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연의 마음속에서는 윤구주한테 아주 감격하고 있었다. 윤구주가 고 씨 세가를 살려준 것뿐만 아니라 고 씨 세가에게 새롭게 궐기할 기회를 주었다.“됐어!”“내가 할 얘기는 다 끝났어!”“아, 그리고 너 오늘 밤 내 방으로 와.”윤구주는 고시연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되돌아 대전을 떠났다. 하지만 고시연은 윤구주가 밤에 자신의 방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순간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예쁜 얼굴은 훅하고 순식간에 빨갛게 쑥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윤구주의 마지막 말은 고시연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고 더욱이 대전에 있던 연맹의 사람들과 고 씨 세가의 사람들도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밤에 방으로 오라고? 이건 뭐 하려는 거지?’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남자라면 이게 무슨 일인지 어찌 모르겠는가! 눈앞에 있는 고시연은 연예인 뺨치는 예쁜 외모는 물론 몸매도 무척 볼륨감이 넘쳤는데 이런 미녀를 어떤 남자가 안 좋아하겠는가? 그리고 윤구주가 밤에 고시연을 자신의 방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짓을 하려는 게 아니고 또 뭐가 더 있겠는가? 한편, 윤구주는 연맹의 대전을 나선 뒤, 아무렇게나 옆에 있는 조용한 방을 찾아 휴식을 취했다. 남릉행은 거의 끝나갔고 윤구주도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여인의 곁으로 돌아가야 했다.그저... 떠나기 전에 모든 걸 잘 정돈하고 떠나야 했다.“군왕님, 애들한테 시켜서 밤에 뭘 좀 준비해드릴까요?”방으로 돌아가자 둥글둥글하게 살찐 정태웅이 깐족거리며 윤구주에게 물었다.“뭘 준비해?”윤구주는 이해하지 못했다.“당연히 남녀 사이의 그런 물건들이죠! 군왕님께서 얘기하셨잖아요? 고 씨 세가의 그 여자를 오늘 밤에 군왕님의 방으로 오라고요. 그래서 저는 혹시 두 사람한테 야한 스타킹이나 하는 것들을 준비해줘야 하나 했죠. 하하하, 저 전태웅은 다른 재주는 없어도 이 방면에 대해서는 아주 전문가입니다.”전태웅이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내는 것을 듣고 있던 윤구주는 살이 뒤뚱뒤뚱 찐 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망할 뚱땡이, 젠장 지금
윤구주와 접촉하면서 고 씨 세가의 셋째 아가씨는 이미 철저하게 빠져들어 갔다. 고시연은 윤구주를 좋아했지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윤구주는 서남연맹을 그녀에게 주어 관리하게 하고 심지어 고 씨 세가도 그녀에게 돌려주었으니 윤구주에 대한 고시연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단지 고시연은 두 사람 사이의 이 선을 넘을 용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고시연의 마음속에서 윤구주는 신과도 같아서 그녀는 자신이 윤구주에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이 고 씨 세가의 셋째 아가씨이고 얼굴을 보나 몸매를 보나 특출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윤구주한테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윤구주는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밤에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의미겠어? 아마 그도 나를 좋아하는 거겠지!’설사 윤구주가 자신의 몸만 탐한다고 해도 고시연은 기꺼이 가져다 바칠 생각이었다. 창가에 서 있는 고시연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한편으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밖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고시연은 지금 당장 밤이 되어서 윤구주를 찾아가고 싶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가고 기대에 차서 기다리는 와중에 고시연은 연속하여 3, 4벌의 옷을 갈아입었다. 첫 번째는 지적인 드레스였고 두 번째는 화끈한 미니스커트였다. 세 번째에 고시연은 검은색의 벨벳 치마 세트로 갈아입었는데 그녀의 매끈한 다리와 더불어 통통 튀는 여왕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그뿐만 아니라 고시연은 화장대 앞에 앉아서 정성스레 치장하였다. 원래도 화려한 외모를 가진 그녀는 꼼꼼한 치장 끝에 더욱 아름답고 요염해졌다. 특히 섹시하고 유혹적인 붉은색 립은 남자라면 누구나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지금 모든 준비는 끝났고 밤이 오기를 기다려서 윤구주를 만나러 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드디어 밤이 되었다.고시연은 하늘이 어두워지자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방문을 열고 윤구주를 찾으러 갈 준비를 했다. 방문을 열었을 때 고시연은 문 앞에 있는 두 그림자에 깜짝 놀랐다.
고해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 “맞아요. 오늘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돼요. 그리고 구주 성인을 잘 모셔야 해요.”“만약 구주 성인의 여자가 될 수만 있다면 우리 가문은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고해진과 고해식의 말에 고시연은 부끄러움에 목까지 전부 빨갛게 달아올랐다. “큰오빠, 작은오빠, 그만해요.”“전... 전... 전 아직 왜 절 방으로 오라고 했는지 이유를 모른다고요...”고시연이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이 말했다. “바보 같기는. 다 큰 성인 남자가 저녁에 방으로 오라고 하는 건 무슨 뜻이겠어요?”고해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아무것도 모른 척하지 마요. 우리가 하는 얘기 잘 들어요. 구주 성인에게 잘 보여야 해요.””우리 가문의 운명이 달린 일이에요.”형제의 부추김으로 고시연은 불안하고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검은 드레스에 망사 스타킹을 신은 채 윤구주의 방으로 향했다. 오늘 고시연의 스타일링은 정말이지 너무 매력적이었다. 특히 그녀가 입은 검은 드레스는 섹시한 그녀의 몸매를 감싸 아름다운 몸매를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이 깊게 파인 디자인의 드레스라 봉긋한 가슴 라인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가늘고 길어 예쁘게 빠진 다리는 걸음걸음마다 여자의 치명적인 유혹이 되었다. 그리고 곧,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시연이 윤구주의 방문 앞에 도착했다. 방문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밝은 불빛을 보며 고시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용기를 내어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안에서 곧 윤구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시연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윤구주의 방 안. 윤구주는 고시연에게서 등을 돌린 채 가장자리에서 다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우뚝 솟은 산처럼 듬직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어 그 누구보다 단단한 안전감을 주었다. 게다가 그의 타고 난 위엄있는 아우라는 고시연이 한눈에 그에게 빠져버리게 했다. 윤구주가 고시연을 등지고 있었기에 고시연은 윤구주가 뭘 하
고시연이 망상을 펼치고 있을 때쯤, 윤구주 쪽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됐다!”멈칫한 고시연이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쳐다보자 그의 몸에는 금빛이 서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금빛이 사라진 후, 윤구주는 천천히 잘생긴 얼굴을 돌려 고시연을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고시연의 얼굴이 순간 수줍은 듯 빨개졌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두근거리는 그녀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널뛰고 있었다. “내가 왜 오라고 했는지 알아?”윤구주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고시연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내적비명을 질렀다. ‘그런 얘기를 어떻게 대놓고 해?’비록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얼른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시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구주가 말했다. “그래, 그럼 이리 와.”날씬한 그녀의 몸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래도 고시연은 할 걸음 한 걸음 윤구주에게로 걸어갔다. 그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 오늘, 윤구주가 그녀를 어떻게 대하든 전부 받아들인 준비가 되어있었다. 설사 그가 자신을 거칠게 다루더라도... 상관없었다. 고시연이 터질 듯이 빨간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윤구주의 목소리가 다시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자, 이 두 개 너 가져.”말하며 윤구주는 눈이 부시게 빛을 뿜어내는 두 장의 부적을 내밀었다. 그의 말에 고시연이 멈칫했다. 그녀는 윤구주의 손에 들린 빛이 뿜어져 나오는 두 장의 부적을 보고는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이게 뭐예요?”“이 두 장의 부적은 내가 특별히 널 위해 새긴 거야. 하나는 공격 부적이고, 다른 하나는 보호 부적이야. 위험에 처했을 때 이 두 장의 부적을 사용하면 돼.”윤구주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들은 고시연은 그대로 멍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윤구주가 건네는 부적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오늘 밤에 오라고 한 게 이 부적을 주려고 그런 거예요?”“그게 아니면?”윤구주가 고시
윤구주의 생각을 이해한 고시연은 예쁜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절 위해 이렇게까지 해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 말했잖아. 넌 내 하인이라고.”하인이라는 두 글자를 다시 듣게 되자 고시연의 마음은 괜히 씁쓸한 기분으로 물들었다. ‘그저 하인일 뿐인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의 여자가 되겠어?’“난 곧 여길 떠날 거야. 그러니 앞으로 서남연맹은 모든 권한을 너에게 일임할게.”윤구주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뭐?’“남릉을 떠나신다고요?”윤구주의 말에 고시연이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응.”“이미 이곳에 오래 있었어. 그러니 이제 가야지.”윤구주가 말했다. 그가 남릉을 떠난다는 말에 고시윤의 마음은 갑자기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해졌다. “여길 떠나시면 제가 앞으론 어떻게 연락을 드리죠?”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고시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예쁜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질문에 윤구주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하자. 내가 너에게 전화번호를 줄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그쪽으로 연락해.”그렇게 윤구주는 자기 하나뿐인 전화번호를 고시윤에게 남겼다. 유일한 전화번호를 고시윤에게 주고 나서야 윤구주는 입을 열었다. “이젠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이만 돌아가라는 윤구주의 말에 고시윤은 괜스레 쓸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입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시윤은 윤구주의 입에서 그 한마디 말이 나오길 간절히 바랐다. “오늘 밤 내 곁에 있어.”하지만 끝내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시윤은 또다시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그날 밤, 고시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침대에서 일어난 고시윤은 윤구주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마당을 몇 번이나 찾아봤지만 여전히 윤구주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고시윤은 그대로 바
윤구주가 자기를 창밖으로 내다 버리려 하자 정태웅은 순간 입을 틀어막고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남궁 서준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말이라면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라고 해도 이 괴물 같은 녀석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것이다. 정태웅이 입을 꾹 다물자 윤구주는 봉안보리구슬 팔찌를 꺼내 돌리기 시작했다. 그 팔찌엔 음산한 기운이 들어있어 팔찌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기차 안의 온도가 살이 떨릴 정도로 차가워졌다. “역시 보물이야.”“이젠 한 그루의 천년초만 남았어. 그것만 있으면 기린화독에 벗어날 수 있어.”윤구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세 그루의 천년초를 모이기만 한다면 윤구주는 최고의 경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윤구주는 전에 버렸던 모든 것을 다시 찾아올 것이다. “군왕님, 우리 지금 어디 가요?”정태웅이 갑작스레 질문했다. 윤구주는 봉안보리구슬 팔찌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채은이 찾으러 갈 거야.”“형수님요?”“군왕님, 형수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셨어요?”정태웅이 얼른 물었다. “채은이 병은 당장 치료가 될 수 없어. 내가 최고의 경지를 회복한 후에야 치료할 수 있어.”윤구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군요.”말을 마친 정태웅이 갑자기 남궁서준을 향해 말했다. “야, 넌 우리 군완님께서 얼마나 좋은 여자친구를 만났는지 알아?”뜬금없는 질문에 멍해졌던 남궁서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하하!”“우리 형수님은 말이야, 엄청 아름다우신 분이야. 마음씨는 더 말 할 것도 없지.”“그리고 말이야, 우리 군왕님과 하마터면 결혼까지 할 뻔했었다고.”“하지만 그 군형 삼마 개자식들 때문에 결혼식을 치르지 못했어.”군형 삼마를 거론한 정태웅의 눈빛에 순간 살의가 흘러넘쳤다. 남궁서준은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쳐다보았다. “형님, 저에게 정말 형수님이 있어요?”윤구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형수가 있지.”그 말에 웃음이라고는
고대 도시 기차역. 소채은이 소청하, 천희수와 통화하고 있을 때, 윤구주는 정태웅, 남궁서준 그리고 시괴 동산을 데리고 기차에서 내렸다. “드디어 형수님을 만날 수 있다니 너무 흥분되잖아.”기차에서 내린 정태웅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 맞다. 군왕님, 규비 여신님도 백화궁도 서남 고대 도시에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만나신 적 있으세요?”정태웅은 갑자기 절세 미녀인 연규비를 떠올렸다. “만났어.”윤구주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와아아, 규비 여신님께서 형수님을 질투하진 않았어요? 군왕님의 여자가 되고 싶어 안달 났던 사람이잖아요.”정태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구주가 그를 노려보았다. 깜짝 놀란 정태웅이 얼른 입을 닫았다. 기차역을 나선 윤구주는 세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출입구를 도착하자 새까맣게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누군가의 팬클럽인 듯했다. 손에 커다란 사진과 플래카드는 물론 저마다 짐을 한가득 들고 잔뜩 흥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한 여자의 섹시 컨셉의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대스타 은설아, 서남 고대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연예인이 오나 보네.”쓱 훑어보던 윤구주가 덤덤하게 얘기했다. “빠순이들, 덕질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정태웅이 욕설을 지껄였다. “은설아라는 연예인이 최근 뜨고 있긴 해요. 영화, 예능 심지어 할리우드 진출까지 노리고 있어요. 심지어 제 휴대폰에도 비키니 사진이 몇 장 있는걸요.”정태웅에 낯짝도 두껍게 말을 이었다. “뚱땡이, 역겹게 굴지 마.”윤구주가 참지 못하고 장난스레 욕설을 흘렸다. “군왕님, 전 진심으로 하는 얘기예요. 은설아가 정말 예쁘긴 해요. 나올 덴 나오고 들어갈 덴 들어간 몸매라 규비 여신님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아요.”정태웅이 변태 같은 멘트를 계속 내뱉었다. 윤구주는 더 이상 뻔뻔한 정태웅을 대꾸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제일 측면에 있는 문으로 나
총소리 때문에 기차역 출구 쪽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그중에서도 열광하던 팬들은 총소리를 듣더니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은설아 또한 겁을 먹었다.그녀의 옆에 있던 십여 명의 경호원들은 그녀를 경호하며 크게 외쳤다.“어서, 어서 은설아 씨를 경호해서 옆으로 빠져!”경호원 여러 명이 은설아를 지키며 옆으로 빠져나갔고 나머지는 남아서 싸웠다.그 킬러들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듯했다.게다가 모두 무사 이상의 무인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설아 곁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대스타 은설아는 경호원 세 명의 경호를 받으며 허둥지둥 도망쳤다.그 광경을 바라보던 정태웅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저하, 저희가 좀 도와줄까요?”윤구주는 덤덤히 현장을 쓱 둘러보았다.“도와주고 싶으면 돕든가.”“네!”정태웅은 그렇게 대답한 뒤 곧바로 사람들 틈 사이로 돌진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대스타 은설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경호원 세 명의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의 맞은편에 갑자기 무인 십여 명의 기운이 나타났다.그 기운을 느낀 윤구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꽤 많이 왔네.”은설아를 지키던 세 명의 경호원은 사력을 다해 겁먹은 은설아를 지키려고 했다.“은설아 씨, 이쪽으로 도망치세요!”한 경호원이 말을 마치자마자 슉 소리와 함께 은빛 화살이 어둠을 뚫고 나와 그의 목을 꿰뚫었다.가엽게도 그 경호원은 목을 움켜쥔 채로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쓰러져서 숨을 거뒀다.다른 두 명이 손을 쓰려는 데 또 화살 두 개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들었고 곧 그 두 사람도 바닥에 쓰러져서 더는 일어나질 못했다.세 명의 경호원들이 모두 죽자 대스타 은설아는 겁을 먹고 크게 울면서 비명을 질렀다.심지어 신고 있던 유리 구두 한 쪽이 벗겨졌다.그녀는 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킥킥! 은설아, 이제 와서 살려달라고 하다니 너무 늦은 거 아냐?”그 말과 함께 복면을 쓴 사람 십여 명의 은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