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한 기운이 휘몰아치는 순간, 레스토랑 전체가 한기에 감싸였다.엄청난 한기를 띤 살기가 나타나자 은설아와 소채은은 냉동실에 들어선 듯 추웠다.두 여자는 너무 추워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심지어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던 식물들도 살기가 나타나는 순간 곧바로 시들기 시작했다.“오극음살주!”노인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더니 두 손으로 기괴한 수인을 맺으며 윤구주를 짚었다.다섯 개의 음산한 살기가 무섭게 윤구주를 향해 돌진했다.“넌 너무 거만했어. 나한테 이렇게 긴 시간을 주지 말았어야지!”다섯 개의 음산한 살기는 노인의 비장의 무기였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술법을 시전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윤구주는 그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오극음살주를 전부 방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노인은 득의양양했다.윤구주는 노인이 향문의 법사일 거라고 추측했다.향문은 술법 도시라고 불렸고 그곳의 술법은 이곳과 전혀 달랐다.북파 향문은 주술과 진법 위주였다.그리고 노인이 시전한 것은 향문의 유명한 주술이었다.오극음살주를 시전하자 다섯 개의 음산한 살기가 뱀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주술사인 노인은 자신의 오극음살주에 자신감이 넘쳤다.그는 과거 오극음살주를 이용하여 살아있던 북극곰을 그대로 얼려버렸었다. 그러니 사람을 상대하는 건 더욱 쉬울 거라고 생각되었다.노인이 자신의 주술로 손쉽게 윤구주를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윤구주가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겨우 이 정도야? 겨우 이 정도 살기라면 군형 5대 가문의 발톱에도 미치지 못할 텐데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쳐?”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훅!”다섯 개의 독사 같은 살기가 윤구주에게 삼켜졌다.윤구주가 살기를 전부 삼켜버린 것이다.“이... 이... 이럴 수가.”윤구주가 자신이 시전한 오극음살주를 삼켜버리자 노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윤구주의 말대로 노인이 시전한 살기는 너무 약했다.전에 윤구주가 군형 5대 가족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천음 엔터 사장 곁의 술법 고수가 패배했다.그 광경에 탁시현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두려운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심지어 대스타 은설아와 소채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고 있었다.선망과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말이다.윤구주는 노인을 공격한 뒤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얘기했지. 후회할 거라고. 이제 믿겠어?”어깨에 구멍이 하나 생긴 노인은 피를 토하면서 말했다.“한 번만 살려주십쇼. 제가 안목이 없어서 고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살려줄 수는 있어. 대신 질문 하나 할게. 혹시 당신 향문의 법사야?”키 작은 노인이 말했다.“맞습니다. 전 명재경이라고 향문 태현문 사람입니다.”“그래.”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됐어. 이제 꺼져.”윤구주가 그렇게 말하자 노인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서둘러 도망쳤다.향문의 주술사가 도망치자 천음 엔터 사장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젠장, 내가 날 지키라고 무려 20억을 들여서 고용했는데 혼자 도망을 쳐?”노인이 도망친 뒤 윤구주는 탁시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이젠 네 차례야.”탁시현은 그 말을 듣더니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쳤다.“뭘, 뭘 하려는 거야?”그는 두려운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윤구주는 덤덤히 웃었다.“아까 네가 그랬잖아. 내 두 팔과 두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그리고 은설아 씨 생사가 네 손에 달려있다고 했지?”탁시현은 두려워졌다.“난... 난... 난 천음 엔터의 사장이야. 우리 아빠는 천음 엔터의 회장이고. 네가 감히 뭘 어쩔 수 있겠어?”윤구주는 시선을 들었다.“내가 왜 못할 거로 생각해?”그 말과 함께 레스토랑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곧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탁시현을 무겁게 짓눌렀다.천음 엔터 사장인 탁시현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윤구주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응?’탁시현이 갑자기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자 뒤에 있던 서
“감히 탁시현 사장에게 결례를 범한다면 당장 네 수배령을 내릴 줄 알아!”앞으로 나선 사람은 서남 시장 원재혁이었다.서남 시장인 원재혁은 서남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어서 천음 엔터 사장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오늘 이 식사 자리를 망칠 줄은 몰랐다.윤구주는 상대가 서남 시장이라는 말을 듣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바로 서남 시장이었어?”“그렇다면 어쩔 건데?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탁시현 사장을 놔줘. 그러면 용서해 줄게. 하지만 놓아주지 않는다면 감옥 갈 준비해!”원재혁이 사납게 말했다.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날 감옥에 보내겠다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원재혁이 말했다.“내가 못 할 것 같아? 유 비서, 지금 당장 경찰에 연락해. 난 오늘 이 건방진 자식을 감옥에 보내고야 말겠어!”서남 시장이 그렇게 말하자 그의 뒤에 서 있던 금 테두리 안경을 쓴 비서가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시장이 정말로 윤구주를 감옥에 보내려고 하자 대스타 은설아와 소채은은 조금 두려워졌다.아무래도 상대는 서남 시장이기 때문이다.“그... 저 때문에 미안해요. 그냥 넘어가는 게 어때요?”은설아가 두려운 얼굴로 말했다.“구주야, 우리 가자...”옆에 있던 소채은도 걱정스레 말했다.윤구주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무서워할 필요 없어. 저 사람들 오늘 나랑 놀아볼 생각인 것 같은데 한 번 놀아주지 뭐. 그래봤자 겨우 시장일 뿐이잖아? 날 어떻게 잡아서 감옥에 보낼 생각인지 궁금하네!”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휴대전화로 정태웅에게 연락했다.윤구주가 메시지를 보내자 서남 시장은 화를 냈다.“이 자식, 네 배후에 얼마나 대단한 세력이 있든 난 반드시 널 감옥에 보낼 거야!”윤구주는 그의 말에 대꾸하기 귀찮았다. 그는 그저 시선을 들어 밖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잠시 뒤에 후회나 하지 마.”...백화궁.여자들에게 장난을 치고 있던 정태웅은 메시지를 받았다.메시지를 확인한
화진 암부.화진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문인 암부는 국방부도 아니고 정권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오로지 화진의 군주와 구주왕에게만 충성했다.게다가 그들은 일단 일을 마친 뒤 보고할 권력이 있었다.시장 정도라고 해도 암부 사람들을 보면 깍듯이 대해야 했다.남경에 있을 때 한 시장이 뇌물을 받고 시민들을 억압하다가 암부 천현수에게 걸려서 목이 잘렸고, 천현수는 그의 머리통을 들고 순검사를 찾아갔다.그런데 서남의 시장은 윤구주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했다.그러니 정태웅이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꼬맹아, 날 따라 와! 사람 죽이러 가자!”암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정태웅은 남궁 가문의 귀재를 찾았다.흰옷에 검은색 검집을 등에 멘 남궁서준은 정태웅의 말을 듣더니 시선 한 번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안 가요.”“안 가긴 왜 안가?”정태웅은 버럭 화를 냈다.“제기랄, 어떤 놈이 우리 저하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했어. 그런데도 안 갈 거야?”정태웅의 말을 들은 남궁서준은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차갑게 물었다.“누군데요? 누가 감히 우리 형님에게 그딴 소리를 한 거예요?”남궁서준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본 정태웅은 웃으며 말했다.“묻지 말고 날 따라와서 사람을 죽이면 돼.”두 사람은 곧바로 암부 구성원들을 데리고 미향각으로 향했다....미향각 쪽.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탁시현은 아직도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두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괴로운 건지 표정도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의 앞에 있는 윤구주는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의 곁에는 대스타 은설아와 소채은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옆에 있었다.“이 자식,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날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잠시 뒤에 경찰 쪽 사람들이 오면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탁시현은 비록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그의 말을 들은 윤
“그래! 잠시 뒤에 경찰 쪽 사람들이 온 뒤에도 저 자식이 저렇게 건방을 떨 수 있을지 지켜보겠어!”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5분도 되지 않아 예상대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시장님, 경찰 쪽에서 도착했습니다.”안경을 쓴 비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흥분해서 원재혁에게 말했다.배 나온 원재혁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음험하게 웃었다.“이 자식, 넌 도망칠 수 없을 거야.”윤구주는 차를 마시면서 대꾸했다.“멍청하긴. 내가 도망칠 것 같아 보여?”“저기... 경찰 쪽에서 도착했는데 이제 어떡해요?”대스타 은설아는 두려웠다.그녀는 윤구주의 실력이 아주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상대는 화진의 경찰이었다.‘화진의 경찰을 적으로 돌리려는 건가?’“맞아, 구주야. 우리 그냥 가면 안 될까?”소채은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에 두려움이 들었다.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두 여자를 위로했다.“내가 말했잖아. 걱정할 필요 없다고. 오늘 누가 오더라도 우리를 어쩔 수는 없어. 믿기지 않는다면 지켜보고 있어.”두 여자는 윤구주의 말을 듣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그들은 윤구주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그리고 윤구주가 어떻게 경찰을 상대하려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그들은 그저 걱정될 뿐이었다. 혹시라도 경찰 쪽 사람들이 윤구주를 잡아서 감옥에 넣는다면 어찌한단 말인가?이때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대충 봐도 3, 40명은 될 것 같았고 게다가 다들 진짜 총을 지니고 있었다.선두에 선 사람은 경찰서장 육명진이었다.육명진은 체구가 컸다. 그는 예전에 암부 구성원이었는데 다쳐서 암부에서 나온 뒤 서남의 경찰서장이 되었다.육명진은 수십 명의 경찰들을 데리고 도착했고, 원재혁의 곁에 있던 비서가 바로 그에게 달려갔다.“육 서장님, 드디어 오셨네요. 한 남자가 대낮에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게다가 천음 엔터 사장의 두 다리도 부러뜨렸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저 범죄자를 잡아주세요!”서남의
윤구주는 앉아 있고 천음 엔터 사장은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걸 본 육명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는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왠지 모르게 윤구주와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 감각은 과거 암부에 있을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지휘사를 만났을 때보다도 더 강렬했다.육명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의아해했다.그러나 그래도 그는 서남의 경찰서장이었다.“이 자식,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감히 우리 서남에서 죄 없는 사람을 다치게 해? 서남의 경찰서장인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육명진이 그렇게 말하자 윤구주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저놈들이 맞을 짓을 한 거야.”“건방지네. 사람을 다치게 하고도 뻔뻔하게 그런 얘기를 해? 설마 사람을 다치게 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거야?”윤구주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들어 육명진을 바라보았다.“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법을 어기는 일이지. 그리고 악인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난 알고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서서히 시선을 들어 눈앞의 육명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화진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라. 악은 징벌하고 선은 베풀어라. 암부 구성원으로서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뭐라고?’윤구주가 화진 암부의 가장 중요한 구호를 얘기하자 육명진은 몸을 흠칫 떨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넌... 넌... 넌 누구야? 어떻게 내가 암부 구성원이었던 걸 안 거야?”윤구주는 손을 들어 그의 굵은 팔뚝을 가리켰다.육명진의 팔뚝에는 검은색 타투가 있었다.그 타투는 원형 도안이었고 그 위에는 또렷하게 ‘암’ 자가 새겨져 있었다.“이건 화진 암부의 독특한 징표야. 그래서 알아본 거지.”육명진은 조금 전 그가 미향각으로 들어왔을 때, 윤구주가 단번에 그의 팔뚝에 새겨진 타투를 본 것을 몰랐다.윤구주는 굳이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윤구주
“난 명령했어. 지금 당장 저 빌어먹을 놈을 체포해!”배 나온 서남 시장이 말을 마치자마자 우레와도 같은 소리가 미향각 밖에서 들려왔다.“개 같은 자식! 어떤 빌어먹을 놈이 감히 우리 저하를 체포한다는 건지 나 정태웅이 오늘 한 번 똑똑히 지켜볼 거야!”엄청난 목청이었다.백여 명의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뚱뚱한 남자와 흰옷을 입은 소년의 뒤를 따라서 미향각 안으로 들어왔다.암부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정태웅이 드디어 도착했다.그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는 남궁 가문의 검도 귀재와 아부 제36여단 여단장인 원건우, 그리고 수백 명의 완전 무장한 검은 옷을 입은 암부 구성원들이 있었다.암부 구성원들은 안으로 들어오자 서남 시장 원재혁과 그의 비서, 그리고 두 무릎뼈가 부러진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천음 엔터 사장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심지어 윤구주의 곁에 앉아 있던 대스타 은설아와 소채은마저 눈이 휘둥그레졌다.벌떼처럼 몰려온 그들이 대체 누군지 아무도 몰랐다.“당신들은 누구길래 감히 이곳에 쳐들어온 거지? 육 서장, 이 건방진 놈들을 전부 체포해!”서남 시장 원재혁은 갑자기 한 무리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들어오자 곧바로 육명진에게 말했다.육명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육명진, 감히 암부 형제들을 건드릴 수 있겠어?”서남 제36여단 여단장인 원건우가 한 말이었다.그 말을 들은 육명진은 고개를 들어 원건우를 바라보았다.“여단장님...”서남 경찰서장 육명진은 깜짝 놀라 외치더니 갑자기 원건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제36여단 소속이었던 육명진, 여단장님을 뵙습니다!”서남 경찰서장이 원건우의 앞에 무릎을 꿇자 서남 시장은 넋이 나갔다.“육 서장, 뭐 하는 거야? 왜 저 자식에게 무릎을 꿇는 거야?”바닥에 무릎 꿇은 육명진이 대답했다.“전 과거 암부 제36여단 소속이었습니다. 한 번 암부에 몸담았으면 영원히 암부 사람이죠. 제가 비록 암부에서 나오긴 했지만 전 여전히 암부 사람입니다.”암부?서남 시
명색이 서남 시장이라는 사람이 정태웅에게 맞아 단번에 나가떨어져 버렸다.그 모습을 본 유 비서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지금 우리 시장님을 친 거야?”“육 서장님, 뭐합니까! 당장 저 인간을 쳐내지 않고!”유비서의 말에 원건우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지휘사 님께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죽고 싶나 보군!”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칼을 뽑아 들어 허공에서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피가 뿜어져 나오는 동시에 사람 머리가 바닥에 데구루루 굴러떨어졌다.원건우가 유 비서의 머리를 단번에 잘라버린 것이다!그 모습에 서남 윗선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채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여단장은 단칼에 유 비서를 처리한 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앞에 치켜들며 말했다.“또 누구 이렇게 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와. 원하는 대로 죽여주마!”그 말에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누가 감히 나설 수 있을까!하진 암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혹하기로 유명하고 그중에서도 64명의 여단장들은 특히 더 위험한 인물들이다.정태웅은 피식 웃으며 아까의 일격으로 입안이 피범벅이 된 서남 시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마치 소동물을 손에 쥐듯 그의 뒷덜미를 잡아 공중에 떠올렸다.“이봐, 아까 네 놈이 우리 저하를 체포한다고 했었나? 그래?”서남 시장은 온몸이 굳어버린 채 말을 버벅거렸다.“저... 저는...”“말 똑바로 안 해? 네 놈이 우리 저하를 체포하겠다 했냐고 묻잖아!”정태웅은 원재혁의 뺨을 철썩철썩 내리치며 물었다.서남 시장은 가뜩이나 이미 입안이 터진 데다 이제는 코피와 눈의 실핏줄까지 터져 얼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원재혁 딴에는 빨리 용서를 구하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겠지만 아쉽게도 정태웅에게 사과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정태웅은 마치 공을 굴리듯 그를 윤구주의 바로 앞에 차 던져버렸다.“저하, 이놈의 피부를 싹 다 벗겨버린 다음에 갈기갈기 찢어 죽여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