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이가 우쭐거리며 말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제자백가 최강의 공씨 가문 아들인 공수이는 어릴 적 곤륜 지역의 난가사원으로 보내져 미친 스님을 따라다니며 매일 수련을 했다.그 미친 스님은 세 살 때부터 공수이에게 불교 금지술을 보여줬지만 공수이는 전혀 배우려 하지 않았고 몰래 두 가지 금지술을 화장실 구덩이에 버리기까지 하자 화가 난 미친 스님은 꼬맹이를 사흘 밤낮 동안 굶겼다!예전 일을 떠올리자 공수이는 눈물이 아른거렸다.하지만 유명전 절정은 이를 모른 채 공수이가 큰소리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꼬마야, 네가 누구든 간에 오늘 나와 끝까지 싸워보자!”말하며 그의 몸에서 녹색 유독 가스가 터져 나왔고 곧 방안은 독가스로 가득 차 있었다.죽기 살기로 덤비는 말라깽이 절정을 바라보며 스님이 조롱하듯 웃었다.“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면 기꺼이 들어주지!”말과 함께 두 개의 금빛 주먹이 바람을 일구며 날아갔고 좌우로 금지술을 지닌 노라한 주먹이 녹색 독가스 층을 뚫었다.화진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기로 알려진 노라한 금지술은 말라깽이 절정이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쿵-두 개의 황금 주먹이 말라깽이 절정에게 날아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사상 절정도 산 채로 죽어버렸다!시체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순간 스님은 합장하며 중얼거렸다.“아미타불,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옵소서. 소승은 살생하려 하지 않았으나 늙은 거북이 두 놈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니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도다.”두 사람을 죽인 스님은 그곳에서 경을 외웠고 다 읊조린 후 손을 휙 흔들자 강력한 바람이 나타나 방 안의 녹색 유독가스를 모두 날려버렸다!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스님은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었다.“예쁜 누나, 이제 나와도 돼요!”스님의 말이 끝나자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아리따운 사람이 가장 안쪽 방에서 나왔다.대스타 은설아였다.밖으로 나온 그녀는 거의 폐허가 된 스위트룸을 보고는 경악하며 자리에 굳어버렸다.“어떻게 이런 일이... 이게...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의 표정을 본 은설아는 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그녀는 한낱 평범한 인간인데 이제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영음 성체, 최고의 수련 지체, 눈앞에 그녀를 쫓아다니는 노마들까지. 이게 다 뭘까?전부 그녀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들이었다.“당... 당신 그 사람이랑... 좀 닮았어요.”갑자기 은설아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엥? 예쁜 누나, 누구 얘기하는 거예요?” 공수이가 얼굴을 기울이며 물었다.“내가 좋아한다는 사람이요! 솔직히 그 사람은 엄청 대단했고 내 마음속에는 항상 신과 같은 존재였어요!” 은설아가 윤구주에 대해 설명하자 이 말을 들은 공수이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 속으로 저주했다.‘퉷퉷, 감히 어떤 놈인데 나와 비교하는 거지? 내 눈에 보이기만 해봐, 제대로 때려줄 거다!’하지만 공수이는 은설아를 배려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예쁜 누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앞으로 누나 곁에 있으면서 지켜줄 거예요!”공수이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네? 내 옆에 있겠다고요?”은설아가 할 말을 잃은 듯 물었다.“네, 누나 안전을 위해서요. 내가 있으면 나쁜 놈들이 가까이 오지 못할 테니까.”공수이가 말하자 은설아는 망설였다.스님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며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 그가 자신의 곁에 있겠다고 하니 은설아는 조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만나서 따져야 할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사람은 이제 안 찾아요?”은설아가 묻자 스님은 당황했다.참! 윤구주 그 망할 자식을 잊고 있었다.그는 자신의 민둥한 머리를 때리며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찾아야죠, 꼭 찾아야죠! 하지만 그 자식을 찾기 전에 예쁜 누나 먼저 지켜줄 거예요. 이렇게 예쁜데 나쁜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건 원치 않으니까요.”은설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어쨌든 호의는 고마워요.”“별말씀을요, 예쁜 누나!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하고 오늘부터 내가 누나의 안전을 책임질게요!”공수이가 신이 나서 말하자 은설아도 더 마다하지 않았
스님이 토큰을 들고 중얼거렸다.“뭐라고 했어요?”이때 은설아가 와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스님은 눈앞에 그녀를 납치하려 했던 노마가 사실은 백여 년 전 화진에서 가장 신비롭고 무서운 조직 중 하나인 유명전 소속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이런 얘기를 해도 별 소용이 없으니까.고민 끝에 스님은 그 유명전 토큰을 챙긴 뒤 은설아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갔고 하루 동안 공수이는 은설아를 계속해서 지켰다.이날의 만남을 통해 스님은 은설아에 대해 점점 더 깊게 알아갔고 그녀가 세계적인 스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팬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 한번 갈 때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동시에 스님은 은설아가 세계적인 슈퍼스타일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에도 능하다는 걸 알았고 이에 따라 공수이는 은설아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방안에서 스님은 은설아가 건넨 태블릿을 들고 흥미롭게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재생되는 영상은 다름 아닌 이번 서울 콘서트에서 은설아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었다.화면 속 짧은 치마를 입은 은설아는 그토록 아름다웠다.몸매든 얼굴이든 모든 것이 스님의 혼을 빼놓았다.“젠장, 이 예쁜 누나를 꼭 꼬셔야겠어! 아무도 못 빼앗아! 게다가 중요한 건 이 누나가 그토록 보기 드문 수련 성체라는 거야. 이 성체만 있으면 난 앞으로 예쁜 누나와 이중 수련을 할 수가 있다고.”이중 수련을 떠올리니 스님은 문득 흥분에 목이 벌겋게 달아올랐다.“하지만 예쁜 누나 마음속엔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어떡하지?”스님은 머리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은설아가 그 남자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를 위해 직접 곡을 쓰지 않았을 테니까.게다가 매일 방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던 걸 생각하니 스님의 마음속에 강한 질투심이 생겼다.“예쁜 누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자식은 대체 누구일까? 언젠가 만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망할 놈을 제대로 혼내줄 거야!”스님은 주먹을 불끈 쥐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윤구주는 돈킹 호텔의 문 앞에 도착해 슬쩍 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커다란 규모의 돈킹 호텔은 싸움으로 인해 장사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님들로 가득했다.호텔 로비에는 사람들이 오고 갔고 입구에는 어린 팬들로 붐볐다.어떤 팬들은 손에 사진을, 어떤 팬들은 팻말을 들고 몰려있는 모습이 마치 슈퍼스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린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팬들이 손에 들고 있는 대형 포스터 속 스타 사진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다시 한번 들여다본 윤구주는 상대를 알아보았다.“서남에서 구해줬던 미녀 연예인, 은설아 아니야? 왜 서울로 온 거지?”윤구주의 머릿속엔 몸에 영음 도체를 지닌 대스타가 떠올랐다.과거 서남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나 연예계 거물인 천음 엔터 사건을 해결해 주었고 나중에 강성에 돌아온 뒤 그녀의 공연 때문에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다.그런데 서울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몰려든 팬들과 손에 든 포스터, 그리고 포스터에 적힌 ‘은설아'라는 이름을 보며 윤구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보아하니 미인께서는 서남 사건 이후로 점점 잘 나가나 보네.”윤구주는 그녀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 몸에 보기 드문 영음 성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다만 윤구주는 이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당시 은설아가 영음 지체의 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잠깐 영음 지체의 징후를 억누를 수 있도록 도왔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윤구주는 은설아의 아름다운 포스터 사진을 다시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한번 만나 볼까?됐다.윤구주는 마음을 다잡았다.한낱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인데 왜 굳이 가까워지려 해서 두 사람에게 불행을 안겨주겠나.앞으로의 인생이 긴데 차라리 남처럼 지내는 게 나았다.게다가 애초에 돈킹 호텔은 곤륜 지역에서 도망친 그 꼬마 때문에 온 것이었다. 꼬맹이가 자주 말썽을 부리고 그가 제압해 호되게
은설아는 톱스타지만 전혀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7, 8명의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고 직접 사인까지 해줬다.이렇게 친근하게 다가가니 팬들은 더욱 열광했다!이 장면을 본 윤구주는 슬쩍 보다가 뒤돌아서서 호텔 로비 왼쪽에 있는 덜 붐비는 곳으로 걸어갔다.윤구주가 떠날 때 수백 명의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톱스타 은설아는 마음 한편에 설명할 수 없는 찌릿한 감각이 느껴지며 무언가에 찔린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윤구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어렴풋한 뒷모습이 나타났고 단호한 뒷모습은 로비에서 가장 붐비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그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은설아의 가슴이 심하게 떨렸다.“저 뒷모습... 왜 이렇게 그 사람이 생각나지? 내가 잘못 본 건가? 너무 생각해서 헛것이 보이나?”은설아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어서 발끝을 세운 채 윤구주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은설아 씨! 여기 사인 좀 해줄래요? 영천에서 비행기로 3시간, ktx로 몇시간을 달려와서 기다렸어요! 제발 은설아 씨, 꼭 사인해 주세요!”17, 18세로 보이는 통통한 소녀가 은설아를 향해 포스터를 들고 사인을 요청했다.윤구주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던 은설아는 팬의 말에 생각을 뒤로한 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요!”이윽고 펜을 들고 빠르게 사인했고 주위에 있던 다른 팬들도 은설아가 사인을 해주는 모습에 더 모여들었다.은설아는 수백 명의 팬들에게 둘러싸인 채 마음은 점점 괴로워지고 있었다.그녀는 서둘러 뒷모습을 쫓아가 자신이 그리워하던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요. 더 모이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어쩔 수 없이 그녀는 수백명의 팬들을 돌려보냈다.그들에게 일일이 사인해 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곧 경호원들이 열광하는 팬들을 제지하기 시작했고 팬들을 뒤로한 채 은설아는 뒤도 돌아보
신념이 열리고 무수한 불꽃이 윤구주의 머릿속에 흔들리며 나타났다.촛불 불꽃 하나하나가 한 생명을 상징하는데 평범한 촛불은 평범한 인간이고 밝은 불꽃을 가진 사람은 무술가 또는 수련자를 상징했다!그리고 이 순간, 윤구주의 신명술이 발동되면서 촘촘하게 채워진 촛불의 불꽃이 나타났다.윤구주는 이 촛불의 밝기에 따라 스님의 영험한 불을 찾기 시작했다.신념술이 60층 정도에 도달했을 때 펑 소리와 함께 윤구주의 신념에 무시무시한 불꽃이 나타났고 화산과도 같은 영적 불꽃 안에는 불교의 기운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강력한 영적 불꽃을 느낀 윤구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찾았다, 꼬맹이!”이 말을 끝으로 윤구주는 신념술을 철회한 뒤 60층을 바라보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저기요!”윤구주의 손가락이 올라가는 버튼을 막 누르는 순간 뒤에서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익숙하고도 듣기 좋은 목소리에 윤구주의 손가락이 공중에 멈췄다!그도 아는, 그녀의 목소리였다.“저기요, 잠깐 얼굴 좀 봐도 될까요?”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그녀를 등지고 있던 윤구주는 몇 초간 멈칫하다가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는 아름다운 실루엣이 눈이 붉어진 채 자신의 뒤에 있었다.대스타, 은설아였다.“은설아 씨, 오랜만이네요!”윤구주는 미소를 지은 채 과거 서남의 대스타를 바라보았다.“은인님, 정말 당신이었어요? 나, 나, 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윤구주를 바라보던 은설아는 눈에서 눈물이 흐를 정도로 설레었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그를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접니다.” 윤구주가 환하게 웃었다.눈앞에 있는 사람이 밤마다 그리워하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을 때 은설아는 한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은인님!”그녀는 갑자기 미쳐버린 듯 윤구주의 품에 뛰어들었고 평생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윤구주를 하얀 두 손으로 꼭 껴안았다.이 아름다운 미녀 대스타가 갑자기 끌
윤구주를 꼭 껴안고 있던 은설아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플래시에 정신을 차린 뒤 서둘러 윤구주의 품을 떠났다.“은인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방금 너무 흥분해서요!”윤구주는 한낱 파파라치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이때 은설아의 경호원 몇 명이 달려왔고 파파라치들이 카메라를 들고 은설아를 찍고 있는 것을 보자 곧바로 제지했다.“찍지 마세요!”“다들 찍지 마세요!”이 경호원들은 은설아의 경호뿐만 아니라 은설아의 대외적인 홍보까지 책임지고 있었다!카메라를 든 수많은 미디어 파파라치가 은설아를 향해 촬영하는 것을 보고는 바로 달려와서 막고 쫓아 보냈다.빠르게 교활한 파파라치 무리가 뿔뿔이 도망쳤다!파파라치들을 보낸 후 8명의 경호원은 재빨리 은설아 곁으로 다가왔다.“은설아 씨, 괜찮아요?”경호원들은 말하며 윤구주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요.” 은설아가 말했다.“은설아 씨, 지금 언론에서 조금 전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으니 보험 차원에서 먼저 저희와 함께 올라가는 게 좋겠습니다. 언론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한 경호원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난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먼저 올라가세요.” 은설아가 곧바로 말했다.“하지만 은설아 씨, 그런 장면이 찍히면... 앞으로 팬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안 좋게 될 겁니다.”경호원들의 뜻은 분명했다.조금 전 파파라치들이 은설아가 윤구주와 포옹하는 모습을 찍었는데 그걸 인터넷에 올리면 엄청난 스캔들이 아니겠나.하지만 은설아는 이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먼저 올라가세요.”은설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경호원들은 당황한 듯 옆에 서 있던 윤구주를 바라봤다.세계적인 슈퍼스타가 왜 자신의 이미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작 이 평범한 녀석을 만나려고?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의 연애 스캔들이 항상 연예계 가십거리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은설아
은설아가 물었다.“채은이는 아직 강성에 있고 서울엔 나 혼자 왔어요.”윤구주가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서울엔 왜 왔어요?”은설아가 계속 물었다.“작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은설아는 윤구주가 감추는 게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그저 오랜만에 만난 연인처럼 얌전히 윤구주의 곁에 있었다.밤낮으로 그리워하며 흠모하던 사랑이었다.그런데 마침내 윤구주와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그립고 보고 싶었다는 말로 가득 차 윤구주를 만나면 제대로 얘기하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윤구주를 실제로 만나니 부끄러워지는 그녀였다....60층에서 잘생긴 스님이 태블릿을 들고 은설아가 춤추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예쁜 누나, 다리도 너무 예쁘네! 이 몸매, 이 춤 실력! 젠장, 맹세코 이 예쁜 누나를 손에 넣을 거야! 누나가 좋아하는 쓰레기가 누구인지 상관없어. 만나면 제대로 두들겨 팰 거야!”자신이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대스타의 마음속에 이미 다른 남자가 있다는 생각에 스님은 질투에 휩싸였다.그의 눈에 이렇게 예쁜 대스타 은설아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남자가 쓰레기였다.씩씩거리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스님은 태블릿을 옆에 내려놓았다.“엥? 예쁜 누나가 방금 아래층에서 팬들과 만나서 사인해 줬는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됐어, 예쁜 누나의 안전을 위해서 아래층에 내려가서 직접 봐야겠어!”말하며 스님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살펴보려 했고 방에서 나오려는데 마침 경호원 몇 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그는 걸어가며 경호원들이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었다.“은설아 씨 어떻게 된 거야? 왜 낯선 남자를 껴안고 있지? 너무 이상해!”“그러게! 3년 동안 은설아 씨 경호원으로 지내면서 왜 나는 은설아 씨가 사랑에 빠지는 걸 한 번도 못 봤지?”“맞아 맞아!”“게다가 그 남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야. 어디서 튀어나온 자식인지!”“이제 은설아 씨가 그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