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진동왕은 고개를 저으며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저는 이번에 왕의 명을 받고 귀신족 잔당을 없애러 왔지만 임씨 일가 제1대 국주님이 곤륜 구역과 한 약속에 의하면 곤륜 구역의 귀신족 잔당은 그쪽에서 처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저희 화진에서 직접 처리할 것이니 문을 좀...”슉!진동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투영 속 방은 즉시 살기가 가득 찼다.“네 이놈! 왕의 명령이 무슨 소용이야. 신 앞에서는 무릎 꿇고 말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왕의 명령을 논하는 거야. 이만 돌아가.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는 거야.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수옥인은 여전히 진동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사람을 이 정도로 무시한다고?’진동왕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십만 대군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신이든 악마이든 일단 한 판 붙어보고 싶었다.진동왕은 대군을 안정시킨 후 다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난 안 되겠어. 수옥인이 신의 경지의 규칙으로 나를 압박하고 있어. 더 이상 저 노인네를 건드리지 못하겠어.”진동왕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네. 천술은 제가 이미 간파했어요.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강제로 부술 수밖에 없어요.”투영 속 책을 읽고 있던 수옥인은 피식 웃고 말았다.“어디서 이런 허세를 부려. 너같이 평범한 인간이 천술을 간파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아. 책은 나중에 보고, 과연 누가 이렇게 오만방자한지 확인해 봐야겠어.”수옥인은 뒷짐을 쥐고 서 있는 윤구주를 보고 침묵했다.침묵 속에 어색함이 감돌았고, 수옥인이 진동왕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했다.‘저 사람이 왔으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수옥인은 마음속으로 욕을 하며 구름을 타고 방을 나섰다.비석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구름은 태양은 물론 십만 대군의 시선마저 가렸다.300미터 가까이 되는 신이 구름 위에 나타나 신의 위엄을 드러냈다.윤구주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법인을 들어 문을 강제로 부수려고 했다.이 모습에 수옥
‘조상님?’이 세글자를 한 초라도 늦게 말했다면 수옥인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진동왕은 그만 웃고 말았다.“보아하니 윤구주가 곤륜 구역에서 수련할 때 여기에 있는 신들을 두려워한 게 맞네.”윤구주가 한 손으로 신검을 다루며 여덟 명의 신을 베었을 때 다른 신들은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수옥인도 그중 한 명이었다.그래서 윤구주가 검을 빼 들려고 하자 급히 무릎을 꿇은 것이다.윤구주가 곤륜 구역에서의 위엄은 신을 죽여서 얻은 것이다.“이제야 말이 되네.”윤구주는 수옥인이 고개를 숙이자 비로소 검을 거두었다.“구주왕님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수옥인은 무릎을 꿇고 잘 보이려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여기 와서 뭘 하겠어. 당연히 귀신족 잔당을 없애려고 왔겠지.”윤구주가 냉랭하게 말했다.수옥인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구주왕님, 신의 경지에는 규칙이 있는 거예요. 비록 구주왕님께서 곤륜 구역에서 수련하셨지만 아직 곤륜 구역에서 신위를 물려주지 않았으니 본질적으로 구주왕님은 인간과 마찬가지예요. 인간은 신의 경지에 관여할 수 없어요.”분노가 치밀어오른 윤구주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하지만 그래도 애써 화를 참으며 말했다.“신의 경지의 규칙? 그래. 규칙을 한번 따져보자고. 곤륜 구역과 임씨 일가가 약속했듯이 화진 귀신족은 우리가 처리하고 곤륜 구역의 귀신족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제 화진 귀신족들은 모두 해결되었는데 곤륜 구역에서는 왜 잔당을 제거하지 않는 거지?”수옥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구주왕님, 신의 경지에서 제거하지 않으려는 건 아니에요.”“그러면 말해! 언제 제거할 건지.”윤구주가 또다시 물었다.“그게... 언제 제거할 건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수옥인이 대답하자 윤구주는 박장대소를 지었다.‘이렇게 말할 줄 알았어.’수옥인의 직책은 절대 작지만은 않았다.그의 말은
두둥!수옥인은 이제야 윤구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었다.‘인간 세상은 물론 신의 경지까지 관여하려고 하다니! 정말 겁도 없이!’바로 이때, 천옥 상공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지고, 검은 구름 뒤에 수많은 신의 그림자가 반짝이고 있었다.지면도 함께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마치 어마어마한 악마가 땅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큰일 났어요! 구주왕님! 신께서 노하셨어요!”수옥인은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신께서 노하셨다고? 그게 뭐가 무섭다고. 너의 스승을 봐서라도 오늘 너를 괴롭히지 않을게. 오늘 내가 문을 부순 것은 너와 상관없는 일이야. 너는 이미 최선을 다했어.”윤구주는 눈에서 금빛 광선을 발사했다.봉왕팔기! 이화금안 발동!윤구주는 눈의 힘으로 수옥인을 휘감아 그를 다시 비석 안에 봉인시키고는 뒤돌아 십만 대군을 바라보았다.“지금 신이 나 윤구주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데 난 태어난 그날부터 신과 같은 존재를 믿지 않았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꼭 겨뤄보고 싶어. 나와 함께 하는 자는 신과 적이 되는 거야. 나와 함께 신을 죽일 용기가 있는가?”‘신을 죽인다고?’십만 대군은 모두 열광의 표정을 지었다.특히 장군들은 윤구주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한번도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윤구주가 명령을 내리기만 한다면 눈앞에 지옥이 있다고 해도 주저 없이 뛰어들 사람들이었다.“죽여!”십만 대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때 대열에 은은하게 금색 빛이 나타났다.“화진의 새로운 국운이 나타난 거야!”진동왕은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이것이 바로 임씨 일가가 바라던 바였다.윤구주가 새로운 국운을 탄생시켰으니 화진에도 후계자가 생긴 것이다.국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는 하늘의 신마저도 두려워해야 했다.하늘의 검은 구름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국운을 가리기 어려웠다.“역시 윤구주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오늘부터 인간 세상은 자유로워질 거야! 국운이 정점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막을 수도 없어. 문을 부숴버리자고!”진동왕은 법기를 소환하고 윤구주
“윤구주! 여긴 신의 경지라고! 함부로 할 생각하지 마! 여긴 인간이 주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열몇 명의 신은 철저히 분노했다.“조용히 해! 너희들이 무슨 신이라고 그래.”윤구주는 소리를 외치며 봉왕팔기 금뇌를 꺼냈다.뇌정이 폭발하면서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천궁을 차지하고 있던 신존도 갈라지고 말았다.“소위 신명은 스스로 책봉한 거잖아. 봉신 전쟁 전에는 신명도 없었고. 어떤 사람은 단지 천지를 연마할 수 있는 수련자일 뿐! 너희 같은 수련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천술을 남용하고, 대지를 짓밟고, 세계의 기존 영기를 파괴하여 재난을 초래한 거잖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겠으니 봉신방을 만들어 경계를 나누고 곤륜 구역으로 물러난 거잖아. 봉인된 신들은 그저 육신을 잃은 극전 신급일 분이야. 너희들이 세운 규칙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더라고. 만 년 동안 규칙으로 인간을 억압하면서 너희들은 그 규칙을 지킨 적이 한 번도 없잖아!”윤구주의 놀라운 발언은 천지를 진동시켰다.그 열몇 명의 신령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했다.신명의 출처를 알게 된 십만 대군들은 원래부터 신을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가짜 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욱 살기가 강해졌다.하늘 공중에 있던 국운의 금기는 더욱 강해졌다.“윤구주!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열몇 명의 신이 소리를 질렀다.“뭘 하려는 거냐고? 내가 몇번을 말해. 귀신족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귀신족은 인간 세계는 물론 곤륜 지역도 위협하고 있다고.”“이런 제기랄! 곤륜 지역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 우린 약속을 어길 생각이 없었어!”신이 분노하며 말했다.“필요 없어! 너희가 귀신족과 거래하고 있다는 거 모를 줄 알았어? 그동안 귀신족 손에서 얻은 이익이 적다고 생각해?”윤구주가 콧방귀를 뀌었다.“윤구주! 너무하는 거 아니야?”“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왜 벌써 발끈하고 그래. 우리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런데 너희들은 왜 자꾸 인간 세계를 간섭하려는
이 강력한 일격에 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진동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것이 바로 윤구주이지! 앞으로 가로막는 자가 신이라고 해도 죽여버리는 윤구주!’“문씨 가문도 대단해! 이런 무적의 존재를 죽일 뻔했다니.”진동왕은 혼자 중얼거렸다.이러고 보니 문씨 가문의 실력도 정말 대단했다.문이 부서지고, 미지의 지역으로 통하는 통로가 눈앞에 나타났다.차갑고 음산한 바람이 통로에서 불어왔다.이 어두운 통로는 인간 세계와 지옥을 연결하는 곳인 것 같았다.차가운 기운이 사람을 감쌌고, 희미하게 음혼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진동왕은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전사들은 이 통로가 지옥으로 향하는 문인 것 같았다.“하하! 다 함께 모든 신마를 소멸해 버리자고!”윤구주가 먼저 들어가고, 십만 대군도 한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그를 따라 천천히 들어갔다.십만 대군이 귀문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 어둠이 그들을 삼켜버리는 것만 같았다.비석에 봉인된 수옥인은 십만 대군이 통로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심정이 복잡미묘하기만 했다.“조상님이 또 군륜 구역을 발칵 뒤집어 놓겠네. 또 얼마나 많은 신들이 이대로 무너질까? 이번에는 천지가 바뀌고 인간 세상에 인황이 나올 것 같네!”수옥인은 만 년 전에 봉인된 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봉신 전쟁 전에는 인간 세상과 신의 경지라는 말이 없었고 황제가 바로 당대 최강자였다.고대 신이라 불리던 강력한 수련자들은 인황을 만나면 무릎부터 꿇어야 했다.봉신 전쟁 이후에 인황이 몰락하면서 이후 황제들이 모두 천자로 강등되어 신의 경지 아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이 규칙이 정해진지 만년이나 넘었는데 결국 윤구주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두 세계의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통로에서 갑자기 수많은 강한 빛이 나타났다.원래 음산하고 무섭던 통로는 갑자기 대낮처럼 밝혀졌다.음침하고 흉측한 귀신같았던 그림자들은 그저 이상한 바위들뿐이었다.십만 대군은 현대 첨단 기술
진동왕은 대군을 이끌고 귀신족 잔당을 소멸시키러 길을 나섰다.윤구주는 대군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 후 혼자서 다른 길로 들어갔다.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 나아가던 윤구주는 곧 피비린내를 맡았다.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윤구주는 재빨리 작은 길을 지나 넓은 홀에 들어섰는데 이곳 피비린내는 너무 심했다.신념을 방출하자 갑옷을 입은 시체 삼십여 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천옥을 지키는 수호자들이네. 누가 이런 거지? 이런 제기랄! 수옥인! 나와!”윤구주가 손바닥으로 비석을 치자 봉인이 풀리면서 수옥인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수옥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조상님, 들어오지 말라고 몇번을 말씀드렸는데 조상님께서 듣지 않았잖아요.”“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아까는 곤륜 구역 사람이 지켜보고 있어서 솔직히 말 못 한거 알아. 지금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천옥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볼래?”윤구주가 진지하게 물었다.문밖에서 윤구주와 수옥인이 대치했던 것은 어느정도 연기적인 부분이 있었다.수옥인이 몇번이고 암시를 보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변고가 발생한 건 맞지만 조상님께서 먼저 뭘 하려는지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임씨 일가가 최근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던데 여러 세력이 신규를 우회하여 천옥에 들어오려고 하더라고요.”수옥인이 되려 질문했다.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누군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 만큼 수옥인은 분명히 알아내야 했다.“규칙을 제일 안 지키는 사람이 바로 곤륜 구역의 사람들이야. 그리고 너. 아는 것이 많을수록 빨리 죽는다는 거 몰라?”윤구주가 냉랭하게 말하자 수옥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조상님, 아니다. 그냥 이름을 부를게. 윤구주, 지금 곤륜 구역도 그리 평화롭지 않아. 여러 세력이 암투를 벌이고 있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천하태평인 내 스승님조차도 이제는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윤구주는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검도겠지? 견민기 그
“견민기는 성격이 거만하고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야.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내가 할 말이 있어. 얼마 전에 네가 사해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임씨 일가 어르신이 신규를 위반하고 곤륜 구역을 몰래 나가서 인간 세계에서 한 사람을 천옥까지 데려왔어. 길을 안내한 사람은 검도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건드릴 수 없었던 나는 위협을 당하기도 했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천옥 이곳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몇 명이 더 늘어나거나 몇 명이 줄어들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곳이야. 그래서 나도 그냥 입 다물고 있었어.”수옥인의 씁쓸한 표정에 윤구주가 말했다.“신이 되는 게 좋아? 자유가 하나도 없는데 개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잖아. 계속해서 말해봐. 그 후에 또 누가 왔어?”수옥인은 입을 삐죽거리며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맞아! 하나같이 나만 괴롭혀! 종문 동맹에서 아무나 와도 나를 협박하고 있잖아. 흑흑...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그 사건이 일어난 후로 넌 곤륜 구역과 계속 연락이 없었잖아. 아니다. 네가 곤륜 구역을 떠난 이후로 여기 수련자들과 연락이 없었다고 말해야 하나?”이번에는 윤구주가 화를 참지 못했다.“다 내가 문아름을 너무 믿어서 그래. 걔가 나 대신 곤륜 구역과 연락하고 있었다고.”그때 문아름더러 곤륜 구역과 접촉하게 한 것도 윤구주가 그 위선적인 수련자들을 싫어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말인데 견민기는 그냥 바보야. 문씨 가문에서 계속 임씨 일가를 지켜보고 있었어. 계획대로라면 나를 죽이고 임씨 가문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을 거야. 곤륜 구역에 문씨 가문 스파이가 많은데 견민기가 문씨 가문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수옥인은 머리를 긁적거렸다.“그래서 붙은 거야? 문씨 가문이 천옥을 쳐들어왔어. 너도 보았듯이 천옥 수호자들이 전부 문씨 가문이 데려온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어. 다행히 내가 천옥 진법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진법을 파괴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더라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속이기 위
윤구주는 혼자서 감옥에 들어갔다.천옥은 안과 밖, 두 곳으로 나뉘었다.밖에는 일반 유배자들이 수감되어 있었으며 천옥 산맥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안에는 곤륜 중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었고, 이들은 모두 신귀를 범한 수련자들이었다.수련자의 유죄 여부는 곤륜 구역에서 결정했기에 안에 수감되어 있다고 해서 악질 범죄자인 것은 아니었다.윤구주가 이번에 천옥에 온 것은 이곳 중범죄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윤구주가 이 산에 세워진 천옥에 발을 들였을 때, 이곳에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없었다.천옥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산체의 공간은 넓고 높이는 천 미터가 넘었다.여러 개의 감옥은 산체의 절벽 측면에 박혀있었고, 가장 위쪽에는 천장이 있었으며 천옥에서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이었다.수련자들을 가둘 수 있는 감옥도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모두 제기 수련자들이 만든 법기였다.현재는 감옥들이 이미 파손되었고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은 피투성이로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윤구주는 현장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중범죄자들을 가두는 감옥이 무효가 되는 순간 어떤 더 강한 자에게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이 중범죄자들은 함께 반항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여기 수감된 자들은 최소한 신급 수련자들일 텐데 더 높은 위치에 수감된 수련자일수록 실력이 더 강했을 거야.”윤구주는 고개 들어 가장 꼭대기에 있는 열몇 개의 감옥을 올려다보았다.감옥 위에 새겨진 문양은 분명 아래에 있는 감옥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이로써 여기에 수감된 수련자들이 이미 구오 지존에 도달했음을 알수 있었다.열몇 명의 구오 지존 실력자들이 모이면 극전 실력자와 맞서도 실력이 비등비등했다.그런데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니...윤구주는 가장 위에 있는 천창 근처의 산체에 균열이 일어난 것을 발견했다. 분명 구오 지존 실력자들이 이곳에서 탈출하려고 했던 흔적일 것이다.“제일 꼭대기에 천옥 진법이 여전히 작동 중이라 구오 지존 실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