윤창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윤신우에게 물었다. 윤신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 어마어마한 절정 기운을 한참 느낀 뒤 고개를 저었다. “아니.”“한진모는 아닐 거야. 내가 전에 한짐모와 겨뤄본 적이 있는데 이 기운이 아니었어.”“그러면 누구죠?”이번에는 윤정석이 물었다. “비록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악감정이 없다는 것이 느껴져. 그러니 모두 시름 놓아도 돼.”윤신우의 말을 듣고서야 윤창현과 윤정석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 보지.”“어떤 강자가 윤씨 일가를 방문했는지 함께 가서 만나보지.”윤신우는 말을 마친 뒤 뒤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윤창현과 윤정석이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뒤를 따랐다. 뒤뜰. 이홍연과 하미연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문밖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허름한 차림의 주도가 조롱박을 들고 술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한가하게 앉아 있었다.바로 이때.세 사람이 윤씨 일가 뒤뜰에 갑자기 나타났다. 윤신우, 윤창현, 윤정석. 세 사람이 뒤뜰에 들어온 뒤 윤신우의 시선이 주도에게 쏠렸다. 주도는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고 아주 지저분해 보였다. 온몸이 구질구질한 모습이 마치 몇백 년 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더러운 늙은이가 윤신우의 표정을 약간 굳게 했다.한동안 바라보고 윤신우는 주도에게

최신 챕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4화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3화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 구주, 왕의 귀환   제2022화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1화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0화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 구주, 왕의 귀환   제2019화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 구주, 왕의 귀환   제2018화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 구주, 왕의 귀환   제2017화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 구주, 왕의 귀환   제2016화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