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희수도 의심스러웠지만 마음속으로는 행복했다.이런 화목한 분위기는 오랜만이었다.밥을 먹은 후 천희수는 설거지했고 소채은이 윤구주와 함께 있었다.저녁 9시가 되자 윤구주가 용인 빌리지로 돌아가려 했다.원래는 혼자 돌아가려 했는데 소채은이 그를 바래다주겠다고 했다.그래서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문 앞에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민 지휘사님, 저하께서 나오셨어요!”멀리에 숨어 있던 백경재가 윤구주를 발견하자 말했다.소채은이 윤구주의 팔짱을 끼고 소씨 저택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본 민규현이 물었다.“백 선생, 저하께서 저 채은 아가씨를 안 지 얼마나 되었어요?”“민 지휘사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저하께서 진심으로 채은 아가씨를 좋아해요.”“그래요?”민규현은 고개를 들어 멀리에 있는 소채은을 바라보았다.“저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자는 이번 생에 복 받은 거에요. 문씨 가문의 그 독한 여자는 빼고!”민규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백경재는 가만히 서 있었다.싸늘한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돌아가는 길에 소채은은 행복하게 윤구주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구주야, 빨리 날 꼬집어 봐!”소채은이 갑자기 말했다.“꼬집으라고? 왜?”윤구주가 의아한 듯 물었다.“아이고! 묻지 말고 그냥 꼬집어 봐!”소채은이 고집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윤구주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그러자 소채은이 갑자기 말했다.“이 모든 게 꿈이 아니었어! 진짜였네!”윤구주는 할 말을 잃었다.“...”소채은은 이 모든 게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을까 봐 두려워했다.“구주야, 난 너무 행복해! 우리 둘에게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리고 가장 행복한 것은 아빠가 우리 둘을 허락하셨다는 거야! 심지어 너한테도 그렇게 잘 해주고!”소채은이 행복에 넘친 표정으로 윤구주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윤구주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날 믿어줘. 앞으로 다 잘
“영원히, 영원히 너와 함께 있고 싶어!”말을 마친 그녀는 앵두 같은 작은 입술을 윤주구의 잘생긴 얼굴에 갖다 댔다.그 순간 윤구주의 마음이 와르르 녹아내렸다.그는 원래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가장 사랑하는 그녀에게 말하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과거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가 이전에 왕이었든 거지였든 소채은은 변할 게 없었다.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보다가 덥석 끌어안았다.“채은아, 사랑해! 나랑 결혼해 줄래?”이 말을 들은 소채은은 갑자기 몸이 약간 떨렸다.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눈앞에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너... 너... 너와 결혼해달라고?”윤구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나랑 결혼해 줘! ”결혼?사실 결혼에 대해서 그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예전에 조성훈과 같은 정략결혼마저도 그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윤구주가 갑자기 결혼 말을 꺼내니 그녀는 잠시 멍해져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바보처럼 멍하니 윤구주를 쳐다보면서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소채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윤구주가 말했다.“나랑 결혼하는게 싫어?”그러자 소채은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아니! 절대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갑자기 결혼 말이 나와서 그래. 너무 빠른 것 같지 않아?”“빠르다고 생각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게다가 네 아빠는 이미 우리가 사귀는 것을 허락하셨잖아.”윤구주가 이렇게 말하자 소채은은 다시 한번 침묵에 빠졌다.그는 말을 이어갔다.“네가 싫다고 해도, 난 괜찮아.”“아니야!”소채은은 윤구주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구주야, 나에게 생각할 시간 좀 주면 안 돼? 어찌 됐든 나에게 있어서 이건 평생 가는 큰일이야. 딱 하룻밤만 줘. 내일 바로 답장을 줄게!”소채은은 부탁하는 어조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알겠어. 널 기다릴게!”윤구주가 말했다.그녀가 내일 그에게 결혼을 원한다기만 하면 윤구주는 그녀를 세상
소씨 저택으로 돌아온 후 소채은은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는 오늘 밤 윤구주가 갑자기 프러포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여자로서 행복한 일이다. 소채은도 마찬가지이다.하룻밤 고민하겠다고 한 이유도 너무 설레어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였다.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설렘이었다.앉아 있을 수도 없고!서 있을 수도 없고!소채은은 들뜬 마음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1시간 넘게 혼자 끙끙거리다가 소채은은 결국 천희수를 찾으러 갔다. 천희수는 잠옷을 갈아입고 자려고 했지만 소채은의 목소리를 듣자 다시 옷을 걸치고 나왔다.“채은아,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천희수는 문을 열고 문 앞에 있는 소채은을 보며 물었다.“엄마, 정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엄마랑 얘기하고 싶어요.”소채은은 흥분하며 말했다.“무슨 일인데?”천희수는 궁굼해하며 물었다.“제 인생과 관련된 큰일이요!”뭐?“인생? 결혼?”천희수는 멍해졌다.“헤헤. 네. 엄마! 그거 아세요? 오늘 밤 구주가 갑자기 저에게 프러포즈했어요.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결혼?그 단어를 듣자 천희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채은아, 엄마가 널 말리려는 건 아닌데. 너랑 구주가 안지도 얼마 안 되고 게다가... 구주가 기억상실증도 있고 지금 직장도 없잖아? 지금 결혼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천희수가 소채은을 달래며 말했다. 엄마로서 딸의 앞으로 생활을 위해 이런 고민은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소채은은 이렇게 말했다.“엄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구주의 기억상실증은 제가 반드시 병원에 데려가서 잘 치료할 거예요. 그리고 구주가 직장이 있든 없든 가난하든 부자든 저는 상관없어요! 제가 구주를 선택한 건 오직 구주라는 사람 때문이에요. 엄마도 알잖아요!”“알지! 하지만 결혼은 너무 큰 일이야.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을 건데 너 스스로 잘 생각해야 해! 사랑하는 사람이랑 한평생을 산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지
소채은은 소청하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그렇다! 소청하가 어떻게 대답할지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면 소청하는 줄곧 윤구주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요 며칠 사이에만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다.천희수 말대로 만약 소청하가 이 소식을 들으면 갑자기 화를 내지 않을가 소채은은 겁이 났다. 심지어 지금처럼 윤구주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소채은이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소청하가 나타났다.“시집가! 채은아, 꼭 구주한테 시집가야 해!”그 말을 듣자 소채은과 천희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어디서 튀어나온지 모른 소청하를 바라봤다! 소청하는 아직도 술이 채 깨지 않은 상태였지만 두 눈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소채은이 윤구주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술이 깨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보다 정신이 더 말짱할 수는 없었다!게다가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순간 소청하는 흥분하여 하마터면 펄쩍 뛸뻔했다.헐!윤구주와 결혼하는 것은 소씨 가문의 영광 아닌가!비록 소청하는 지금도 윤구주가 도대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하지만 강성 제일 갑부인 주세호, 강성 시장 임기준 그리고 정계 인사들이 모두 윤구주를 보고 굽신거리는 걸 보니 평범한 인물이 아닐 것 같았다!그래서 윤구주가 소채은에게 프러포즈를 했다고 했을 때 소청하는 격동되는 마음에 펄쩍펄쩍 뛰었다.“채은아, 아빠 말 잘 들어. 꼭 구주한테 시집가! 구주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고 아끼는데! 만약 구주한테 시집 안 가면 나는 너와 부녀 관계를 끊을 거야!”응?그 말을 듣자 소채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우리 아빠 맞아?’예전에는 윤구주와 계속 만나면 부녀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하지만... 오늘은? 이게 무슨 일이지?천희수도 소청하의 말을 듣자 어리둥절하며 멍을 때렸다.“여보, 술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여보가 어떻게... 채은이를 구주한테 시집가라고 할 수 있죠?”소청하는 침을 튀기며 격동된 어조로 말했다.“네가 뭘 알아! 내가 똑똑히 말할
소청하의 말을 들은 소채은은 곧 현기증이 날 것처럼 멍해졌다.소청하가 윤구주를 이렇게 인정하고 그와의 결혼도 허락하다니. 예전 같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아빠가 정말 변한 것 같았다.하지만 소채은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빠가 결혼을 허락했으니 그녀는 무엇보다 더 행복했다.“아빠, 엄마! 그러면 두 분께서 모두 저와 구주의 결혼을 허락하신 거 맞죠?”천희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소청하가 먼저 말했다.“물론! 허락하지! 그렇지, 여보?”이에 천희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헤헤.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아빠, 엄마! 내일에 어떻게 구주에게 답해줘야 할 지 이제 알겠어요!”기쁨에 찬 소채은은 이렇게 말한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내일 아침 일찍 이 좋은 소식을 윤구주에게 전하려고 했다.‘지금 바로 알려줄까? 아니야. 내일 아침에 알려주자.’소채은이 떠난 후 천희수는 의심에 찬 표정으로 소청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만지면서 말했다.“여보, 어디 아픈 게 아니에요? 정말 우리 딸을 기억 상실증에 걸린 구주에게 시집보내려고?”“당연하지!”소청하가 흐뭇한 얼굴로 대답했다.“아무래도 결혼 같은 큰일은 잘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천희수가 계속하여 말했다.“생각하기는 개뿔!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이제 우리 소씨 가문은 앞으로 조상 대대로 빛날 일만 남았어!”말을 마친 소청하는 기뻐서 방으로 달려 들어가며 흥얼거렸다.“우리 소씨 가문이 드디어 출세했어! 출세했어! 하하하하!”소청하가 흥분하여 날뛰는 모습을 본 천희수는 심지어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깊은 밤.용일 빌리지 뒷산.산처럼 우뚝 솟은 그림자가 어두운 밤에 조용히 앉아있었다.그의 온몸은 금색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너무 눈 부신 빛 때문에 멀리서 보면 그는 마치 신불처럼 앉아있었다.방금 소씨 저택에서 돌아온 윤구주였다.오늘 밤, 그는 십 국 전쟁 이후 가장 큰 결정을 내렸다.소채은과 결혼을 다
하지만 이때 소채은이 말을 이어갔다.“이제부터 네가 고생이 많아질 것 같아!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부터 넌 소씨 성을 가진 예쁜 아내가 생겼어! 넌 네 아내를 많이 이해해 주고 사랑해 줘야 해! 그리고 넌 네 아내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고!”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멍해졌다.“하하하! 바보 구주! 놀랬지? 놀라서 심장이 멈출 뻔했지? 하하하!”나쁜 계집애는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고 큰 소리로 웃었다.윤구주가 방금 놀란 건 사실이었다.그는 소채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채은아, 너 지금... 나랑 결혼하기로 마음먹은거야?”소채은은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바보! 당연하지! 구주야, 내 말 잘 들어! 이제부터 나 소채은은 너의 아내야! 넌 날 아끼고 사랑해야 해!”그녀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그제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그건 그의 여태까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였다.“걱정하지 마, 채은아! 한평생 널 지켜줄게!”윤구주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러자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용인 빌리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용인 빌리지 정원 안.두 사람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서있었다.민규현과 백경재였다.지난밤, 윤구주와 소채은이 잠을 자지 못했듯 그들 둘도 잠을 설쳤다.그들도 윤구주와 마찬가지로 초조하게 소채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윤구주의 드높은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오자 민규현은 갑자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저하! 드디어 만족스러운 대답을 받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그 채은 아가씨도 축하드립니다! 오늘 이후로, 나 민규현에게도 형수님이 생겼어! 하하하!”옆에 있던 백경재도 기쁜 표정으로 옷자락을 움켜쥐면서 말했다.“저하! 축하드립니다! 채은 아가씨, 축하해요!”오늘은 그들에게 있어서 즐거운 하루였다!소채은이 드디어 윤구주와의 결혼을 승낙했기 때문이다.소채은은 자기가 결혼할 남자가 예전에 천하무적이었고 심지어 화진 최고의 왕이었음을 몰랐다!하지만 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녀와
윤구주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노정연은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몰랐다.그녀는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저으면서 얼른 그 무서운 생각을 접었다.그녀가 어찌 감히 윤구주와 어울릴 수가 있을까?“축하드립니다. 윤 선생님! 천하회 전체를 대표하여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서경 천하회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 윤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드리라고 통지하겠어요.”노정연이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하하! 알겠어! 결혼식에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어쨌든 그는...”하마터면 윤구주의 신분을 말할 뻔한 백경재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서양, 이 일은 네가 책임지고 해. 즉시 서경 쪽에 연락해서 우리 천하회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줘! 그리고 우리 회장님께도 알려드려. 회장님께서는 윤 선생님의 실력을 충분히 알기에 아마 직접 오셔서 축하해드릴 거야.”그러자 서양이 말했다.“네! 제가 바로 가서 이 일을 처리하겠습니다!”용인 빌리지에서 모든 사람이 윤구주의 결혼을 앞두고 기뻐하고 있을 때, 꼬맹이의 모습만이 보이질 않았다.바로 화진의 4대 가문 중에 두씨 가문의 두나희였다!양갈래 머리를 하고 입에 막대사탕을 물고 있는 두나희는 혼자 놀고 있었다.윤구주가 김 노파를 죽인 후에, 이 꼬맹이는 껌처럼 윤구주를 따라다녔다.두나희는 심지어 윤구주에게 시집가겠다고 맹세했다.그녀의 말로는 윤구주는 평생 자신과 결혼할 수밖에 없다 했다.심지어 자기가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즉시 결혼 하자고 했다.방에서 잠시 놀다가 지루함을 느낀 두나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구주 오빠를 찾아가려고 했다.그녀가 방문을 나서자마자 백경재가 기쁨이 가득한 모습으로 천하회의 노정연 등 사람에게 윤구주의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원래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갑자기 결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이 휘둥그레져서 재빨리 다가왔다.“어르신, 아까 누가 결혼한다고 하셨어요?”“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누구겠어! 당연히 우리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른 두나희는 돌아서서 바로 윤구주를 찾으러 달려갔다.그녀는 오늘에 분명히 윤구주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아니면 자신이 화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안 마당에서.윤구주는 민규현과 상의하고 있었다.이때 꼬맹이가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나쁜 오빠! 당장 나와!”민규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윤구주는 두나희의 목소리를 듣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암부 3대 지휘사 중 한 사람인 호존 민규현이 이 말을 듣고 호통쳤다.“누가 감히 우리 저하께 이렇게 건방지게 굴어!”달려 들어온 두나희는 몸집이 커다란 민규현은 본 체도 하지 않고 두 눈을 붉히며 윤구주의 곁으로 왔다.“나쁜 오빠! 물어볼 게 있어! 진짜 결혼해?”두나희는 거의 눈물이 터질 뻔했고 마치 버림받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윤구주는 어이가 없었다.“맞아! 무슨 일 있어?”“으악! 오빠 정말 나빴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오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오빠가 어떻게 결혼할 수 있어?”두나희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너무나도 슬픈 울음소리였다.옆에 있던 민규현도 7, 8살 되는 어린 여자애가 이렇게 우니 어이가 없었다.그는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윤구주도 마찬가지였다.“내가 결혼하는데, 너랑 무슨 상관이야?”이 말을 들은 두나희는 계속해서 울며 말했다.“당연히 상관있지! 내가 오빠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난 오빠에게 시집가기로 했단 말이야! 흑흑흑... 지금 오빠가 딴 여자와 결혼한다니! 난 그럼 이제 어떡해!”“풉!”옆에 서있던 민규현은 그녀가 윤구주에게 시집가겠다고 말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물었다.“어린 계집애야. 지금 몇 살이길래 우리 저하께 시집가려고 해?”두나희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화가 난 눈빛으로 민규현을 노려보며 말했다.“이건 나와 구주 오빠의 일이야! 꺽다리는 끼어들지 마! 내가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 크면 구주 오빠에게 시집갈 수 있잖아!”윤구주는 할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