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이때 차 한 대가 먼 곳에서 달려왔다.돈을 훔치고 도망친 아이는 달리기가 무척 빨라서 달려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차를 보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겁을 먹은 아이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아이가 차에 치일 것 같은 순간, 한 사람이 빠르게 달려와서 목숨 걸고 아이를 안았다.“조심해!”그 사람은 당연하게도 소채은이었다.“채은아!”“손님!”웨딩드레스샵의 직원과 천희수는 소채은이 목숨 걸고 아이를 지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끼익!타이어와 지면이 심하게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모든 이들이 소채은과 아이가 차에 치일 거로 생각했을 때, 그 차는 소채은을 가까스로 비껴가며 어렵게 멈춰 섰다.운전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리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채은아, 괜찮니?”천희수는 차가 멈춰선 걸 보고 겁을 먹어서 울먹거리며 달려가 소채은을 살펴봤다.웨딩드레스샵 직원도 황급히 달려가 소채은을 걱정했다.아이를 품에 꼭 안은 소채은은 아이가 원망스럽지도 않은지 오히려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위로했다.“괜찮아, 이제 괜찮아.”“손님, 너무 착하신 거 아니에요? 왜 이런 아이를 목숨 바쳐 구하신 거예요? 게다가 이 아이는 손님 돈까지 빼앗았잖아요!”웨딩드레스샵 직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그래, 채은아. 왜 이렇게 바보 같니?”천희수마저 참지 못하고 소채은을 나무랐다.소채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 괜찮잖아요? 그리고 얘는 아직 아이일 뿐이잖아요.”말을 마친 뒤 소채은은 덜덜 떨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꼬마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제 괜찮아!”아이는 순박한 눈빛으로 소채은을 바라보았다.“누나, 왜 절 구해준 거예요?”소채은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널 구하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하지만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한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은 없는걸요!”아이는 입을 쭉 내밀었다.소채은은 그 말을 듣더니 꼬질꼬질한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걱정하지 마. 앞으
“조금 전 상황에서 만약 운전자가 제때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차에 치여서 죽었을 거예요. 정말 궁금하네요. 왜 당신의 돈을 빼앗고 도망친 아이를 구하려 했는지.”문아름이 다시금 물었다.소채은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맞아요. 아까 그 아이는 제 돈을 훔쳤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 아이는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게다가 아직 너무 어리잖아요.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많다고요. 제대로 가르치는 어른이 없다면 그 아이는 아마 평생 바른길로 들어서지 못할 거예요. 만약 제가 한 일이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게다가 어린아이잖아요. 제가 아니라 당신이었다고 해도 발 벗고 나서서 아이를 구하려고 했겠죠.”소채은은 말을 마친 뒤 시선을 들어 문아름을 바라보았다.그 말에 문아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였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문씨 세가의 귀한 딸이자 화진의 새로운 왕인 그녀가 구걸하는 아이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 리가 없었다.문아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서 있는 소채은을 바라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가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겠네요.”“네? 뭐라고요?”소채은은 문아름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그리고 문아름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자조하듯 웃더니 소채은을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오늘은 운이 좋아서 목숨 건진 줄 알아요. 앞으로는 절대 오늘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이상한 말만 남긴 뒤 문아름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소채은은 멍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문아름의 말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채은아, 저 여자 누구니? 너랑 무슨 말을 한 거야?”옆에 있던 천희수는 문아름이 떠나자 곧바로 소채은 곁으로 다가갔다.소채은은 고개를 젓더니 멀어지는 문아름의 뒷모습을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문아름은 자리를 뜬 뒤 오른손으로 수인을 맺고 앞을 가리켰다.그리고 그 순간,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민규현과 한창 싸우고 있던 독
검이 지나가자 모든 게 파괴됐다.민규현은 검을 막은 뒤 두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았지만, 독고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빌어먹을, 도망을 쳐? 젠장, 실력 있으면 다시 겨뤄보자고!”민규현은 이미 떠난 독고명 때문에 화가 나서 주먹을 움켜쥐고 욕을 했다.그러나 아쉽게도 독고명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텅 빈 거리를 바라보던 민규현은 문득 소채은을 떠올렸다.“큰일이네. 형수님께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겠지?”다른 건 신경 쓸 새도 없이 민규현은 부리나케 달려갔다.웨딩드레스샵에 도착했을 때 민규현은 문 앞에 서 있는 소채은과 천희수를 보았다.소채은이 무사한 걸 본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형수님, 별일 없으시죠?”민규현이 달려가서 서둘러 물었다.“괜찮은데요. 왜요?”소채은은 자신이 조금 전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몰랐다.소채은이 괜찮다고 하자 민규현이 말했다.“괜찮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젠장, 애들은 어디 갔지?”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조금 전 그가 남겨두었던 네 명의 암부 구성원들은 전부 사라졌다.“형수님, 웨딩드레스는 고르셨어요? 다 고르셨으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요!”민규현은 여기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황급히 말했다.소채은은 할 일이 없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좋아요. 지금 바로 집으로 돌아가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천희수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소채은과 천희수가 무사히 돌아간 걸 본 민규현은 그제야 서둘러 무전기를 꺼내며 자신의 네 부하를 찾기 시작했다.그러다가 그는 앞쪽 골목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들을 발견했다.그들에게 다가간 민규현은 그들이 자기 부하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서둘러 허리를 숙이고 네 명의 상태를 살펴보니 정신을 잃은 것뿐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그래서 민규현은 빠르게 그들을 깨웠다.“지휘사님...”네 명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민규현을 보았다.“쓸모없는 놈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해 봐. 너희들은 왜 다 여기 기절해 있었어?”민규현이 물었다.네 부하는
여자는 다름 아닌 문아름이었다.문아름은 이마 앞의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덤덤히 대꾸했다.“갑자기 내가 직접 손을 쓸 생각이 사라졌거든요.”“네? 왜입니까? 저하!”임진형은 의아했다.오늘 일은 그녀가 직접 소채은을 죽여 윤구주를 괴롭게 만들기 위해 계획한 일이었다.그런데 결과적으로 문아름은 소채은을 죽이지 않고 살려뒀다.“이유는 없어요. 그 여자가 갑자기 흥미롭게 느껴졌을 뿐이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 있죠. 내가 그 여자를 죽인다면, 내가 그 여자를 질투하고 내가 그녀보다 못하다는 것을 뜻하는 거 아니겠어요?”임진형은 당황하더니 서둘러 말했다.“옳은 말씀입니다! 그런 평범한 인간을 어떻게 존귀한 저하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문아름은 피식 웃었다.“난 그 여자를 죽이지 않을 거예요. 대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괴롭게 만들어줄 생각이에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괴로운 일은 누군가를 잃는 게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에요!”악랄하게 웃으며 말하던 문아름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독고명 씨!”목석처럼 옆에 서 있던 독고명은 문아름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네.”“군형 삼마에게 내가 부른다고 전해요.”문아름이 단호히 말했다.“네!”독고명이 대답했다.“난 이번에 소채은이라는 여자가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롭게, 하지만 죽을 수는 없게 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윤구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되겠죠. 난 그와 결혼할 여자가 어떤 꼴이 되는지 그가 지켜보게 할 거예요! 하하하하하!”...용인 빌리지.민규현은 습격 사건이 있었던 뒤 곧바로 용인 빌리지로 돌아와서 윤구주에게 알렸다.거실에 있던 윤구주는 습격 사건을 전해 듣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채은이는 무사하지?”“네, 형수님께서는 무사하십니다!”윤구주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윤구주가 가장 걱정하는 건 다름 아닌 소채은이었다.소채은은 무도를 전혀
“그놈은 검을 아주 잘 다뤘습니다. 모든 공격이 무자비하고 검을 뽑을 때마다 검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놈은 제가 지난 몇 년간 상대했던 놈 중 최강이었습니다!”민규현은 독고명의 검법을 되짚으면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잠시 뒤 그는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설마 독고 일가 사람인가?”“네? 저하, 혹시 당시 패도류라고 불렸던 독고 가문 말씀인가요?”윤구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화진에서 검법으로 대가 9품 이상인 것은 독고 일가뿐이야. 독고 가문의 패도멸정참은 무자비하고 위력이 엄청나다고 해!”민규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럴 리가요. 당시 독고 일가는 부성국과 내통하여 저하에게 전부 참살당했을 텐데요. 그리고 가주였던 독고영준은 저하 앞에서 사죄의 의미로 자결하지 않았습니까? 독고 일가 사람들이 살아있을 리가요!”독고 가문 역시 화진의 오래된 가문 중 하나였다.그러나 그들은 더 뛰어난 검법을 위하여 부성국 사람과 내통하여 화진의 기밀을 누설했고, 윤구주가 결국 그 일을 알게 되었다.윤구주는 홀로 독고 일가에 난입했고 그곳에서 혼자 독고 일가의 열 명을 해치웠다.그리고 마지막에 가주 독고영준은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며 자결했다.그때 윤구주는 겨우 스물이었다.그때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에도 윤구주는 그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당시 독고 일가 사람들이 다 죽은 건 아니야.”윤구주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네?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고요? 하지만 저하께서는... 당시 독고 일가 사람들을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까?”민규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독고 일가가 화진의 기밀을 너무 많이 누설한 탓에 화진의 천자는 독고 일가를 말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윤구주는 천자의 명령을 받고 독고 일가를 멸살하러 간 것이었다.그런데 그런 윤구주가 독고 일가 사람 중 생존자가 있다고 하다니.“난 독고 일가를 멸살하라는 천자의 명령을 받았었지.
민규현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 말에 윤구주의 걱정이 점점 더 커졌다.윤구주는 적이 두렵지 않았다.당시 10국을 상대하면서도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어떤가?그가 두려워하는 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입는 것이었다.예를 들면 소채은 말이다.소채은은 무도를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그녀에게 해를 가하는 건 아주 쉬웠다.그러나 문제는, 상대방이 손을 쓰려고 해놓고는 결국 소채은을 해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민규현, 지금 당장 서울 암부에 연락해서 그 여자가 아직도 서울에 있는지 알아봐 !”윤구주가 갑자기 날 선 말투로 말했다.“혹시 문아름 그 악랄한 여자 말입니까?”민규현이 고개를 들었다.“맞아!”민규현은 그 말을 듣더니 움찔했다.“저하 말씀은 형수님을 해치려고 한 사람이 그 여자란 말입니까?”“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 여자 성격에 내가 살아있거나, 내가 결혼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직접 소채은을 해치려고 할 거야.”윤구주의 서늘한 눈빛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그 말을 들은 민규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정말 악독한 여자네요! 당시 저하를 독으로 해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형수님까지 해치려고 하다뇨. 정말 괘씸하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하. 지금 당장 둘째와 셋째에게 연락해 당장 사람을 파견해 상황을 알아보라고 하겠습니다!”민규현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떠났다.민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윤구주의 시선이 점점 더 싸늘해졌다.폭풍전야였다.윤구주는 이미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예감은 아마 곧 화진 전체를 뒤흔들 것이다.게다가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누군가 알게 됐을 것이다....습격이 발생한 뒤로 윤구주는 곧바로 소채은을 보러 갔다.이때까지만 해도 소채은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방 안에서 소채은은 자기가 고른 웨딩드레스들을 입어서 윤구주에게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었다.“구주야, 이게 예뻐, 아니면 저게 예뻐? 우리 결혼
그 말에 윤구주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윤구주는 그녀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채은아, 그 여자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어? 혹은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어? 얼른 얘기해줘!”윤구주가 다급히 물었다.“나한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어. 그냥 나한테 이상한 말을 하던데.”소채은이 기억을 떠올렸다.“무슨 말?”소채은은 잠깐 생각한 뒤 말했다.“처음에는 나한테 왜 그 아이를 구했냐고 물어보더니 내가 이번에 살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앞으로 항상 오늘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안색이 어두워졌다.보이지 않는 살기가 그의 몸에서 서서히 퍼져나갔다.“구주야, 왜 그래? 안색이 왜 이렇게 나빠?”소채은은 윤구주의 안색이 달라진 걸 보고 서둘러 물었다.“아무것도 아냐. 채은아, 요즘엔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윤구주가 소채은의 손을 잡고 말했다.“네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우리 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소채은은 윤구주가 흑심이라도 품었다고 생각해 서둘러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채은아, 오해야. 같이 지내자는 건 네 안전을 위해서야.”윤구주가 말했다.“안전? 내가 안전하지 못할 게 뭐가 있어? 바보야, 너 설마 혼전 공포증 같은 거 있어? 왜 자꾸 내 안전을 걱정하는 거야? 우리 강성은 전국에서 치안이 가장 좋아. 그러니까 마음 놓아.”말을 마친 뒤 소채은은 윤구주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윤구주는 그녀에게 진실을 얘기할 수 없음이 허탈했다.소채은이 본인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 같자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알겠어. 꼭 네 집에 있을 거면 민규현이 24시간 널 지키게 할게.”그렇게 날이 어두워져서야 윤구주는 돌아갔다.그는 떠나기 전 특별히 민규현에게 반드시 24시간 소채은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습격 사건을 겪어본 민규현은 소채은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었기에 방심할 수가 없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하, 걱정하지
천하회 노정연은 윤구주를 알게 된 뒤로 정말로 용인 빌리지의 문지기가 되었다.박창용이 빌리지에 모습을 드러내자 천하회의 서양이 처음으로 반응했다.“누구시죠?”박창용은 그들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음? 군인인데요?”서양은 당황하며 말했다.백경재는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풀려서 말했다.“세상에... 저 사람은 창용부대 총사령관인데!”창용부대라는 말에 서양은 깜짝 놀라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천하회가 대단하긴 했지만 창용부대가 그들보다 더 대단했다.그들은 무려 백만 군대를 통솔하기 때문이다.박창용은 백경재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가서 우렁차게 물었다.“저하는요?”백경재는 헐레벌떡 뛰어갔다.“총사령관님, 저하께서는 지금 내전에 계십니다.”“음, 알겠어요.”박창용은 말을 마친 뒤 곧장 내전 안으로 들어갔다.박창용이 들어가는 걸 보며 서양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백 대사님... 윤구주 씨 대체 정체가 뭔가요? 창용부대 총사령관이 직접 윤구주 씨를 만나러 오다뇨!”백경재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곧 알게 될 겁니다!”서양은 침을 꿀꺽 삼켰다.예전에 그의 앞에서 시건방을 떨면서 무례하게 굴었던 걸 떠올린 서양은 콱 머리 박고 죽고 싶었다.내전.윤구주가 소채은과의 통화를 끝내자마자 박창용이 들어왔다.“저하!”군복을 입은 박창용은 윤구주를 보자마자 예를 갖췄다.“자네가 여긴 어쩐 일이지?”윤구주는 친한 사이인 박창용이 다가오자 살짝 의아해했다.“저하의 결혼식인데 제가 어떻게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박창용이 우렁차게 말했다.“내가 결혼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윤구주가 물었다.“주세호 그 자식이 알려준 겁니다. 그런데 저하, 결혼하신다는 걸 왜 제게 알리지 않은 겁니까?”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훈련하는데 방해될까 봐 그랬지.”“훈련이 뭐 대수라고 그러십니까? 저하의 일이라면 그 어떤 중요한 일도 저하 뒷전인데 말입니다.”박창용의 말에 윤구주는 호탕하게 웃었다.“저하, 대체 어떤 복 많은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