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하는 구주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마저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그리고 소채은은 윤구주를 데리고 내렸다.“아빠, 엄마, 오늘 정말 두 분을 데리고 갈 수 없어요. 그래서 정말 죄송합니다!”소채은이 간절하게 말했다.그러자 천희수가 대답했다.“괜찮아, 우리를 신경 쓰지 마! 얼른 가서 주 회장님을 만나서 우리 소씨 가문을 대표해서 인사를 제대로 드려!”“네!”말이끝나자 소채은은 윤구주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잠깐만!”그때 소청하가 갑자기 소채은을 불렀다.“왜 그래요? 아빠.”소채은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채은아, 주 회장님이랑 식사하는데 왜 이 자식을 데리고 가?”소청하는 윤구주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소채은은 윤구주를 남자 친구 핑계로 주세호와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소청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만약 말이 헛나간다면 소청하는 죽어도 윤구주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그러자 소채은은 얼른 핑계를 댔다.“구주는 밖에서 저를 지켜주려고 왔어요!”“지켜준다고?”“그럼요! 아빠! 잊었어요? 구주가 그래도 무술을 하잖아요! 그래서 곁에 두면 제가 안전할 것 같아서요.”소청하는 윤구주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윤구주의 싸움 실력을 생각하고 또 소채은이 납치된 일을 생각하니 걱정되는 마음에 결국 허락했다.“그래! 하지만 채은아 반드시 기억해. 주 회장님은 귀한 분이야. 절대 함부로 개나 소나 데리고 가서 우리 소씨 가문 체면 구기면 안 돼!”소채은은 소청하가 듣기 싫은 말을 계속할까 봐 얼른 말했다.“알겠어요! 알겠어요!”그리고 윤구주를 데리고 구주 호텔로 걸어 들어갔다.구주 호텔 88층.강성에서 제일 력셔리하고 고급스러운 6성급 호텔이라 경호원들도 웨이터들도 모두 격이 달랐다.호텔 문 앞까지 걸어오자 훤칠한 웨이터 한 명이 다가오면서 인사를 건넸다!소채은은 웨이터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한 다음 자기가 예약한 룸 번호를 알려줬다.룸 번호를 듣자 웨이터가 공손하게 물었다.“채은
심지어 한때 야심만만했던 10국 연맹이 만 킬로미터나 넘는 국경을 구주왕에게 넘겼다!구주왕의 이야기는 모든 화진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그는 화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이었다!그래서 소채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소채은은 다시 한번 조각상을 보면서 중얼거렸다.“이분이 구주 군신이구나!”옆에 있던 웨이터가 말했다.“네! 그래서 저희 호텔 이름도 구주 대호텔이라고 지었습니다. 저희 사장님이 구주 군신을 매우 존경하거든요!”“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름이 구주 대호텔이구나.”소채은이 중얼중얼 말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구주 군신은 이미...”소채은은 얼마 전 전국 각지에서 구주왕을 애도하고 묵념하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한숨을 쉬었다.옆에 있던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처음 구주 대호텔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왜 호텔 이름이 자기 이름과 같지라는 의문을 품었다.‘정말 나를 위하여 지은 호텔이구나!’윤구주는 조각상을 한번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너무 못생겼잖아!”“채은 아가씨, 이쪽입니다!”웨이터는 조각상을 소개한 후 소채은과 윤구주를 데리고 만연룸으로 갔다.만연룸!력셔리함의 극치!엄청나게 컸을 뿐만 아니라 개인 수영장과 와인바 등이 있었다.이렇게 호화로운 룸을 바라보면서 소채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혹시 잘못 데려오신 것 아니에요? 제가 예약한 룸은 이렇게 크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웨이터는 웃으면서 말했다.“저희 사장님이 채은 아가씨가 오신다고 하면서 저희더러 특별히 이곳으로 바꿔드리라고 했습니다!”“네?”“사장님이요?”소채은은 더 어리둥절해졌다.“네!”“하지만 저는 호텔 사장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요.”소채은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그러자 웨이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채은 아가씨가 식사 대접하려는 분이 바로 저희 사장님이신데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뭐?그 말을 듣자 소채은은 놀라서 소리를 지를뻔했다.그녀는 아름다운 눈으로 웨이터를 바라보면서 재차 확인했다.“내가... 오늘 식사 대접하려는 그 분이
주세호와 주안나는 만연룸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주세호는 먼저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존경스럽게 쳐다봤다.윤구주의 신분이 들키지 않도록 주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안나가 소채은외에 윤구주도 있는 걸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이 자식이 왜 여기 있지?”“저번에 아빠가 직접 얘를 만났던데? 자기 오랜 친구의 아들이라면서? 얘가 왜 여기 있지?”한편 윤구주는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소채은은 주세호를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채은 아가씨, 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주세호는 웃으면서 소채은에게 인사를 건넸다.“아니닙다. 주 회장님 별말씀을요!”“그리고 주 회장님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구주 대호텔이 주 회장님 건지도 모르고 식사 장소를 여기로...”소채은이 말하자 주세호는 껄껄 웃었다.“아닙니다! 이 룸은 마음에 드는지요?”“그럼요!”“채은 아가씨 마음에 들면 됐어요. 얼른 앉읍시다!”그렇게 소채은은 자리에 앉았다.원래 소채은이 식사 대접하는 자리인데 마치 주세호가 주인인 것처럼 느껴졌다.네 사람 모두 자리에 앉은 후 주세호는 웨이터에게 말했다.“음식을 내오라고 해!”곧이어 맛있는 요리들이 하나둘씩 테이블에 놓였다.모든 메뉴가 다 오른 후 소채은은 와인잔을 들고 주세호에게 말했다.“주 회장님,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가 주 회장님에게 술을 한잔 권하고 싶습니다!”주세호도 얼른 술잔을 들고 대답했다.“채은 아가씨, 별말씀을요!”두 사람이 건배하려고 하는 순간 주안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채은 씨, 아직 채 소개를 못한 것 같은데? 건배, 너무 이르지 않나요?”주안나의 말뜻은 윤구주를 소개 안 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자 소채은이 재빨리 말했다.“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까먹었어요!”그리더니 소채은은 술잔을 놓고 주세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주 회장님, 이분은 제 남자 친구입니다. 성은 윤 씨고요, 이름은 구주라고 합니다!”소채은이 윤구주를 자기
그러나 주안나는 모른척하고 계속 소채은에게 물었다.소채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안나 씨,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오늘 제가 주 회장님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감사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저도 명확하게 알려드리려고요. 저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다는걸.”주안나가 되물었다.“그럼 채은 씨 뜻은 우리 아빠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다 쓸모가 없었다? 이 말이네요.”“주 회장님이 저를 도와준 사실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어떻게든 갚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참, 갚는다고? 뭐로요?”주안나가 다시 쏘아붙였다.그러자 소채은이 대답했다.“지금 제가 그럴 능력이 없지만 저를 믿으세요! 언젠가는 그 은혜를 모두 주 회장님에게 갚을 거예요!”“그리고 제가 남자 친구가 있든 없든 이 자리에 데려오든 안 오든 그건 제 자유입니다!”소채은이 강력하게 나오자 주안나도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주세호가 얼른 나섰다.“안나야, 조용해! 채은 씨 앞에서 무례하게 굴지 마!”주안나는 어리둥절해졌다.“아빠, 왜 그러세요? 왜 쟤한테 그잘해주는 거예요?? 자기가 밥 산다면서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빠를 난처하게 만들려고 고의로 그런 거잖아요!”주세호는 속으로 생각했다.‘바보야! 채은 씨는 우리 저하의 여인이야! 내가 잘해주지 않으면 어떡해?’하지만 그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그래서 하는 수없이 이렇게 말했다.“그만 말하라고 하면 그만 말해! 어디서 대꾸질이야!”그러자 주안나는 너무 섭섭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세호는 주안나를 이렇게 혼낸 적이 없었다!‘지금 여자 하나 때문에 나한테 이런다고?’주안나는 화가 치솟아 올랐다!하지만 주안나는 주세호가 하라는 대로 입을 꾹 닫았다.몇 입 먹더니 더 이상 여기에 있기 싫었던 주안나는 일어서면서 말했다.“아빠, 저는 다 먹었으니깐 먼저 회사로 돌아가 볼게요!”그리고 주안나는 명품백을 들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소채은과 윤구주에게 인사
소채은과 윤구주, 그리고 주세호가 같이 식사를 할 때.구주 대호텔에서는 소청하 부부가 참관하고 있었다.처음 이 6성급 호텔을 방문한 부부는 한쪽으로 걸으며 한쪽으로는 혀를 찼다.“이 호텔, 정말 기품이 넘치는군.”“그러게요.”천희수가 대답했다.“방금 직원 소개를 들어보니 이 구주 대호텔은 우리 화진의 구주 군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이런 이름이 붙어졌다는군.”소청하가 말했다.“어쩐지... 참 아쉽네요. 우리 화진의 영웅이 순국해 버렸으니.”“그러게 말이야.”부부는 걸으면서 말했다.호텔 복도 양쪽에는 수많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이 포스터들은 모두 “구주왕”에 관한 것이다.소문에 의하면, 그는 17살에 영주가 되었고 21살에 왕이 되었다고 한다.하지만 구주의 군신은 신비로운 존재로, 외부에 알려진 그의 사진은 매우 적다.유일한 사진이라고는 뒷모습밖에 없었다.이 뒷모습이 바로 구주 대호텔 정중앙에 걸려 있는데, 지금 많은 관광객이 그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한가했던지라, 소청하 부부는 그쪽도 걸어가 보았다.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한 선생님이 중학생 무리를 인솔하며 구주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소청하 부부도 그 뒷모습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여보, 혹시 이 뒷모습 어딘가 익숙하지 않아요?”천희수는 갑자기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익숙하다고? 잘 모르겠는데?”“이 뒷모습... 우리 집에 사는 윤구주 청년이랑 닮은 것 같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소청하는 다시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바라보았다.‘흠... 정말 좀 비슷한 것 같은데?’하지만 소청하는 곧 마음속으로 부정했다.“여보, 지금 무슨 허튼 생각을 하는 거야? 설마 우리 집에 사는 그 자식이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천희수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왠지 일리 있는 말 같았다.게다가 그 구주왕은 이미 순국했다고 기사까지 나 전국이 묵념하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겠는가?한참을 참관한 후, 소청하가 말했다.“여보, 이제
주세호의 말은 또 한 번 소청하 부부의 뺨을 때린 격이었다.그의 이상한 모습에 소채은과 소청하, 천희수 모두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기억상실증에 걸린 하찮은 녀석한테 왜 우리 강성의 제일 갑부인 주세호가 저렇게도 공손하게 구는 거지?’한 끼 식사는 이렇게 끝났다.주세호는 그들보다 먼저 자리를 떴고 남겨진 자리에 남겨진 소천홍 등 사람들도 그제야 구주 대호텔을 떠날 채비를 했다.오늘은 소채은에게 있어 매우 즐거운 날이다.비록 그녀는 주세호가 왜 윤구주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소채은의 마음속에 있던 큰 바위가 사라진 셈이었다!적어도 자신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했으니 말이다!반면 소청하 부부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룸을 나서자 소청하는 입으로 욕을 퍼부었다.“기억상실증에 걸린 쓸데없는 놈이 무슨 여기에 와서 식사할 자격이 있다고! 딱 기다려!”주차장에 도착하자 더욱 기막힌 장면이 소청하의 눈에 들어왔다.랭글러 한 대가 소청하의 벤츠 차량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하필 자리도 많은 데 이 랭글러 차량은 콕 짚어 벤츠 차량의 앞을 막고 있었다. 소청하는 갑자기 화가 났다.“어떤 자식이야, 누가 차를 이따위로 세워?!”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개자식이 사람 엿먹이는거야 뭐야?!”소청하는 욕을 하며 랭글러를 발로 걷어찼다.그 모습에 소채은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이내 차 앞으로 가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바로 그 순간, 한 소리가 들려왔다.“누가 내 차를 걷어찼어?!”소리와 함께 구주 대호텔 쪽에서 도복을 입은 다섯 명의 건장한 사내 모습이 보였다.선두에는 키가 크고 근육질 몸매의 남성이 걸어오고 있었다.가슴에는 “진성 도관”이 쓰여 있었다.그의 뒤를 따라오는 네 명의 남자들도 똑같은 도복을 입고 있었다.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그들은 모두 도관 출신들이었다.차주가 온 것을 보고 소청하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대체 주차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주차 공간이 이렇게 남아도는데
‘신고?’“그러게 왜 이렇게까지 나와요? 신고하겠습니다!”소채은은 무뢰한들을 보고 화가 난 나머지, 핸드폰을 들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도복을 입은 남자가 뛰어들어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았다.그러자 소채은의 분노는 더욱 극에 달했다.“핸드폰 돌려주세요!”도복을 입은 남자가 피식 냉소했다.“갖고 싶으면 직접 가져가!”상황이 이렇게 되자 윤구주가 갑자기 나섰다.“당신들에게 3초의 시간을 주겠습니다. 당장 핸드폰을 돌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만들겠습니다.”윤구주의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그의 모습에 도복을 입은 남자가 순간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야, 네가 뭔데? 뭐라도 돼? 어디서 감히 무게를 잡고 있어?”하지만 윤구주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이내 “하나!”라고 외쳤다.윤구주가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이 자식이 끝까지? 그래! 네가 언제까지 그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지 한번 보자!”“둘!”윤구주가 둘을 외쳤지만, 도복을 입은 남자는 여전히 웃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셋!”그가 마지막 글자를 내뱉었을 때, 도복을 입은 남자는 때를 노려 윤구주를 손 봐주려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윤구주의 손바닥이 하늘 위로 올랐다 내려오는 것뿐이었다.아주 느린 것 같았지만, 사실 빛보다 빠른 속도였다.짝!힘을 실은 손바닥이 도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에 떨어졌고, 이내 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남자의 몸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7-8m 떨어진 땅바닥에 심하게 내동댕이쳐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기절해 죽고 만 것이다.‘어?’조금 전까지 날뛰던 남자가 이렇게 윤구주의 뺨을 맞고 기절하는 것을 보고 나머지 네 사람은 멍해졌다.“일곱째!”우두머리인 최 선배가 외쳤다.하지만 그 재수 없는 남자는 저만치서 입에 피를 토하며 기절해 죽고 말았다.이 광경을 본 남자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일제히 윤구주를 쳐다보았다.“이 자식이, 너 도대체 뭐야? 뭔데 감히 우리 진성 도관 사람을
화진은 예로부터 무예를 숭상해 왔다.특히 10개국 간의 전쟁 이후, 국민들은 더욱 무예를 연마하는 데 공을 들였다.그렇게 옛 무술은 화진에서 유행처럼 번져 남북을 휩쓸었다.강성만 해도 도관이 20개는 있었으니 말이다.무술 연마자는 무려 10만에 달한다.그리고 바로 이 눈앞의 녀석들이 “진성 도관”의 무술 연마자들이다.다만 이 몇몇 남자들이 생각지 못한 것은, 아무리 수년 동안 도관에서 실력을 연마했다 해도, 윤구주의 앞에서는 개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분노에 가득 찼지만, 그들은 기절해 거의 죽어가는 “일곱째”를 부축해 자신들의 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그들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윤구주는 그제서야 핸드폰을 소채은에게 돌려주었다.핸드폰을 건네받은 소채은은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망했네, 망했어! 윤씨 이 자식아, 누가 너더러 사람 때리라고 했어? 방금 저 사람들 진성 도관 출신이라 하는 거 못 들었어?”소청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아빠,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구주는 분명 저희를 위해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거잖아요, 왜 욕은 하고 그래요?”소채은은 소청하가 또 윤구주를 꾸짖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네가 뭘 알아? 방금 그 패거리들은 무려 진성 도관 사람들이라고! 무술을 연마한 자들은 결코 우습게 볼 게 아니야! 작년에 한 회사 CEO가 무술꾼의 미움을 산 일이 있었는데, 결국에 그 기업은 부도가 났고, 심지어는 마누라까지 목을 매 자살했단 말이다!”그 말을 들은 소채은이 버들가지 같은 눈썹을 찌푸렸다.소청하가 거짓말 한 것이 아니다. 당시 이 일은 강성에서 크게 떠들썩했기 때문에 소채은도 언뜻 기억나는 듯했다.‘그래, 무술 연마자는 건드리면 안 되지! 이건 누구나 다 아는 도리잖아.’“야, 윤구주 이 자식아. 너 우리 죽이려고 작정했어? 만약 진성 도관 걔들이 나중에 우리 소씨 가문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면, 너 어떡할래?!”“아빠, 적당히 좀 하세요. 어쨌든 구주는 우리를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