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는 촌장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어르신, 마가가 왜 봉살진을 세워 이 마을을 억누르고 있는지 아십니까?”촌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르겠소.”“바로 이 우물 때문입니다!”윤구주는 손가락으로 고대 우물을 가리켰다.“우물?”윤구주의 말에 촌장은 물론 주변의 마을 주민들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맞습니다! 믿기 어렵다면 지금 보여드리죠!”말을 끝내자마자 윤구주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에서 우물 위의 시멘트 뚜껑을 향해 내리쳤다.곧 퍽 소리와 함께 시멘트 뚜껑이 산산조각나며 폭발하듯이 깨져버렸다.뚜껑이 깨지자 고대 우물의 모습이 모두의 눈에 드러났다.우물은 오래된 모습 그대로였으며 우물 구멍에서는 검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모두가 놀라워하는 사이, 윤구주는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인결을 맺고 우물을 가리켰다.“나타나라!”우르릉!우물 안쪽의 돌벽에서 잔뜩 뒤틀린 붉은색의 기묘한 부적 문양이 드러났다.이 문양들은 혈색의 광채를 내며 얽히고설켜 마치 전기망처럼 우물의 입구를 봉인하고 있었다.“이건... 뭐지?”촌장은 충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다른 마을 주민들도 눈을 크게 뜨고 그 섬뜩한 붉은 부적 문양을 바라보고 있었다.“이곳이 바로 봉살진의 봉인 장소입니다.”윤구주가 천천히 말했다.“봉인 장소?”촌장은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그렇습니다! 이 우물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마가가 이 봉살진을 설치해 이곳을 억누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우물 때문이라는 겁니다.”“그리고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흑사병과 지금까지 죽어 나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이 우물에 있는 것 때문입니다.”윤구주는 우물을 가리키며 설명했다.그의 말을 듣고 촌장은 충격에 휩싸여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자네는 우리 은인이네! 우리를 구해줘! 우리를 구해준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네! 우리 석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백성일 뿐인데 마가가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해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촌장은 지난 수
윤구주가 갑자기 검은 빛을 띤 한 장의 패를 꺼내자 공수이는 곧바로 다가와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이건 뭐죠?”윤구주는 차분히 답했다.“이것은 바로 구주령이다!”구주령이라는 말을 듣고 공수이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해졌다.구주령을 꺼내자마자 패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오며 고대 우물 속의 기운과 마치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듯했다.“형님, 이 패는 어디서 얻은 건가요? 어떻게 이 고대 우물의 기운과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거죠?”놀라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공수이가 묻자 윤구주는 구주령을 바라보며 천천히 설명했다.“이 물건은 나의 대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도씨 어르신께서요?”윤구주가 대사부라 말하자 공수이의 머릿속에 한 늙은 도사의 모습이 떠올랐다.공수이 역시 곤륜 지역에서 자라 윤구주의 여섯 스승을 알고 있었고 그중 가장 강력한 이는 항상 검은 당나귀를 타고 다니던 그 도씨 어르신이었다.그 노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의 내공이 얼마나 높은지 몰랐고 그가 나서는 것을 본 사람도 드물었다.곤륜 지역에서는 모두가 그를 도씨 어르신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두려워했다.“도씨 어르신께서 주신 구주령이었군요! 그런데 이 패가 왜 이 고대 우물과 반응을 일으키는 걸까요?”공수이가 의문을 던지자 윤구주는 답했다.“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사부님께서는 이 패가 동해 바닷속에서 건져온 것이라고 하셨다. 이 패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비밀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하셨다. 이 패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비밀이라고요?”눈빛을 반짝이며 공수이가 물었다.“그래! 그 비밀이란 바로 내가 사용하는 구양진용결이 이 구주령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윤구주는 드디어 그 비밀을 밝혔다.윤구주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능력은 바로 구양진용결이였고 이를 통해서만이 봉왕팔기를 창조할 수 있었다.“봉왕팔기를 창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구주령 덕분이었다니... 정말 놀랍네요!”공수이는 윤구주의 비밀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비밀
그리고 그 외에도 석촌 상공의 봉살진 역시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하늘을 한번 바라본 후, 공수이가 말했다.“형님, 제가 먼저 이 마가 자식의 쓰잘데기 없는 진법을 깨부숴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공수이는 우물 입구 위에 새겨진 붉은색 진문에 주먹을 내리쳤다.공수이의 실력은 확실히 육도 절정 급이었다.공씨 가문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세자로 그는 게으르지 않았다면 이미 절정 후삼품까지 올라갔을 것이다.하지만 육도 내공이라 해도 공수이의 이 한 방이면 산을 가르고 땅을 깨트릴 수 있었다.황금빛 그림자가 공수이의 주먹 한 방과 함께 내리쳐졌다.쾅!대지가 흔들렸고 고대 우물은 공수이의 주먹으로 인해 바닥까지 갈라졌다.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먹의 힘이 우물 입구의 붉은색 진문에 닿았을 때, 진문이 일순간 번쩍이며 수많은 비틀린 부적 문양들이 드러나더니 공수이 주먹의 위력을 막아냈다.게다가 우물의 돌벽에 새겨진 부적 문양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이런 젠장! 이걸 막는다고?!”“어디 한 번 더 당해 내보시지!”공수이는 한 번의 공격으로 이 큰 진을 부수지 못하자 다시 한번 주먹을 내리쳤다.이번에는 더 강한 힘이었다!그러나 아쉽게도 고대 우물의 붉은색 진문이 또다시 공수이의 주먹을 막아냈다.반복되는 상황에 공수이는 화가 났다.그렇게 곧 세 번째 주먹을 쓰려고 할 때, 윤구주가 말했다.“수이야, 내가 할게! 이 진법은 구음팔괘 봉살진이야. 네 주먹의 힘은 이 진법에 효과가 없어.”공수이는 억울한 얼굴을 지었지만 진법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곤륜 지역에서 미친 스님에게 배운 가장 강력한 기술이라면 맞아 버티는 것이었다.불가의 강력한 ‘금강호체’를 지닌 공수이는 후삼품 절정이라도 막아낼 수 있었지만 진법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하여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알겠어요! 형님이 하세요!”그러고는 뒤로 물러섰다.윤구주는 우물 앞에 다가가 잠시 살핀 후, 두 눈에서 눈부신 황금빛 광선을 내뿜었다.광선이 퍼지는 동안, 윤
이 검은 불은 마가의 비전 도화로서 정수를 기르고 기운을 모아 장수하게 하는 힘이 있다. 마가의 셋째 대장로는 검은 도화를 계속 흡수하면서 얼굴이 점점 젊어져갔다. 심지어 얼굴의 주름까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여 마치 새 생명을 얻은 듯했다. 셋째 대장로가 계속해서 검은 도화를 흡수하고 있을 때 그의 신해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눈을 감고 있던 마가의 셋째 대장로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 감히 누가 나의 곤살진을 건드리고 있단 말인가?”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살기를 내뿜고 시선은 곧장 석촌 방향으로 향했다. ‘쿵! 쿵! 쿵!’ 세찬 진동이 셋째 대장로의 신해에서 계속 울려 퍼졌다. 이 굉음은 곤살진이 공격을 받아 무너지려는 징후였다. 사실 50여 년 전에 마가의 셋째 대장로는 석촌의 엄청난 비밀을 발견한 이후 곧바로 곤살대진을 설치했다. 이 대진은 그의 피와 영혼을 이용하여 구축된 것이다! 전법에는 그의 신혼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 언제든 석촌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상치 못한 일은 50년 만에 자신이 막 출관한 순간 봉인되어 있던 곤살진이 공격을 받아 파괴 직전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펑!’ 마침내 마가의 셋째 대장로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신해 속에서 석촌에 남겨둔 한 줄기 신혼의 의지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 순간 셋째 대장로는 놀라서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신혼이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자신이 50년 전 석촌에 봉인해 둔 곤살대진이 결국 깨졌음을 의미했다! “아오!” 그의 입에서 울부짖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주위에 살기를 내뿜었다. 그 울부짖음은 마궁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들렸고 마가의 장로들뿐 아니라 마황에게까지도 똑똑히 들려왔다. 한편 셋째 대장로는 자신의 곤살대진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 온몸에 사악한 기운을 감돌게 하며
자세히 보니 고대 우물 위로 세 장의 금빛 부적이 떠있었다. 이 부적들은 삼각 모양으로 배열되어 하나의 금빛 부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부진 아래에서는 본래 석촌을 억누르던 곤살진문이 한 줄기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금이 갈라지는 과정에서 석촌 상공을 감싸고 있던 곤살대진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마침내 윤구주가 한껏 기운을 넣으며 외쳤다. “파괴하라!” 그가 손가락으로 주문을 외우자 세 장의 부적에서 금빛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와 두려움을 자아내는 금빛 광선이 석촌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 순간 석촌을 50년 넘게 봉인했던 곤살대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우물의 입구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핏빛 진문이 사라졌고 석촌 위에 떠 있던 곤살대진은 바람에 날리는 구름처럼 검은 살기가 완전히 휩쓸려 사라졌다! 50년 넘게 봉인된 작은 석촌이 마침내 빛을 되찾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드디어 파괴됐다!” “역시 형님, 대단해요!” 곤살대진이 파괴된 것을 본 공수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순백의 옷을 입은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별것도 아닌 작은 진이다. 열몇 살 때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어.” 그가 말한 후 윤구주의 시선은 다시 고대 우물을 향했다. “오히려 이 우물 안쪽이 점점 더 나를 끌어당기는군.” 사실 윤구주가 곤살대진을 파괴한 순간 그가 늘 지니고 있던 구주 명령패가 더욱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는 고대 우물 속의 신비한 물체와의 감응이 더욱 강해졌다는 신호였다. 윤구주는 이 구주 명령패가 그의 마음속 미스터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스승조차도 이 명령패의 출처를 알지 못했다. 스승은 이 명령패가 하늘 밖의 물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지만 윤구주는 한 가지가 의아했다. ‘만약 이 구주 명령패가 하늘 밖에서 온 물건이라면 그 안에 왜 화진 무공이 깊이 잠들어 있는 걸까?’ 이 점이 윤구주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눈을 번뜩이며 고대 우물을 바라보던 윤구주는 속으로 생각했
“수이야! 가자, 안으로 들어가 보자!” 윤구주가 말을 마치고 구불구불한 통로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뒤따라가던 공수이도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통로는 매우 깊었고 계속 아래로 이어졌다. 둘은 걸음을 옮기며 주변의 돌벽을 살펴보았다. 벽에는 오래된 벽화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벽화들은 상당히 훼손되어 있었고 물자국이 스며들어 일부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흐릿하게나마 이 벽화들이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도대체 이 고대 우물 안에 뭐가 있는 거지? 안이 이렇게 넓을 줄이야. 게다가 이걸 마가 놈들이 봉인해 놨다니?” 공수이는 앞을 걸으면서도 중얼거렸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더욱 넓어졌고 마침내 눈앞에 거대한 지하 궁전이 펼쳐졌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윤구주와 공수이의 눈앞에 거대한 고목이 나타났다! 고목은 엄청나게 컸다. 나무뿌리의 지름만 해도 몇 장쯤 되는 크기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나무는 가지와 잎이 없었고 마치 처음부터 이 고대 우물 속에 자연스럽게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와, 이 나무 진짜 크다!” 고목을 바라보던 공수이는 놀란 표정으로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고목 앞에 도착한 공수이는 손을 뻗어 나무를 만졌다. 그런데 만지자마자 깜짝 놀라 손가락을 멈췄다. 손끝에 느껴진 감촉은 나무가 아니라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다.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고목을 자세히 살펴본 공수이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의 이 거대한 고목은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청동 나무였다. “이게 청동 나무라니!” 눈을 크게 뜬 공수이는 눈앞의 장면에 완전히 압도되어 말을 잃었다. 윤구주 역시 눈을 가늘게 뜨고 이 거대한 청동 나무를 응시했다. 이 나무는 마치 고대의 신비한 유물처럼 우물 바닥에 불가사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온몸이 청동으로 덮여 있는 이 고목은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마치 이 청동 나무가
“게다가 이건 고대 진법으로 지켜지는 진문이야!” 공수이는 윤구주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며 청동 고목을 바라보았다. 방금 윤구주가 한 말에 공수이는 완전히 멍해졌지만 그는 윤구주를 믿었다. 그래서 물었다. “형님, 이게 문이라면 대체 어디로 통하는 건가요?” “이 문이 어디로 통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이 문이 열리면 화진 무술도 깜짝 놀라게 할 거야!” 이 말에 공수이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윤구주가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없었고 이 청동 고목 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도 몰랐다. 그가 더 질문하려던 순간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 “이제야 이해가 됐어. 왜 마가 사람들이 오십 년 전 이 석촌을 봉인했는지! 내 추측이 맞는다면 마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 청동 고목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거야! 다만 그들의 수련 경지가 부족해서 이 문을 열 수 없었을 뿐이지!” 윤구주의 눈에서 서늘한 광채가 빛났다. 공수이는 코를 긁적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그냥 청동 나무 하나일 뿐인데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요? 화진 무술까지 놀랄 일인가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지! 왜냐하면 내가 수련하는 조차 이 안에 감춰진 신비로운 힘을 느꼈으니까!” 윤구주는 흥분하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공수이는 완전히 충격에 휩싸였다. 어릴 적부터 윤구주와 함께 곤륜 지역에서 자라온 공수이는 윤구주의 가장 강력한 무공이 바로 임을 잘 알고 있었다. 윤구주가 스스로 창조한 봉왕팔기도 모두 구양진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에 대해서라면 윤구주의 여섯 명의 사부들도 도무지 그 비밀을 풀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무공의 비밀은 오직 윤구주의 큰 사부만이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비밀은 의 수련 심법이 사실 윤구주가 지니고 있는 한 장의 구주 명령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구주 명령패는 매우 신비로웠다. 오직 윤구주만이 이 구
이전에 구주 명령패가 이상 반응을 보였을 때만 해도 윤구주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 속에서 수련 중인 마저 반응을 일으키자 그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 엄청난 무공은 윤구주가 수련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구주는 뜨거운 눈빛으로 앞에 있는 청동 고목을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봤다. 옆에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공수이 역시 윤구주의 곁에 서서 그 청동 고목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죠?” 공수이가 옆에서 물었다. “이 문을 열어야만 진실을 알 수 있어!” 윤구주는 청동 고목을 바라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수이, 뒤로 물러서 있어. 내가 해볼게!” 윤구주의 말에 따라 공수이는 뒤로 물러섰다. 윤구주는 신념을 모아 청동 고목을 응시하며 손을 모아 비결을 외웠다. “부자결, 열려라!” 윤구주의 손이 허공에 부적을 그리자 이내 몇 장의 금빛 부적이 그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이 부적들이 모여 윤구주의 부진을 형성했다. 부진이 펼쳐지며 찬란한 금빛 광채가 청동 고목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부진의 금빛이 아무리 청동 고목에 스며들어도 이 고목은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윤구주의 부진이 이 고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했다. “안 되나?” 윤구주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손바닥에서 거대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술현지, 반산!” 산을 들어 올릴 듯한 강력한 반산 기술이 펼쳐지자 고정 깊숙한 바닥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 고대 우물 위쪽에서는 지반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머리 위로는 돌가루와 자잘한 돌이 떨어져 내렸다. 윤구주의 술현지는 세 가지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름은 반산, 진해, 열천이었다. 이 세 가지 기술은 실제 산을 대면해도 산을 흔들리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윤구주의 반산 기술이 이 기묘한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