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슈퍼맨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높이?’“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남자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염구준이 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인사받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옆으로 고개를 돌린 염구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내와 딸이 없어졌다.“꼬마야, 그런데 어쩌다가 저기까지 올라가게 된 거야?”염구준이 아이에게 물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한 아저씨가 갑자기 절 저기에 매달았어요.”아직 진정되지 않았는지, 남자 아이가 울먹이며 답했다. 염구준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범인이 짐작되지 않았다. 그는 우선 멀리 가지 못했을 범인을 찾아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로브를 입은 두 인영이 손가을과 염희주를 끌고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천무산, 그는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죽을라고!”염구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가족을 건드리다니,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으리라!반면, 검은 로브 인영들은 손가을과 염희주를 재촉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빨리 움직여!”“아저씨들 나빠! 아빠가 오면 다 혼내 줄 거야!”염희주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 어린 게 아주 입이 험하구나. 얼굴에 칼자국 내줘?”두 인영 중 한 명이 악랄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했다. “그냥 아이잖아. 건드리지 마!”손가을이 기겁하며 아이를 자기 뒤로 숨겼다. “우리 아빠 최강이야! 난 아저씨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하지만 염희주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큭, 그럼 어디 너희 아빠보고 지금 오라고 해!”남자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아주 완벽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절대로 단기간 내에 염구준이 따라올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때,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트럭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지며 거리가 바짝 좁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내와 딸이 지금 납치되어 있는데, 눈에 뵈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염구준은 자신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듯, 엑셀을 밟았다. “이런! 차에서 뛰어내려!”뒤늦게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느낀 소대장이 외쳤다. 이렇게까지 염구준이 막무가내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앞 차량에 탑승했던 소대장과 부대원들은 살기 위해 창문을 통해 몸을 내던졌다.염구준의 트럭과 아우디가 충돌했다. 아우디는 찌그러진 고철덩어리가 되어 옆으로 밀려났다. 충돌 저항력이 앞도적으로 높은 허머 트럭의 위세는 대단했다. 트럭은 충돌에도 약간 범퍼만 찌그러졌을뿐, 아주 멀쩡했다. “헉!”탈출한 사람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공포에 휩싸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들은 거의 폐차가 되다시피 찌그러진 저 차량과 함께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달리던 염구준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췄다. 앞 차량과 충돌하면서도 멈추지 않던 사람이 도대체 왜?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이들은 곧 깨달았다. 그들이 앞에 끼어드는 바람에 손가을과 염희주를 태운 차가 성공적으로 염구준의 시야에서 탈출했음을. 타이어와 도로가 마찰을 일으키며 검은 타이어 자국을 남겼다. 이어서 염구준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아직 멍하니 바닥에서 못 일어난 남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내 아내와 딸을 어디로 데려갔지?”염구준이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놈을 죽여라!”남자들도 모두 극한의 수련을 받은 정예 주술사들이었다. 일대일은 자신이 없었지만, 한 명이 아니었기에 서로 협력한다면 분명 염구준을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그들은 확신했다. “말 안 할 거면 죽어!”아내와 딸이 걸린 문제였다. 염구준은 평소와 달리 전혀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었기에, 곧바로 반보천인의 힘을 사용해 순식간에 적들을 쓰러뜨렸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단 한 명, 소대장뿐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두 분을 풀어줘!”청해시에 있는 산업 중에 손씨 그룹 소속이 아닌 산업은 매우 드물었다. 그만큼 손씨 그룹은 청해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손가을과 그의 가족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주술사들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들에겐 일반인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죽여! 하나도 남김 없이!”곤래가 망설임없이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전투라고 보기 어려운,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손가을은 자신들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모습에 너무 안타까워 눈물 범벅 된 얼굴로 애원했다.“제발, 여러분. 이러지 마세요. 저희들 때문에 희생하지 말아요.”하지만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았다.“우리가 이렇게 먹고 살 수 있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사람들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손가을을 위로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기업, 추운 겨울 두꺼운 이불 하나 없을 때 보내준 따스함,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리라 사람들은 다짐했다.“으악!”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저항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최소 중상, 많게는 사망, 모두 심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불을 만난 불나방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뛰어들고 또 뛰어들었다. 손가을을 제발 그만하라며 절규했지만, 이들은 멈출 줄 몰랐다. 염희주 또한 이들의 희생을 가슴 깊이 새기며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일반인, 결국 주술사들의 승리로 끝났다. 손가을과 염희주는 강제로 미리 준비된 유람선 쪽으로 끌려갔다.“젠장, 뭔 미친놈들도 아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니!”곤래가 손에 묻은 피를 옷에 닦으며 욕을 퍼부었다. 이런 희생정신은 그와 같이 이기적인 주술사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대 이때, 염구준의 트럭이 항구 입구로 들어섰다. 그는 차를 멈춘 즉시 곧바로 유람선을 향해 날다시피 달렸다. 하지만 유람선은 이미 출발했고, 곤래는 조금씩
동시에 자동차 지붕이 날아가며 염구준이 높이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의 손에 이상한 것이 들려 있었다. 마치 앉아 있던 좌석을 뜯은 듯, 검고 네모난 무언가가 허공을 나르며 유람선과 바다로 추락하고 있는 트럭 사이에 던져졌다.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기 위해, 공간을 메꿀 수 있는 디딤돌을 좌석 쿠션으로 대신한 것이다. 염구준은 허공을 뛰어오른 뒤, 유람선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중간에 있는 좌석 쿠션을 한 번 더 밟아 기어이 유람선과 가까워졌다. 이제 정말 목표지가 코 닿을 거리!이 모든 과정은 그가 부두를 향해 돌진한 순간부터 미리 계획한 것이었다. “곤래 형님, 어떻게 해요? 저 미친놈이 진짜 넘어왔어요!”사람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거렸다. “모두 난간 쪽으로 간다! 절대로 배에 올라타지 못하게 해!”그러자 즉시 모두 난간 쪽, 염구준이 날아오고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곤래 본인은 최대한 뒤쪽, 멀리 물러섰다.“당장 막아!”긴장된 상황 속, 사람들은 곤래가 뒤로 도망간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왔다! 염구준이 점점 가까워졌다. 주술사들은 일제히 경계를 풀지 않고 공격태세를 취했다. 상대는 공중에 떠 있는 불안정한 상황, 절대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가장 좋은 기회였다! “흥, 멍청이들. 내가 당해줄 것 같아?”적의 의도를 파악한 염구준이 냉소를 지었다. 이런 전술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유람선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강력한 기운이 담긴 주먹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젠장! 우리의 공격이 놈에게 닿지 않는다!”몇몇이 상황을 파악하곤 외쳤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주술사들은 한순간에 날아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이게 바로 레벨 차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경지!“긴말 안 하겠다. 내 아내와 딸, 풀어줘. 그러면 너희들은 온전한 시체만이라도 가져갈 수 있을 거야.”염구준이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이러면 안 되지. 말 그대로 우리가
이 모든 것이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났다.“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염구준이 부드럽게 말하며, 손가을과 딸이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제야 비로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제때에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둘이 주술사들의 영역에 끌려갔다면 그 짐승들이 무슨 짓 할지 몰랐다. “역시 아빠, 세상에서 제일 최고예요!”염희주가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하지만 피가 낭자한 현장, 염구준은 혹시나 딸이 보게 될까 얼른 자제했다.“여기서 이러지 말고, 엄마랑 저쪽 가서 바다 좀 보고 있어.”양팔이 잘린 채 피 흘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어린아이에겐 너무나도 잔인했다. 손가을도 상황을 이해하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딸을 데리고 멀찍이 떨어졌다.그렇게 잠시 뒤,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그제야 염구준은 얼굴을 굳히며 곤래 앞에 섰다. “자, 이제 말해. 왜 내 딸과 아내를 납치했지?”“하, 뭘 당연한 걸 물어? 널 천무산으로 유인해 죽이려고 그랬지.”곤래가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말했다.“난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데, 너희는 원수로 갚는구나!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군!”염구준이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반드시 이 원한을 갚으리라 결심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다고? 그건 누가 할 소리. 너 때문에 천무산에서 키운 성충 두 마리도 죽었지, 산주님이 얼마나 노여워했는 줄 알아? 천무산을 적으로 돌린 이상, 넌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어!”어차피 죽을 목숨, 곤래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며 염구준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려 했다. 천무산 같은 거대한 세력이 움직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 세상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리라!“천무산? 별 대단하지도 않는 놈들이, 소란스럽게 굴어!”하지만 염구준은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그래 어디 주둥아리 실컷 놀려. 하지만 곧 실감하게 될 거니까!”곤래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이제 말하는 것도 힘겨웠다. 염구준이 아무리 강해도 한 명, 혼자서는 결코 천무산을 상대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
“해독제 내놔.”염구준은 덧붙이는 말없이 바로 용건을 꺼냈다.“선생님, 같은 주술사라고 해서 서로의 독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만든 독이 아닌 이상 해독하기 어렵습니다.”한 주술사가 급하게 해명했다.“정말 방법이 없어?”염구준이 차가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정말 없습니다. 타인의 만든 독을 해독할 줄 아는 주술사는 없어요. 아무리 경험이 많은 주술사가 와도 마찬가지입니다.”주술사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죽어!”염구준이 냉혹하게 말하며 남은 주술사들을 모조리 죽였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해독제를 찾을 수 없다니, 말도 안 된다. 신무 옥패에도 세상 모든 만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이룬다는 문구가 있다. 반드시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괴로워하고 있을 딸을 생각하니, 염구준은 마음이 괴로웠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이제마한테 걸려온 전화였다.“전주님, 용필의 상태는 많이 진정되었지만, 완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그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죠.”염구준은 이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독에 중독된 딸을 떠올리며, 그는 부디 이제마가 치료할 방법이 있길 바랐다. 곧이어 유람선이 항구로 다시 돌아왔다. 염구준은 잊지 않고 사람을 불러 부두에 있는 부상자들을 모두 병원으로 옮기게 했다. 치백 병원.염구준이 잠든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이 독, 치료 가능할까요?”처음보는 절박한 표정, 하지만 이제마는 호언장담할 수 없었다.“치료할 수는 있지만, 못해도 일 년은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그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을 겁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거예요.”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깨질까,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고통스러워할 모습을 생각하니, 염구준은 가슴이 찢어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주술사가 만들어낸 독에 능통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수안이었다. 염구준은 복도로
그렇게 수안의 비명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염구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음에 확실했다. 그는 손가을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한 뒤, 곧바로 병실을 나와 무리안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속은 딸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무리안, 전갈문.적의 침공을 받고 두시간, 고위층을 포함한 전갈문 사람들은 대나무 숲에 고립되었다. “문주님, 어떻게 하죠?”피투성이가 된 한 전갈문 장로가 물었다.“일단 기다려 보세요!”수안이 가부좌를 틀며 최대한 빠르게 상처를 회복하려 노력했다. 공격한 이들은 천면 가문 고수들로, 수안은 좀 전에 변장술로 위장해 접근해온 사람에 의해 옆구리에 칼로 베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이 변장술에 당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전갈문 대다수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들은 익숙한 얼굴로 변장해, 순식간에 기습을 해왔다. 전면전을 할 차례도 없었다. “여기서 뭐해? 죽여주길 기다리는 거야?”이때, 한 남자가 여러 사람들을 대동한 채 크게 웃으며 대나무 숲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의 이름은 천면진, 천면색용의 아버지로 천면 가문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대나무 숲 미로를 뚫었지?”전갈문 장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대나무 숲 미로는 변화무쌍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어 전갈문 제자들조차 가끔 길을 잃을 정도였다. 그런데 외부인이 무슨 수로 이 짧은 시간 내에 뚫고 들어왔을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하하, 뭘 당연한 걸 물어? 당연히 너희 중에 우리가 심어놓은 내통자가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그 말을 들은 전갈문 사람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지금 남아 있는 건 대부분 전갈문에 오래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배신자가 있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이건 천면진의 함정이었다. 전투 없이, 말 한마디만으로 내부 분열을 일으킬 수
염구준이 고개를 돌려 처음보는 남자, 천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넌 또 뭐야?”그 말을 들은 천면진은 고개를 빳빳이 들며 오만하게 말했다.“나? 나는 천면 가문의 천면진이다!”외부 사람들은 그를 잘 모를지라도, 무리안에선 꽤 유명한 인사였다. “그래서?”염구준이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그에겐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천면 가문 사람이기만 하면 됐다. “….”그의 태도에 천면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었기 때문이다. 적과 부하들이 모두 있는 곳에서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그의 명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모습과도 같았다. 하지만 염구준은 그러던 말던, 신경쓰지 않았다. 그에겐 두려움이 없었다. 상대가 천면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염구준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닥치고 전형 상태에서 어떻게 다시 정상인으로 돌릴 수 있는지나 말해.”“전형?”천면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번뜩이며 염구준을 바라봤다.“너지? 내 아들을 죽이고 전형을 빼앗아 간 놈!”그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두 눈이 핏발이 서며 살기가 넘실거렸다.아들을 죽인 원수, 결코 용서치 않으리!“빼앗아갔다고?”염구준은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이 정도로 뻔뻔할 수가!“그래, 빼앗아갔지. 이 날강도 같은 놈아! 감히 내 물건을 빼앗아가고도 코빼기도 안 비쳐?”천면진이 큰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염구준을 향해 맹비난을 날렸다. “그래서, 어쩌라고? 원하는 게 뭔 데?”어차피 대화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상대, 염구준은 굳이 입 아프게 그와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 말을 끊었다. 강제로 용필을 전형으로 만들어 그가 움직이게끔 만든 상대가 도리어 비난을 쏟아 내다니!“전형을 넘기고, 스스로 무공을 전폐해.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천면진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다. 그의 가장 큰 목적은 전형을 되찾는 것이었고, 그 다음이
염구준은 피식하며 비웃을 뿐, 두려운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수백 명의 무리는 그런 염구준을 멍청이를 보는 것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많은 깡패들이 모였는데 한 명이 한 대만 쳐도 상대방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헤르빈은 단단히 뚜껑이 열렸다.평소 타인이 벌벌 떠는 모습을 제일 좋아했는데 염구준이 그를 무시해서 몹시 불쾌했다.“저놈의 사지를 잘라내고 숨만 쉬게 만들어!”“사지를 잘라!”한 무리 오합지졸이 고함을 지르며 기세등등하게 몰려왔다.순식간에 벌떼처럼 달려들자 부두와 선박에서 지켜보던 행인들이 수근거리면서 탄식했다.“에휴, 저 병신은 뭐 하러 건드렸어.”“이 부두에서 또 망령이 한 명 늘어났네.”“헤르빈에게 용감하게 맞서는 걸 봐서 이따가 시체를 수습해 주자.”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염구준이 살아남지 못한다고 확신했다.왜냐면 염구준이 움직이지 않고 기운도 끌어올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곧 도착하겠네.”쿵!그 순간, 갑자기 여러 사람이 무리에서 튀어나와 닥치는 대로 깡패들을 공격했다.최전방에 나서서 공을 세우려던 깡패들은 어느 하나 살아남지 않았다.“한 발짝만 나오면 바로 죽는다!”“감히 염 선생을 공격해? 죽고 싶어?”몇몇 무술인이 염구준의 앞을 막으며 단번에 상황을 통제했다.만약 그들이 협박하지 않고 진짜로 싸운다면 이 깡패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않을 것이다.“때마침 잘 오셨어요.”염구준은 앞에 나타난 일행을 보며 한마디했다.뜻밖에도 아타와 노신기 외에 대어당, 안설홍, 레온의 가주까지 나설 줄은 몰랐다.솔직히 그들과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나선 것이 조금 의아했다.“염 선생, 부디 우리 가문을 위해 복수해 주십시오!”일행은 갑자기 돌아서서 무릎을 꿇었다.염구준은 그들의 눈빛에서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것을 보았다.“스텔라성이 공격했어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유동심연에서 스텔라성이 큰 손해를 보았지만 우두머리 성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노신기는 두 눈을 붉히며 주먹을 꽉 쥐
맨 앞에 선 남자는 눈 한쪽만 안대를 하고 왼손에 쇠고리를 낀 흉악하게 생긴 털북숭이였다.“헤르빈! 담배 한 대 피우시죠.”그 남자를 본 선장은 흠칫 놀라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담배를 건넸다.이곳의 부두는 크지 않지만 헤르빈의 말이라면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형님, 벌써 돌아왔어? 큰 돈을 벌 좋은 일이 생겼나 보네. 나도 껴줘.”헤르빈은 담배를 받으면서 다정하게 불렀다.솔직히 말해서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수작이었다.“무슨 말씀입니까? 선박이 고장 나서 수리하려고 일직 돌아왔어요. 정말 재수없기도 하죠.”촤아악!그런데 선장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헤르빈이 뺨을 날리는 것이었다.그는 가식적인 웃음을 거두고 싸늘하게 협박했다.“영감탱이, 좋게 말할 때 다 불어. 절반씩 이윤을 나누면 용서해 줄게. 아니면… 흥!”이 구역은 각 세력들이 관리하고 있기에 제도나 규칙 같은 것은 없고, 주먹이 강한 것이 일인자였다.헤르빈이 날뛰고 있을 때 누군가 앞에서 짜증스럽게 말했다.“비켜. 길을 막았잖아!”“이 자식이 죽고 싶어? 감히 헤르빈 님한테 그 따위로 말해?”청자켓을 입은 부하가 칼을 들고 염구준을 찌르려고 달려들었다.그들은 평소 나약한 어부들을 괴롭히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 부두에서 자신들이 일인자이고 자신들의 말이 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반보천인 무술인 앞에서 이렇게 나댄다면 바로 모가지가 날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쿵!아니나 다를까, 칼이 닿기 전에 염구준은 기운을 발사해 상대방을 살해했다.“헤… 헤르빈 님, 이 자식 죽었어요.”다른 부하가 앞으로 나와 살펴보더니 벌벌 떨며 소리를 질렀다.지금까지 온갖 횡포를 일삼던 그들은 처음으로 살해당하자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짝!“무슨 개소리야?”헤르빈은 부하의 뺨을 쳐서 경고하고는 염구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쳐들었다.“내 사람을 죽였으니까 10억 달러 배상하고 한쪽 손을 잘라.”그는 눈앞의 남자가 전주라 확신하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염구준이 시큰둥하게 대답
염구준은 검갑을 메고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그의 몸에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방금 어떻게 복면인을 죽였는지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다, 당신은 누구야?”우두머리는 버벅거리며 물었다.분명 상대방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없는데,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저절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알 거 없고, 했던 말은 다시 반복하지 않아.”염구준이 주변을 빙 둘러보며 복면인을 째려보았더니, 대장 외에 전부 주먹질만 할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비켜. 아니면 바로 죽일 거야.”우두머리는 떨리는 손으로 칼을 로사의 목에 겨누었다.“하.”쿵!염구준은 피식 웃고는 갑자기 기운을 발사해 복면인들을 살해했다.뒤로 날아간 우두머리는 무공 실력이 조금 있다고 간신히 목숨이 붙어 있었다.“당신 반보천인이야?”이제야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운을 감지한 우두머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맞아. 나 반보천인이야!”솔직히 염구준은 그들과의 싸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대처했을 뿐이었다.원래 기운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복면인들이 기어코 죽음을 자초했다.“악!”중상을 입은 우두머리는 갑자기 충격을 먹고 기절했다.난생 처음으로 반보천인을 봤는데 그것도 괜히 건드려서 죽음을 당했으니 심정이 참 아이러니했다.염구준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복면인들은 전부 죽고 싸움은 끝났다.선장과 선원들은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여기 정리하세요.”염구준은 태연하게 뱃머리 쪽으로 올라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부두를 쳐다보았다.곧 육지에 오르게 되니 더는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랐다.로사는 고통을 참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선배님, 감사합니다!”아직 무술계에 발을 들이지 않아 반보천인이 어떤 레벨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아주 강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내 이름은 염구준이야. 용하 청해에 살아.”방금 소녀의 절묘한 싸움 실력을 보고 염구준은 자신의 이름을 알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만약 무술계에서 성장한다
선박이 부두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검정 옷 차림에 복면을 쓴 일행이 갑판 위에 나타났다.염구준은 그들의 기운을 감지했다.가장 강한 우두머리는 종사 경지에 도달했는데 한 주먹거리도 안 되었다.이런 실력이라면 뒤에 있는 세력도 강하지 않을 것이다.“여러분, 저희 선박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선장이 억지로 웃으면서 다가가 물었다.저들의 옷차림새만 봐도 좋은 일로 찾아온 것 같지 않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스윽!복면인이 번쩍이는 칼을 선장의 목에 겨누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암살녀는 어디 있어? 당장 내놔.”곁에 있던 염구준은 일단 나서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역시 그의 예상대로 일행은 로사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누구요?”선장은 처음 듣는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잔뜩 당황했다.“죽고 싶어?”일행은 더는 묻지 않고 칼로 선장의 목을 베려고 했다.위기의 찰나에 염구준이 나서려고 할 때, 마침 로사가 갑판에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나 여기 있어. 무고한 사람들은 해치지 마!”자발적으로 나서서 혼자 상대하려고 하다니, 염구준은 소녀의 용기에 속으로 감탄했다.우두머리는 목표물이 나타나자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며 선장을 옆으로 내팽개쳤다.“저 년을 생포해!”열 명 넘는 남자가 몽둥이를 꺼내더니 서로 동선을 맞추며 빠른 속도로 공격했다.하지만 3분도 되지 않아서 로사의 손에 전부 살해당했다.소녀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염구준이 한마디 평가했다.“무술인이 된다면 로사는 아마 무적의 존재가 되겠네.”거의 완벽한 소녀의 동작에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었다.“병신 같은 놈들!”뚜껑이 열린 우두머리는 욕을 하고는 직접 칼을 들고 공격했다.탁!하지만 강력한 남자의 힘으로 로사는 단번에 패배하고 말았다.일반인과 무술인은 힘부터 차원이 달랐다.잇따른 공격에 로사는 구석으로 몰려 피할 길이 없었다.“죽어!”로사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더니 몸을 특별한 모양으로 비틀고 맹렬하게 비수를 무찔렀다.그런데 비수는 우두머리의 가슴을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