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탁시현 사장에게 결례를 범한다면 당장 네 수배령을 내릴 줄 알아!”앞으로 나선 사람은 서남 시장 원재혁이었다.서남 시장인 원재혁은 서남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어서 천음 엔터 사장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오늘 이 식사 자리를 망칠 줄은 몰랐다.윤구주는 상대가 서남 시장이라는 말을 듣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바로 서남 시장이었어?”“그렇다면 어쩔 건데?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탁시현 사장을 놔줘. 그러면 용서해 줄게. 하지만 놓아주지 않는다면 감옥 갈 준비해!”원재혁이 사납게 말했다.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날 감옥에 보내겠다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원재혁이 말했다.“내가 못 할 것 같아? 유 비서, 지금 당장 경찰에 연락해. 난 오늘 이 건방진 자식을 감옥에 보내고야 말겠어!”서남 시장이 그렇게 말하자 그의 뒤에 서 있던 금 테두리 안경을 쓴 비서가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시장이 정말로 윤구주를 감옥에 보내려고 하자 대스타 은설아와 소채은은 조금 두려워졌다.아무래도 상대는 서남 시장이기 때문이다.“그... 저 때문에 미안해요. 그냥 넘어가는 게 어때요?”은설아가 두려운 얼굴로 말했다.“구주야, 우리 가자...”옆에 있던 소채은도 걱정스레 말했다.윤구주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무서워할 필요 없어. 저 사람들 오늘 나랑 놀아볼 생각인 것 같은데 한 번 놀아주지 뭐. 그래봤자 겨우 시장일 뿐이잖아? 날 어떻게 잡아서 감옥에 보낼 생각인지 궁금하네!”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휴대전화로 정태웅에게 연락했다.윤구주가 메시지를 보내자 서남 시장은 화를 냈다.“이 자식, 네 배후에 얼마나 대단한 세력이 있든 난 반드시 널 감옥에 보낼 거야!”윤구주는 그의 말에 대꾸하기 귀찮았다. 그는 그저 시선을 들어 밖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잠시 뒤에 후회나 하지 마.”...백화궁.여자들에게 장난을 치고 있던 정태웅은 메시지를 받았다.메시지를 확인한
화진 암부.화진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문인 암부는 국방부도 아니고 정권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오로지 화진의 군주와 구주왕에게만 충성했다.게다가 그들은 일단 일을 마친 뒤 보고할 권력이 있었다.시장 정도라고 해도 암부 사람들을 보면 깍듯이 대해야 했다.남경에 있을 때 한 시장이 뇌물을 받고 시민들을 억압하다가 암부 천현수에게 걸려서 목이 잘렸고, 천현수는 그의 머리통을 들고 순검사를 찾아갔다.그런데 서남의 시장은 윤구주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했다.그러니 정태웅이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꼬맹아, 날 따라 와! 사람 죽이러 가자!”암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정태웅은 남궁 가문의 귀재를 찾았다.흰옷에 검은색 검집을 등에 멘 남궁서준은 정태웅의 말을 듣더니 시선 한 번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안 가요.”“안 가긴 왜 안가?”정태웅은 버럭 화를 냈다.“제기랄, 어떤 놈이 우리 저하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했어. 그런데도 안 갈 거야?”정태웅의 말을 들은 남궁서준은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차갑게 물었다.“누군데요? 누가 감히 우리 형님에게 그딴 소리를 한 거예요?”남궁서준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본 정태웅은 웃으며 말했다.“묻지 말고 날 따라와서 사람을 죽이면 돼.”두 사람은 곧바로 암부 구성원들을 데리고 미향각으로 향했다....미향각 쪽.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탁시현은 아직도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두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괴로운 건지 표정도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의 앞에 있는 윤구주는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의 곁에는 대스타 은설아와 소채은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옆에 있었다.“이 자식,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날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잠시 뒤에 경찰 쪽 사람들이 오면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탁시현은 비록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그의 말을 들은 윤
“그래! 잠시 뒤에 경찰 쪽 사람들이 온 뒤에도 저 자식이 저렇게 건방을 떨 수 있을지 지켜보겠어!”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5분도 되지 않아 예상대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시장님, 경찰 쪽에서 도착했습니다.”안경을 쓴 비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흥분해서 원재혁에게 말했다.배 나온 원재혁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음험하게 웃었다.“이 자식, 넌 도망칠 수 없을 거야.”윤구주는 차를 마시면서 대꾸했다.“멍청하긴. 내가 도망칠 것 같아 보여?”“저기... 경찰 쪽에서 도착했는데 이제 어떡해요?”대스타 은설아는 두려웠다.그녀는 윤구주의 실력이 아주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상대는 화진의 경찰이었다.‘화진의 경찰을 적으로 돌리려는 건가?’“맞아, 구주야. 우리 그냥 가면 안 될까?”소채은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에 두려움이 들었다.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두 여자를 위로했다.“내가 말했잖아. 걱정할 필요 없다고. 오늘 누가 오더라도 우리를 어쩔 수는 없어. 믿기지 않는다면 지켜보고 있어.”두 여자는 윤구주의 말을 듣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그들은 윤구주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그리고 윤구주가 어떻게 경찰을 상대하려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그들은 그저 걱정될 뿐이었다. 혹시라도 경찰 쪽 사람들이 윤구주를 잡아서 감옥에 넣는다면 어찌한단 말인가?이때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대충 봐도 3, 40명은 될 것 같았고 게다가 다들 진짜 총을 지니고 있었다.선두에 선 사람은 경찰서장 육명진이었다.육명진은 체구가 컸다. 그는 예전에 암부 구성원이었는데 다쳐서 암부에서 나온 뒤 서남의 경찰서장이 되었다.육명진은 수십 명의 경찰들을 데리고 도착했고, 원재혁의 곁에 있던 비서가 바로 그에게 달려갔다.“육 서장님, 드디어 오셨네요. 한 남자가 대낮에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게다가 천음 엔터 사장의 두 다리도 부러뜨렸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저 범죄자를 잡아주세요!”서남의
윤구주는 앉아 있고 천음 엔터 사장은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걸 본 육명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는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왠지 모르게 윤구주와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 감각은 과거 암부에 있을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지휘사를 만났을 때보다도 더 강렬했다.육명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의아해했다.그러나 그래도 그는 서남의 경찰서장이었다.“이 자식,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감히 우리 서남에서 죄 없는 사람을 다치게 해? 서남의 경찰서장인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육명진이 그렇게 말하자 윤구주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저놈들이 맞을 짓을 한 거야.”“건방지네. 사람을 다치게 하고도 뻔뻔하게 그런 얘기를 해? 설마 사람을 다치게 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거야?”윤구주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들어 육명진을 바라보았다.“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법을 어기는 일이지. 그리고 악인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난 알고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서서히 시선을 들어 눈앞의 육명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화진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라. 악은 징벌하고 선은 베풀어라. 암부 구성원으로서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뭐라고?’윤구주가 화진 암부의 가장 중요한 구호를 얘기하자 육명진은 몸을 흠칫 떨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넌... 넌... 넌 누구야? 어떻게 내가 암부 구성원이었던 걸 안 거야?”윤구주는 손을 들어 그의 굵은 팔뚝을 가리켰다.육명진의 팔뚝에는 검은색 타투가 있었다.그 타투는 원형 도안이었고 그 위에는 또렷하게 ‘암’ 자가 새겨져 있었다.“이건 화진 암부의 독특한 징표야. 그래서 알아본 거지.”육명진은 조금 전 그가 미향각으로 들어왔을 때, 윤구주가 단번에 그의 팔뚝에 새겨진 타투를 본 것을 몰랐다.윤구주는 굳이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윤구주
“난 명령했어. 지금 당장 저 빌어먹을 놈을 체포해!”배 나온 서남 시장이 말을 마치자마자 우레와도 같은 소리가 미향각 밖에서 들려왔다.“개 같은 자식! 어떤 빌어먹을 놈이 감히 우리 저하를 체포한다는 건지 나 정태웅이 오늘 한 번 똑똑히 지켜볼 거야!”엄청난 목청이었다.백여 명의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뚱뚱한 남자와 흰옷을 입은 소년의 뒤를 따라서 미향각 안으로 들어왔다.암부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정태웅이 드디어 도착했다.그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는 남궁 가문의 검도 귀재와 아부 제36여단 여단장인 원건우, 그리고 수백 명의 완전 무장한 검은 옷을 입은 암부 구성원들이 있었다.암부 구성원들은 안으로 들어오자 서남 시장 원재혁과 그의 비서, 그리고 두 무릎뼈가 부러진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천음 엔터 사장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심지어 윤구주의 곁에 앉아 있던 대스타 은설아와 소채은마저 눈이 휘둥그레졌다.벌떼처럼 몰려온 그들이 대체 누군지 아무도 몰랐다.“당신들은 누구길래 감히 이곳에 쳐들어온 거지? 육 서장, 이 건방진 놈들을 전부 체포해!”서남 시장 원재혁은 갑자기 한 무리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들어오자 곧바로 육명진에게 말했다.육명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육명진, 감히 암부 형제들을 건드릴 수 있겠어?”서남 제36여단 여단장인 원건우가 한 말이었다.그 말을 들은 육명진은 고개를 들어 원건우를 바라보았다.“여단장님...”서남 경찰서장 육명진은 깜짝 놀라 외치더니 갑자기 원건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제36여단 소속이었던 육명진, 여단장님을 뵙습니다!”서남 경찰서장이 원건우의 앞에 무릎을 꿇자 서남 시장은 넋이 나갔다.“육 서장, 뭐 하는 거야? 왜 저 자식에게 무릎을 꿇는 거야?”바닥에 무릎 꿇은 육명진이 대답했다.“전 과거 암부 제36여단 소속이었습니다. 한 번 암부에 몸담았으면 영원히 암부 사람이죠. 제가 비록 암부에서 나오긴 했지만 전 여전히 암부 사람입니다.”암부?서남 시
명색이 서남 시장이라는 사람이 정태웅에게 맞아 단번에 나가떨어져 버렸다.그 모습을 본 유 비서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지금 우리 시장님을 친 거야?”“육 서장님, 뭐합니까! 당장 저 인간을 쳐내지 않고!”유비서의 말에 원건우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지휘사 님께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죽고 싶나 보군!”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칼을 뽑아 들어 허공에서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피가 뿜어져 나오는 동시에 사람 머리가 바닥에 데구루루 굴러떨어졌다.원건우가 유 비서의 머리를 단번에 잘라버린 것이다!그 모습에 서남 윗선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채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여단장은 단칼에 유 비서를 처리한 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앞에 치켜들며 말했다.“또 누구 이렇게 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와. 원하는 대로 죽여주마!”그 말에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누가 감히 나설 수 있을까!하진 암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혹하기로 유명하고 그중에서도 64명의 여단장들은 특히 더 위험한 인물들이다.정태웅은 피식 웃으며 아까의 일격으로 입안이 피범벅이 된 서남 시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마치 소동물을 손에 쥐듯 그의 뒷덜미를 잡아 공중에 떠올렸다.“이봐, 아까 네 놈이 우리 저하를 체포한다고 했었나? 그래?”서남 시장은 온몸이 굳어버린 채 말을 버벅거렸다.“저... 저는...”“말 똑바로 안 해? 네 놈이 우리 저하를 체포하겠다 했냐고 묻잖아!”정태웅은 원재혁의 뺨을 철썩철썩 내리치며 물었다.서남 시장은 가뜩이나 이미 입안이 터진 데다 이제는 코피와 눈의 실핏줄까지 터져 얼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원재혁 딴에는 빨리 용서를 구하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겠지만 아쉽게도 정태웅에게 사과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정태웅은 마치 공을 굴리듯 그를 윤구주의 바로 앞에 차 던져버렸다.“저하, 이놈의 피부를 싹 다 벗겨버린 다음에 갈기갈기 찢어 죽여
“이제는 네 차례군. 전에 나를 죽이겠다고 했었지? 그리고 은설아 씨를 괴롭힐 생각도 했었고.”탁시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힘들게 고개를 들었다.“나... 나는...”“너는 뭐? 혹시 네 아버지가 천음 엔터 회장이고 집안 재산만 해도 몇십조에 어릴 때부터 너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는 말이 하고 싶어?”윤구주의 말에 탁시현은 마치 귀신 보듯 그를 쳐다보았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윤구주가 그대로 읊어버렸기 때문이다.“그런데 아쉽게 됐군. 재수 없게도 나를 만나버렸으니.”윤구주는 마치 일상 대화를 건네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지금쯤 속으로 이곳에서 살아나간 다음 나와 은설아 씨한테 어떻게 복수할지만 생각하고 있지? 그 고민 안 해도 될 수 있게 도와주지.”“뭘... 뭘 어쩌려는 거지?”탁시현은 겁에 질린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이곳에서 네 놈의 목숨을 끊어놓을 거다.”말을 마친 윤구주의 두 눈에서 금색 빛이 반짝이더니 연꽃 모양 불의 낙인이 탁시현의 동공에 박혀버렸다.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몸 안쪽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불꽃은 그의 코와 귀 그리고 눈에서 뿜어져 나왔으며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탁시현은 화련금안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사... 장님...”살아있는 채로 불에 타버려 사라진 모습을 보며 뒤에 있던 부하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은설아와 소채은 역시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인간이라 이런 신통 술법은 본 적이 없었다.바닥에 조금 남아 있던 재마저 모두 사라진 뒤에야 은설아는 예쁜 두 눈을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를 마주한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탁시현의 부하들도 하나둘 정신을 차리더니 윤구주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네 놈이 감히 우리 사장님을 죽여?”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싸늘하고도 음산한 검기가 엄습해 왔다. 그리고 그 검기는 기다란 용의 모양으로 변
윤구주는 남궁서준이 얼마나 무서운 동생인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을 위해서라면 이곳에 있는 모두를 숙청시키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윤구주는 웃는 얼굴로 남궁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꼬맹아, 이제 그만해도 돼.”그 말에 남궁서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바로 윤구주의 뒤로 물러섰다.사람들은 사신 같은 꼬마가 윤구주의 말 한마디에 금세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는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뚱땡이, 이곳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면 사람들 데리고 이만 나가. 나는 채은이와 은설아 씨와 함께 계속 식사할 거다.”“네, 알겠습니다.”윤구주의 말에 정태웅은 암부원들을 시켜 이곳을 깔끔하게 원상복구 시킨 뒤 질서정연하게 미향각을 나섰다.깨끗하게 치웠다고는 하지만 비릿한 피 냄새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시끄러움이 사라지고 고요함이 찾아왔다.윤구주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양 은설아와 소채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일은 모두 해결되었으니 이제 마음 놓고 얘기를 나누세요. 참, 채은이 너 은설아 씨한테서 사인받고 싶다 하지 않았어?”그는 미소를 지으며 소채은에게 물었다.그러자 소채은은 눈을 깜빡거리다 이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맞아! 나 설아 씨 싸인 꼭 받고 싶어.”한편 은설아는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그녀는 이제껏 재벌도 많이 만나보고 권력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으며 상상도 못 했던 상황들도 많이 봐왔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다 합쳐도 오늘 보았던 광경만큼 놀랍지는 않았다.은설아는 소채은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사인 요구에 얼른 대답했다.“네, 네, 해드릴게요.”윤구주는 지금 미향각 안에서 두 명의 여자와 함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그리고 암부원들은 그들이 있는 미향각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남궁서준에 정태웅 그리고 암부 제36여단 여단장인 원건우와 서남 경찰서장인 육명진까지 전부 다 나란히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다.“여단장님 부디 벌을 내려주세요.”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