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가 8기를 쓰는 순간, 그의 손에 있던 용혼한위총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용혼한위총이 한 줄기 은빛이 되는 순간, 설국 금전은 창의에 완전히 뒤덮였다.창은 공기를 가르며 설국 어둠의 신의 팔로 향했다.창이 내려앉는 순간, 검은색 마기를 내뿜던 팔이 베어졌다.그 팔은 어둠의 신 세스의 것이었다.“아악!”어둠의 신 세스의 입에서 분노에 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설국 국민들이 신앙하는 신 세스가 격노했다.“인간이여, 난 널 집어삼킬 것이다.”광기에 빠진 어둠의 신이 한 걸음 내디뎠다. 쿵쿵 소리와 함께 설국의 금전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곧이어 그의 다섯 개의 팔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윤구주를 향해 덮쳐들었다. 마치 윤구주를 산 채로 집어삼킬 듯한 모습이었다.윤구주는 빠르게 움직여 피했고 그 때문에 어둠의 신의 다섯 팔은 윤구주의 뒤에 있던 설국 대신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끄아악!”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십여 명의 설국 대신은 어둠의 신에 의해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다.어둠의 신은 실패하자 다시 한번 다섯 팔을 마구 휘둘렀다.넘실대는 마의 기운이 설국 금전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이번에 윤구주는 피하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들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거대한 체구를 가진 어둠의 신을 바라보았다.“신이라고? 그러면 오늘 신이라고 불리는 당신을 죽여주지.”윤구주가 갑자기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적선기가 맴돌기 시작하자 윤구주는 합장하였고 굉장히 쩌렁쩌렁한 용의 울음소리가 그의 체내에서 전해졌다.용의 울음소리가 설국 수도에 널리 퍼졌다.설국 수도.수많은 백성들이 귀청을 찢을 듯한 용의 울음소리를 들었다.심지어 일부 간 큰 설국 백성들은 거리로 나와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금전 쪽을 바라보았다.“세상에, 우리 수도의 금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왜 저렇게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용이야!”“저길 봐! 금전 상공에 용이 나타났어!”수많은 설국 백성들이 설국 수도 금전 상공에서 금빛 용을
금전을 가득 채운 마의 기운은 윤구주가 대신관을 처리하자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금전에는 윤구주와 그의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는 금빛 용 두 마리뿐이었다.금빛 용은 마치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울음소리를 냈다.윤구주가 머리 위 금빛 용을 바라보다가, 설국 대신들과 설국의 젊은 국주 모두 겁을 먹었다.윤구주는 마지막 대신관을 죽인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설국 국주 설태현을 바라보았다.“이젠 당신 차례야!”윤구주의 말에 설국 국주는 겁을 먹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쩔 수 없었다.더는 설태현을 지킬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심지어 설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여겨지는 대신관마저 윤구주의 손에 죽었는데 누가 그를 지키겠는가?“뭘, 뭘, 뭘 하려는 거야?”설태현이 덜덜 떨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얘기했어. 오늘 네 머리를 치겠다고.”윤구주의 목소리는 매정했다.“감히 내 목을 치겠다고?”“어서, 어서 국주님을 보호해야 해!”주위에 있던 대신들이 달려들려고 했다.그런데 바로 이때 용의 울음소리가 금전에 울려 퍼지면서 윤구주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던 금빛 용이 설국 대신 여러 명을 한입에 집어삼켰다.금빛 용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마저 남지 않았다.그 광경에 남은 설국 대신들은 전부 겁을 먹었다.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정말로 날 죽일 생각인 거냐... 너도 알다시피 날 죽인다면 설국은 화진과 필사적으로 싸울 거야. 심지어 국제중재기구의 다른 나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설태현은 살기등등하게 윤구주를 바라보며 용기를 북돋웠다.설태현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당시 10국은 연맹을 맺었고 전 세계에 국제중재기구를 창립했다.소문에 따르면 중재기구는 세력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세계에 얼마 되지 않는 몇몇 제국들의 지원을 받고 있고 심지어 진정한 초극 절정 강자가 있다고 한다.6년 전,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국제중재기구는 팔부 절정 강자를 한 명 출동시켰다.그러나 그팔부 절정은 그저 잠깐 모습만 드러냈을 뿐 윤구주와 진짜
더 나아가 설국 수도에까지 울려 퍼졌다.굉장히 낮고 귀에 거슬리는 종소리가 들려오자 설국 수도 시민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다들 그 종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종이 울리다니... 세상에. 국주님께서 돌아가셨나 봐.”“국주님이?”거리 양쪽에 있던 수많은 설국 백성들은 종소리를 듣고 목 놓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심지어 밖에 주둔하고 있던 설국 병사들까지 종소리가 들리는 순간 모두 애도하기 시작했다.낙일성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곳.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먹구름처럼 낙일성으로부터 3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몰려오고 있었다.수십만 명의 대군을 이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염수천과 박천후였다. 두 사람은 화진의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이때 설국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낙일성의 종소리 또한 울리기 시작했다.“총사령관님, 얼른 들어보세요. 낙일성 쪽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한 장수가 빠르게 박천후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군복을 입은 박천후는 귀를 기울였고, 종소리를 듣는 순간 크게 웃기 시작했다.“설국은 끝났어. 설국의 국주가 죽었거든.”박천후의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장수가 서둘러 물었다.“소문에 따르면 설국 국주는 아주 젊다고 하던데요? 갑자기 죽었을 리가 없지 않나요?”“멍청하긴! 당연히 우리 저하께서 죽인거겠지!”박천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뭐라고?’“구주왕께서 죽였다고요?”주변 장수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당연하지. 이 세상에 우리 저하를 제외하고 누가 설국 국주를 죽일 수 있겠어?”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은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그들은 전부 눈이 휘둥그레져서 설국 쪽을 바라보았다.설국의 국주가 설국 수도의 금전에서 윤구주의 손에 죽을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설국 금전.피 칠갑이 된 사람의 머리통은 여전히 바닥에 있었다.그것은 당연하게도 설국 국주의 머리였다.설국 대신들은 전부 겁을 먹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금전에는 오직 윤구주와 일찌감치 몸에
부진이 가동되었고 윤구주가 금전 전체를 뒤덮었다.하늘을 가득 메운 부적 진법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세나미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이, 이 악마. 뭘 하려는 거야?”윤구주는 피식 웃더니 시선을 들어 상공의 부적 진법을 보았다.“오늘 나는 설국의 백 년 국운을 파괴할 것이다.”국운이란 무엇인가?바로 한 나라의 운세였다.그런데 윤구주는 혼자의 힘으로 설국의 백 년 국운을 파괴할 거라고 했다.과연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일까?우렁찬 목소리로 말한 뒤 윤구주는 훌쩍 뛰어올라 설국 금전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그의 온몸에서 기운이 넘실댔다.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적선기가 그를 신처럼 보이게 했다.윤구주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그가 두 손으로 수인을 맺는 순간, 하늘과 땅이 윤구주를 중심으로 거대한 빛줄기를 형성했다.빛줄기 아래, 윤구주는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부진, 가동!”쿵쿵쿵.금전 전체를 뒤덮었던 거대한 부적 진법이 가동됨과 동시에 진법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64개의 금빛 부적이 64개의 금빛이 되어 설국 금전 위로 내려앉았다.그 뒤로 금전 아래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그리고 곧이어 파멸적인 기세의 자줏빛 기운이 윤구주에게 흡수되어 금전의 땅 밑에서부터 올라왔다.자줏빛 기운은 상서로운 기운이었다.설국 수도에서 이 금전은 역대 설국 황실이 거주하던 곳이자 설국의 수많은 신하들이 경배하는 곳이었다.그곳에는 용의 기운도, 상서로운 기운도 있었다.이 순간, 수많은 설국 국민들이 살고 있는 이 신성한 곳의 기운을 윤구주가 조금씩 흡수하기 시작했다.그 광경에 세나미는 얼이 빠졌다.“이... 이... 이 악마! 우리 설국 황실의 기운을 흡수하는 거야?”세나미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윤구주가 만약 설국의 기운을 빨아들인다면 설국은 당연하게도 쇠락할 것이다.심지어 심각할 경우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이 모든 건 설국이 자초한 일이야.”윤구주는 세나미를 무시하고 미친 듯이 설국의 국운을 흡수했다.
그 말에 육도진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여섯째 공주 이홍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설국 국주가 죽었다고요? 이게 무슨 상황이죠?”이홍연은 이때 입을 뻐끔거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심지어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을 뻔했다.바로 이때 국주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구주가 설국의 그 젊은 국주를 정말로 베었나 보구나.”그 말에 이홍연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버지, 윤구주가 설국 국주를 죽였다는 말씀이세요?”화진 국주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이 세상에 그 정도 능력과 배짱을 가진 사람이 윤구주 말고 또 있겠느냐?”“하지만... 하지만 윤구주는 설국에 간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걸요!”이홍연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구주가 설국의 국주를 죽여본 적 없는 것도 아니고. 잊지 말거라. 6년 전, 설국의 전 국주 역시 구주가 죽였었다.”꿀꺽.국주의 말을 들은 이홍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자신의 남자가 설국 국주를 두 명이나 죽였다는 생각에 이홍연은 크게 놀랐다.“구주는 지금 어디 있느냐? 대답해 보거라.”국주의 질문에 신하가 대답했다.“국주님, 그쪽에서 전해온 전보에 따르면 구주왕께서는 지금도 설국 수도에 있을 거로 예상됩니다.”“아직도?”국주는 조금 의아했다.“그렇습니다. 전보에 따르면 설국 금전이 빛에 완전히 뒤덮였고 설국 백성들은 구주왕이 자줏빛 기운을 빨아들이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자줏빛 기운?그 말을 들은 국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이 망할 놈, 설국 국주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설국의 국운까지 흡수하려는 것이구나.”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국주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국 국주를 죽였으면 바로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거기에 남아서 무슨 자줏빛 기운을 흡수한단 말이에요? 뭘 위해서요?”이홍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국주는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몰라서 그래. 자줏빛 기운이랑 한 나라의
“정말요? 아버지, 윤구주를 진국왕으로 책봉하실 생각이세요?”이홍연은 예쁜 눈을 크게 뜨고 들뜬 얼굴로 국주를 바라보며 물었다.국주는 천천히 말했다.“6년 전 그때 난 구주를 이미 진북왕으로 책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종문과 세가에서 날 방해했지. 그러나 이번에 감히 날 막아서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자를 적으로 돌릴 것이다. 조정 전체를, 무도 천하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국주가 패기 넘치는 말투로 얘기하자 육도진은 흥분하며 말했다.“국주님, 대단하십니다. 국주님, 만세!”국주는 싱긋 웃더니 옆에 있는 이홍연을 바라보았다.“게다가 구주는 앞으로 우리 화진의 진국왕일 뿐만 아니라 우리 화진의 부마가 될 것이니 말이다.”부마라는 말에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화진의 여섯째 공주는 순간 목까지 붉어졌다.“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이홍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왜? 내 말이 틀리더냐?”국주가 말했다.이홍연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전, 전, 전 구주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비록 이홍연을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꿀을 먹은 것보다도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국주는 딸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래. 네가 싫다고 하니 기회를 봐서 구주를 위해 다른 배필을 찾아봐 줘야겠구나. 어차피 구주는 지금 연인이 없고 우리 화진에는 여자들이 많으니 말이다.”“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구주는 제 거예요. 아무도 저에게서 구주를 빼앗을 수 있어요.”아버지가 윤구주를 다른 여자와 결혼시키겠다고 하자 이홍연은 버럭 화를 냈다.국주는 큰 소리로 웃었다.“그래. 장난은 그만할게. 육도진 우상, 구주가 승리를 거머쥐고 돌아온다면 나는 태산에서 친히 구주를 진국왕으로 책봉할 것이다.”육도진은 서둘러 대답했다.“네!”...설국.윤구주가 설태현을 머리를 벤 뒤 설국 전체가 설태현을 위해 애도했다.설국의 국주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수도 금전.윤구주의 부적대진
예전에 세나미는 윤구주가 자신의 실력을 전부 보여줬고, 그래서 설국을 이 정도로 파괴할 수 있었던 거로 생각했다.그러나 윤구주의 등 뒤에 나타난 거대한 코끼리의 형상을 본 순간 세나미는 그를 증오할 용기 또한 없었다.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윤구주가 더는 설국 사람들을 죽이지 않기를 말이다.시간은 1분 1초 흘렀다.설국의 국운은 마치 강물처럼 윤구주의 체내로 천천히 흘러들었다.같은 시각, 설국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사람 세 명이 나타났다.그 세 사람은 모두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선두에 선 사람은 금발 머리카락의 남자였다.남자는 흰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일거수일투족이 매우 우아했다.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사악한 기운이 그를 매우 음산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그의 곁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있었다.남자는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여자는 요염하고 관능적이었다.세 사람이 나타나자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에 눈보라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그들은 모두 절정 강자였다.게다가 선두에 있는 금발의 남자는 칠살 급의 초극 준절정 강자였다.다른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역시 오악 이상의 절정 강자였다.이 순간 설국에 이 세 사람이 나타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아나스, 곧 설국이죠?”유럽 악센트가 강한 금발의 남자가 눈보라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곧 도착할 겁니다.”아나스라고 불린 건장한 남자가 대답했다.“설국이 우리 국제중재기구에 연락해서 나서달라고 했다니, 이번에 설국이 정말로 화진을 제대로 건드렸나 봐요.”금발의 남자는 그 말을 할 때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띠었다.“흥! 설국이 자초한 일이죠. 왜 하필 화진을 건드린 건지. 설마 6년 전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얼마나 처참히 실패했는지를 잊은 걸까요?”아나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하, 아나스.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비록 화진은 세계 최강의 무도 강국이지만 그럴
“맞아요. 만약 화진의 구주왕이 살아있다면 우리 국제중재기구는 조금 두려워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잖아요...”레이라고 불린 가장 앞에 서 있던 금발의 남자는 윤구주의 얘기가 나오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레이 님,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당시 10국 간의 전쟁에서 레이 님께서는 구주왕을 직접 본 적이 계시죠? 소문이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당시 우리 10국의 강자들이 함께 연합해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나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금발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금발의 남자는 잠깐 침묵하더니 고개를 들어 흩날리는 눈보라를 바라보았다.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6년 전 전쟁 때가 떠올랐다.그 전투에서 피는 바다를 이루었고 시체는 쌓여 산더미를 이루었다.당시 그 전투에서 레이는 구주왕의 실력을 본인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었다.그는 그 전투에서 12명의 신급 절정 강자가 윤구주와 고전을 치렀던 걸 똑똑히 기억했다.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중 반이 죽었다.최후에 10국이 투항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날 10국의 강자들은 전부 윤구주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 장면을 떠올리자 국제중재기구 출신이며 칠살 급인 레이는 눈가가 심하게 떨렸다.그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그 남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는... 악마예요!”악마라는 말에 아나스도, 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도 침묵했다.“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죽었죠.”레이는 갑자기 길게 숨을 내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갑시다. 일단은 설국으로 가야죠.”그는 그렇게 말한 뒤 설국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아나스와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는 그를 뒤따랐다....낙일성은 설국 수도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었다.이 시각, 낙일성 30km 밖에서는 화진 군대가 진지를 확고히 정비하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수십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은 기세가 남달랐다.선두에 선 장수는 화진 북방군의 총사령관 박천후와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예전에 윤구주는 신념을 이용하여 염수천에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
“인간마가 세상에 나왔는데, 대체 누가 막을 수 있겠냐. 왜 그 무게를 전부 화진이 짊어져야 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해.”청해는 처음으로 곤륜영역에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던 위선의 신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했다.그들은 입만 열면 도덕과 정의를 떠들지만, 정작 하는 짓은 불의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었다.“아아아!청해무극! 지은살결!!”청해는 모든 정원을 끌어 올렸고, 심지어 음혼까지 태워버렸다.음혼이 하늘의 뇌격을 불러오자, 그의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정의로운 황기가 피어올랐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도에 들어선 것이다.그 수련은 폭발하듯 치솟아 극점 신경 후기에 이르렀고, 잠시나마 이성설과 맞먹는 기세를 뿜어냈다.“카! 이제야 좀 신 같은 포스가 나오네!”백호는 멀리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청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누구든 이 상황이면 절망했을 전황.하지만 백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로 들떠 있었다.그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고, 결국 전장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그게 백호가 택한 길 죽음을 향한 도였다.세 사람 모두 이미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살아남을 생각 따윈 없었다.마물들과 함께 미쳐 날뛰며 생사의 끝자락을 오갔다.진요탑.풍무기는 전사했다.이제 남은 건 윤구주 단 한 사람.그가 인간마와 맞서야 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윤구주! 풍무기는 죽었다. 이젠 네 차례야! 혼을 꺼냈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내 육신이 남아있는 이상,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반성 상태만으로도 네 인황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어. 그래, 네 선술은 순수하겠지. 그래서 네 육신엔 손댈 수 없지만 혼을 지워버리면 넌 끝이야. 마도무영,도파무극! 혈음마도, 현세에 나타나라!”그의 손에 한 자루의 절세마도가 출현했다.그 칼끝에서 피의 바다가 솟구치고, 살기는 윤구주의 황기조차 압도했다.이런 마도를 길러내기 위
잠금요탑 밖, 무너졌던 마기가 흩어지자 서요산 검종 제자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다. 500년 만에 다시 햇살을 본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서요산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움 없이 혼자서 마를 억눌러왔다. 그 현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무명이 죽은 건가? ”장인대진인이 순간 멍해졌지만 곧 신념술로 본 광경에 얼굴이 굳어졌다. 귀물들이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윤구주가 무명의 목에 칼을 들이댄 건 확실해. 지금이 바로 마지막 승부의 시점이다.”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진 마기가 다시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마영체가 형성됐다. 그 거대한 그림자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대지를 집어삼키려는 듯 광폭하게 움직였다. 그건 이제는 환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잠금요탑 위로 백장 크기의 마존이 강림했다. “윤구주! 네가 이 정도였다고? 실력만큼은 서요산 시조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겠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흐름은 정해졌다. 대세는 되돌릴 수 없어. 그 시조가 도력이 하늘을 찌르고 능력이 천하를 뒤흔든다 해도 결국 날 죽이지 못했지. 결국엔 구천을 떠돌며 외도계에서 날 베어낼 무언가나 찾고 있겠지. 외도계엔 나를 죽일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도 이곳 인간계 구주의 오방 안에서는 절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여기서 끝이다. 죽어라!! 윤구주. 마의 경계는 끝이 없고 마의 바다는 만 리를 삼킨다! ”하늘이 찢기고 무한한 마해가 대지를 뒤덮었다. 잠금요탑은 순식간에 요산으로 변했고 주변은 온통 사기와 혼란으로 뒤덮였다. 무명은 드디어 자신의 사혼체를 드러내며 윤구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윤구주의 손에 들린 참마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풍무기의 상태가 이미 한계라는 증거였다. “구주야, 내 양혼신체는 거의 다
‘선술? 크하하하!’무명이 미친 듯 웃었다.“네가 황자면 뭐 어쩌라고? 결국에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간 세상의 유성일 뿐이지.”“나는 무명이다.하늘은 이미 내 발 아래 있다.세상의 법? 그런 건 내가 정하는것이다.”“윤구주! 과연 네놈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두고 보겠다!”‘원신출체도 못 한 놈이 선술을 깨달았다고? 어이없네.’무명의 눈에는 윤구주란 놈은 선술의 겉껍데기나 훔쳐본 수준에 불과했다.입만 산 허세쟁이 꼬맹이였지 그딴 놈은 애초에 눈에 들어올 가치조차 없었다.게다가 진짜 선술을 논하려면 그 참마검조차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주제에.하지만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신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우연히 소요산에 들렀을 때 그때 이미 선술의 근본을 깨달았지.”윤구주의 눈이 빛났다.“지금, 네게 그걸 보여주마.”“구기신통 , 등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실체의 불꽃으로 응결되었다.기운이 ‘기’에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이게 뭔지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윤구주는 몸 자체에서 영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주변 땅의 기운조차 자기 위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윤구주는 이제 한 종파의 시조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더 이상 강자를 넘어서 자신만의 도를 세우고, 전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무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저건, 설마 성력?!”그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진짜였다. 가짜가 아닌, 순도 100%의 성력이었다.“말도 안 돼...저놈이 어떻게...”무명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수행자에겐 한 단계 한 단계가 천벽과도 같다.특히 성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야말로 하늘과 하늘 사이를 걷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였던것이다그리고 지금 윤구주는 그 문턱을 스스로 넘고 있었다.“무명! 넌 반성자일뿐! 육신만 있었으면 성인이 됐을지도 몰라.하지만 지금 넌 가짜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