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온 건 네가 서울에서 뭘 하든지 윤씨 일가는 전적으로 지지할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야.”“누구와 맞서서 싸우든 윤씨 일가는 네 편이라는 거야.”말을 마친 윤창현은 갑자기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쳤다.“세 사람, 이제 나와도 돼!”윤창현의 말이 끝나자 재이, 철영, 그리고 용민이 윤창현 앞에 나타났다.“둘째 가주님, 인사드립니다.”세 사람은 윤창현을 향해 인사를 했다.“이미 내 조카를 본 적 있다고 했지?”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앞으로 뭘 해야 되는지도 알겠지?”윤창현이 계속해서 말했다.“알고 있습니다!”“지금 이 순간부터 저희의 목숨을 도련님 것입니다. 도련님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겠습니다!”세 사람의 대답을 들은 윤창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구주야.”“이 자들은 형이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직접 훈련시킨 사람들이야.”“지금부터 네가 데리고 있으면 돼.”그러나 윤창현이 말을 끝내자마자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삼촌, 그럴 필요 없습니다.”“왜?”윤창현이 물었다.“저는 그 사람과 연관이 있는 거라면 어떤 것도 원하지 않거든요.”윤구주가 ‘그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물론 윤신우였다.윤창현은 급히 말했다.“구주야, 삼촌도 네가 형을 많이 원망한다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아주 충성스러운 데다가 윤씨 일가가 열심히 기른 사사들이야.”“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제거할 수밖에...”윤창현이 이렇게 말하자 재이, 철영, 용민은 즉시 윤구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도련님, 저희를 받아주십시오.”도련님을 위해 무엇이든 헌신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윤구주는 또 거절했다.“전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필요 없다고요!”윤구주의 단호한 거절에 그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세 명의 신급 내공의 고수였지만 윤구주는 전혀 원하지 않았다.윤창현은 한숨을 쉬며 그들에게 말했다.“조카가 원하지 않는 이상 너희는 쓸모가 없어.”그 말을
‘일단 살라고?’윤구주는 이렇게 말했지만 재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오히려 윤창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뭐해? 어서 구주한테 인사하지 않고?”재이, 철영, 용민은 그제서야 윤구주가 그들을 받아줬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그들은 서둘러 윤구주의 발밑에 하나씩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도련님,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윤구주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삼촌, 먼저 제 쪽에 남겨 둘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사람을 용서한 건 아니에요.”“삼촌이 전해주세요. 18년 전에 저를 윤씨 일가에서 쫓아낸 그 순간부터 저 윤구주는 더 이상 그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말이에요.”“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말이에요!”윤구주는 싸늘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윤구주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세 사람은 어색하게 서 있었다.“아이고, 고집이 형을 너무 닮았네!”윤창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둘째 가주님, 그럼 저희는...”용민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너희 셋은 앞으로 구주 옆에 있도록 해. 구주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볼일을 끝낸 윤창현이 가버렸다.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윤창현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림자 하나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윤정석이었다.“조카 봤지!”윤창현이 윤정석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윤정석은 흐뭇한 눈빛으로 윤구주가 살고 있는 오두막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보았다.“봤어. 정말 다 컸네... 몰라보게 생겼어! ”“그러니까.”“18년이나 지났어.”윤창현도 감개무량했다.“구주가 언제 윤씨 일가로 돌아올지 모르겠네. 만약 돌아온다면 할머니께서 틀림없이 기뻐하실 건데 말이야.”윤정석은 이렇게 말하며 탄식했다.“윤씨 일가로 돌아온다고? 아마 좀 비현실적일 것 같아. 아까 형 얘기 꺼내기만 해도 확 달라지더라고... 둘 사이의 응어리는 한동안은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아.”윤창현이 말했다.“그래도 구주는 윤
하지만 지금 민규현은 의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게다가 살아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이것이 윤구주로 하여금 매우 걱정하게 했다. 의수 감옥은 윤구주가 무너진 후, 문아름이 직접 명령하여 건설한 곳이었다. 국방부의 대부분 장군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윤구주도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치가 확인되는 즉시 윤구주는 침입할 것이었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가고 있었다.재이, 철영, 용민이 윤구주의 부하로 된 후, 그들이 주변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다.어느 날 점심, 갑자기 누군가가 몰래 윤구주가 살고 있는 정원 근처에 나타났다.윤구주가 있는 곳과 가까워지자 재이가 나타나서 에게 물었다.“여기서 몰래몰래 뭐 하는 짓이야! 죽고 싶어?”재이는 이렇게 말하며 그를 붙잡았다.재이가 손을 뻗자 상대방은 급히 피하면서 외쳤다.“저는 국방부 이산이라고 합니다. 지휘사님을 찾으러 왔어요!”“응?”“정태웅 지휘사님을 찾으러 온 건가요?”재이는 차가운 시선으로 이산이라는 남자를 응시했다.“네. 저는 암부원입니다. 천현수 지휘사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그의 말을 들은 재이는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았고 위아래로 그저 살피기 시작했다.“천현수 지휘사님을 찾으러 온 거라면 따라오시죠.”그녀는 이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정원에 들어서자 이산은 정태웅과 천현수를 보게 되었다.“안녕하세요, 이산이라고 합니다. 지휘사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정태웅은 이산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아, 이산이 왔구나. 일어나!”“감사합니다!”이산이 일어났다.“어떻게 되었는지 말해 봐.”천현수가 물었다.이산은 암부의 간첩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화진에서 가장 유명한 암부는 현재 반역죄로 판결되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암부의 간첩들은 만 명을 넘었다. 이들 만 명의 간첩들은 전 세계의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정보를 탐색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화진의 각 세력 중에도 암부의 간첩들이 숨어있었다. 이산은 국방부의 간첩 중 한 명이다.조사가 어떻게 진행되
한밤중의 용하 산맥은 그들에게 웅장하고 위엄 있는 느낌을 주었다. 이곳은 황제의 무덤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인물들의 영광이 깃든 장소였다.윤구주가 용하 산맥에 발을 들이자 주변의 기운이 갑자기 수축된 것처럼 느껴졌고 이어서 숨 막힐 듯한 신비로운 기운이 용하 산맥 주변에서 퍼져 나왔다. 이 기운은 뭔가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모든 사람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동시에 어떤 힘이 모든 사람의 발걸음을 막고 있었다.“강력한 압박감이군...”용민이 가장 먼저 비명을 질렀다.도법으로 신급에 도달한 용민이 용하 산맥의 수상함을 느낀 것이다. 현재 그는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는 온몸의 현기를 모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그러나 가면 갈수록 산을 오르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다리에 쇳덩이라도 묶인 듯이 겨우 다섯 걸음 정도 걷고 나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젠장! 도대체 뭐죠? 왜 저도 움직일 수 없는 거죠?”붉은 드레스를 입은 재이의 세련된 얼굴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기 시작했다. 발은 마치 땅에 고정된 것 같았다. 그녀도 다섯 걸음 정도 걷고 나자 숨이 가빠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세 사람 중에서 오직 철영만이 육체로 신급에 도달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억지로 다리를 옮기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7~8걸음 정도 걷고 나니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제자리에 멈춰 선 그들은 정태웅과 천현수를 쳐다보았다. 그들도 열몇 걸음 걷고 나서 얼굴이 어두워지며 멈춰 서는 것이었다.오직 윤구주만이 두 손을 뒤로 하고 한가롭게 걸어가고 있었다.꼬맹이 남궁서준이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마치 눈앞의 신비로운 기운이 두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저하, 저희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습니다...”이때, 뒤에서 정태웅이 숨이 차 하면서 외쳤다.윤구주은 발걸음을 멈추고 용하 산맥의 하늘을 담담하게 올려다보더니 손가락 하나를 들어 어둠 속을 가리켰다.그리고는 뭐라 주문을 중얼거리더니 소리를 질렀다.“오행, 열려라!”윤구주가 허공을 가리
용민은 놀라운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설계한 전법이니까 당연한 일이죠.”윤구주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뭐라고?’그 말을 들은 용민은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재이와 철영 역시 입을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윤구주는 두 손을 뒤로 하고 앞에 펼쳐진 용하 산맥의 전법 결계를 바라보며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그저 입을 열었다.“제 발걸음을 따라오시면 이 배열을 넘을 수 있습니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용민과 재이 등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윤구주가 지나간 자리에 깊은 발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윤구주는 그들이 이 결계를 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자신의 발자국을 깊게 남겨 놓았던 것이다.그들은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다들 숨을 깊게 내쉬며 다시 몸에 기운을 모았다. 힘겹게 발을 들어 윤구주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발을 디뎠다.두 발이 윤구주의 발자국 위에 닿자마자 발에 느껴졌던 무게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정말로 걷을 수 있게 되었어요!”“감사합니다, 도련님!”“도련님, 대단하세요!”용민은 흥분하며 외쳤다.홍수, 철영, 정태웅 등도 윤구주의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점점 편안해졌다.윤구주는 앞서 걸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그의 발자국을 따라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결계를 넘어 용하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그들이 용하 산맥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머리 위의 오행 결계가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용하 산맥에 들어서자 거대한 묘비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 뒤에는 음산한 궁전들이 있었다.여기가 왕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고 또한 왕실의 위대한 사람들의 묘지였다.“세상에, 여기가 전설 속의 용하 산맥인가요?”정태웅은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해하며 말했다. 그는 마치 지옥의 궁전처럼 보이는 용하 산맥을 바라보았다.“좋네요!”“여기는 평범한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야. 지금은 의수 감옥을 찾아서 규현이를 구하는 게 우선이야.”윤구
온몸이 피로 물들여진 호존 민규현은 철사에 손과 발이 다 묶여져 있었다.게다가 어깨 쪽에는 단혼정까지 박혀져 있었다.피는 이미 말라서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하지만 그 남자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감옥 앞에는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4명이나 서 있었다. 네 사람 모두 대가 경지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문창정이 감옥 문 앞으로 도착하자 그들은 함께 경건하게 인사를 했다.하지만 문창정은 그들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감옥 문을 열어라!” “예!”한 부하가 신속하게 감옥 문을 열었다.그의 시선은 천천히 민규현에게로 향했다. 온몸이 피로 물든 민규현은 두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고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민규현를 한 번 쳐다본 후 감탄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암부의 호존은 용맹하고 호기로운 기운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 오늘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 민규현은 두 눈을 꼭 감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래는 두 명의 신급을 보내면 널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네가 이미 신급 중상급에 도달했을 줄이야... 정말 예상 밖이야.” “청룡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아마 널 제압하지 못했겠지.”문창정이 계속 중얼거렸다. 갑자기 민규현이 붉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늙은 자식! 그럴 능력이 있다면 나를 죽여! 오늘 날 네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너를 죽일 거야!” 민규현이 분노하며 외쳤다. 그는 교활하게 웃었다. “민규현 지휘사, 화내지 말지? 내가 왜 널 죽이지 않았는지 알아?” “낚시를 하려면 미끼가 필요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물고기가 낚이지 않겠지? 그렇지 않아?”암부의 삼대 사령관 중 하나인 민규현은 문창정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쁜 자식, 도대체 나를 이용해 무엇을 하려는 거야!”민규현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할 거냐고? 아직도 모르겠어? 둘도 없는 친구로서 네가 곤경에 처했는데 어찌 구하지
“절정?”“이 두 늙은 자식이 절정 강자라고?”정태웅은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절정 기운을 느끼자 얼굴이 어두워졌다.절정이란 신급의 정점을 의미했는데 그 정점에 이르면 절정이라 불렸다.홀로 만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며 이를 절정이라 부르는 것이었다오늘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의수 감옥에서 두 명의 절정 강자가 나타난 것이었다.두 명의 절정 강자를 바라보며 윤구주는 뒷짐을 잡았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당당하게 말했다.“제가 누군지 아시나요?”“인왕이시죠. 화진 제일인 구주 왕이시잖아요. 우리가 어찌 모르겠습니까?”녹색 로브를 입은 정찬형이 말했다.“제 이름을 알고 계신다면‘곤륜 금기령’은 아시나요?”‘곤륜 금령’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찬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알고 있습니다...”‘곤륜 금기령’, 국가적 재난이 생기기 전에는 절정이 나타날 수 없다는 금기령이었다.나타나면 즉시 처형한다는 금기령이었다.이 금기령은 예전에 곤륜 영역에서 전 세계의 무인들에게 내린 사형 금기령이었다.이 금기령은 전 세계적으로 100년 동안 시행되었다.100년 동안 이 금기령을 어긴 사람은 없었다.그 결과, 세상의 무인들은 신급 절정이라는 정점급 강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다들 잊어버렸던 것이다.절정에 도달하면 무술계에서 무적으로 될 뿐만 아니라 수명도 500세까지 연장된다고 했었다.이 정도 수준의 괴물들은 함부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었다.왜냐하면 이 강자들은 나타난 이상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전 세계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이것이 바로 예전의 무술 성지인 곤륜에서 ‘금지령’을 내린 이유였다.하지만 지금, 화진의 땅에서 두 명의 절정 강자가 나타났다.게다가 이 두 사람은 자신을 상대하려고 온 것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윤구주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곤륜 금지령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나타났다는 건가요? 자신의 가문에 영향이 가도 상관없는 건가요?”윤구주는
순간, 빨간 그림자가 번개처럼 빠르게 길우빈에게로 날아갔다.길우빈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신급밖에 안 되는 게 감히 내 앞에서 까불어?”이렇게 말하며 그는 손을 휘둘렀다. 수많은 기운이 모여져서 허공에 거대한 손자국이 생겼다. 그 손자국이 소리를 내며 바로 재이에게로 돌진했다.재이는 위험을 감지하고 다시 뒤로 피하려 했다.‘쿵!’무시무시한 손자국이 재이 앞까지 다가왔고 그 기운도 소용돌이치며 재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재이는 공중에서 뒤로 튕겨 나가며 열몇 걸음 물러나서야 겨우 멈춰 섰다.입가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길우빈은 준절정 강자다답게 한 방에 재이를 상처 입혔다.상처를 입었지만 재이의 눈에 담긴 살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늙은 자식, 다시 한번 해봐!”재이가 다시 공격하려 할 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재이 앞에 섰다.꼬맹이 남궁서준이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길우빈을 바라보았다.“제가 하죠.”이 말과 함께 남궁서준은 천하를 뒤엎을 검의 기운을 내뿜어 그를 감쌌다.길우빈은 준절정 강자로 문씨 가문 같은 대단한 인물이었다.그는 200년 가까이 살았으나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남궁서준의 검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검도에 재능이 있는 남궁 세가의 사람으로서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누군가가 형님을 막기만 하면 그 사람을 죽이는 게 남궁서준의 방식이었다.상대가 절정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 없었다.그에게는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었다.“감히 우리 형님을 막으려 하다니...”말을 끝낸 그가 손을 쓰려고 했다.그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자 검의 기운이 사방을 둘러쌌다.남궁서준이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리자, 황금색 검이 그의 손에서 날아올랐다.검을 쥔 그의 기세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그가 손에 든 검은 그저 일반 형태의 검이었다. 남궁서준은 그 검으로 스킬을 썼다.하지만 그 한 번의 스킬은 번개보다, 천둥보다 더 빨랐다.무시무시한 빛과 함께 검이 길우빈을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