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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Author: 김원호
서남의 산악 지역.

태양이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

몇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서남의 유명한 성녀봉을 향해 굽이치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

성녀봉은 사방 100리 안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였다.

웅장하고 높이 솟아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성녀봉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는 여자들은 다름 아닌 백화궁의 여자들이었다.

선두에서 걷고 있는 여자가 바로 뛰어난 몸매를 자랑하는 잔혹한 나찰로 불리는 인해민이었다.

청록색 치마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하얀 다리를 드러냈다.

비록 산길은 울퉁불퉁했지만 대가 3품의 경지인 그녀에게는 평지를 밟는 것처럼 식은 죽 먹기였다.

그녀들이 이번에 성녀봉으로 가게 된 이유는 백화궁의 궁주를 출관시키기 위해서였다.

반년 전.

백화궁의 궁주는 갑자기 장례복을 입고 폐관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왜 폐관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녀가 누구를 추모하는지도 아무도 몰랐다.

유일하게 들은 소문은 바로 그녀가 이번 생에 가장 사랑했던 남자를 위해 장례복을 입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주의 남자가 누군지 백화궁의 여자들은 역시 아무도 몰랐다.

나중에 인해민의 입에서 비로소 그녀들이 존경하는 궁주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바로 천하제일의 왕일 뿐만 아니라 또한 화진의 9주 군신이라 불렸던 그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궁주가 천하제일의 왕을 위해서 폐관했다는 말을 듣자 그녀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들의 궁주와 어울리는 남자가 있다면 무조건 구주왕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어야 했다.

연규비도 원래 전설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연규비에 관해서 떠도는 소문은 정말 너무 많았다.

그녀를 화진의 제일 마녀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호의 최강 여도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가 기생집 출신이었으나 우연히 신비한 사람을 만나서 최고의 무술을 수련했다는 말도 있었다.

아무튼 연규비에 대한 소문은 많고도 많았다.

그녀는 <천하방>과 <무도천방>에서 11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자였다.

또한 십국전쟁시기에 그녀는 국방부에 3년 동안 있었다.

그 3년 동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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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주, 왕의 귀환   제518화

    성녀봉 정상.구름과 안개가 둘러싸였고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안겨 왔다.정상 앞에는 백 미터가 넘는 폭포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인해민은 몸을 날려 날아오르자 갑자기 숲속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어느 놈이 감히 백화궁 금지구역에 침입했어!”차가운 소리와 함께 주변은 음산한 분위기로 변했다. 그리고 두 줄기의 강한 살의가 갑자기 숲속으로부터 확 나왔다.그러자 숲속에서 붉고 푸른 두 줄기의 빛이 튀어나왔다.“홍 할머니, 노 할머니, 저예요!”엄청 강한 기운의 두 사람이 나타나자 인해민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기괴한 붉은 도복과 녹색 도복을 입은 두 할머니가 인해민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들은 얼핏 보기에 50대가 넘어 보였다.게다가 몸에서는 강자의 기운이 넘쳤다. 대충 보아도 모두 대가 경지가 되는 무인들이었다.“해민이구나.”붉은색 도복을 입고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한 홍 할머니가 인해민을 보고 담담하게 웃으며 다가왔다.노 할머니도 인해민을 알아보고 살의가 천천히 사라졌다.그녀들은 바로 백화궁에서 이름 날린 홍 할머니, 노 할머니, 남 할머니였다.듣는 소문에 의하면 이 세 할머니는 모두 대가 5품 경지가 되는 고수였다.게다가 세 할머니는 항상 연규비와 함께 다니면서 그녀의 시중을 드는 부하들이었다.세 할머니는 백화궁에서 지위가 아주 높았기에 이번에 연규비가 폐관할 때도 할머니 셋이 직접 연규비를 지켜주는 역할을 맡았다.지금 인해민의 눈앞에 나타난 두 할머니가 바로 세 할머니 중의 홍 할머니와 노 할머니였다.“해민아, 왜 여기로 온 거야? 궁주님께서 너 보고 백화궁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어?”노 할머니가 인해민에게 묻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노 할머니, 이번에 제가 이곳으로 온 게 바로 백화궁 때문이에요. 궁주님께서 하루빨리 출관하셔야 해요.”“출관이라고?”“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최근 설씨 가문 사람들이 갑자기 저희 백화궁에 쳐들어왔어요. 그래서 궁주님께 알리러 여기까지 왔어요.”인해민의 말을 들은

  • 구주, 왕의 귀환   제519화

    인해민이 그렇게 말하자 대가 경지의 홍 할머니와 노 할머니는 놀라서 멍해졌다.한참 지나서야 홍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서남을 떠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강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말도 안 돼.”“그러게 말이에요! 혼자서 군형 설씨 가문을 멸족했을 뿐만 아니라 태허 경지였던 그 늙은 변태 자식까지 죽였다니. 해민아,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의 경지는 최소 신급 강자가 아니야?”노 할머니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신급 강자!사람이 일단 신급 강자가 되면 전설급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말도 있었다.그래서 홍 할머니와 노 할머니가 그렇게 놀랐다.그러자 인해민이 말했다.“그의 실력은 솔직히 말해서 저도 전혀 추측할 수 없어요. 제 생각에 만약 제가 그와 싸운다면 아마 그의 공격 세 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니, 어쩌면 단 한 번에 제가 죽을 수도 있어요!”그녀의 말을 들은 두 할머니는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백화궁의 사람으로서 두 할머니는 인해민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인해민이 이렇게 말하자 두 할머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해민아, 실력이 대단한 그 자식 때문에 궁주님을 찾으러 온 거였어?”홍 할머니가 묻자 인해민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네!”“알았어. 우리를 따라와. 궁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자.”“해민아, 따라와.”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갑자기 몸을 날려 밀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그리고 인해민이 그 뒤를 따랐다.그녀들은 밀림을 지나 큰 동굴 앞에 도착했다.동굴 앞에는 파란 옷을 입은 할머니가 꼼짝도 하지 않고 바위처럼 앉아 있었다.그 할머니는 바로 백화궁의 세 할머니 중의 남 할머니였다.그녀들이 동굴 앞에 도착하자 앉아 있던 남 할머니가 마침내 천천히 눈을 떴다.“아이고. 해민이가 돌아왔구나.”키가 훤칠한 남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남 할머니, 그동안 잘 계셨어요?”인해민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드렸다.“그럼. 반년 만에 보니 몸매가 더 좋아

  • 구주, 왕의 귀환   제520화

    “궁주님, 용서해 주세요! 백화궁에 큰일이 생겨서 폐를 끼치게 됐네요.”인해민은 그녀가 화를 낼까 봐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검을 베일을 쓰고 있던 연규비는 담담하게 말했다.“말해봐. 무슨 일이야?”“궁주님, 군형 5대 가족 중의 설씨 가문 사람들이 어제 갑자기 백화궁으로 쳐들어왔어요.”인해민은 어제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 군형 5대 가족 중의 설씨 가족?”“네! 궁주님.”“쳇. 이 오랑캐들이 감히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백화궁을 침범하다니!”연규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궁주님께서는 화를 내실 필요는 없어요. 그 망할 설씨 가문은 이미 멸족당했어요. 제가 오늘 이곳으로 온 이유는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에요.”인해민이 다급히 말하자 연규비도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 설씨 가문이 멸족당했다고?”“네. 그것도 한 남자가 혼자 설씨 가문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어요.”인해민은 요 며칠 윤구주에 관한 일들을 전부 연규비에게 알려주었다.그녀는 윤구주가 사람들 앞에서 설씨 가문의 장로와 도련님을 죽였다고 말했다.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설씨 가문을 멸족한 사실도 전부 알려주었다.서남에 이렇게 강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연규비는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비록 그녀의 얼굴에는 검은 베일을 쓰고 있었지만 뛰어난 외모와 기질은 감출 수가 없었다.“혼자서 설씨 가문 사람들을 전부 죽인 데다가, 설씨 가문의 장로까지 다 죽였다고?”연규비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네. 궁주님. 그 사람의 실력은 제가 보이게는 적어도 신급 강자 이상이에요. 그래서 제가 궁주님께 찾아온 거예요.”‘신급 강자?’그 말을 들은 연규비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현재 신급 강자는 거의 없을 정도로 드물 텐데. 서남에 그 류씨 늙은 괴물 외에는 신급 강자가 거의 없어. 그 사람이 신급 강자인 게 확실해?”연규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경지는 너무 소름 끼칠 정도로 뛰어나요. 온몸에서

  • 구주, 왕의 귀환   제521화

    “만 장로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여씨 가문 구성원들은 만장로의 존귀한 신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그를 안으로 모셨다.커다란 염씨 문전 안에는 음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20여 명의 경비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만 장로님, 여기서 잠시 쉬세요. 제가 우리 족장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한 여씨 가문 책임자가 말했다.“그래.”여씨 가문 구성원들이 떠난 후, 만장로 일행은 대전에 앉아 족장님이 오기를 기다렸다.“한해야, 류씨, 길씨, 전씨 가문 쪽은 소식이 없어?”만장로는 자리에 앉더니 옆에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사실 설씨 가문이 멸족된 후, 만장로는 즉시 다른 군형 4대 가족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4대 가문 족장님을 초대하여 윤구주를 대항할 방법을 논의하려고 했다.“길씨, 전씨 가문과는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류씨 가문에서만 아직 소식이 없는 상태입니다.”“흥! 잘난 체하는 구류족들, 오만하게 자신의 실력이 최고라고 믿고 우리 네 종족을 멸시하다니.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구나.”만장로가 엄하게 말했다.군형 5대 가문에서 류씨 가문 실력이 가장 강하다. 그리고 류씨 가문은 군형 구류족의 후예이다. 제일 오리지널한 혈통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5대 가문 중에서 제일 강했다. 심지어 신급 경지인 강자 한 명을 보유하고 있다.비록 만장로가 투덜거리는 척했지만 감히 정말 류씨 가문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족장님 오셨습니다.”이때 갑자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여씨 족장이 도착하자 홀에 앉아 있던 만장로가 얼른 일어섰고 뒤에 있던 부하들도 모두 공손히 일어섰다.그리고 잠시 후 검은 가운을 입고 온몸에 사악한 기운을 드러낸 염씨 가문 구성원들이 걸어들어왔다. 제일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염씨 일가 족장이었다.그는 알록달록한 여씨 가문 전통 복장을 하고 손목에는 금으로 된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가문 장로급인 인물 10여 명이 뒤따랐다.5대 가족 중의 하나인 여씨 일가 족장이 도착하자 만장로는 빠른

  • 구주, 왕의 귀환   제522화

    여씨 대장로는 설만수가 이토록 당황해하는 걸 보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설만수가 설씨 멸족에 대해 말하려 할 때 갑자기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뭘 또 그렇게 서둘러요. 우리 전씨 가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대전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람진 체격을 가졌다. 그리고 모두 짐승 가죽을 외투로 삼았고 노출된 구릿빛 피부에는 이상한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전씨 가문이야?”그들이 나타나자 대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섰다. 이 사람들은 바로 군형 5개 가문 중 하나인 전씨 가문이다.“아이고 전 족장님, 오랜만이네!”전씨 가문 사람들이 나타난 후, 여씨 족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백발의 건장한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인은 우람진 체격에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를 뿜어냈다.그는 호랑이 가죽을 외투로 입고 있었고 근육 진 두 팔뚝에는 눈에 거슬릴 정도로 기괴한 요술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그 노인이 바로 전씨 가문 족장이었다.“오랜만이야. 여 족장님. 갈수록 젊어지네!”“아니야, 하하하! 여봐라, 족장님에게 자리를 마련해.”두 사람이 수다를 떠는 사이 여씨 가문 구성원들은 서둘러 전씨 족장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지금 군형 5대 가문 중 3개 가문이 모였다. 아직 길씨와 류씨 가문이 도착하지 않았다.“길씨 뱀할매도 부르긴 불렀죠?”전씨 가문 장로들이 자리에 앉은 후 족장이 설만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설만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족장님, 이미 뱀할매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그래! 그럼 곧 도착하겠네!”그리고 전씨 족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십여 분이 지난 후, 갑자기 비린내가 진동하면서 거센 바람이 대전을 향해 휘몰아쳤다. 바람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불어왔다. 바람이 스치자 사람들은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그때 전씨 족장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길씨네가 왔네!”대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그곳을 향해 쳐다봤다. 그러자 몸집이 나무

  • 구주, 왕의 귀환   제523화

    드디어 길씨 가문도 도착했다. 군형 5개 가문 중 길씨, 전씨, 여씨, 설씨 가문은 모두 도착했고 가장 실력 있는 류씨 가문만 남았다.뱀할매와 장로들이 자리에 앉은 후 대전은 사람들로 이미 꽉 찾았다. 이 안에는 거의 모두가 장로급의 고수들이었다.“군형 5대 가족이 이렇게 성대하게 모인 것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지금 류씨네만 남은 것 같네요.”여씨 족장이 말했다.“그러게 말이에요. 류씨 가문 사람들은 언제 오려나?”전씨 족장도 말을 이어갔다.“흥! 류씨 가문 사람들은 눈만 높아서 우리 네 가문을 멸시해 왔습니다. 보아하니 오늘 회의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군요. 그렇다면 우리도 기다리지 맙시다!”뱀할매가 차갑게 말했다. 현장에 있는 4대 가문은 모두 류씨 가문의 실력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류씨 가문은 나머지 네 가문을 늘 멸시해 왔었다.뱀할매가 이렇게 말을 했지만 다들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됐어요. 만 장로님, 이제 말할 수 있죠? 왜 봉화 신호를 보냈죠? 설씨 가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여씨 족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전 중앙에 있는 설만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설만수를 쳐다봤다. 이번 회의는 설씨 가문에서 주최한 것이기에 다들 그 이유가 궁금했다.“세 족장님께 아뢰옵니다. 사실... 이틀 전 우리 설씨 가문은 이미 멸족되었습니다.”설만수는 갑자기 눈이 빨개지면서 목이 메었다.뭐?“멸족?”그 단어를 듣자 4개 가문 장로와 세 족장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족장님은 그럼?”우람진 체구에 짐승 가죽을 입고 요술 타투를 잔뜩 새긴 전씨 족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족장님은 이미... 이미... 죽엇습니다!”살해당했다고?설만수가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만약 멸족당했다는 것이 농담이라면 지금 족장님까지 죽었다고 하니 절대 농담일 리가 없었다.“족장님이 어떻게... 어떻게?”전씨 족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

  • 구주, 왕의 귀환   제524화

    그 말을 듣자 4대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나빠졌다.“한 명이? 설씨 가문 전체를 멸족시켰다고?”줄곧 말을 아끼고 있던 뱀할매마저 입을 열었다.“네!”“그럴 수가? 족장님이 그래도 태허 경지에 이른 고수인데. 그리고 설씨 가문에도 장로급 고수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한 사람에게 몰살당할 수 있어?”“뱀할매에게 아뢰옵니다.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바닥에 쌓인 시쳇더미를 보았을 때 비로소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문을 죽인 그 자식이 뇌법을 사용했더라고요.”“뇌법?”세 족장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바로 뇌법입니다.”설만수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화진에서 뇌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용호산 천암사 제자들뿐인데. 그들이 수련한 오뇌정법은 화진의 유일한 정통 뇌도야. 그 자식이 뇌법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그럼 걔가 용호산 천암사 사람이야?”뱀할매가 물었다.“뱀할매 말이 맞아. 천암사의 오뇌정법은 화진에서 공인한 가장 강력한 뇌술이야. 하지만 천암사의 대가들이 온다고 해도 혼자의 힘으로 한 가문을 멸족시킬 수는 없는데. 심지어 족장님까지 말이야. 만약 천암사 진성 대가님이 직접 오신다면 몰라도.”여씨 족장도 한마디 덧붙였다.“제가 말한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자식이 누군지는 저는 모릅니다. 그저 백화궁의 그 계집애들과 관련 있는 것 밖에요.”백화궁 얘기가 나오자 세 족장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왜 또 백화궁이야? 제대로 말해. 설만수.”전씨 족장이 물었다. 그러자 설만수는 백화궁과 설씨 가문의 협상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후 사람들의 안색이 모두 변했다.“그럴 리가! 백화궁에 이런 대단한 인물이 있을 수 없어. 연씨 그 마녀도 그럴 능력이 없다고!”여씨 족장이 말했다.모두가 설만수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을 때 차가운 목소리가 대전 안쪽에서 흘러나왔다.“누군지 알 것 같아.”이 말이 나오자 모두 고개를 돌려 그

  • 구주, 왕의 귀환   제525화

    응?“방씨 삼영이야?”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방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방지형의 얼굴을 보자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외부에서는 방씨 삼 형제를 군형 삼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군형에서는 방씨 삼 형제를 방씨 삼영이라고 부른다. 세 형제의 실력도 대단하고 명성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군부대와 몰래 결탁하면서 5대 가문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줬다.군형 5개 가문 사람들의 눈에는 방씨 삼 형제는 마치 신과 같은 인물이었다. 그들은 세 형제를 존경하고 군형의 자랑으로 여긴다.방지형은 음산한 눈빛으로 설만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설만수는 겁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아까 설씨 가문을 멸족시키고 족장님을 죽인 그 젊은이가 뇌법을 사용한다고 했지?”“네. 네!”설만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누군지 알 것 같아!”방지형의 목소리가 살짝 달라졌다.“누군데요?”그가 이렇게 말하자 세 족장은 하나같이 방지형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그러자 방지형은 얼굴에 두른 두루마기를 천천히 걷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남부 강성에서 왔어. 복수를 위해서 말이지.”“복수?”모든 사람은 어리둥절해졌다.“그래! 이 원수는 우리 삼 형제와 맺은 것이지. 왜냐하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우리가 만든 혈충 고독에 걸렸기 때문이야.”사람들은 혈충 고독이라는 단어를 듣자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이는 군형에서 제일 강한 독으로 알려졌다.“지형 선배, 우리 설씨 가문을 멸족시킨 그 새끼를 아세요?”설만수가 격동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방지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아는 정도가 아니지. 내 두 동생이 그의 뇌법에 맞아 죽었는데. 그 자식이 재가 되어도 나는 알아볼 수 있어! 이 원한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방지형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응?군형 삼마중 남은 두 사람이 살해당했다고?그 말을 듣자 4대 가문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그 자식이 도대체 누군데요? 뇌법으로 방씨 형제를 죽이다니.”전씨 족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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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주, 왕의 귀환   제2028화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 구주, 왕의 귀환   제2027화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 구주, 왕의 귀환   제2026화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5화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 구주, 왕의 귀환   제2024화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3화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 구주, 왕의 귀환   제2022화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1화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0화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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