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미친듯이 웃더니 변태처럼 혀로 손가락에 묻은 피를 핥았다.국주는 전혀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숨을 헐떡이며 흥분했다.“이것이 싸움이지. 이런 느낌 참 오랜만이야.”거의 천인경에 도달한 고수들 중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염구준은 옆에서 지켜볼 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아니, 참여하면 안 되었다.강자들의 싸움에 누가 간섭하는 것은 모욕이나 마찬가지니까.국주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예전의 지존 용신이 돌아온 것이 실감났다.“하!”국주는 다시 공격하며 힘차게 외쳤다.음파가 울리며 음속 장벽을 뚫었다.속도가 너무 빨랐다.천인 경지에 도달하는 여우도 그림자가 스쳐간 흔적만 따라잡을 뿐이었다.‘방금 나한테 당했던 사람 맞아?’그 사이에 국주가 또 공격해왔다.여우는 강력한 힘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두 손에 혼신의 힘을 모아 막아냈다.쿵!두 손으로 가볍게 일장을 받아내자 거대한 에너지가 파동을 일으켰다.‘막았어.’여우는 속으로 기뻐하며 다행이라 여겼다.곧이어 수상함을 느끼고 앞을 보자, 모래주머니만 한 주먹이 다가와 식겁했다.그런데 두 손은 쓸 수 없어 얼굴로 받아쳤다.퍽!얼굴을 커다란 주먹에 정통으로 맞았더니 반쪽 얼굴이 그을린 듯 시커멓게 되었다.웅웅!공포스러운 공격을 감지한 여우는 뇌액까지 터져 나올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얘졌다.몸뚱이는 이미 멀리 날아간 뒤였다.국주는 신속하게 따라가 전기가 감도는 주먹으로 맹렬하게 공격했다.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니 당연히 적에게 숨돌릴 기회를 주면 안 되었다.‘넌 끝이야.’염구준은 전투 상황을 보며 이번 공격이 끝나면 여우가 중상을 입을 거라 생각했다.국주는 여전히 지존의 용신으로서 그동안 실력이 전혀 줄지 않았다.쿵!국주가 거센 주먹을 날리자 천둥번개 소리가 울리면서 여우를 저 멀리 쓰러트렸다.“너무 약해서 진이 빠지네요.”국주는 염구준을 향해 시시하다는 투로 말했다.그 말 뜻을 알아차린 염구준은 받아 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난 국주와 대결하지 않아
이런 물건은 처음이라 부서질 때까지 계속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순식간에 수백 개 주먹을 날렸지만 빛이 조금 흐려질 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소용없어요. 이미 늦었어요.”뒤에서 국주가 다가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이건 뭡니까?”염구준이 공격을 멈추고 물었다.“창용칠숙입니다.”“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세요.”창용칠숙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했다.결계 안에서 여우가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은 걸 보고서야 국주가 오래된 전설에 대해 얘기했다.“‘칠숙이 반짝이면 창용이 나타나니, 인간계에 제왕이 탄생할 것이다.’ 예전에 이런 말이 널리 알려졌어요. 칠숙은 천추, 천기, 천선, 천권, 옥형, 개양, 욕광. 북두칠성을 가리키고 창용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용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큰뱀이라 했어요. 근데 제 생각엔 신비한 힘인 것 같아요.”“창용대제는 칠성이 빛날 때 태어나 스스로 하늘에 선택받은 자라고 여겨서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거예요.”설명을 듣고서야 염구준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고 계속 질문했다.“그렇군요. 그럼 여우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거죠?”제단에서 여우는 무릎을 꿇다가 또 큰절을 올렸다가 반복하면서 입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전에 정상적으로 말하는 걸 보지 않았다면 모두 미친놈이라 여겼을 것이다.국주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특수한 방법으로 창용대제의 힘을 착취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같은데요.”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국주는 등골이 오싹했다.‘여우가 정말 천인경에 돌파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여 염구준을 재촉하듯 말했다.“빨리 용국으로 돌아가세요!”“혼자 감당하시게요? 웃기지 마세요.”염구준은 국주의 생각을 알아채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국주가 남아서 여우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염구준은 용국을 지키라는 뜻이다.서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국주도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좋습니다. 저놈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우리 같이 죽
“젠장! 커억!”국주는 다시 싸우고 싶었지만 목을 타고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제가 싸울게요.”목소리는 그 자리에 났지만 사람은 진작에 사라진 뒤였다.염구준이 벌써 돌진했다.여우의 야심은 흑풍보다 커서 절대 살려두면 안 되었다.“잘 왔어. 네 놈의 사지를 잘라서 담가버릴 것이다.”여우는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워 기세 사납게 공격해왔다.‘놈이 온다!’염구준은 화염에 휩싸인 오른팔을 뒤로 가져가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고수들은 한 초식에 전력을 다하기 때문이다.여우는 공격 궤적을 예측하고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심장을 향해 공격했다.퍽!그런데 손이 닿기 전에 복부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뒤로 날아가버렸다.손은 가짜 동작이고 발 공격이 진짜였다.안타깝게도 늦게 알아버려서 당하고 말았다.“쳇, 실력은 올랐는데 대가리는 여전히 둔하네.”염구준이 조소를 날리며 계속 쫓았다.“그 정도 힘으로 아직 부족해!”여우는 방어를 포기하고 기꺼이 맞으면서 큰 소리를 쳤다.시체화에 창용의 힘을 더하니 몸이 놀라울 정도로 튼튼해졌다. “계속 날뛰어!”염구준은 화가 치밀어 올라 모든 힘을 오른 주먹에 실어 여우의 가슴을 공격했다.‘젠장!’이 주먹은 여우를 두렵게 만들었다.하지만 전에 계속 비아냥거리느라 방어하지 않았으니 몸뚱이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퍽!주먹을 날리자 여우의 가슴이 움푹하게 패여 들어가더니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겨버렸다.용국의 고대무학에서 칠상권의 오묘한 부분은 칠권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위력이 강한 반면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염구준의 입과 콧구멍에서 벌건 피가 흘렀다.여우는 뒤로 물러나다 멈췄을 뿐 쓰러지지는 않았다.시체화가 된 그는 더는 인간이 아니었다.몇 년만 더 지나면 창용대제처럼 의식을 잃고 걸어 다니는 산송장이 될 것이다.“내 몸을 망가트렸어? 제기랄!”여우가 격분하자 기운이 전보다 3할은 강해졌다.그는 손가락을 세워 또 공격했다.‘뭐야, 무기가 없잖아.’염구준은 뒤로 물러나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두 번 찔러서 여우의 절반 투력을 소모하여 역전승했다.“더 쑤셔줘?”염구준은 발로 툭 차버리면서 놀렸다.“그래서 뭐? 나 시체화가 되어서 죽이지 못해.”여우는 졌지만 굴복하지 않았다.분명 천인경에 접근했는데 어째서 이런 놈에게 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래?”염구준은 오른손으로 옥잠을 쥐고 왼손으로 결검을 꼬집었다.그러자 검의가 움직이면서 기운이 급속히 상승했다.무서운 위압감이 두 사람을 맴돌았다.“매화검법. 쇄산!”염구준은 힘을 축적하고 두 다리를 번적 뛰어 앞으로 돌진했다.쿵!검기가 기승을 부리며 다가오자 여우는 피할 겨를도 없이 몸 절반이 부서졌다.“더럽게 딱딱하네!”염구준이 마비된 팔을 흔들더니 손수건을 꺼내 옥잠을 닦았다.나중에 국주에게 돌려줘야 했다.“이… 이럴 리가.”여우는 더듬더듬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그가 죽었으니 모든 일은 끝났다.국주는 모든 사람을 이끌고 바다 위로 올라갔다.수많은 군함이 대기하고 있었다.국주가 후수를 남긴 모양이다.“출항! 집으로 돌아가자.”국주가 손을 흔들자 군함이 천천히 이동했다.햇빛은 화살 같고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염구준이 돌아온 지 벌써 2개월이 지났다.염희주의 8살 생일이 다가오면서 평범했던 삶이 파란만장해졌다.청해에서 가장 호화로운 6성급 호텔에서 손씨 그룹 공주님의 생일 잔치가 열렸다.손가을은 겸손하게 호텔 전체를 빌리지 않았다.입구에서 염구준의 가족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용 대표님, 안으로 드시죠.”익숙한 얼굴을 보자 염구준은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바로 용준영이다.‘용 대표님?’그 호칭에 용준영은 몸을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용준영이라고 불러주세요.”염구준의 앞에서 그는 아무도 아니라는 눈치는 있었다.“다 손님이니 그런 말은 삼가세요.”염구준은 직접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는 이상 허세는 부리지 않기로 했다.오늘은 좋은 아빠가 되어서 딸의 생일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하하, 무
여자아이는 염희주의 가장 친한 친구 윤시아다.“나 화 안냈어.”염희주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쏘아봤다.손에 든 유리구슬이 마찰하는 소리까지 들리는데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 틀림없었다.“우리 공주님 기분이 왜 안 좋아?”용준영은 자신의 비즈니스 경험으로 어린아이의 마음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필경 아이들은 희로애락이 얼굴에 다 드러나니까.“준영 아저씨!”염희주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착하지. 생일 선물이야.”용준영은 다정하게 말하며 손에 든 상자를 건넸다.“고마워요.”염희주는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선물을 받았다.방금 화난 표정이 금세 사라졌다.선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하하하. 네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아저씨한테 말해봐. 누가 널 괴롭혔어? 아저씨가 대신 혼내줄게.”용준영은 의자를 당겨 옆에 앉으며 물었다.그는 염구준과 파트너이자 또 상사와 부하 관계라서 조금은 복잡했다.하지만 염희주는 친조카 같아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마음이 안쓰러웠다.“쟤들이… 욱!”윤시아가 말하려는 찰나, 염희주가 입을 틀어막고는 먼저 말했다.“아저씨.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 괜찮아요.”그 일 이후로, 염희주는 용준영에게 더는 속심말을 하지 않았다.반년 전, 초등학교 근처에서 어수룩하게 생긴 남자가 하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집적거렸다.염희주가 생각없이 그 사실을 용준영에게 말한 것이다.그런데 어수룩하게 생긴 남자가 한동안 안 보이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두 팔을 잃어버렸다.염희주는 나이가 어리지만 용준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무 잔인해서 나중에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용준영에게 이르지 못했었다.“그래. 희주가 말하고 싶으면 하고,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용준영은 그러려니 하고 따지지 않았다.그때 통통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손에 커다란 트랜스포머 장난감을 들고 다가왔다.뒤에 일곱 명쯤 되는
툭!“이 녀석아. 아빠는 그건 거 안 먹어.”정장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인파를 뚫고 나오더니 김준우의 뒤통수를 툭 쳤다.“아빠!”김준우는 아픈지 눈물이 핑 돌다가 이내 애교를 부렸다.“얘가 날 괴롭혔어요. 아빠가 대신 혼내줘요.”김준우의 아버지는 일찍 해외에 사업하러 가서 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이제 사업에 성공해서 돌아왔으니 조금은 으스대기 시작했다.“얘야. 내 아들한테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해줄게.”김준우 아버지는 이유도 묻지 않고 명령투로 말했다.“싫어요. 저 잘못한 거 없어요.”고집이 센 염희주는 어른 앞에서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 부분은 염구준의 성격을 닮은 것 같다.“집이 가난하면 상황에 맞게 살아야지. 너희 부모도 회사를 차렸다고 들었는데 그냥 잡화점이나 다름없겠지.”“네 손에 거 그거 선물이야? 아저씨한테 보여줘.”김준우 아버지는 고개를 치켜들고 거만하게 말했다.본인은 우월감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어린아이 앞에서 으스대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보였다.“열면 되죠?”염희주는 씩씩거리며 상자를 열고 풍경 하나를 꺼냈다.“와, 너무 예쁘다.”윤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하하. 유리로 만든 풍경은 노점상에서도 팔아.”그것을 본 김준우 아버지는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크게 웃었다.전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로 말이다.“풉!”그 말을 듣던 용준영는 방금 마신 찻물에 사레가 걸려 그만 뿜어버렸다.‘유리로 만들었다고? 멍청한 놈, 그거 얼음 비취야!’마음이 몹시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그래서 뭐요? 난 마음에 들어요.”염희주는 기세 당당하게 비취 풍경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너더러 선물을 보여달라는 건 우리 차이를 똑똑히 알려주기 위해서야. 어떤 사람은 네가 건드릴 수 없거든.”“근데 네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내가 네 아빠 대신 교육을 해야겠어. 아니면 앞으로 나쁜 길에 들어설 테니.”정의로운 척하는 김준우 아버지의 표정은 정말
한마디 말이면 김준우의 아버지는 바로 죽음이다.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는 염희주는 조금은 얼떨떨했다.“아저씨. 그만해요.”그 말에 다들 선뜻 나서지 못했다.어쨌든 오늘 생일파티의 주인공은 염희주니까.그때 손님들을 다 맞이한 염구준이 우렁찬 목소리로 물으면서 들어왔다.“생일파티에 와서 다들 뭐 하십니까?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겼나요?”불안한 예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구준 씨. 손 대표님!”염구준을 본 손님들은 모두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용준영이 다가가 방금 발생한 일들을 그대로 전했다.“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염구준은 피식 웃으면서 앞으로 다가가려 했다.“여보, 그만둬.”손가을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며 설득했다.“알았어. 당신 말 들을게.”염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우리 마누라 말을 누가 감히 거역해.’그는 돌아서서 손님들을 향해 다시 우렁차게 말했다.“다들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으세요!”“잠깐만요. 아직 얘기 끝나지 않았어요.”그런데 김준우 아버지는 좋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염구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확실하게 말하면 만족해 드릴게요.”주변 사람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난 듯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염구준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당신 딸더러 내 아들한테 사과하라하고, 1억의 정신적 피해보상을 내놔요.”김준우 아버지는 어처구니없는 조건을 내걸었다.“하. 내 딸이 잘못을 인정하면 내가 알아서 교육할게요. 근데 잘못이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게 두면 아빠가 아니죠.”염구준은 딸의 곁에 다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 내가 또 사고 쳤어요.”염희주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괜찮아. 아빠가 독수리를 안 먹는다고 한 것만으로도 어디야.”염구준은 상대방을 보며 비웃었다.‘날 엿먹이는 거야?’김준우 아버지는 찔렸는지 고개를 숙여 멍청한 아들을 보며 인상을 굳혔다.“사과하지 않으면 당신 회사
“컥!”참지 못한 염구준은 상대방 목을 움켜쥐고 닭을 잡은 듯 천천히 들어올렸다.‘좋아. 바로 지금이야!’김준우 아버지는 기회를 잡았다 생각하고 힘을 주어 염구준을 공격했다.‘뭐야.’하지만 여러 번이나 힘을 모았지만 어떤 힘에 분산되어 전혀 공격할 수 없었다.의심스러웠다.눈앞의 사람을 관찰할 때 분명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강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케리를 놔줘요. 케리는 해외 국적이라 해치면 안 돼요.”안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남편이 해외 국적이라는 카드를 내세워 말렸다.해외에는 고수들이 많아 용국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까 걱정되었다.“전혀 두렵지 않은데요.”염구준은 큰소리로 외치며 케리를 구석으로 내던졌다.“뭐야 외국 사람과 한통속인가? 만약 그들이 쳐들어온다면 당신은 앞잡이나 다름없어.”강력하게 대처한 후 안나는 무서워 친척들을 데리고 예약석으로 돌아갔다.어떤 사람들은 꼭 얻어맞아야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생일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염구준은 잡놈을 해결하고 다시 예약좌석으로 돌아와 손님들에게 앉으라고 권했다.한쪽 구석에 박힌 케리는 표독한 눈빛으로 염구준을 쏘아보며 궁시렁거렸다.“감히 나를 건드리다니. 너와 네 회사는 끝났어.”크게 말하면 또 얻어맞을까 봐 본인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그는 소인배와 같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앞에서 주례자가 염구준의 요구에 따라 개막사를 생략하고 간단하게 발표했다.“희주 아가씨 생일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음식을 올리세요.”말이 떨어지자 종업원들이 카트에 향기 좋은 음식들을 가득 담고 나타났다.음식마다 가격이 싸지 않았다.아직 음식이 오르지 않아 누구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그때 한 사람이 일어섰다.“방금 소인배 때문에 생일 선물을 못 줬군. 카드에 10억 있어. 맛있는 거 사 먹어.”뚱뚱한 중년 남자가 비밀번호가 적힌 카드 한 장을 건넸다.“감사합니다. 아저씨.”염희주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았다.한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