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국가는 그녀를 버렸다. 사랑했던 남자는 그녀에게 죽음을 명령했다. 대한민국 최정예 비밀 특수부대 ‘흑랑’의 부팀장 서이안. 적진에 고립된 그날, 연인이자 지휘관 강도윤은 구조 대신 폭격을 선택했다. 전우들은 전사 처리됐고, 살아남은 이안은 반역자가 되어 지옥 같은 포로 생활을 견뎌야 했다. 5년 후,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왔다. 그녀를 배신한 남자는 뒤늦게 무너지고, 냉혹한 특수전 지휘관 권태겸은 국가가 외면한 그녀의 편에 선다. 그러나 이안이 원하는 것은 사랑도, 복직도 아니다. “내 전우들을 죽인 놈들.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아.” 국가가 지워 버린 열한 명의 이름. 그날의 진실을 되찾기 위해, 버림받은 여자 특수부대원의 전쟁이 시작된다.
Ver mais강도윤은 다른 여자를 책상 위에 앉힌 채 군복 셔츠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여자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몸을 밀착시키자 도윤은 허리를 감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고, 흐트러진 옷깃 사이로 입술을 묻었다. 두 사람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책상이 벽에 부딪혔으며, 가장자리에 놓여 있던 서류 몇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잠깐만요, 오빠. 문부터 잠가요.”
“이 시간에 누가 오겠어. 다들 출동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서이안 대위가 오면요? 약혼녀가 이런 모습 보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도윤은 여자의 뺨을 감싸 쥐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이안이는 지금 장비 점검하고 있을 거야. 새벽 출동이라 정신도 없을걸.”
그가 다시 입을 맞추자 여자는 그의 군복 깃을 잡아당겼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손을 넣으며 웃음을 흘리는 모습에 도윤 역시 몸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서이안은 반쯤 열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지만, 방 안의 두 사람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불과 두 시간 전, 도윤은 출동 전날이니 일찍 쉬라고 했다. 자신은 긴급회의 때문에 본부에 남아야 한다면서, 이번 작전만 끝나면 결혼 날짜를 정하자고도 약속했다.
그런 남자가 지금 다른 여자의 허벅지를 감싸 쥐고 있었다.
이안이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려던 순간, 여자가 도윤의 가슴을 가볍게 밀어냈다.
“정말 이번에는 정리할 거예요? 나 계속 기다리기 싫어요.”
“작전 끝나면 얘기할 거야.”
“그 여자가 안 헤어지겠다고 하면요?”
도윤은 여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웃었다.
“이안이는 내 말 잘 들어. 내가 적당히 설명하면 이해할 거야.”
그 말에 여자는 만족한 듯 그의 목을 끌어안았고, 도윤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안은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었다.
삼 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였다. 위험한 작전에 나갈 때마다 반드시 돌아오라고 말하던 사람이었고, 총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밤새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직업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믿었기에, 그와 함께할 미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목숨을 걸고 작전에 나가는 동안, 도윤은 다른 여자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장 문을 열어젖히고 두 사람을 끌어내리고 싶었다.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기에 저토록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복도 끝 전광판에 표시된 출동 시간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
출동까지 두 시간 남짓.
작전 집결지에서는 열한 명의 대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안은 구겨진 서류를 다시 펴서 봉투에 넣었다. 떨리는 손끝 때문에 종이 모서리가 몇 번이나 어긋났고, 겨우 봉투를 닫았을 때는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깊게 남아 있었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선 뒤에야 막혀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강도윤의 이름이 떠 있었다.
이안은 진동이 몇 차례 이어지는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안아, 아직 안 잤어?”
그의 숨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거칠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사라졌지만, 도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출동 준비는 다 했어?”
“본부에 있어요.”
“뭐? 지금 본부라고?”
도윤의 목소리가 순간 굳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출동 서류 때문에 잠깐 들렀어요.”
“아, 그래? 난 회의가 길어져서 아직 못 나가고 있어.”
이안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아직도 회의 중이었어요?”
“응. 이제 거의 끝나 가.”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평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번 작전 끝나면 우리 여행 가자. 네가 전에 가고 싶다고 했던 곳 있잖아.”
이안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도윤 씨,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요?”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가 곧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너한테 뭘 숨겨?”
그 태연한 목소리에 이안은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그를 추궁하기 시작하면 출동 전까지 감정을 수습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에요. 이제 가 봐야 해서 끊을게요.”
“몸조심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놔!”이안이 몸을 비틀며 저항하자 남자는 그녀의 머리를 바닥으로 눌렀다.차가운 물이 얼굴을 덮쳤다.그녀는 숨을 참은 채 버텼지만, 누군가 전투복 뒤쪽을 붙잡아 다시 끌어올렸다.“서이안.”낯선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또렷하게 불렀다.이안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닦을 새도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옆 사람에게 손짓했고, 곧이어 누군가 그녀의 팔을 뒤로 꺾어 묶었다.이안은 몸부림치며 무너진 수로 쪽을 돌아보았다.그 너머에는 정태식과 나머지 대원들이 있었다.그들이 살아 있는지, 다른 출구로 빠져나갔는지, 무너진 암석 아래에 갇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내 부하들은 어디 있어?”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만 있으면 된다.”이안의 몸이 굳었다.그 한마디로 충분했다.적들은 흑랑 전체를 생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은 서이안 하나였고, 나머지 대원들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비틀었다.“내 부하들한테 손대지 마!”남자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곧이어 이안의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시야가 흔들리면서 수로 벽과 손전등 불빛이 뒤섞였고, 그녀는 무릎이 꺾이는 것을 느꼈다.쓰러지기 직전, 전투복 안쪽에서 작은 금속 소리가 났다.오승필과 윤기석의 인식표였다.이안은 묶인 손을 움직여 가슴 쪽을 감싸려 했지만, 팔이 뒤로 꺾인 탓에 닿지 않았다.그녀의 몸이 물속으로 쓰러졌다.***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 이안은 누군가 자신의 전투복을 뒤지는 것을 느꼈다.낯선 손이 장비를 떼어 내고 주머니를 확인했으며, 허리춤에 남아 있던 칼까지 빼앗았다.그러다 가슴 안쪽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남자가 인식표 두 개를 꺼냈다.오승필.윤기석.이안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그 이름들을 알아보았다.“돌려줘…….”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남자는 인식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잠시 살펴보
한 명이 쓰러지자 나머지가 바위 뒤로 몸을 숨겼고, 그 틈에 부상자들이 차례로 좁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나 마지막 부상자를 옮기려던 순간, 적이 던진 폭발물이 수로 입구에서 터졌다.충격파가 이안을 뒤로 밀어냈다.그녀는 바위에 등을 부딪힌 채 쓰러졌고, 한동안 숨을 들이마실 수 없었다. 왼쪽 귀에서는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으며, 시야가 흔들리는 사이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대위님!”정태식이 달려오려 했지만 이안은 손을 들어 막았다.“계속 가!”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 왼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꼈다.허벅지 바깥쪽에 파편이 박혀 있었다.전투복이 찢어진 자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안은 상처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소총을 끌어당겼다.바깥에서는 다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투항하지 않으면 통로를 폭파하겠다는 위협이었다.이안은 남은 탄약을 확인했다.다섯 발.그녀는 총을 들어 수로 입구를 겨누었다.뒤쪽에서는 정태식이 마지막 부상자를 좁은 틈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대위님, 이제 오십시오!”이안은 몸을 돌려 그쪽으로 기어갔다.하지만 몇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을 때, 출구 방향에서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다.수로 전체가 흔들리더니 정태식과 대원들이 들어간 좁은 틈 위로 바위가 쏟아졌다.이안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정 상사!”흙먼지가 시야를 가렸고, 좁은 틈은 순식간에 무너진 암석으로 막혔다.이안은 기어서 그곳까지 다가갔다.“정태식! 대답해!”암석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손으로 돌을 밀어냈지만, 위쪽에서 계속 떨어지는 자갈 때문에 틈은 오히려 더 좁아졌다.“정 상사! 내 목소리 들리면 대답해!”한참 뒤,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사람의 목소리인지, 물이 바위틈을 지나가는 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이안은 귀를 벽에 대고 다시 불렀다.“살아 있으면 한 번만 두드려!”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이안은 암석에 손바닥을 대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정태식과 나머지 여섯 명
그녀는 줄을 내려 보려 했지만, 남은 줄로는 준호가 있는 바위까지 닿지 않았다. 수로 벽을 따라 내려갈 길을 찾는 동안에도 물살은 점점 거세졌고, 준호의 몸은 다시 아래쪽으로 밀려 내려갔다.“준호야…….”이안은 마지막까지 손전등을 비췄다.그러나 준호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잠시 뒤 그의 몸이 급류에 휩쓸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이안은 바위 끝에 엎드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그녀는 준호가 추락하는 모습을 보았고, 아래쪽 바위에 부딪힌 뒤 움직이지 않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살아 있을 가능성을 붙잡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본 광경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그가 마지막으로 내밀었던 사진은 이안의 손안에 구겨진 채 남아 있었다.정태식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대위님, 아래쪽 대원들이 기다립니다.”이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준호를 두고 어떻게 가.”“여기서 더 버티면 그 사람들도 죽습니다.”정태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저도 준호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은 대원들을 살려야 합니다.”이안은 손안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그녀는 천천히 사진을 전투복 안쪽에 넣었다.“……가자.”그 한마디를 꺼내는 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이안이 아래쪽 바위턱에 도착했을 때, 대원들은 부상자들을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었다.준호가 사망하면서 흑랑의 생존자는 여덟 명으로 줄었다.이안과 정태식, 중상자 세 명, 그리고 이름을 부를 힘조차 남지 않은 대원 세 명이었다.정태식은 최 상사의 상태를 확인한 뒤 이안에게 다가왔다.“대위님, 이대로는 오래 못 갑니다. 최 상사님 맥박이 약해지고 있습니다.”이안은 그의 얼굴을 살폈다.최 상사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다른 부상자들 역시 추위와 출혈 때문에 몸을 떨고 있었다.“밖으로 나가는 길은?”대원 한 명이 손전등을 들어 어둠 속을 비췄다.“수로가 계곡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들어옵니다.”멀리서 희미한 회색빛이 비치고 있었다.새벽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준호가 서 있던 곳이었다.“준호야!”이안이 달려갔지만 바위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준호는 뒤로 물러나려다 발을 헛디뎠고, 한쪽 다리가 갈라진 틈 아래로 빠져들었다. 그는 간신히 손을 뻗어 바위 모서리를 붙잡았지만, 쏟아지는 물이 몸을 계속 아래로 끌어당겼다.이안은 바닥에 엎드려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손 놓지 마!”준호가 이를 악물고 몸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물에 젖은 장갑이 미끄러지면서 팔이 조금씩 내려갔다.정태식이 달려와 이안의 허리를 붙잡았다.“대위님, 같이 끌어올리겠습니다!”두 사람이 힘을 합치자 준호의 어깨가 바위 위로 조금 올라왔다.“됐어, 준호야. 조금만 더!”그러나 그 순간 수로 뒤쪽에서 거대한 물소리가 밀려왔다.폭격으로 무너진 갱도 안쪽에 고여 있던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검은 물이 좁은 통로를 가득 채운 채 밀려왔다.“정 상사, 몸 고정해!”정태식이 바위에 발을 걸고 버텼지만, 물살은 이미 그들의 무릎을 덮쳤다.준호의 몸이 다시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이안은 손목을 더 세게 붙잡았다.“김준호! 나 봐!”준호가 고개를 들었다.“여동생 졸업식 가야지! 네가 꼭 가겠다고 했잖아!”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대위님…….”“그러니까 올라와! 여기서 끝내지 마!”그는 남은 힘을 다해 바위를 붙잡으려 했지만, 발아래에서는 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이안은 정태식에게 몸을 더 잡아당겨 달라고 외쳤다.바로 그때 위쪽 천장에서 암석 하나가 떨어졌다.정태식이 이안을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머리를 정면으로 맞았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충격에 바위 가장자리가 다시 부서졌고, 준호의 몸이 아래로 크게 흔들렸다.이안은 손목을 붙잡은 채 함께 미끄러졌다.“대위님!”정태식이 그녀의 전투복을 붙잡았다.준호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이안의 손을 바라보았다. 찢어진 장갑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손가락은 이미 감각을 잃은 듯 굳어 있었다.“대위님, 이러다 같이 떨어집니다.”“입 다물어. 올라올 생각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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