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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3화

Author: 김원호
윤구주는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홍연이 이렇게 할 줄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

“공주님, 감사드립니다! 공주님, 제발 절 살려주십시오!”

지안수는 서둘러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여기에 있는 이상 아무도 지안수 씨를 죽이지 못해요.”

이홍연은 패기 넘치게 말했다.

황실의 여섯째 공주이자 국주가 가장 아끼는 딸인 이홍연은 자신감이 넘쳤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지안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오늘 그는 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공주가 갑자기 나타났다.

이때 다들 의아해했고 우상인 육도진 또한 답답해했다.

그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주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내각의 여덟 장로를 도우려고 하다니?

그녀는 소꿉친구인 윤구주를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

다들 매우 궁금해할 때 이홍연이 갑자기 윤구주에게 물었다.

“윤구주, 왜 대낮부터 이렇게 많은 문벌 출신의 무인들을 죽인 거야? 그리고 왜 내각의 문부상서를 죽이려는 거지?”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윤구주에게로 향했다.

육도진 우상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육도진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공주가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윤구주는 이홍연의 질문을 듣더니 덤덤히 말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니까.”

그 말에 이홍연으 크게 고함을 질렀다.

“건방지군! 윤구주, 넌 화진의 구주 군신이자 우리 화진의 기둥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야!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넌 절대 아무도 죽일 수 없어!”

이홍연의 말을 들은 윤구주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이홍연은 자신의 말에 윤구주가 화를 내길 바랐지만 윤구주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척 화가 났다.

“윤구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이홍연은 잘못했다는 말을 할 때 눈이 벌겠다.

아무도 이홍연이 말한 잘못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들은 이홍연이 윤구주에게 사람을 죽인 잘못을 묻는 줄 알았다.

“내가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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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주, 왕의 귀환   제1134화

    이홍연이 슬픈 얼굴로 억울한 듯 말하자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마치 진짜 연인처럼 말이다.그 광경에 그 자리에 있던 금위군뿐만 아니라 내각의 여덟 장로, 육도진 등 사람들 모두 넋이 나갔다.이건 원수가 아니라 애인이었다.“홍연아, 미안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그 말에 이홍연은 마음이 녹을 뻔했다.그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눈을 깜빡이면서 울며 말했다.“드디어 나한테 미안하다는 걸 인정한 거야? 그래도 양심은 있네!”윤구주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었다.사실 윤구주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으나 그러한 마음은 반드시 숨겨야 했다.16년 전의 사건을 위해서라도, 강성에 있는 소채은을 위해서라도.윤구주는 소채은에게 미안할 짓을 할 수 없었다.“홍연아, 넌 오늘 일에 끼어들지 마. 문벌이 혼란을 야기했으니 난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해. 문벌과 내각도 마찬가지야. 6년 전 난 말했었어. 감히 우리 화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전부 죽일 거라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거야.”이홍연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난 처음부터 끼어들 생각 없었어.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사실 너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어. 네가 나한테 대답만 해준다면 내가 이 나쁜 지안수 장로를 대신 죽여줄 수도 있어!”지안수는 어리둥절해졌다.공주가 너무 빨리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뒤에 있던 일곱 명의 내각 장로들도 전부 안색이 어두워졌다.이홍연은 과연 정말로 내각 장로들을 돕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걸까? 아니면 윤구주를 돕기 위해서 온 걸까?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일까?급작스럽게 변한 상황 때문에 내각 사람들은 전부 표정이 어두워졌다.물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이홍연은 화진의 여섯째 공주였기 때문이다.“내가 떠난 뒤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거야?”이홍연은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윤구주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했다.윤구주는 길

  • 구주, 왕의 귀환   제1135화

    이홍연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치명적인 일격이었다.심지어 화진의 우상 육도진마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뻔했다.그 질문은 모든 남자에게 치명적이었다.그러한 질문에 윤구주는 당연히 침묵을 선택했다.“대답해! 대답하라고! 누굴 선택할 거야?”이홍연은 계속해 물었다.서울로 돌아온 뒤로 이홍연은 줄곧 대답을 원했고, 그래서 지금 윤구주에게 따져 물었다.내각의 여덟 장로들을 포함해 다들 윤구주만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윤구주가 이홍연을 선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윤구주가 정말로 이홍연을 선택한다면 내각의 여덟 장로는 오늘 끝장날 테니 말이다.다른 사람들이었더라면 당연히 이홍연을 선택할 것이었다.이홍연은 화진의 여섯째 공주였고, 미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윤구주와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고 그녀의 몸에서는 황가의 피가 흐르기도 했다.바보라고 해도 당연히 이홍연을 선택할 것이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이홍연을 선택할까?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눈앞의 아름다운 이홍연을 바라보았다.“정말로 내가 꼭 선택하기를 바라?”“그래. 오늘 넌 나에게 반드시 대답해 줘야 해. 난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난 이미 10년 넘게 기다렸다고!”이홍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휴, 홍연아. 미안해!”윤구주가 드디어 대답했다.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이홍연을 포함한 모두가 그의 대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이홍연은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고 곧 온몸이 언 것처럼 덜덜 떨렸다.“그 뜻은 그 여자를 선택한다는 거야?”이홍연은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움을 견디며 윤구주를 향해 물었다.윤구주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기가 두려운지 고개를 숙였다.“윤구주, 이게 네가 내놓은 대답인 거야? 난 그렇게 오랜 시간 널 기다리면서 널 사랑했어. 그런데 결국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그래, 그래, 그래!”‘그래’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던 이홍연은 갑자기 비참한 얼굴로 웃었다.그러더니 이내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표정을

  • 구주, 왕의 귀환   제1136화

    잇달아 비명이 터졌다. 운이 좋지 않았던 금위군들은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민규현의 막강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들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민규현, 감히 국령을 무시해? 여봐라, 저놈을 잡아!”은성구가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그는 오늘 일을 크게 키울수록 내각의 여덟 장로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황기 금위군이 이곳에서 많이 죽기를 바랐다.안타깝게도 황기 금위군은 은성구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그들이 다시 한번 나서려고 하자 갑자기 차가운 고함이 뒤에서 들려왔다.“다들 멈춰!”육도진 우상이 앞으로 나섰다.황기 금위군은 육도진 우상의 목소리를 듣고 전부 그 자리에 멈춰 섰다.“육도진 우상, 이제 무슨 뜻이죠?”은성구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육도진을 바라보았다.“제 뜻은 아주 간단해요. 오늘 제가 이는 한 아무도 소란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육도지은 카리스마 넘치게 대답했다.은성구는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다면 육도진 우상은 암부가 반역죄를 판결받았다는 걸 아나요? 그리고 이 민규현 지휘사는 공공연히 우리 죄 없는 금위군을 죽였어요. 육도진 우상은 법을 어기고 그들을 감싸려는 건가요?”“감싼다고요? 은성구 장로, 그 말씀은 틀리셨네요. 우선 암부가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하는데 국주님께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명령을 내린 적이 없으세요. 그러니까 암부에 정말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이렇게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시면 안 되죠. 그리고 민규현 지휘사는 종3품 지휘사예요. 그리고 구주왕의 가장 훌륭한 부하기도 하죠. 그런데 은성구 장로는 우리 화진 구주왕이 가장 아끼는 부하를 잡으려고 했죠. 그게 죽음을 자초하는 게 아니면 뭐죠?”육도진은 아주 날카롭게 내각의 여덟 장로 중 수장인 은성구와 격렬한 설전을 벌였다.“육도진 우상은 말을 아주 잘하시네요. 하지만 한 가지 잊으신 게 있는 것 같네요. 이 구주왕은 이제 더 이상 우리 화진의 왕이 아니에요. 지금 화진의 왕의 성함은 문아름이

  • 구주, 왕의 귀환   제1137화

    오늘 윤구주는 반드시 지안수를 죽이겠다고 했다.문벌이 서울에 모인 이유는, 마씨 일가까지 온 이유는 문부상서인 지안수의 계략 때문이었다. 그는 문벌, 세가와 연합하여 윤구주를 죽일 생각이었다.그런 그를 윤구주가 살려둘 리가 없었다.“그러면 난? 윤구주,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넌 절대 지안수 장로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해!”이때 이홍연이 갑자기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그는 윤구주가 밉고 또 화가 났다.그녀는 윤구주의 반대편에 서고 싶었다.그래야만 마음속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홍연아, 응석 부리지 마. 내가 너한테 미안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굴 때가 아니야.”윤구주는 한때 소꿉친구였던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다.“하하, 내가 응석을 부린다고? 미안하지만 윤구주, 지금부터 난 너랑 아무 사이 아니야. 난 오늘 문부상서를 살리고야 말 거야. 오늘 아무도 문부상서를 죽일 수 없어! 여봐라, 지안수 장로를 나한테 데려와!”이홍연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녀의 곁에 있던 절정 실력의 내시 두 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그들은 지안수에게로 걸어갔다.“오늘 우리 형님이 죽이겠다고 했으니 이 사람을 지키는 사람은 내가 전부 죽여버릴 거야!”남궁서준이 장검을 검집에서 빼냈다.남궁서준의 온몸에서 검기가 치솟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절정의 고수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두 명의 절정 실력의 내시는 남궁서준에게 가로막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이때 근처에 있던 내각의 여덟 장로는 악랄한 웃음을 드러냈다.공주가 그들의 편에 선다면 그들은 무서울 것 없었다.육도진은 이홍연이 갑자기 내각의 여덟 장로 편에 서자 참지 못하고 투덜댔다.‘역시 여자는 여자라니까. 살면서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여자야!’“꼬맹아, 비켜주길 바라. 우리는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단다.”남궁서준이 절정 실력의 내시 두 명을 가로막자 그중 키가 크고 마른 내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나가고 싶다면

  • 구주, 왕의 귀환   제1138화

    절정 삼중천 실력의 내시가 공격하려는 순간 갑자기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당신에게 그럴 실력이 있을까?”그 말과 함께 공간마저 일그러뜨릴 듯한 막강한 기운이 윤구주의 몸에서 내뿜어지며 절정 삼중천 실력을 갖춘 내시에게로 향했다.내시는 순간 산이 몸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는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고 곧 두 다리가 통제할 수 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결국 윤구주가 내뿜는 강한 기운에 그 내시는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아, 당신...”다른 내시는 그 광경을 보고 바로 손을 쓰려고 했는데 윤구주가 다시 한번 시선을 들었다.쿵!그 막강한 기운은 쿵 소리와 함께 다른 한 절정 실력의 내시를 바닥에 무릎 꿇렸다.강해도 너무 강했다.겨우 기운뿐이었는데도 이홍연 곁에 있던 절정 내공의 강자 두 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그 광경에 사람들은 단단히 겁을 먹었고 심지어 내각의 여덟 장로들의 안색도 잇달아 어두워졌다.“윤구주, 설마 나까지 죽이려는 거야?”이홍연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윤구주의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실력이 강하지 않았다.고집스럽게 윤구주에게로 다가갈 때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은 윤구주의 기운 때문에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이홍연이 다가오자 윤구주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기운을 회수했다.그는 당연히 어렸을 때 소꿉친구였던 이홍연을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홍연아, 왜 굳이 이러는 거야?”윤구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건 전부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윤구주, 난 네가 미워! 미워 죽겠어!”이홍연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오늘 지안수는 반드시 죽어. 넌 막을 수 없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오른손을 들었다. 무시무시한 지현이 총알보다도 더욱 빠르게 움직여서 문부상서 지안수의 미간을 꿰뚫었다.내각의 여덟 장로 중 한 명인 지안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었다.“정말로 지안수 장로를 죽였어?”내각대학사 은성구는 윤구

  • 구주, 왕의 귀환   제1139화

    그러나 윤구주는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돌리면 참지 못할까 봐, 후회할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결국 한숨을 내쉰 뒤 떠났다.윤구주가 그대로 떠나자 이홍연은 슬픈 얼굴로 그대로 주저앉았다....오늘의 전투가 드디어 끝났다.서남의 장씨 일가, 서울에 모인 다른 문벌들 모두 윤구주에게 살해당했다.심지어 제자백가 중 하나인 마씨 일가의 후손 마청운도 윤구주에게 살해당했다.그뿐만 아니라 윤구주는 내각의 여덟 장로 중 한 명인 문부상서도 죽였다.오늘 있었던 일 중 그 어떤 것도 모두 서울을 발칵 뒤집어 놓을 수 있었다.윤구주는 그만큼 놀라운 일을 한 것이다.국방부, 이황전. 넓고 음산한 대전 안에는 남색 장포를 입은 내각대학사 은성구가 꼼짝하지 않고 대전 안에 서 있었다.그는 아주 중요한 사람을 기다리는 듯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이황왕께서 도착하셨습니다!”그 목소리와 함께 비단옷을 입은 문아름이 편전에서 걸어 나왔는데 그녀의 차림새는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경국지색의 미모에 요염한 몸매를 갖춘 그녀는 요물이 따로 없었다.그러나 그녀의 미간에서 권력을 향한 갈망과 악랄함이 여지없이 드러났다.그녀가 바로 화진의 새로운 왕, 이황왕이었다.문아름이 대전에 모습을 드러내자 내각대학사 은성구는 곧바로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이황왕을 뵙습니다!”문아름은 천천히 금색 의자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은성구 대학사, 오늘 왜 갑자기 절 찾아오신 거죠?”“저하, 태화루는 오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서남 장씨 일가와 문벌들 모두 윤구주에게 살해당했어요. 심지어 제자백가 중 하나인 마씨 일가의 후손 역시 살해당했습니다.”은성구가 보고를 올렸다.금색 의자에 앉아 있던 문아름은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역시 내 예상대로였네요!”“저하?”은성구는 문아름의 말을 듣자 의아했다.사실 오늘 태화루의 일은 문씨 일가에서 계획한 것이었다

  • 구주, 왕의 귀환   제1140화

    은성구는 문아름의 말에 넋이 나갔다.“저하, 하지만 그들은 전부 죽지 않았습니까?”문아름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죽었기 때문에 더 이용 가치가 있는 거죠!”말을 마친 뒤 문아름은 자리에서 살짝 일어났다.“은성구 대학사, 생각해 보세요. 천하의 문벌이 윤구주를 제압할 수 있을까요?”은성구는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당시 화진 무도의 3대 서열이 힘을 합쳤음에도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걸 막지 못했다.그런데 겨우 문벌 따위가 윤구주를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렇다면 세가는요?”문아름이 재차 물었다.“만약 제자백가 전부 똘똘 뭉쳐서 윤구주에게 대항한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자백가의 저력은 문벌 따위와 비교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은성구가 말했다.은성구의 말을 들은 문아름은 웃었다.“맞는 말이에요. 내가 왜 마씨 일가의 후손을 초대했는지 알아요? 난 처음부터 그 사람을 죽으라고 보낸 거예요. 세가의 사람이 죽어야만 세가의 그 늙은 괴물들이 윤구주를 상대하겠다고 튀어나올 테니까요. 이제 내가 왜 그들을 총알받이라고 했는지 알겠죠?”그 말에 은성구는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다.그는 확실히 이해가 갔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문씨 일가가 계획한 일이었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오늘 태화루도, 내각의 여덟 장로도 모두 그녀의 계획에 이용당했을 뿐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은성구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저하, 하지만 오늘 지안수 장로마저 윤구주에게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문맥의 중추인 지안수는 은성구와 오랫동안 함께 조정에서 일했기에 은성구와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지안수가 윤구주의 손에 죽었다는 생각에 은성구는 분통이 터졌다.“잘된 일이죠. 지안수 장로가 죽었으니 내각의 나머지 일곱 장로들이 함께 국주에게 보고하여 윤구주를 상대하면 되잖아요!”문아름은 웃으며 말했다.은성구가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저하, 저하께서는 모르실 수도 있지만 국주님께서는 사실

  • 구주, 왕의 귀환   제1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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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주, 왕의 귀환   제20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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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 구주, 왕의 귀환   제2026화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5화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 구주, 왕의 귀환   제2024화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3화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 구주, 왕의 귀환   제2022화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1화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0화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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