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부대가 동시에 움직이는 동안, 태백산의 기상이 갑자기 변하며 대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 층의 붉은 빛이 번쩍였고 수백 리 밖에서도 이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이 갑작스러운 붉은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태백산 기슭에서 윤구주와 현모가 동시에 붉은빛을 보았다. “왕, 이건 봉인 술법인 것 같아요.” 현모가 의심하며 말했다. “그래, 빙신전의 놈들이 이미 남궁 가문을 발견한 모양이야. 그 술법은 내외계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한 거야. 이 폭설도 그들이 일으킨 것이다.” 윤구주는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이 술법이 수련자가 발동한 것이라면 윤구주는 그것을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술법은 어떤 법기를 통해 천지의 기운을 끌어와 발동된 것이고 그 법기는 매우 잘 숨겨져 있어 윤구주의 신념술로도 탐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술법을 파괴할 수 없었다. 윤구주가 황자 제자의 궤변을 비난하는 순간, 또 다른 술법이 더해져 윤구주의 신념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념술에도 문제가 생겼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면 그 법기의 등급이 낮지 않아.” 윤구주는 진지하게 말했다. “왕, 그럼 남궁 가문의 사람들은...” 현모는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 가문은 단지 무술 세가일 뿐이다. 전통 무술은 곤륜 구역의 수도 세력과 비교할 수 없다.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두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남궁 가문이 전멸할까 봐 걱정되었다. “남궁 가문의 사람들은 정말 안 되겠어. 가주도 겨우 팔부 동천 신급 경지에 진입했고 그 외의 남궁 가문 고수들은 단지 무술 대가일 뿐이야. 단련도 제대로 되지 않아 수련자를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남궁서준은 실력이 많이 늘었어. 위험에 처하면 내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 윤구주가 말했다. “서준 동생이요? 지금 어떤 경지에 올랐는지 궁금하네요.” 현모의 눈이 반짝였다. 남궁서준은 4대 군신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왕, 지금 핵심은 남궁 가문이 우리가 온
폭설은 산을 오르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더 심각한 것은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이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계절을 감안하면 5시나 6시가 되어야 해가 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 시간에 어둠이 내려앉았고 산 중턱의 남궁 가문 일행은 손을 뻗어도 손이 보이지 않았다. 중대 병사들은 탐조등을 켰지만 그래도 시야는 매우 나빴다. 그때,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한기를 느꼈다. 모두가 몸을 떨었다. 일행 중 청포를 입은 사람의 등의 검이 자동으로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 살기가 느껴집니다.” 그 사람은 일행 맨 앞에 있는 남궁인에게 경고한 후, 천천히 청포를 벗고 바람 속으로 던져 버렸다. 청포를 벗자 약간 앳된 얼굴이 드러났다. 겨우 열다섯, 열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비범한 인재, 어린 후작, 남궁 가문의 후계자 남궁서준이었다. 남궁서준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그의 윤구주 형이 준 갑옷이었다. 갑옷은 곤륜 구역에서 만들어졌다. 화공두타를 위해 직접 제작했으며 곤륜 구역의 신철 청석으로 만들어졌다. 갑옷은 법기에 속하며 불 속성을 가지고 있어 물 속성을 억제하는 특성이 있다. 이 갑옷을 남궁서준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보물처럼 간직해 왔다. 이제 이 갑옷을 입은 것은 이번 작전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슉!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왔고 검의가 삼척 청봉에 모였다. 검 안에는 신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남궁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아들이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는 적의 실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궁인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외쳤다. “남궁 가문, 검진을 펼쳐라!” 백 명의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왔고 남궁인도 세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검을 뽑아 검진의 선두에 서서 진을 주관했다. 남궁 가문이 이렇게 긴장하자 따라온 중대 병사들도 긴장했다. “1소대, 2소대, 3소대, 모두 전투 위치로 이동해! 잘 지켜봐!
‘이것이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무림 고수들보다도 더 강력해!’ 이 한 방의 검술로 중대 병사들이 감탄을 자아냈지만 남궁인은 기쁘지 않았다. 그는 검기가 정확하게 목표물에 명중했지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검기가 닿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남궁서준의 이 한 방이 엄청 강력했다. 화진 무술계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조차도 막을 수 없었다. 남궁서준의 검술은 구주왕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구주왕의 봉왕팔기는 완전히 깨우치지 않고 그중 하나만 배워도 화진에서 무적이 될 수 있다. 만약 윤구주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 한 기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곤륜 구역에서도 이름을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이 한 방조차도 상대를 뚫지 못했다. “제 검기가 이 살기를 뚫지 못했어요. 이 기운은 어딘가 익숙한데. 기를 형체로 만드는 것은 인간 세상의 기술이 아니에요.” 남궁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으르렁! 남궁서준이 이 자가 누구인지 떠올리려고 할 때 앞에서 무시무시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백 장 크기의 백호가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절세의 흉기가 밀려왔고 남궁 가문의 검진은 이 흉악한 기운에 의해 바로 무너졌다. 중대 병사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흉물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장면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남궁인의 눈은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가 놀란 것은 흉악한 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곤륜 구역 수신전의 공법이었다. “이건 단절된 성수인이에요. 구주 형님이 성수결을 얻은 후 이를 자신의 통솔하에 있는 4대 군신에게 전수했죠. 현모는 방어에 능하고 주작은 암살에 능하며 백호는 살육을 주관하죠. 4대 군신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자예요.” 남궁서준은 말하며 검날을 가볍게 문지르고 있었다. “헉! 그럼 이 자가 백호다. 하지만 백호는 구주왕의 사람 아닌가? 우리 화진의 군신인데 어떻게 우리를
곧이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절단된 사지가 날아갔다. 피가 눈밭에 떨어지며 눈부신 광경을 연출했다. 한 명 또 한 명의 남궁 가문 고수들이 쓰러졌다. 중대 병사들도 칼날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무술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은 출발 전 방탄복 안에 강판을 추가로 넣었지만 칼날 앞에서는 종이처럼 무너졌다. 칼날이 내리치며 인체가 절단되었고 심지어 손에 든 무기도 함께 잘려 나갔다. 병사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죽는 것은 너무나 억울했다. 많은 병사가 수류탄을 들고 백호에게 자폭하려고 달려갔지만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칼날에 의해 잘려 나갔다. “천강호체!” 남궁서준은 긴급히 방어 검술을 발동했다. 기로 몸을 보호하며 백 미터의 결계를 형성해 두 부대를 간신히 보호했다. 일 분도 되지 않아 인원이 절반 이상 죽거나 다쳤다. 중상을 입은 자들은 제외하고도 움직일 수 있는 자는 고작 50여 명뿐이었다. 주변에서 금속 충돌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고 칼날이 검기에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남궁서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방어뿐이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반격할 여지가 있었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남궁인은 아들이 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서준아! 올 때 내가 너에게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 오늘은 남궁 가문을 모두 버려도 화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해! 우리를 신경 쓰지 마. 만약 빙신전의 마인을 처단할 수 있다면 아비는 구천 아래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어!” “아버지!” 남궁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남궁인은 그를 가장 아끼는 아버지였다. 남궁인 외에 다른 남궁 가문 사람들도 모두 남궁서준의 가족이었다. “남궁서준!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이 관문을 넘어야 해. 너 화진 제일의 검이 되고 싶지 않았니?” 남궁인은 남궁서준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
“후퇴! 모두 후퇴해!” 견배영은 그들이 백호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할망정 자신들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부대는 전속력으로 후퇴했다. 견배영은 공중 사격을 명령했다. 목적은 소음을 내어 구주왕에게 그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탕 탕 탕! 30여 대의 전투기가 화력을 퍼부었다. 산 아래의 윤구주와 현모는 소리를 듣고 즉시 이곳으로 날아왔다. 화력은 폭설을 일으켜 눈사태가 발생했다. 굴러내려 온 눈더미는 아래의 일행을 휩쓸었고 헬리콥터도 급히 상승했다. 몇 분 후, 현모와 윤구주가 근처에 도착했다. 공중에 떠 있는 현모와 윤구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눈사태로 인해 남궁 일행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전법의 영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젠장, 신념술이 완전히 먹히지 않아.” 윤구주는 욕을 내뱉었다. 사람을 찾을 수 없었지만 백호의 살기는 여전했다. “왕, 이건 백호의 성수인이에요! 설마 백호도 문씨 가문에게 혼을 빼앗긴 건가요?” 현모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문씨 가문은 죽어 마땅했다. “아니, 자세히 봐. 백호의 성수인 안에 빙신전의 부적이 침투해 있어. 아마도 빙신전이 백호의 천술을 통제한 것 같아.” 윤구주는 눈으로 탐색하며 말했다. 백호의 성수인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신념술이 영향을 받아 배후의 인물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태백산이 이렇게 큰데 윤구주가 산 전체를 옮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윤구주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전법은 천지의 기운과 연결되어 있어. 내가 여기의 지맥을 잠시 봉인하면 돼. 아니, 지맥은 땅 아래에 있으니 하늘의 기운을 봉인하자.” 윤구주는 봉왕팔기 중 하나인 봉천파진을 발동하려 했다. 바로 그때, 깊은 산속에서 한 통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 소식을 들은 윤구주의 얼굴이 변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녀석이 스스로 자신을 노출해 나를 유인하다니. 날 전혀 신경 쓰지 않는구나.” 그리고 천지
현모와 백호의 성수인이 대치 중이었다. 현모는 전력을 다해도 화형의 백호와 비등한 수준이라는 것에 놀랐다. 이 화형의 위력은 구주왕이 사고를 당한 직후, 백호가 빙신전에 의해 통제당할 때 형성된 것이었다. 이는 그 당시 백호의 경지가 거의 현모와 동등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윤구주는 전음이 나온 위치를 찾아 태백산 동쪽의 조양국 국경 쪽으로 향했다. 황량한 화진 쪽과 달리 이쪽 산에는 온갖 신전이 가득 차 있었으며 향불이 피워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많은 조양국 사람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지만 최근 긴장된 국경 상황으로 인해 산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말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구나? 괴물 같은 짓은 그만두고 당장 나와!” 윤구주가 분노를 터뜨리려는 순간, 남궁서준이 산을 뚫고 파도 같은 검기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산 중턱에 세워진 호화로운 신전들이 검기에 의해 쓸려 나갔다. 이 소리는 눈사태 때보다도 더 컸다. 신전은 폐허가 되었고 많은 궁전도 평지가 되었다. “오? 경지가 많이 올랐구나. 네가 몰래 구오 지존 후기 정도의 경지에 진입했군.” 윤구주가 칭찬하는 눈빛을 보내며 인정했다. “구주 형님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빙신전 마인! 당장 나와!” 남궁서준이 신검을 들고 어검술을 발동했다. 검의가 하늘을 찔러 천상의 기운을 끌어내렸다. 이후 검의가 폭발하며 지룡으로 변해 산속으로 파고들었다. 지하에서 몇 차례 검소리가 들려왔고 윤구주도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지하 수백 미터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이 산속 동굴이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신궁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빙신전 황자의 제자가 지하에 자신을 위한 궁전을 지은 것이었다. 이때 남궁서준은 이미 빙신전의 신급 경지의 고수 10여 명을 처단했다. 그리고 이 소동으로 진정한 강자가 등장했다. “감히! 이곳은 우리 빙신전의 금지 구역이다. 감히 인간 자식이 여기서 날뛰다니!” 한 신영이 신궁에서 날아오르며 두 손으로 인장을 맺었다. 현빙이
윤구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흔 개의 쇠사슬에 묶인 누군가의 모습이 불빛에 비쳐졌다.쇠사슬에 묶여 있는 이는 몸집이 우람지고 눈빛이 날카로운 것이 마치 맹호 같아 보였다. 온몸이 발가벗겨진 그의 몸에는 무시무시한 상처 자국이 가득했다. 심지어 얼굴에도 흉터가 가득했다. 한 쌍의 사나운 눈은 어딘가를 노려보며 끊임없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그는 바로 윤구주 휘하의 군신 백호였다.네 명의 군신 중 성격이 가장 거칠고 살기가 강렬한 자.백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한 남자가 공중에 뜬 채 앉아 있었다.“흠, 내 예상이 맞았군. 네가 바로 백호의 몸속에 있는 성수인을 계승하려던 자로구나. 이 전법은 아주 대단해. 네가 이런 실력은 없을 테니 네 그 황자 스승이 이 법전을 짜준 거겠지?”윤구주의 말에 그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윤구주가 이렇게 무시당하기는 처음이었다.“저하, 절 풀어주세요. 제가 직접 저놈을 처리하겠습니다.”“이 비겁한 놈. 네놈이 날 기습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애송이에게 졌겠니.”백호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백호 성격은 여전히 광폭하네. 그보다 백호가 언제부터 이곳에 갇혀 있었는지 모르겠군. 이렇게 많은 쇠사슬이 백호의 명맥을 잠그고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도 잘 살아 있군. 다른 사람이라면 목숨만 붙어 있어도 대단한 일이야. 이 전법의 고통을 견뎌내기 힘들 것인데.’백호는 오랜 고통 속에서 기운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미친 듯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넌 정말 기력이 넘치는구나. 내가 너라면 이미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을 거야.”윤구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호는 상관없다는 듯이 그저 윤구주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울부짖었다.“너를 풀어주면 뭘 할수 있는데? 네가 저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제일 강했을 때도 저자를 이길 수 없었을 거야.”윤구주가 사실대로 말하자 백호는 윤구주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저하,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어떻게 적을 두둔할 수 있습니까? 전 저하를 구하려다가 여기에 갇힌 겁
남궁서준와 결전을 벌이는 상대는 빙신전의 사람으로 구오 지존의 강자였다.그는 곤륜에서 300년을 수련하며 온갖 유명한 인물을 다 만나보았지만 지금은 한 젊은이 때문에 위기에 몰려 있었다.남궁서준은 날렵하고 치명적인 어검술로 모든 신술을 막아냈다.“목신님, 제발 구해주십시오.”적수를 이기지 못해 이대로 가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았던 호법은 황자의 제자인 목신에게 구원을 요청했다.하지만 목신은 구원 요청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호법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백호를 훈계하는 윤구주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펑!검기가 호법을 절벽으로 몰아가자 산 전체가 뒤흔들렸고 검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불에 타버린 호법의 시체가 보였다.호법을 처리한 후 남궁서준은 목신에게 향했다. 분노가 아직 풀리지 않았고 작은 호법 하나로는 그의 살의를 채우기에 부족했다.“네 이놈. 목숨을 내놔라!”검기가 광풍처럼 몰아치며 목신을 향해 돌진했다.“윤구주, 진심으로 말하지만 너는 나에게 감사해야 해. 만약 저 사람이 문씨 가문의 손에 잡혔다면 문씨 가문은 저런 미친놈을 살려두지 않았을 거야.”목신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뒤에서 몰아치는 검기를 향해 손바닥을 가볍게 내젓자 검기 광풍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자 남궁서준은 공중에 멈춰 꼼짝도 하지 못했다.목신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네 말이 맞아. 아무도 미친놈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지. 문씨 가문의 손에 들어갔다면 백호는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처음부터 이 녀석을 서울에 두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고집이 센 녀석은 어디에 있든 큰 문제를 일으켰을 거야.”윤구주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오직 윤구주만이 백호를 다룰 수 있고 윤구주가 있어야 백호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저하, 인제 그만 하시고 절 풀어주세요. 저놈을 산채로 찢어버리겠어요. 문씨 가문이 미사일로 절 쏜 뒤 전법으로 제 정기를 다 빼앗아갔기 때문에 저놈들에게 잡힌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