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재 씨, 일단 기다려봐요. 제가 해외에 있는 우리 쪽 스파이들에게 부성국 상황이 어떠냐고 물어볼게요.”정태웅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바로 위성 전화를 꺼내 비밀리에 어디론가 연락했다.그가 연락한 곳은 해외에 있는 암부 정보기관이었다.상대가 전화를 받자 정태웅은 서둘러 물었다. 정보기관에서 부성국의 최근 소식을 얘기해주자 정태웅의 살진 얼굴이 흥분으로 떨렸다.약 5분간 통화를 이어 나간 뒤 정태웅은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대단해! 우리 저하 진짜 대단해!”정태웅은 전화를 끊은 뒤 흥분에 겨워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말했다.아직 상황을 알지 못하는 백경재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정태웅 씨, 어떤 상황입니까?”“하하, 그거 알아요? 저하께서는 부성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메 신전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루 사이에 7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기타가와 신사를 무너뜨렸어요. 심지어 수천 명의 사무라이들과 기타가와 참격으로 불리는 야나가와 류이치 가주를 죽였대요!”‘뭐?’정태웅의 말을 들은 백경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세상에, 우리 저하께서 정말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요?”“하하! 드디어 우리 저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죠? 제가 보기엔 부성국의 그 빌어먹을 놈들이 잘난 척하다가 우리 저하의 심기를 건드린 게 틀림없어요. 쌤통이죠!”백경재는 그 말을 듣고 완전히 넋이 나갔다윤구주는 부성국에 간 지 3일도 되지 않았다.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그러면 저하께서는 언제쯤 돌아오실까요?”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곧 돌아올 거예요. 우리 저하는 항상 일 처리가 깔끔하거든요. 기다려보자고요. 저하께서는 그 부성국 악귀의 음령을 손에 넣으시면 바로 돌아올 거예요.”윤구주가 이번에 부성국으로 간 이유가 그 막강한 악귀의 음령 때문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막강한 귀신의 음령을 손에 넣는다면 윤구주의 실력은 전성기 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두 사람
“정태웅 지휘사님, 소채은 씨는요?”정태웅은 병원을 가리키며 말했다.“제 부하가 말하길 소채은 씨는 지금 응급 처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뭐?’“응급 처치요?”주세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정태웅은 더 말하지 않고 곧바로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주세호와 백경재는 그의 뒤를 따랐다.강성제일병원 응급실 밖.정태웅과 주세호, 백경재 등 사람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빠르게 달려가다가 저 멀리 있는 소청하 부부를 보았다.천희수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 눈물을 닦으면서 소청하의 오른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소청하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응급실 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형수님은 어디 계신가요?”정태웅은 달려간 뒤 곧바로 소청하 부부에게 물었다.소청하는 ‘형수님’이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는 정태웅이 왜 갑자기 형수님을 찾는 건지 알지 못했다.옆에 있던 주세호가 서둘러 말했다.“소채은 씨를 말하는 겁니다.”소청하는 이해한 뒤 곧바로 말했다.“채은이는 지금 응급실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있어요.”응급 처치라는 말에 정태웅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서 서둘러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형수님 최근에 괜찮지 않았습니까? 왜 갑자기 쓰러진 거죠?”“저...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채은이는 최근 들어 회사 일로 바빴거든요.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문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소청하가 말했다.정태웅은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불현듯 소채은의 체내에 있는 천시 고충이 떠올랐다.설마 그 천시 고충의 독이 발작한 걸까?다들 무척 걱정하고 있을 때 띡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열렸고 안에서 네다섯 명의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왔다.“의사 선생님, 제 딸은 어떻습니까?”의사들이 나오자마자 소청하 부부는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갔다.선두에 선 사람은 주치의였는데 마스크를 벗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떡해? 우리 딸 어떡하냐고!”겁을 먹은 천희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큰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소청하는 서둘러 그녀를 설득했다.정태웅과 주세호, 백경재는 서둘러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실 안, 소채은은 여전히 혼수상태였고, 창백한 얼굴에 산소 호흡기를 하고 있었다.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소채은의 팔과 다리에 회색의 시반이 뚜렷하게 생겼다는 점이다.달라진 소채은의 모습에 정태웅은 이를 악물었고, 콰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그는 소채은이 가련했고 동시에 군형 삼마가 죽도록 미웠다.군형 삼마만 아니었다면 소채은이 이런 고통을 겪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이... 이제 어떡하죠?”백경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다들 당황하지 말아요. 제가 지금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가장 뛰어난 전문의를 모셔 와서 소채은 씨를 치료해 달라고 할게요.”옆에 있던 주세호가 말했다.“그들에게 연락해 봤자 하등 쓸모없어요. 우리 저하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이 세상 누가 치료할 수 있겠어요?”정태웅은 눈이 벌게진 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말에 주세호와 백경재 모두 넋이 나갔다.정태웅의 말대로 윤구주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라면 아무도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다.백경재가 말했다.“그렇다면 얼른 저하께 연락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형수님에게 정말로 문제가 생긴다면... 저하께 어떻게 말씀드리겠어요?”주세호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주세호는 빠르게 위성 전화를 꺼낸 뒤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백경재 씨 말대로 저하께 연락해야겠어요!”말을 마친 뒤 정태웅은 곧바로 윤구주에게 연락했다.하지만 몇 번이나 전화해 보았지만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음만 나왔다.“큰일이에요. 저하와 연락이 되지 않아요.”정태웅은 휴대전화를 든 채로 속이 타들어 갔다.주세호가 말했다.“조급해 하지 말아요. 저하는 분명 곧 돌아올 거예요. 일단 기다려보죠!”“그래요, 주세호 씨 말대로 하자고요.”...부성국
반서윤이 살아있는 모습을 본 장윤형은 감격한 얼굴로 흥분해서 달려갔다.“서윤아, 다치지는 않았어? 어서 보자!”장윤형은 그녀에게로 달려가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런데 장윤형이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 때 반서윤은 갑자기 차갑게 말했다.“꺼져!”장윤형은 반서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걸 알고 서둘러 말했다.“서윤아, 미안해.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때 너무 놀라서, 당황해서 그랬어. 그러니까...!”“장윤형, 다시 한번 말하는데 꺼져! 난 너만 보면 역겨워. 알아?”반서윤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서윤아, 날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돼?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누구라도 두려워할 거라고! 장담하는데 윤구주 그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가 우선이었을 거야!”장윤형은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장윤형, 너 정말 뻔뻔하다. 감히 윤구주 씨와 널 비교하려고 들어? 그거 알아? 윤구주 씨가 아니었다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그 말을 들은 장윤형은 입을 뻐끔거리면서 뭔가 더 변명하려고 했다.그런데 반서윤이 다시 말했다.“지금부터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장윤형. 너처럼 용기도 없고 오기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인간쓰레기 따위 난 관심 없으니까. 내가 평생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고 해도 너 같은 걸 마음에 들어 할 리는 없어!”반서윤이 그렇게 말하자 장윤형은 이번 생에 반서윤과 잘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흥, 네가 이렇게 정 없는 애인 줄은 몰랐다. 그래, 갈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그 윤구주라는 사람은 아마 산에서 바위에 맞아 죽었을 거야. 하하하하!”장윤형은 크게 웃으면서 떠났다.반서윤은 혼자 그곳에 남아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하치카미 산이 무너진 뒤 이미 5, 6시간이 흘렀다.수색대는 산 위에 있던 모든 관광객을 산 아래로 대피시켰고, 이제 하치카미 산은 계엄령이 떨어져서 완전히 폐쇄된 상태였다.반서윤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윤구주를 찾지 못했다.
윤구주는 스사노오 귀신의 음령을 꺼낸 뒤 봉안보리구슬로 된 팔찌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천 년 된 빙설화도 꺼냈다.세 개의 천 년 된 한기를 지닌 보물 중 오직 빙설화만이 순수한 천년초였다.그 외 봉안보리구슬과 천 년 된 스사노오 귀신의 음령은 천년초는 아니었다.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중요한 건 이 세 물건을 이용해 피갈이 단약을 만든다면 윤구주 체내에 있는 기린화독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었다.세 개의 한기를 띤 보물이 나타나자마자 하치카미 산은 곧바로 엄청난 한기에 휩싸였다.산꼭대기에는 두꺼운 얼음이 쌓였다. 마치 한겨울이 된 듯한 광경이었다.번뜩이는 두 눈동자가 손안의 세 보물을 바라보았다. 윤구주의 눈동자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가 치솟아 올랐다.그는 머나먼 동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문아름, 두고 보자! 피갈이 단약을 만들어 기린화독을 없앤 뒤 전성기 때로 돌아간다면 널 죽여버릴 거야!”차갑게 말한 뒤 윤구주는 손을 움직여 산꼭대기의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해 네 개의 진법 흔적을 남겼다.그 진법 흔적이 나타나자 눈에 보이지 않는 현기들이 거대하고 빛나는 보호막을 형성하여 윤구주와 산꼭대기를 전부 뒤덮었다.그것은 차단 장벽이었다.윤구주는 곧 피갈이 단약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말아야 했다.이 차단 장벽은 모든 방해를 막을 수 있었고, 새와 벌레도 이 장벽을 통과하기 어려웠다.장벽을 만들어낸 뒤 윤구주는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이리와!”슉슉슉!스사노오의 음령, 봉안보리구슬, 천 년 된 빙설화가 윤구주의 앞으로 날아왔다.“연단 시작!”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두 손을 모았고 쾅 소리와 함께 엄청난 청색 소생의 기운이 그의 두 손바닥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것은 그의 봉왕팔기 중 하나인 소생술이었다.소생술은 의도 중의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오래된 연단술도 포함했다.윤구주가 소생술을 펼치자 응집된 청색 현기가 솥이 되어 갑자기 윤구주의 앞에 나타났다.그
현재 하치카미 산은 완전히 폐쇄되었다.게다가 산 아래 머물던 관광객들도 전부 강제 대피 되었다.지금 하치카미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는 부성국의 무장한 군인들뿐이었다.밤하늘 아래, 수십 명의 중무장을 하고 중화기를 든 군인들이 하치카미 산 아래 서 있었다. 그들은 안색이 어두웠고 다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어때? 드론에 뭔가 찍혔어?”질문을 한 사람은 덩치가 크고 몸집이 우람한 부성국 남자였다.군복을 입은 남자는 경비대 대장 이노우에 마노였다.그는 경비대 특수부대 지휘관이었다.“대장님, 저희 드론은 산꼭대기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중무장한 부하 한 명이 보고했다.“응? 드론이 왜 산꼭대기까지 못 가?”이노우에 마노는 그 말을 듣더니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부하가 서둘러 말했다.“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보낸 드론은 산꼭대기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하면 곧바로 무시무시한 기류에 막혀버립니다. 심지어 위성통신조차 산꼭대기에 접근하지 못합니다.”그 말을 들은 이노우에 마노는 구릿빛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그럴 리가. 아메 신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드론조차 가까이 갈 수 없는 거지?”이노우에 마노의 안색은 아주 나빴다. 그는 어두운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들은 윤구주가 진법을 이용해 하치카미 산꼭대기에 장벽을 만들었다는 걸 당연히 몰랐다.드론뿐만 아니라 새 한 마리조차 윤구주의 방어 진법을 꿰뚫을 수 없었다.이노우에 마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말했다.“젠장, 설마 그 관광객들의 말이 사실인가?”그렇게 말한 뒤 이노우에 마노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하치카미 산꼭대기가 무너진 뒤 이노우에 마노는 곧바로 천여 명의 군인들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구조하면서 동시에 조사를 진행했다.신전에 가려고 산에 올랐던 신도들과 관광객들에게 물은 뒤 그는 결론을 하나 얻었다.아메 신전에 천둥이 치는 듯한 폭발
이노우에 마노가 명령을 내렸다.“네!”훌륭한 전투 장비를 갖춘 부성국의 특전사들이 일렬로 서서 마치 독사가 기어가는 것처럼 산꼭대기를 향해 가고 있었다.그들은 이노우에 마노가 파견한 제1돌격대였다.20여 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그들 부대는 전투 기술이나 여러 가지 기량 면에서 모두 일류였다.그들은 현재 조용히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30분쯤 뒤, 중무장한 특전사들은 산꼭대기와 아주 가까워졌다.더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갑자기 제일 앞에 있던 소대장이 오른손을 들어 멈추라고 지시했다.그의 제스처를 본 특전사들은 모두 멈칫했다.“소대장님, 왜 갑자기 멈춘 겁니까?”한 특전사가 물었다앞에 있는 남자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산꼭대기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다들 이 산꼭대기와 가까워질수록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어?”“이상하다고요? 무슨 뜻입니까?”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산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점점 더 낮아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주위에서 새 한 마리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특수부대 소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그들은 문득 깨달았다.그랬다.그들이 하치카미 산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주변 온도가 갑자기 낮아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하치카미 산의 해발이 높아서 그런 건 줄로 알았는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바위에도, 땅에도 흰색의 서리가 한 층 껴있었다.가장 이상한 점은, 이 산꼭대기에서는 새 소리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이 산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감싸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소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느꼈습니다.”“젠장, 정말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 말처럼 이 산에 금빛 신이나 용이 있는 걸까요?”팀원들의 말에 사람들은 점점 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다들 무서워하지 마. 난 우리의 실력이라면 그 어떤 기괴한 것도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소대장 다나카는 팀원들이 두려워하자 곧바로 위로했다.“다들 날 바
“사람이 있어!”다나카는 군용 망원경으로 윤구주를 본 순간 큰 목소리로 외쳤다.다른 이들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지니고 있던 총을 들었다.“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노우에 대장님 말씀이 맞았어. 누군가 아메 신전을 고의로 파괴한 것이었어!”다나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표정이 굳어졌다.“어서 이노우에 대장님에게 연락해서 저놈을 사살해야 하는지 물어봐!”다나카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뒤에 있던 특전사들은 곧바로 무전기를 이용해 연락했다.잠시 뒤, 산 아래에 있던 이노우에 마노에게서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지시를 받은 다나카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저격수!”다나카가 말하자마자 곧바로 저격총을 들고 있던 특전사 한 명이 달려왔다.“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 당장 산꼭대기에 있는 저놈을 죽여!”저격총을 든 특전사는 명령을 받들었다. 그는 곧바로 비교적 높은 위치를 찾아서 엎드린 뒤 차가운 총구를 산꼭대기에 있는 윤구주에게 겨누었다.어두컴컴한 산꼭대기.윤구주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그의 앞에는 청색 현기로 만들어진 솥이 기괴한 모습으로 회전하고 있었고 솥 아래에서는 금빛 화염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화염이 불타오르면서 짙은 기운이 솥 안에서 발산되었다.그런데 바로 이때 차가운 저격총의 총구가 윤구주의 머리를 겨누었다.저격총의 총구가 윤구주의 머리에 정확히 겨눠지는 순간, 다나카가 명령을 내렸다.“쏴!”탕!총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총알은 거침없이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총알이 윤구주와 수백 미터 떨어져 있을 때, 푹 소리와 함께 빛나는 장벽이 총알을 막았고 거침없이 날던 총알은 보이지 않는 힘에 가로막혀서 결국 바닥에 떨어졌다.‘어?’“이럴 리가 없는데?”저격총에서 쏘아진 고속 탄환이 막히자 저격수뿐만 아니라 그의 소대장인 다나카도 넋이 나갔다.초속 1킬로미터의 고음속 탄환은 장갑차 한 대를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빛나는 장벽에 가로막혔다.저격수가 큰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먼 곳, 책상다리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