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괴의 영지를 깨운 뒤 윤구주와 연규비는 그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두 사람이 동산을 데리고 여씨 일족 영지를 떠나자마자 윤구주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번뜩이는 두 눈으로 먼 곳에 있는 벌거벗은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왜 그래? 구주야?”연규비는 윤구주가 갑자기 멈춰서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윤구주는 대답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그 나무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 갑자기 말했다.“뭔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어.”“누구?”연규비는 화들짝 놀라며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윤구주는 신념술을 발동했다. 엄청난 정신력이 마치 그물망처럼 주위를 뒤덮었다.신념술은 정신력을 감지하는 신통한 기술이다.윤구주는 곧바로 신념 사이에서 사악한 기운 하나가 그 벌거벗은 나뭇가지 위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그 사악한 기운을 찾은 윤구주는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찾았다! 규비야, 날 따라와!”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구주는 두 발로 땅을 살짝 구르더니 순식간에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연규비는 윤구주가 그곳으로 가자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동산은 아래에서 바쁘게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몇 분 뒤, 윤구주는 사악한 기운을 따라서 한 황폐한 산에 도착했다.그 산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그 산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윤구주는 그곳에 도착한 뒤 순식간에 조금 전 문아름과 노인, 독고명이 있던 곳에 나타났다.연규비도 이때 날아왔다.“구주야, 찾았어?”연규비는 윤구주의 곁으로 온 뒤 서둘러 물었다.윤구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찾았어. 기운은 여기서 끊겼어.”“하지만 이 주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연규비는 의아한 얼굴로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았다.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말했다.“엄청난 기운이야!”“뭐?”옆에 있던 연규비는 당황한 듯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의 표정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역시
“그들은 신경 쓰지 마! 그들이 정말로 나타난다고 해도 내가 이기면 되니까.”윤구주가 카리스마 넘치게 말하자 연규비는 고개를 끄덕였다.윤구주가 두려워할 강자가 이 세상에 있을까?신급 절정이라고 해도 윤구주는 그를 죽일 수 있었다.그는 과거 12대 신급 절정 중 최강자였기 때문이다....군형 5대 가족 중 마지막으로 류씨 일족만 남았다.류씨 일족은 구류족이라고도 불린다.소문에 따르면 구류족은 먼 옛날 치우 부족이었다고 한다.구류족은 5대 가족 중 가장 강했다.그들은 무신을 신봉하고 요술을 수련한다.그리고 구류족 중에는 신급 강자에 다다른 선조가 있었다.음산 산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원시 부족이 바로 구류족이었다.멀리 구류족 안에 구름처럼 높이 솟은 제단들이 보였는데 그 제단은 수십 미터에 달했다.게다가 위에는 구류족이 신봉하는 무신이 조각되어 있었다.윤구주가 황폐한 산에 나타났을 때 구류족에는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두 팔로 검을 안고 있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이는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이다.그의 얼굴은 초췌했고 몸은 단단했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때문에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직 어두운 살육의 기운만 느껴졌다.그가 바로 문아름 곁의 호위 독고명이었다.그는 독고 일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독고명은 구류족의 범위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구류족 밖에 있던 십여 명의 경비원들은 멀리서 검을 든 낯선 남자가 갑자기 다가오자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갔다.“누구냐? 누가 감히 흉기를 들고 우리 구류족으로 들어오려는 거야?”몸집이 큰 구류족 경비원이 독고명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바위 같은 독고명은 천천히 무감정한 눈빛을 들어 또박또박 말했다.“난 방지형을 찾으러 왔다. 나와서 날 만나라고 해.”“방지형? 방지형이 누군데?”경비원은 당황했다.“군형 삼영이라 불리는 방씨 선배님이 아닐까요?”한 경비원이 입을 열었다.덩치가 큰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방 선배님?”방지형의
독고명이 구류족 경비원들을 학살하고 있을 때, 구류족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원형 궁전 안에는 흉악하기 짝이 없는 큼지막한 신상이 있었다.그 신상은 군형에서 제일 유명한 흑무신이었다.커다란 흑무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한 손에는 어둠의 삼지창을, 다른 한 손에는 피범벅이 된 시체를 들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군형의 흑무신은 무족의 기원이라고 한다.수천 년 전의 화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이때 음산한 대전 안에는 구류족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가장 중앙에는 온몸에 요기가 서린 노인이 서 있었다.노인은 눈이 먼 것처럼 눈알이 하얬고,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머리카락도 뻣뻣했다.그는 에메랄드가 두 개 박힌 뼈로 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그가 바로 구류족의 족장이었다.그는 5대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요법을 이용해 신급 경지에 다다른 강자였다.“어르신, 4대 가족은 모두 연합하여 그 외부인을 상대한다고 합니다. 어르신, 이번만큼은 저 방지형을 한 번만 도와주세요. 그 외부인을 죽인다면 저 방지형, 앞으로 구류족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동시에 어르신께 큰 상을 내려야 한다고 서울에 있는 여왕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군형 삼마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방지형이 말했다.그는 4대 가족을 떠난 뒤 구류족 족장을 설득하러 왔다.방지형은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신급 강자가 나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군형 5대 가족 중 유일하게 윤구주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구류족 족장이 유일할 것이다.방지형의 말을 들은, 신급 경지에 다다른 노인은 킥킥대며 괴상하게 웃었다.“외부인의 실력이 그렇게 강하다고? 4대 가족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방지형이 말했다.“네, 그게 아니었으면 제가 직접 어르신을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재밌군!”구류족 족장은 그렇게 말한 뒤 잠깐 뜸을 들였다.“내가 그 외부인을 죽여줄 수는 있어.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어. 내가 그 외부인을 죽인다면 서울에 있는 그 여자는 앞으로 서남의 모든 권력을 우리 구류족에 맡겨야
방지형이 입을 열었다..구류족 족장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검을 쓰는 무인 따위가 뭐가 그렇게 두렵다고.”“어르신은 모르시겠지만 그 사람은 패도멸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이황왕께서는 신급 아래 강자 중에 그의 검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가 검으로 신급 강자도 벨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욱 무시무시한 건 그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는 평생 검법에만 빠져 살았습니다.”그 말에 구류족 족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서울 이황왕의 사람이 왜 갑자기 우리 구류족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거지??”방지형이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 제가 나가서 물어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방지형은 곧바로 빠르게 날아갔다.대전 안의 구류족 장로들과 신급 경지인 족장도 빠르게 따라 나갔다.구류족 정중앙.수백 명의 사람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차가운 표정의 검을 안은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다.남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마치 천군만마도 그의 눈에는 개미처럼 보이는 듯했다.그는 그렇게 한 걸음씩 구류족 대전을 향해 나아갔다. 앞에 수백 명의 구류족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그의 등 뒤에 이미 수십 구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독고명 씨, 그만하세요!”이때가 되어서야 군형 삼마 중 한 명인 방지형이 사람들 틈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그의 등 뒤에는 구류족 족장과 장로들이 있었다.방지형이 나온 뒤 바위처럼 냉담하던 독고명이 천천히 무감정한 눈을 들어 방지형을 바라보았다.“드디어 나왔군.”방지형은 독고명의 뒤에 수많은 구류족 사람들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안색이 돌변했다.“독고명 씨, 우리 모두 이황왕의 부하인데 왜 갑자기 구류족에 쳐들어와서 구류족 사람들을 죽인 겁니까?”“흥!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가씨 부하라고 자처하는 거지?”독고명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에 방지형은 화가 났다. 독고명
뭐라고?4대 가족이 전부 죽었다고?그 소식을 들은 방지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귀신이라도 본 듯 믿기지 않는 얼굴로 눈앞의 독고명을 바라보았다.뒤에 있던 신급 경지에 다다른 족장을 포함 구류족 사람들도 그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놀랄 필요 없어요. 당신들도 다 죽게 될 테니까.”독고명이 갑자기 한마디 보탰다.그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그저 미지근한 물을 마신 사람처럼 태연했다.방지형과 뒤에 있던 구류족 사람들은 그들이 죽을 거라고 하자 당황했다.“아가씨께서 명령을 내리셨어요. 죽기 전에 쓸모를 다하라고.”독고명이 다시 말했다.방지형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쓸모를 다하라는 건... 뭔 뜻이죠?”독고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챙’ 소리와 함께 품속에서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검은색 검을 꺼냈다.길고 검고 차가운 검이었다.검을 뽑아 드는 순간, 무시무시한 검은색 검의가 삽시간에 먹구름처럼 몰려와 하늘을 까맣게 메웠다.들끓는 검의에 폭풍이 휘몰아쳤다.검을 뽑자 하늘이 어두워졌지.다들 거대한 검이 하늘에 나타나는 걸 보았다.그것은 패도였다.패도의 검의가 나타나자 그 공간의 모든 사람이 큰 산에 심장이 짓눌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졌다.심지어 신급 강자라는 구류족 족장도 이 순간 표정이 좋지 않았다.무시무시한 검의에 방지형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독고명을 바라보았다. 그는 독고명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독고명은 손가락으로 하늘 위 비틀린 검을 가리켰고, 그 순간 들끓는 검의가 그의 손끝에 모여들었다. 검의가 다 모여든 뒤 그는 갑자기 방지형의 가슴팍을 가리켰다.쿵!그 순간 방지형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저렸다.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뼛속까지 스미는 서늘한 패도 검의가 그의 땀구멍과 혈액 속으로 침투했다는 것이다.모든 검의가 방지형의 몸에 전해진 뒤 독고명은 갑자기 손가
연규비는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당황했다.“구주야, 이렇게 멀리 있는데도 들리는 거야?”그녀는 깜짝 놀란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출중한 그에게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마치 신처럼 허공에 서 있었다.“술법의 끝은 절정의 근원이지. 내 신념술은 발동되면 자연의 소리가 들릴 뿐만 아니라 길흉도 점칠 수 있어. 겨우 이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어.”카리스마 넘치게 말한 뒤 윤구주는 허공에서 내려왔고, 연규비는 다급히 그를 따라서 내려왔다.“구류족에서 먼저 죽으려고 찾아왔으니 그들을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네.”윤구주는 천천히 말한 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윤구주가 책상다리를 하자 연규비도 묵묵히 그의 곁에 앉았다....윤구주와 수십 리 떨어진 음산 산맥의 깊은 곳에는 많은 사람이 윤구주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그들은 구류족이었다.과거에는 노기등등했던 구류족이 지금은 서리 맞은 가지처럼 다들 풀이 잔뜩 죽어서 사기가 떨어진 상태였다.심지어 가장 앞에 있던 구류족 족장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지형 씨, 당신이 건드린 그 녀석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강해요? 혼자서 4대 가족을 없앨 정도로?”얼마 뒤, 구류족의 한 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화가 난 얼굴로 군형 삼마 방지형을 노려보았다.방지형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머릿속에 윤구주가 그날 시전했던 천둥이 떠오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네...”그 말에 구류족의 다른 장로가 곧바로 말했다.“그럴 리가요. 혼자 군형 4대 가족을 없앴다고요? 설마 마귀인가요?”“마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신급 경지 이상이에요.”방지형이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방지형의 말을 듣자 구류족 장로들은 안색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다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오늘은 내가 있으니까. 그 자식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감히 우리 군형 5대 가족을 상대해?”그 말을 한 사람은 구류족 족장이었다.
족장의 말에 장로는 흠칫하면서 먼 곳의 숲으로 시선을 옮겼다.무성한 숲속에는 옅은 안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심지어 숲속의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저 쥐 죽은 듯 고요함과 억눌린 듯한 분위기뿐이었다.“족장님, 왜 앞의 숲속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옆에 있던 장로는 숲속에서 느껴지는 수상쩍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물었다.“예전에 고서에서 한 사람의 살기가 극에 달하면 사절의 땅이 생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 이 광경을 내가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구류족 족장은 눈앞의 숲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족장 옆의 장로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절의 땅이란 아무런 생명체가 없는, 지옥과도 같은 땅을 가리켜. 그 사람이 있는 곳 주위의 모든 생명체가 두려움에 떨다가 사라진다고 해. 그것이 바로 사절의 땅이야.”그 말에 장로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멀리 있는 숲을 바라봤다.“이번에는 진짜 고수를 만난 듯해.”구류족 족장은 음산하게 말한 뒤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다들 전투 준비를 해!”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구류족 사람들은 일제히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고, 다들 큰 적을 마주한 사람처럼 앞을 바라봤다.구류족 족장은 전투를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린 뒤 한기 어린 눈빛으로 숲속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다들 날 바짝 따라!”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앞에서 갑자기 사악한 기운이 넘실댔다. 그 사악한 기운은 방패처럼 그들의 몸 주위를 둘러쌌다.그렇게 그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사절의 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모두가 사절의 땅에 들어섰을 때, 숲 전체에서 암울한 기운이 퍼졌다.마치 숲이 아니라 지옥인 것처럼 말이다.칼로 베는 듯한 섬뜩한 살기를 제외하면 절망의 기운뿐이었다.“족장님... 어서 보세요. 앞에... 사람이 있어요!”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족장 뒤를 따
군형 삼마 방지형이 드디어 윤구주를 알아봤다. 구류족 사람들과 신급 강자인 구류족 족장은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윤구주는 책상다리를 하고 산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다들 경악하고 있을 때 윤구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이 자식, 드디어 나타났네!”윤구주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공간이 격렬히 흔들렸다.엄청난 살기가 그의 눈동자에서 발사되어 공간 전체를, 그리고 방지형을 감쌌다.군형 삼마인 방지형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정말... 정말 너였어!”방지형은 턱이 덜덜 떨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엄청난 두려움이 보였다.윤구주가 차갑게 말했다.“강성에서 너희 세 명이 채은이를 해쳤어. 오늘 난 그 빚을 갚으러 온 거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방지형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 자식, 내가 널 두려워할 것 같아? 오늘 이곳은 서남 군형이야. 너 혼자서 우리 일족을 상대할 수 있겠어?”“족장님, 저 자식이 4대 가족을 몰살한 놈입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힘을 합친다면 자식을 죽일 수 있을 겁니다.”방지형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구류족 족장에게 말했다.백발이 성성하고 눈이 희끄무레하며 지팡이를 짚은 구류족 족장은 처음부터 윤구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정신력으로 윤구주의 실력을 파악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왠지 모르게 정신력으로 윤구주를 살폈을 때 윤구주의 몸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이러한 상황에 구류족 족장인 그는 긴장되기 시작했다.그는 침묵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대체 누구야? 왜 우리 군형 사람들을 죽이려는 거야?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말이야!”구류족 족장은 윤구주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었다.그러나 윤구주는 차갑게 말했다.“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죽고 싶으면 그냥 빨리 죽어!”그 말에 족장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는 비록 윤구주의 실력이 두려웠지만 그래도 한 일족의 족장이었다.그래서 윤구주의 말을 듣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거만한 자식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