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인은 윤신우가 단번에 자신의 녹색 발톱을 망가뜨리자 음산한 눈빛으로 말했다.“역시 윤씨 일가의 가주다워.”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입을 열면서 뭔가를 토했고 곧 검은색의 사악한 기운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그 사악한 기운이 나타나자 독인은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이내 검은색의 사악한 기운은 장검이 되었다.장검은 섬뜩한 기운을 내뿜었다.그리고 독인은 검은색의 검을 들고 윤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윤신우는 독인이 검을 들고 달려드는데도 걸음 한 번 움직이지 않고 손을 들었다.쿵!무시무시한 장풍이 엄청난 파워를 지닌 채 독인의 장검에 닿았다. 무시무시한 힘 때문에 독인은 엄지와 검지 사이가 아팠다. 그는 이내 허공에서 연신 뒷걸음질 쳤다.“아주 강하네!”독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어두워진 얼굴로 윤신우를 바라보았다.윤신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해.”“좋아! 그러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어!”독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더니 갑자기 두 손을 폈다.“독왕정!”쿵!그의 등 뒤에 있던 검은색의 나무 상자가 갑자기 날아와서 독인의 앞에 놓였다.독인은 두 손으로 수인을 맺은 뒤 검은색의 나무 상자를 눌렀고 곧 무시무시한 독가스가 상자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독가스는 곧바로 결계를 만들었다.그 결계는 범위가 아주 넓었는데 그 범위 안에 있는 생물들이 모두 부식되었다.꽃도, 풀도, 나무도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빠르게 시들어갔다.“윤씨 일가의 가주가 30년 전 최강자였다고 하던데 오늘 그 실력을 한 번 보고 싶군.”독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을 폈다.그러자 독가스 결계 안에서 갑자기 아주 거대한 검은색의 손들이 나타났다. 그 손들이 나타나자마자 독인은 윤신우를 가리켰고, 수많은 손들이 윤신우를 공격했다.윤신우는 한쪽 손을 등 뒤로 가져갔는데 아주 평온한 표정이었다.수많은 손들이 그의 앞에 도착했을 때, 윤신우는 갑자기 발을 굴렀다.쿵!엄청난 폭풍이 그의 몸에서 폭
윤신우는 말을 마친 뒤 별안간 손바닥을 폈고 곧 허공에 떠 있는 비검이 그의 손바닥 위로 나타났다.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비검이 나타나자 윤씨 일가 저택 전체가 그것의 무시무시한 검기에 휩싸였다.“비검?”비검이 나타나자 원래도 추악했던 비검의 얼굴이 더욱더 추악해졌다.“어, 어떻게 서요산의 비검을 쓸 수 있는 거지?”독인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을 때 윤신우는 손을 들어 가리켰다.“가라.”손바닥만 한 비검은 흰 빛줄기가 되어 유성처럼 허공에 있는 검은색의 거대한 손을 향해 날아갔다.쿠구궁!하늘을 전부 가릴 듯하던 검은색의 거대한 손은 그렇게 윤신우의 일격에 파괴되었다.그뿐만 아니라 비검이 지나가는 곳에 있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비검은 독인이 만들어낸 거대한 손을 파괴한 뒤 곧장 독인을 향해 날아들었다.‘뭐야?’무시무시한 비검 때문에 독인은 당황했다. 그는 서둘러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고 자신의 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녹색의 독가스로 보호막을 만들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보호막은 윤신우의 비검을 전혀 막을 수 없었다.촤악!보호막이 윤신우의 비검 때문에 부서져 내렸다.“젠장... 이렇게 죽는 건가?”독인은 낙담한 얼굴로 코앞까지 날아든 비검을 바라보았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절망이 드리워졌다.그런데 무시무시한 비검이 독인의 머리를 꿰뚫으려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독인의 앞에 섰다.그는 문창정이었다.그가 손바닥으로 밀어내자 윤신우의 비검 위에 손자국이 생겼고 곧 탁 소리와 함께 비검은 방향을 틀어 날아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갔다.“독인, 제가 윤씨 일가의 가주를 얕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말을 믿지 않더니, 이젠 믿을 수 있겠습니까?”문창정은 윤신우의 비검을 막은 뒤 음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죽을 뻔했던 독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흘렀다.그는 땀을 닦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네, 네...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윤신우는 갑자기 나타난 문창정을 바라보면서 입을
“당신은 제 아들에게 기린화독을 써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의 왕위를 빼앗고 우리 아들을 기습했죠. 그런데 사돈이 될 수도 있다고요? 정말 염치가 없네요.”윤신우는 욕지거리를 했다.그의 말대로 만약 윤구주에게 구양진용결이 없었다면 윤구주는 이미 죽음의 바다에서 죽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그런데 문창정은 뻔뻔하게 사돈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인가?“휴, 윤 가주가 동의하지 않는 것 같으니 우리는 적이 될 수밖에 없겠군.”문창정은 유유히 말했다.“하지만 윤씨 일가와 윤구주 한 명이 정말로 우리 무도 3대 서열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문창정이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흥! 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명심하세요. 우리 윤씨 일가의 자제들은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윤신우는 패기 넘치게 말했다.“하하하하!”문창정은 그 말을 듣고 미친 듯이 웃었다.“그렇다면 윤 가주의 실력을 보고 싶군. 나와 한 번 싸워 보지!”문창정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에게서 무홍의 기운이 마치 안개처럼 하늘을 가리고 주변을 뒤덮었다.그 순간 격투를 벌이고 있던 윤씨 일가의 고수들과 문씨 일가의 고수들은 모두 멈췄다.다들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윤씨 일가의 가주와 문씨 일가의 문창정의 싸움이라니.윤신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시무시한 실력을 뽐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펑! 펑! 펑!윤신우의 곁에서 빛무리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그것은 바로 동천이었다.“팔부 동천!”“윤씨 일가의 가주가 팔부 동천이었던 걸까?”윤신우가 여덟 개의 동천을 전부 개시한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동천 기운에 뒤덮였다.더욱 무시무시한 점은 여덟 개의 동천이 전부 개시되었음에도 윤신우의 기운이 계속해 커진다는 점이었다.그의 긴 머리가 휘날리면서 기운이 엄청난 기세로 하늘로 치솟았다.이 순간, 그곳에 있던 윤씨 일가의 사람들은 경악했고 독인
윤신우의 엄청난 한 방에 문창정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 가주가 싸우자고 요청했으니 기꺼이 받아들이겠소.”문창정은 오른손을 들어 똑같이 손바닥을 움직였다.쿠구궁!두 힘이 부딪치면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사방을 휩쓸었다.몇십 미터 반경으로 윤씨 일가의 저택과 모든 것이 재가 되었다.이것이 바로 진정한 강자들의 전투였다....윤씨 일가가 문씨 일가의 기습을 받았을 때 윤구주는 형제들과 함께 집에 있었다.오늘은 밤경치가 아름다웠다.그러나 윤구주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조금 전 날이 저물기 시작할 때부터 자꾸만 불안한 예감이 들었고, 그 때문에 윤구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본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구주야, 왜 그래? 아까 밥 먹을 때도 안색이 좋지 않던데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소채은은 윤구주의 곁으로 다가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윤구주가 대답했다.“오늘 밤에는 왠지 모르게 조금 불안해.”“응? 무슨 일 있었어?”소채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고 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윤구주가 대답하고 싶지 않아 하자 소채은도 더는 묻지 않았다.이때 공수이와 함지우가 함께 윤구주의 곁으로 달려왔다.“형님, 지우 씨가 저랑 겨뤄보고 싶다고 하는데 형님이 증인이 되어주실래요?”윤구주는 손을 저었다.“너희는 너희끼리 놀아. 난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이야.”“기분이 좋지 않다고? 구주 형, 무슨 일 있어?”함지우는 그 말을 듣고 서둘러 물었다.공수이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일이 있는 건 아닌데 뭔가 좀 불안해.”“불안하다고?”그 말에 공수이와 함지우 모두 당황했다.“형님, 잘 쉬지 못해서 생각이 많아진 건 아닐까요?”공수이가 중얼거렸다.“맞아, 형.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 설마 그 빌어먹을 종문들이 우리를 찾아와서 시비를 걸겠어?”함지우가 말했다.두 사람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그 말을 듣는 순간 공수이와 함지우 모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윤구주는 완전히 얼어붙었다.윤신우와 윤정석이 죽다니?“형님?”“구주 형?”옆에 있던 공수이와 함지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넋을 놓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구주야, 슬퍼하지 마. 내가 꼭 형님과 정석이를 위해서 복수할 테니까.”윤창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윤구주를 향해 걸어갔다.윤창현이 윤구주와 1미터 정도 떨어졌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쿵!엄청난 충격파가 윤창현에게 덮쳐들었다.윤창현은 윤구주가 갑자기 기습할 줄은 몰랐는지 미처 막지 못하고 멀리 날아갔다. 곧이어 그는 화가 난 눈빛으로 윤구주를 노려보았다.“구주야, 왜 날 공격하는 거야?”이때 옆에 있던 공수이와 함지우는 당황했다.그들은 윤구주가 갑자기 윤창현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윤구주는 싸늘한 얼굴로 어둠 속에 서서 날 선 눈빛으로 눈앞의 윤창현을 바라보았다.“감히 우리 둘째 삼촌을 사칭해?”‘뭐라고? 사칭했다고?’그 말을 듣자 맞은편에 있던 윤창현은 살짝 당황했다.공수이와 함지우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창현을 바라보았다.윤창현은 정체를 들키자 곧바로 킥킥대며 웃었다.곧이어 중후하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면서 여자의 목소리로 변했다.윤창현이 오른손으로 얼굴을 만지자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윤구주 등 사람들의 앞에 나타났다.그녀는 바로 옥면 여우 미희였다.소문에 따르면 옥면 여우는 천면 여우라고 불린다고 한다.그녀의 역용술은 아주 뛰어나서 보통 사람들은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그리고 지금까지 옥면 여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그녀의 모든 얼굴이 가짜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젠장, 감히 사칭을 해요?”공수이는 화를 냈다.“감히 구주 형을 속이려고 해? 죽으려고!”함지우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옥면 여우를 죽이려고 하자 윤구주가 그를 막았다.“말해. 왜 우리 둘째 삼촌을 사칭한 거지? 솔직히 얘기하지 않는다면 넌 오늘 죽
미희의 정체를 간파한 뒤 윤구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말해. 누가 널 보낸 거야? 감히 우리 삼촌을 사칭해?”미희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그건 얘기해줄 수 없어요.”“얘기할 수 없다고요? 그러면 죽어요!”공수이가 가장 먼저 손을 썼다.그는 주먹을 내뻗으면서 눈 깜짝할 사이 미희에게로 날아갔다.오래전부터 유명했던 옥면 여우는 당연히 실력이 약하지 않았다.공수이가 주먹을 휘두르자 그녀는 몸을 비틀어 피하면서 빠르게 반격했다.손바닥과 주먹이 부딪치는 순간 미희는 저 멀리 날아갔다.“휴, 전 제가 구주왕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똑똑할 줄은 몰랐어요. 재미가 없네요. 전 이만 가볼게요.”미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떠나려고요? 꿈 깨요!”공수이가 다시 한번 고함을 지르면서 미희를 따라가려는데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됐어, 수이야. 가게 놔둬.”‘응?’“형님, 왜 저 여자를 그냥 보내주는 거예요?”공수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들의 실력이라면 미희를 잡아두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공수이뿐만 아니라 함지우와 윤구주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윤구주가 말했다.“잡아봤자 별 쓸모가 없을 거야.”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갑자기 어둠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같이 윤씨 일가 저택에 갔다 오자.”갑자기 윤씨 일가 저택으로 가자는 말에 공수이와 함지우는 흠칫했다.“형님, 왜 갑자기 본가로 가려는 거예요?”공수이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내 예상이 맞다면 윤씨 일가는 습격을 당했을 거야.”윤구주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오늘 윤구주는 날이 저물 때부터 계속 불안했고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옥면 여우가 윤창현을 사칭하여 이곳에 오자 윤구주는 그제야 윤씨 일가가 습격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의 본가를 습격했다는 말이에요? 모조리 죽여야겠어요!”그렇게 세 사람은 곧바로 윤씨 일가로 향했다.윤씨 일가는 천하제일 가문이라고
“여긴 왜 왔어?”윤구주가 육도진의 멱살을 잡은 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주위의 금위군들은 깜짝 놀랐다.육도진도 질식할 것 같아 서둘러 입을 열었다.“저하, 진정하세요. 이 늙은이는 조금 전 윤씨 일가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육도진의 말을 듣고서야 윤구주는 멱살을 놓아주었다.“할머니!”그는 윤씨 일가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윤씨 일가 중에서 윤구주는 자신 때문에 눈까지 멀었던 할머니를 가장 따랐으나 그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할머니의 안위가 걱정되어 뒤뜰로 달려가 보니 한산하기 그지없었다.하미연이 살던 오두막집의 문은 열려 있었다.“할머니!”윤구주가 서글프게 외쳤지만,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보니 테이블과 의자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을 뿐 하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윤구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할머니…”그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공수이와 함지우, 그리고 육도진도 달려왔다.윤구주의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공수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빌어먹을! 대체 어느 놈이 형님의 집을 공격했단 말인가? 영감, 내 손에 죽고 싶지 않다면 어서 바른대로 말해!”공수이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육도진을 쏘아보자, 육도진은 어이가 없었다.“나도 조금 전에 왔어. 너희들이 나를 죽인다 해도 난 몰라.”사실 육도진도 조금 전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지만 살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을 뿐 윤구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이때 금위군 한 명이 달려왔다.“육 우상님, 육 우상님!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찾았어요.”이 말을 들은 육도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물었다.“어디 있어?”“앞뜰에요.”금위군의 말을 육도진은 황급히 윤구주에게 전했다.“저하,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았대요. 가보지 않겠어요?”“그러자!”윤구주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이들은 앞뜰로 향했다.이들이 앞뜰에 도착
노인의 입에서 문씨 세가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 윤구주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윤구주의 옆에 있던 공수이, 육도진의 안색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윤구주가 계속해서 물었다.“내 할머니는 대체 어디 있냐 말이야? 그리고 아버지는?”“주인님은… 고문을 당한 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문씨 세가 사람들에게 잡혀갔어요.”노인이 말했다.“뭐야? 고문까지 당했다고?”윤구주의 얼굴빛은 더욱 어두워졌다.“네.”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이 노인은 아까 일어났던 일을 윤구주에게 말해 주었다.사실 이 전투는 윤씨 일가의 패배가 아니었다.문씨 세가에서 몰래 자객을 보내 몰래 하미연을 납치한 탓에 윤씨 일가가 와르르 무너진 것이었다.문창정이 하미연을 인질로 내세우자, 윤신우, 윤창현, 윤정석, 그리고 윤씨 일가의 모든 사람은 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윤하율을 포함한 윤씨 일가의 모든 사람이 문창정에게 잡히고 말았다.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과도한 분노로 울화통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옆에 있던 육도진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젠장! 문씨 세가 놈들이 어르신을 이용해 저하를 잡으려 하다니! 비열한 놈들!”“저하, 명을 내리시면 제가 이 도시의 금위군들을 모두 동원하여 가주님과 다른 사람들의 행방을 찾도록 하겠습니다.”윤구주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구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몰랐지만, 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그렇게 한참 정적이 흐르더니 윤구주가 갑자기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저하?”걸어가는 윤구주를 바라보던 육도진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공수이와 함지우도 윤구주가 어디로 가려는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뜰에서 나온 후, 윤구주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우상,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윤구주의 말에 육도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명만 내리시면 이 늙은이가 최선을 다해 받들겠습니다.”“서울 전체를 봉쇄해!”윤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