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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Author: 월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5 21:00:22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영상 원본을 보관하고 있겠지?”

심문관의 표정이 달라졌다.

“왜 묻습니까?”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복수라도 하시려고요?”

이안은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복수할 사람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판단해. 지금은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알아야겠어.”

강도윤이 폭격을 직접 명령했는지,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입을 다물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아내의 생존 보고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공개적으로 그 사실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이안이 직접 확인한 배신이었다.

***

심문관은 이번에는 서류철을 꺼냈다.

“남편분의 입장까지 확인하셨으니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실 때가 된 것 같군요.”

그가 내민 종이에는 이미 한국어 진술문이 작성되어 있었다. 이안은 첫 문장을 읽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본인은 작전 수행 중 군사정보를 외부에 제공하였으며, 그 결과 아군 병력의 피해가 발생하였음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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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손이 잠깐 멈췄다.“말하지 마시오.”“여기서 다른 한국군을 치료한 적 있습니까?”남자는 의료가방에서 소독약을 꺼내 상처 주변을 닦았다.“나는 환자를 치료하러 왔소.”이안은 더 캐묻지 않았다.그가 상처를 소독하는 동안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았고, 새 붕대를 감을 때까지 그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남자는 치료를 마친 뒤 의료가방을 닫았지만, 이안은 그가 일어나기 전에 낮게 말을 건넸다.“정태식 상사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오른쪽 눈썹 위에 흉터가 있고,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있었을 수도 있어요.”남자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나는 모릅니다.”“정말 모르십니까?”“이곳의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오.”그는 감방 문 쪽을 살폈다. 경비병이 복도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몸을 일으키면서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살아 있으시오.”이안은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다만 문밖으로 나가기 직전 그녀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더 남겼다.“여기서는 죽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게 더 어려울 때가 있소.”쇠문이 닫히자 이안은 한동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그가 누구인지, 왜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시설에도 자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확인했으며,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정보였다.***다음 심문에서는 새로운 명단이 준비되어 있었다.심문관은 종이를 책상 위에 펼쳤고, 이안은 제목을 읽는 순간 손을 멈췄다.**‘흑랑 작전팀 전원 전사 처리.’**열한 명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오승필과 윤기석, 박민재, 김준호.그리고 정태식을 비롯한 나머지 대원들의 이름까지.이안은 종이를 가까이 끌어당겼다.“누가 작성한 명단이지?”“당신 나라의 공식 기록입니다.”“시신은 확인했어?”“전투지역에서 실종되었으니 그렇게 처리했겠지요.”이안은 사망 추정 시각을 확인했

  • 국가가 버린 여자 특수부대원   17화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저 영상 원본을 보관하고 있겠지?”심문관의 표정이 달라졌다.“왜 묻습니까?”“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남편에게 복수라도 하시려고요?”이안은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복수할 사람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판단해. 지금은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알아야겠어.”강도윤이 폭격을 직접 명령했는지,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입을 다물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아내의 생존 보고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공개적으로 그 사실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이안이 직접 확인한 배신이었다.***심문관은 이번에는 서류철을 꺼냈다.“남편분의 입장까지 확인하셨으니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실 때가 된 것 같군요.”그가 내민 종이에는 이미 한국어 진술문이 작성되어 있었다. 이안은 첫 문장을 읽자마자 얼굴을 굳혔다.**‘본인은 작전 수행 중 군사정보를 외부에 제공하였으며, 그 결과 아군 병력의 피해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한다.’**그 아래에는 작전 지휘권을 임의로 행사했다는 내용과 부하들에게 잘못된 이동 경로를 지시했다는 문장이 이어졌다. 흑랑을 향해 이루어진 폭격에 관한 설명은 없었고, 아군 생존 보고와 철수 요청 역시 빠져 있었다.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도록 만들어진 진술서였다.“이걸 쓰라고?”“서명만 하시면 됩니다.”심문관은 펜을 앞으로 밀었다.“당신의 치료를 보장하고, 남은 부하들의 행방도 확인해 드리겠습니다.”이안의 시선이 멈췄다.“남은 부하들?”“정태식 상사라고 했던가요?”그는 일부러 이름을 천천히 발음했다.이안은 그의 표정을 살폈다.“정 상사가 살아 있어?”“당신이 협조한다면 확인할 수 있겠지요.”“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먼저 서명하십시오.”이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심문관은 정태식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았다. 이름은 포로 심문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적이 회수한 장비나 작전 기록에 남아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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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대위가 적대 세력과 내통했다는 의혹을 믿으십니까?’도윤은 손을 맞잡은 채 잠시 침묵하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군의 공식 조사 결과를 존중하겠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이안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기자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부인께서 결백하다고 생각하십니까?’강도윤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저는 군인입니다. 개인적인 관계보다 국가와 조직에 대한 책임이 우선입니다.’심문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이안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결혼식 날 자신의 손을 붙잡고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를 믿겠다고 약속했던 남자였다. 작전 출발 전날 밤에는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들켰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오해라며 상황을 덮으려 했고, 그때조차 이안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몰아갔다.그런 남자가 지금은 군인의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그녀가 적의 손에 붙잡혀 있는 동안, 흑랑 대원들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상황에서 강도윤은 아내의 결백을 믿는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이안은 이를 악물었다.“계속 틀어.”심문관이 눈썹을 올렸다.“충격을 받으신 모양이군요.”“끝까지 보겠어.”남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기자가 다시 질문했다.‘서 대위가 작전 수행 중 남편인 강 중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입니까?’강도윤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물잔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고, 잠시 입술을 다문 뒤 신중하게 대답했다.‘작전 관련 통신 내용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당시 서 대위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이번에는 침묵이 조금 길어졌다.이안은 화면 속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날 자신은 살아 있었다. 부상자들을 데리고 폐광을 빠져나오려 했고, 본부에 아군 생존 보고를 보냈다. 강도윤 역시 그 보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 어떤 말을 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잠시 뒤 도윤이 입을 열었다.‘당시 현장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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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에는 흑랑의 출정 전 단체사진이 떠 있었다. 열두 명이 나란히 서 있었고, 정태식은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쪽에 선 김준호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었으며, 오승필은 아들의 백일 사진을 보여 준 직후라 그런지 유난히 표정이 밝았다.그 사진은 작전 출발 전 부대 내부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외부에 공개될 이유가 없는 자료였기에 이안은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누가 그것을 넘겼는지부터 생각했다.‘군은 서 대위가 작전정보를 외부에 전달한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으며, 해당 사건으로 작전에 투입된 장병 다수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화면 아래에 붉은 자막이 나타났다.**군사기밀 유출 혐의 서이안 대위, 적대 세력 내통 의혹.**이안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영상 출처가 어디지?”심문관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고국의 방송입니다.”“방송 날짜는? 편집하지 않은 원본도 있어?”남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안은 그 반응을 살피면서 화면에 나타난 단체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방송사 로고와 자막은 자연스러웠지만, 이곳에서 보여 주는 자료가 실제 방송인지 조작된 영상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그럼에도 사진만큼은 진짜였다.누군가 부대 내부 자료를 밖으로 넘겼다는 뜻이었다.“누가 저 사진을 줬어?”심문관은 대답하지 않은 채 화면을 넘겼다.이번에는 군 관계자의 브리핑 장면이 나타났다. 단상에 선 남자는 준비된 발표문을 읽으며 서이안 대위의 군사기밀 유출 혐의와 흑랑 작전팀의 피해를 설명했다. 기자가 폭격 경위와 지휘계통에 관해 질문했지만, 그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피했다.이안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흑랑을 향해 폭격이 쏟아졌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고, 본부에 아군 생존 보고를 보냈다는 내용도 빠져 있었다. 그녀가 작전정보를 넘겨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의혹만 남아 있었으며, 그 의혹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는 공개되지 않았다.“거짓말이야.”심문관이 고개를 기울였다.“어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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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이미 누군가가 흑랑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누가 어떤 명령으로 어디까지 개입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심문관의 말에 섣불리 반응할 생각은 없었다.“내 나라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공식 문서부터 가져와.”심문관의 미소가 옅어졌다.“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겁니까?”“작전 지휘계통과 폭격 승인 기록, 그리고 내 부하들의 생사.”이안은 묶인 손목을 조금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그것도 없이 내가 버림받았다고 떠들어 봐야 협박밖에 더 되겠어?”남자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뜻밖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책상 위의 서류철을 덮으며 문밖에 서 있던 경비병에게 짧게 명령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보여 드리지요.”이안은 그가 준비한 것이 폭격 기록보다 훨씬 잔인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다.***감방으로 옮겨진 뒤에도 이안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는 얇은 담요와 금속 그릇 하나가 전부였고, 환기구에서는 습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벽 아래로 지나가는 배수관에서는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물소리가 들렸으며, 천장에 매달린 전등은 간헐적으로 깜빡여 시간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이안은 바닥에 앉아 다리의 상태부터 살폈다. 붕대 아래에서는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고, 허벅지 바깥쪽의 피부는 열이 오른 듯 뜨거웠다. 손끝으로 상처 주변을 확인한 그녀는 무리하게 움직이면 출혈이 심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그렇다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한쪽 다리에 체중을 최대한 싣지 않은 채 벽을 짚고 일어선 뒤, 감방 안을 천천히 움직였다. 두 걸음이면 반대편 벽에 닿았고 돌아서려면 어깨를 틀어야 했지만, 이안은 그 짧은 거리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몸이 완전히 굳지 않도록 했다.복도에서 군화 소리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움직임을 멈췄다. 경비병이 쇠창살 사이로 안쪽을 살피고 있었고, 이안이 자신을 바라보자 총구를 조금 들어 올렸다.“앉아.”이안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벽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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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이안이 의식을 되찾았을 때, 누군가 그녀의 입안에 차가운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거친 기침이 터졌고,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양팔을 타고 날카로운 통증이 치밀었다. 손목은 의자 등받이 뒤쪽에 묶여 있었으며, 허리와 발목에도 구속구가 채워져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상처가 벌어지는 듯했다.머리 위에서는 낡은 전등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습기로 검게 변한 벽과 녹슨 배수구, 바닥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으며, 복도에서는 쇠문이 닫히는 소리와 누군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내지르는 비명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이안은 눈꺼풀을 완전히 들어 올리기 전에 자신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왼쪽 허벅지에는 피가 굳어붙은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상처 안쪽에서 느껴지는 열기로 보아 제대로 치료받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뒤통수에서도 둔한 통증이 이어졌고, 입안에는 오래된 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마지막 기억은 무너진 수로였다.정태식과 나머지 대원들이 들어간 좁은 통로가 암석으로 막혔고, 그들을 부르며 달려가던 자신에게 적들이 달려들었다. 누군가 손목을 짓밟았으며,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은 뒤부터는 기억이 끊겨 있었다.그보다 앞서 김준호가 수로 아래로 떨어졌고, 오승필과 윤기석의 인식표는 적에게 빼앗겼다. 김준호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여동생의 사진도 더 이상 그녀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이안은 전투복 안쪽을 확인하려다 손목을 묶은 끈이 살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인식표가 부딪히던 익숙한 금속음이 들리지 않자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지만, 그녀는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었다.“서이안 대위.”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서류철을 펼쳤다. 마흔 안팎으로 보이는 그는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소속을 확인할 만한 표식은 달지 않았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말끔한 손톱은 이곳의 다른 무장병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안의 이름을 부르는 한국어가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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