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은 자료를 받아 넘겨보았다.여성의 나이는 25세로 한창 젊고 매력적인 나이었다.다른 것도 그렇고 학력이나 경력 등도 너무 평범했기에 그는 직접 더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덮고 배주현을 향해 걸어갔다.작은 몸짓 하나에도 그녀에게서는 심장이 떨릴 만큼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배주현은 자신을 향해 오는 염구준을 보자마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유혹적인 눈빛을 보냈다.‘미인계인가?’‘아닌데?’염구준은 처음엔 상대방이 미인계를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곧 그게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이 때문에 그는 배주현이 점점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다들 뭐 하는 겁니까? 지금 근무시간 아닌가요? 일들 하러 가시죠.”염구준은 데스크로 걸어가 직원들을 흩어지게 했다. 청해시에서 가장 큰 기업의 직원들이 데스크에 떼로 몰려 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서였다.“염 선생님!”염구준을 본 직원들은 대부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물러났다.손씨 그룹에서 염구준의 영향력은 손가을에 못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얘기만 나누는 것 뿐인데요.”하지만 몇몇 직원들은 여전히 데스크 앞에 버티고 서서 배주현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모습을 보아 심하게 중독된 것 같았다.“집에 가서 반성하라고 하고 다 끌어내세요.”염구준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바로 입구에 있는 보안 요원들을 향해 지시했다.이미 판단력이 흐려진 사람들과 말싸움을 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었다.“당신이 뭔데 우리를 내쫓는 거야? 대화하는 건 우리의 자유야.”“맞아! 난 주현 씨랑 이야기할 거야. 아무도 날 말릴 순 없어!”이에 남아 있던 몇몇 직원들은 갑자기 보안 요원들을 째려보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퍽!“쓸데없는 소리하긴. 네들 안 자른 것만으로도 염 선생님이 봐주신 거야.”보안을 책임진 호찬 등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가서 전부 제압한 뒤, 강제로 건물 밖으로 끌고 나갔다.만약 그들의 의지대로 이런 행동을 한 거였다면 그들은 전부 해고 당했을 것이다.이로부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낯익은 얼굴도 보였는데, 바로 손태석이었다.“구준아, 대체 뭐 하는 짓이야?”장인어른의 질책에 염구준은 평범한 외모의 여자가 이렇게까지 매력이 크다는 것에 놀랐다.그렇다고 유혹을 당한 사람들을 전부 해고 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그들은 단순히 배주현에게 홀렸을 뿐, 엄밀히 말하면 큰 잘못을 한 건 아니었다.배주현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눈물을 살짝 머금으며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러분이 절 이렇게 아껴주시다니, 정말 감동이에요.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그녀의 가녀린 모습에, 남자 직원들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보호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다.배주현은 떠날 생각이 없어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직원들은 더욱 다급해하며 그녀를 말렸다.‘대단한 수법이네.’염구준은 속으로 놀라며 생각했다. 방금 전에 십몇초 눈을 마주친 것으로 그 또한 그녀에게 빠져들 뻔 해서였다.단순한 매혹술도 아니고, 환술도 아니라서 상대방에게 빠져드는 걸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손태석은 더욱 다급해하며 말했다. “구준아, 어서 주현 양더러 남으라고 해!”자신의 장인어른이 완전히 매혹되었다는 걸 깨달은 염구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집중 타겟이었겠지.’“다들 조용히 하세요!”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로비 전체에 울리자 시끄럽던 공간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이 일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으나, 더욱 중요한 건 아직 배주현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그녀의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녀의 뒤에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에 대해 그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따라와.”그는 배주현을 가리킨 뒤, 사람들을 무시하고 보안실 쪽으로 걸어갔다.“후훗.”이에 배주현은 자신이 성공한 줄 알고 입꼬리를 올리고는 재빨리 염구준의 뒤를 따라갔다.그 순간, 적지 않은 남자 직원들이 염구준이 혼자 배주현을 독차지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여성 직원들은 염구준도 유혹에 넘어갔다고 생각해 손씨
“넌 왜 여기 온 거지?”염구준은 말장난을 받아주지 않았고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차갑게 물었다.‘겨우 이정도밖에 안 되는 놈을 내가 못 이길 리가.’하지만 배주현은 포기하지 않고 더 짙은 향기를 풍겼다. 그녀는 그녀의 능력에 자신이 있었다.이윽고 배주현은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며 염구준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그의 넓은 가슴을 어루만지려 했다.“염 선생님, 참 건장하시네요. 제가 또 건장한 사람 좋아하는데.”“흡!”그러나 염구준은 갑자기 힘을 내어 기운으로 향기를 옅게 만들고 배주현을 밀어냈다.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려서였다.펑!갑작스러운 공격에 배주현은 양팔을 교차해 얼굴을 보호하면서 전신의 힘을 끌어모아 막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 끝까지 밀려나고서야 겨우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었다.‘단경 무성이네?’“계속 연약한 척 해보지 그래?”염구준은 기운의 흐름을 감지하고는 조롱하듯 말했다.그는 처음부터 그녀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상대방이 무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반보천인의 경지에 있는 염구준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녀가 기운을 감추는 방법이 매우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아프잖아요!”배주현은 계속 유혹하기 위해 애교를 부렸으나 인내심을 잃은 염구준은 순식간에 돌진해 그녀의 새하얀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휙.“죽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게.”상대방이 계속해서 꼼수를 부리니 더 이상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말을 마친 뒤, 그의 손에 힘이 더해졌다.“크흑... 뭐든지... 묻고 싶은 거... 다 물어보세요.”배주현은 목숨이 위협 당하자 그제서야 얌전해졌다.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네가 아는 모든 걸 말해.”퍽!염구준은 그녀를 바닥에 내던지며 서늘하게 말했다. 말을 하는 그의 몸에서는 어마무시한 기운과 함께 살기가 가득 뿜어졌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즉시 베어버릴 것처럼 말이다.“컥, 컥!”바닥에 떨어진 배주현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하, 또 만능 전당포네.”염구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이 세력은 철저히 중립적이었다. 돈만 있다면 누구든 의뢰를 올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그냥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시스템이었다.그리고 의뢰인의 정보는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며, 돈만 지불하면 다른 이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주니 아무런 위험도 없었다.과거 염구준도 이들을 조사하고, 용하국에 있는 지부를 박살낸 적이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이제, 가도 될까요?”배주현은 염구준이 반응하지 않자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미 일이 탄로 난 이상, 더 이상 현상금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어도 다행이었다.“해독제 내놔.”염구준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해독제를 요구했다.배주현의 몸에서 풍겨 나오던 향기는 강력한 환각제를 포함하고 있어 장시간 흡입하면 뇌에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즉, 그녀가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은 약물과 매혹술이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다.“무슨 해독제요?”배주현은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자신을 오해했다는 듯 억울함을 토로했으나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그녀가 사용한 환각제는 일반적인 향수와 같은 냄새를 풍겼고,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간파할 줄이야.’쾅!염구준은 다시 한번 기운을 내뿜어 그녀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에 배주현은 뒤로 튕겨 나가 벽에 세게 부딪쳤다.바로 이 한 방에 그녀는 치명상을 입었다.“커헉!”강한 충격에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피를 토했으나 계속 해명했다. “그건 독이 아니에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요! 정말로 해독제 같은 건 없어요!”저벅, 저벅, 저벅.염구준은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배주현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그녀의 심장은 염구준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빠르게 뛰었고,
염구준은 그녀의 대답에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 분부했다.“호찬, 저 여자 가둬두고 네가 직접 감시해. 죽지 않도록 신경 쓰고.”“예!”호찬은 공손히 답한 뒤,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 장면을 본 직원들은 의아했지만, 감히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남녀 단둘이서 한 방에 있으면 대부분이 가슴 떨리는 일을 하지 않나?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피 튀기는 싸움을 했다.염구준은 로비로 걸어가 기운을 내뿜어 공간에 남아 있던 환각제의 향기를 걷어냈고, 그가 향기를 없애자 사람들의 정신이 점차 맑아지기 시작했다.상대방의 수법을 알기만 하면 해결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직원들은 제정신이 돌아오면서 전에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고 경악했다.“망했다. 어제 그 여자 때문에 와이프랑 싸웠어. 휴, 오늘 집 가면 무릎 꿇어야겠네.”“젠장, 아침에 플래티넘 목걸이 선물했는데, 당장 가서 돌려받아야겠어.”“내가 미쳤었나? 왜 그 여자를 감싸고 돌았지?”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방금 전까지의 행동이 마치 꿈속 일처럼 느껴졌다.염구준은 직원들이 제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들 뭐하는 거예요? 일 안 하면 이번 달 개근상 없습니다.”“네! 바로 일하러 가겠습니다, 염 선생님!”직원들은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했다. 다만, 이 며칠간의 혼란스러운 시간을 차츰 회복하며 이해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그 후, 휴게실에 들어간 염구준은 강제로 의자에 묶여 있는 손태석을 발견했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가...”그러나 염구준은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기운을 뿜어 손태석을 강제로 정신 차리게 했다.“이제 괜찮으세요?”손태석은 정신이 돌아오면서 지난 며칠간의 일이 기억나 두 눈을 크게 뜨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에휴.”“내가 이 나이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체면이 말이 아니네.”표정에도, 말에도 깊은 죄책감이 어려있었다. 집 앞.염구준과 손태석은 문 앞에
“너무 잘 됐다!”염희주는 이 광경을 보자마자 소파 위에서 두 팔을 휘저으며 기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려있었다.그녀는 많이 알지 못하지만 가족이 싸우고 사이가 틀어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손가을은 남편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그만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결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그룹 내에서 몇몇 직원이 염구준과 배주현이 보안실에서 단둘이 있었다는 보고를 해왔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염구준은 가족도 전부 모였고, 일도 전부 해결되었으니 훈훈하게 마무리 할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시간도 늦었으니, 다 같이 외식이나 하러 갈까요?”이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그들은 차를 타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샤브샤브 가게까지 걸어갔다.불편한 일이 사라지자, 길을 걷는 동안 모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손 대표님, 지금 자리가 없어서 다음 자리가 나오는 대로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카운터 앞에서, 홀 매니저가 긴 대기 줄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말했다.눈앞의 여자는 청해시 비지니스계의 여왕이라 그가 감히 건들지 못하는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특혜를 이용해 그녀가 새치기 하도록 도와주려고 했다.예정에 없던 일정인지라 염구준도 사전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하지만 주변에 줄을 서 있는 손님들은 그 말을 듣고도 감히 대놓고 불평할 수 없어 못 들은 척 했다.청해시에서 손가을을 모르는 사람은 두 부류뿐이었는데, 하나는 관광객이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손가을은 새치기를 하지 않고, 정중하게 답했다.“괜찮아요. 번호표 주세요. 저희도 줄 서서 기다릴게요.”이런 작은 특혜는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네, 대표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홀 매니저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미운털이 박힐 일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그 후 손가을은 번호표를 받아 가족들과 함께 입구의
“이제 앉자!”밥을 먹는 동안은 온 가족이 웃음꽃을 피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겼으나 식사가 끝난 후에는, 손태석이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더니 고통스러운 기색을 보였다.“왜 그러세요?”염구준은 예리한 감각으로 손태석의 이상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다급히 물었다.“끄아아악...”그러자 손태석이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게 비명을 지르며 양손을 허공에 마구 휘둘렀다.눈앞에는 팔팔 끓는 샤브샤브 국물이 있었기에, 상황은 매우 위험했다.“다들 조심해!”염구준은 가족들에게 경고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운을 내보내 손태석을 제압했다.그 덕분에 손태석은 움직임을 멈췄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고 표정은 일그러졌다.이 광경을 본 주변 손님들은 깜짝 놀라며 하나둘씩 멀찍이 물러서서 지켜보았다.“여보, 당신 왜 그래요?”진숙영은 제압 당한 손태석을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당황했다.손가을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외쳤다.“구준 씨, 아빠 왜 이러는 거야?”청해시 비지니스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손가을도, 아버지가 위급한 상황에는 완전히 동요하고 말았다.“급성 위장염인 것 같아. 병원 가자.”염구준은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단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는 빠르게 손태석의 몇몇 혈자리를 눌러 막아놨다.지금으로서는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저 손태석의 고통을 덜어줄 수밖에 없었다. ‘급성 위장염이라고?’손가을은 염구준의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논쟁할 시간이 없어 손태석을 우선 병원으로 옮기려고 했다.염구준은 곧장 손태석을 안아 들고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이 모습을 구경하던 손님들은 웅성거리며 작은 소리로 말들을 주고받았다.“비명을 저렇게 지르는 거 보니 위암 말기인가 보네.”“딸이 저렇게 대단한 사업가인데 벌써부터 아프다니. 돈도 못 쓰고 가게 생겼어.”“좋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깝네...”그들의 말은 지나치게 비관적이었지만 그만큼 손태석의 끔찍한 비명소리에 놀
의사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병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염구준이 예상했던 결과와 비슷하게 이 병은 일반적인 의술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강호에서 만들어진 환각제는 강호의 특제 약으로만 해독할 수 있었다.고통스러워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니 더는 참지 못하고 병실에서 나갔다.그때 손가을의 휴대폰이 불이라도 난 듯 직원 가족들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들도 똑같이 두통과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이송 중이라고 했다.이 사람들도 배주현의 ‘추구자’임이 틀림없었다.탕!한 병실의 문이 누군가의 발에 차여 종이 짝처럼 부서졌다.부서진 문 뒤에 선 사람은 저승사자처럼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었다.“염 선생님!”마침 보초를 서던 호찬이 그를 보고 공손하게 인사했다.그 옆에 미이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은 배주현이 꽁꽁 묶여서 병상에 누워 있었다.저승사자의 정체를 알아본 그녀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찔리는 모양이었다.염구준은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반복하여 억눌렀다.“환각제를 흡수한 사람들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는데 대체 무슨 상황이야?”지금 해독약도 받지 못했고 이제마도 청해에 도착하지 않아서 당장 죽일 수도 없었다.“금단현상이라 생명에 위험은 없어요. 우리 언니들이 갖고 온 해독약을 먹으면 바로 나아요.”배주현은 자신이 살아남을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빠르고 정확하게 설명했다.“당장 전화해서 오라고 해!”염구준은 이를 악물며 으르렁거렸다.‘해독약도 없으면서 뭐 하러 환각제를 사용해?’당장이라도 배주현을 죽일 기세였다.“구준 씨, 아빠 병실에 여자 두 명이 왔어. 벌레를 아빠한테 먹여서 치료하겠다는데 빨리 가서 봐.”그때 손가을이 허둥지둥 달려서 병실로 들어왔다.“치료? 가 보자.”그는 아내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배주현의 언니가 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왠지 걱정이 되었다.지금 손태석의 병실에 키가 훤칠하고 면사포를 쓴 두 여자가 침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