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은 앞으로 다가가 상자 뚜껑을 열고는 안에 물건을 뒤졌다.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어떤 물건들은 그들이 봐서는 안 되기에 괜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왜냐면 중요한 물건일수록 아는 것이 적은 게 안전했다.염구준이 연 상자에 금은보화나 현금은 없고 누렇게 변색된 책들만 들어있었다.‘옥패는 없어.’세 번이나 뒤졌는데도 상자에는 책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왠지 황계웅 능구렁이가 옥패는 없으면서 스텔라성을 속여 저들의 옥패를 빼앗으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그렇게 되면 옥패 4개를 갖게 되니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다.수법은 대단했지만 실현하지 못해서 안타까울 지경이었다.이번에 책을 펼쳐보았다.‘꽁꽁 숨긴 것을 보면 폐지는 아니겠지.’염구준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 책에서 옥패에 관한 기록이라도 기록되어 있길 바랐다.그러다 새것으로 보이는 책에 시선이 멈추었다.아타 일행은 염구준의 표정이 불쾌한 것을 보고 말없이 옆에서 기다렸다.그때 책을 뒤적거리던 염구준이 동작을 멈추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것이었다.“아타 장로, 노 문주님. 여기 와서 보세요.”아타와 노신기는 서로 눈을 마주친 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하지만 감히 책의 내용을 보지 못했다.염구준의 앞에서 못 볼 것을 봤다가 죽을까 봐 겁이 났다.“이 해역을 알고 있어요?”두 사람의 생각을 읽은 염구준은 책을 돌려서 보여주었다.“여기를 말씀하는 겁니까?”아타와 노신기는 거의 동시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종이에 쓰인 굵은 글씨체가 유난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유동심연.’이름만 봐도 평범하지 않은 곳이었다.게다가 상자에 넣은 종이에 지역 이름만 있고 항해 지도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알고 계신다면 말씀해 주세요.”염구준은 강요하지 않고 다정하게 물었다.필경 그들은 협력 관계지 상사와 부하는 아니니까.그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책에 옥패에 관해 언급했고 그 장소는 유동심연의 바닥이기 때문이었다.[석양이 비추고 밀
노신기는 인사를 건넨 후 딸에게 엄숙하게 말했다.“이따가 조용히 있어. 특히 윗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면 안 돼.”이번만큼은 농담이 아니었다.그는 사랑하는 딸이 염구준에게 찍힐까 봐 걱정되었다.방금 밖에서 발생한 일들을 장로들 통해서 들었는데, 지금도 충격에서 가시지 못했다.한 줄기 검기로 반보천인을 죽인 것도 모자라 캐틀린 가문의 후계자를 폐인으로 만들다니, 두 사건 모두 상상도 못할 전적이었다.“알겠어요. 아타 할아버지, 염 아저씨.”노희연의 태도는 전보다 친절했지만 염구준을 부르는 호칭이 조금은 늙어 보였다.“가자.”염구준은 그녀와 말다툼하는 것보다 유동심연에 대해 알고 싶었다.옥패에 관련된 일이라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그렇게 네 사람은 서재에 들어왔다.책상 앞으로 다가가던 노신기가 황금 개구리의 머리를 잡더니 안으로 쑥 밀었다.끼익!그러자 바닥에서 수많은 금속이 튀어나오면서 공기도 통하지 못하게 주변을 차단하는 것이었다.다행히 방안의 전등이 켜져서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일분도 안 되는 사이에 서재가 밀실로 변했다.이것만 봐도 천기문은 기관술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대단하죠? 이런 거 처음 보죠?”노희연은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기관술이 자랑스러워 뽐내고 싶었다.천기술은 노씨 가문의 자부심이었다.그때 노신기가 불쾌해하며 또 훈계했다.“한마디 더 하면 밖으로 내보낼 거야.”아버지가 화내자 노희연은 아까 맞은 뺨이 아직도 얼얼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구준은 부녀의 대화가 끝난 후, 책상 위에 책을 펼치고 말하기 시작했다.“여기 정보를 보면 유동심연 밑에 옥패 하나가 있다고 해요. 가짜는 아닌 것 같은데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두 분이 여기를 알고 있다면 길을 안내해 주세요. 그럼 도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을 제외하고 무엇이든 들어 줄게요.”조건을 내세웠으니 두 사람의 답변을 기다리면 되었다.옥패에 관한 정보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그…”아타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기 요구
“총 몇 장입니까?”염구준은 너덜너덜한 항해 지도를 살펴보며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말투로 보아, 완전한 지도가 없이는 유동심연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럼 정보를 알아도 헛수고란 걸 알 수 있었다.“전부 여섯 장입니다. 저도 한 장 가지고 있으니까요.”노신기는 말하면서 품에서 한 장을 꺼내 염구준에게 내밀었다.이 낡은 항해 지도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으로,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가보처럼 소중히 간직해왔었다.염구준은 노신기의 손에서 지도를 건네받은 후, 두 장의 지도를 맞춰보았지만, 도무지 맞춰지지가 않았다. 즉, 지금 당장은 이 두 장 모두 쓸모없다는 거다.“하아... 나머지 네 장은요? 단서 있습니까?”염구준은 할 수 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혹시나 쓸만한 정보가 있을까하는 바람으로 물어보았다.유동심연에 관해서는 그도 오늘 처음 들은 것이라 아무것도 짐작할 수 있는 게 없었다.노신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옛 일을 회상하면서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캐틀린 가문, 레온 가문, 대어당, 그리고 안설홍이 각각 한 장씩 가지고 있습니다.”“여섯 장의 항해 지도의 출처는 같았습니다.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저희 여섯 세력은 동맹이었거든요. 하지만 나중엔... 후.”예전의 말을 하다가 노신기는 가슴 아픈 일이 생각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그 동맹이 유지되었더라면, 지금처럼 스텔라성의 성장도 없었을 테고, 오늘 같은 초라한 꼴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염구준은 점점 더 의문이 커졌다.“그럼 지도가 어디 있는지 다 알면서 왜 아무도 옥패를 찾으러 가지 않은 겁니까?”옥패의 큰 유혹력이라면 그들같이 작은 세력으로는 지키지 못했을 것이 뻔했다.“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백 년 동안 수십 번이나 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살아 돌아온 사람도 적었다고 해요.”“그리고 저희는 가라앉은 배에 있는 보물을 찾으러 간다고 들었습니다. 유동심연의 밑에 옥패가 있다는 걸 몰랐어요.”그들
일이 마무리되고, 몇 사람이 서재를 나서려던 찰나, 노신기가 끝내 참지 못하고 염구준에게 물었다.“염 선생님, 혹시 그 천기 폭쇄함을 어디서 얻으신 건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황계웅 겁니다.”염구준은 그냥 일반적인 전리품일 뿐이라 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해 담담하게 말했으나 노신기는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황계웅이 조용하게 살긴 했지만 전성기에는 스텔라성과 맞설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이 근방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염씨?’“당신이 비로 황계웅을 죽인 독하기로 소문난 염씨입니까?”노신기는 말을 하며 거의 제자리에서 펄쩍 뛸 뻔 했다. 그의 얼굴엔 놀라움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이 정도 실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우리 따위는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거야.’그가 생각했다. “겨우 절정 반보천인인데요, 뭐. 별 것 아닙니다.”염구준은 이건 자랑스러워할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지를 뛰어넘은 싸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에 육신이 한계까지 강화된 강자도 이겼었는데, 겨우 황계웅을 이긴 게 자랑거리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노희연은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평범한 반보천인이라면 그녀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겠지만, 황계웅을 참살한 사람이라면 이제 더 이상 함부로 비웃을 수가 없었다.황계웅이라는 악마를 죽인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그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염 선생님, 저희 딸이…!”노신기는 허둥지둥하며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사죄하려 했다.그 말투 속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염구준은 내공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됐습니다. 신경도 안 썼어요.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전이었다면 노희연은 이 말을 듣고 잘난척 한다며 비웃었을 테지만, 엄청난 업적이 있다는 걸 안 지금은 오히려 대범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장치가 작동하며 서재 문이 열렸고, 네 사람은 천기문의 연회장으로 향했다.
“다들 계속 식사하시죠!”노신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상대가 먼저 시비 걸지 않는 이상, 굳이 먼저 얼굴 붉힐 이유는 없었다.괜히 강적을 한 명 더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반면, 포스와는 달리, 염구준은 힐끗 쳐다본 것만으로 자리에 있는 이들의 실력을 전부 파악했다.‘반보천인이 하나도 없다니. 별거 아니네.’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염 선생님, 저놈들을 그냥 쫓아낼까요?”그레이는 포스 일행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필요 없어. 별거 아닌 것들이라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비웃는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쪼잔한 수작질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게 뻔해서였다.“알겠습니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염구준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도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노신기가 앉자마자 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노문주, 천기문에 경사인 날에 빈 손으로 온 게 좀 미안하네요.”“대신 자리에 앉아 계시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은 공연 하나 보여줘도 되겠습니까?”이에 연회장에 있는 대부분이 그가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벌일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그가 말한 공연이란 게, 절대 평범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포스 가주의 성의, 깊이 감사드립니다.”노신기는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여긴 천기문이었다. 외부인이 시비를 걸어도 가주로서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 없다는 거다.“여긴 제 제자 마크입니다. 무공이 제법 괜찮아요. 다만, 늘 실전하고 싶어 해서 문제입니다.”“천기문의 젊은이들도 실력이 괜찮다 들었는데, 노문주께서 제 제자가 실전 경험을 쌓도록 도울 수 있으신가요?”포스가 손짓하자, 그의 뒤에서 전신 경지의 중기에 처해있는 사람이 걸어나왔다.“노대영, 네가 나서 보도록.”노신기는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마크와는 달리, 노대영은 겨우 전신 경지의 초기에 발을 디딘 수준이었다.상대보다 한 단계 더 낮단 말
마크를 놀래킨 타이밍이 완벽했으니까 말이다.“다 선생님 덕분입니다.”노대영은 자리로 돌아가 염구준을 향해 주먹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그나마 눈치는 있네.”상대방이 그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망설임 없이 행동한 것에 대해 염구준은 조금 만족스러웠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포스는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그는 염구준이 너무 얄미웠다.“가주님, 제가 진 건 다 저놈들이 계략을 써서 그런 겁니다! 제대로 따지셔야 합니다!”싸움에서 패배한 마크는 벌이라도 받을까 봐 얼른 책임을 떠넘겼다.“멍청한 놈, 이런 거에 넘어가?”포스는 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분노에 찬 목소리로 꾸짖었다. 첫 싸움부터 졌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경지가 한 단계 더 낮은 적과의 싸움에서 말이다.반면, 천기문 측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노대영이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축하해주었다.그와 동시에 그들은 마음 한편으로 염구준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늘어났다. 천기문이 우세를 차지하자 노신기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나와서 상대방을 비웃었다. “포스 가주, 이번 공연에 만족하십니까?”“3판 2선승제로 계속합시다. 박아, 네가 나가.”체면을 차릴 수 없었던 포스는 인상을 쓰며 옆에 있던 미모의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역시 전신 경지의 초기에 발을 디딘 수준이었다. 노신기는 규칙엔 반대하지 않고 곧바로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내보냈다.싸움이 반쯤 진행됐을 때, 염구준이 다시 나서서 천기문의 제자를 일깨워주었다.“저쪽에서 초반에 힘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시간만 끌면 이길 거야.”그가 한 조언들은 전부 제일 실용적인 전략으로, 실제 싸움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방식이었다.그 말을 들은 천기문의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고,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구일지 기대했다.반면 포스는 불안한 느낌이 자꾸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 염구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예 느낌도 오지 않는 그와는 달리, 상대방은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게 그는 너무 불안했다.한편, 싸움
“그건...”노신기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아무리 그래도 모든 책임을 염구준에게 떠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표면적으로 보면 캐틀린 가문은 그들을 도와주러 온 셈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정당한 명분이 있었다.“그 사람은 제가 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불만 있어요?”염구준은 천기문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서서 말했다. 이미 책임지겠다고 말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동심연에 관한 항해 지도 때문에 캐틀린 가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는 포스와 사이가 틀어져도 상관이 없었다.염구준이 불쑥 나서자 상대방이 이렇게 쿨하게 나설 줄은 몰랐던 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체 저희 아들이 뭘 잘못했길래 그렇게까지 한 거죠?”전에 집사에게 염구준이 매우 강하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그는 함부로 화를 낼 수 없었다.솔직히 말하자면, 그도 누가 그랬는지는 알지만, 염구준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이걸 핑계 삼아 천기문을 삼키려고 했다.“그쪽 아들이 손버릇이 안 좋더군요. 그리고 제 물건을 훔친 것도 모자라 저를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제가 당신을 대신해 교육까지 해줬는데, 싫습니까?”염구준은 간단하게 설명하며 상대방에게 다시 되물었다. 이건 포스의 체면을 깎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오만하다고?’천기문의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포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였다.‘남의 자식을 폐인으로 만들어 놓고, 불만있냐고 묻다니. 대단해.’그들이 생각했다.“너, 너무 오만하게 굴지마! 여긴 스텔라성의 영향권이니까!”완전히 화가 나버린 포스는 그동안의 가식은 전부 벗어던지고, 등 뒤의 거대한 권력을 앞세워 염구준을 압박하려 했다.이 지역에서, 스텔라성은 절대적인 왕이었다. 아무도 그곳을 거스를 수가 없다는 거다.그는 그의 협박이 통해서 상대방이 더 이상 끼어들지 않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는 염구준이 스텔라성 따위는
지금 포스는 반보천인 두 명을 상대해야 했다. 승산 따위는 1도 없다는 거다.“쿨럭, 그만해...!”포스는 더 이상 염구준을 시험할 배짱이 없어 피를 토한 뒤 명령을 내렸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천기문이 큰 타격을 받고, 캐틀린 가문이 합당한 명분을 가진 이 타이밍이 바로 천기문을 삼길 절호의 기회였으나 갑자기 나타난 염구준이 모든 걸 다 망쳐서 다시 계획을 짜야만 했다.“가주를 보호하라!”정예들은 재빨리 뒤로 이동해 포스를 지키면서 주위를 경계했다.겉으로 보면 충성심이 넘쳐보이나,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그저 살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포스가 죽으면 그들도 무사하지 못할 게 뻔하니까 말이다.“죽고 싶으면 계속 덤벼.”염구준은 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기운은 그의 감정처럼 요동쳤다.만약 포스가 정도를 모른다면 그도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이었다.“X발, 가자!”포스는 염구준을 원망과 증오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그러나 욕을 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죽고 싶어?”염구준은 싸늘하게 말하고는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포스를 향해 돌진했다.방금 전에 많이 봐줬는데도, 제게 욕을 내뱉은 상대방을 그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얼른 막아!”포스는 허겁지겁 명령을 내리며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주위의 사람들더러 염구준을 에워싸라고 했다.그는 거의 스무 명이 되는 전신과 전신위 경지의 강자들이라면 잠깐이나마 반보천인을 막는데는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포스는 명령을 내리고는 차마 더 머무르지 못하고 바로 밖으로 도망쳤다.어마어마한 살기에 심장이 떨려와서였다.쿵!!그러나 염구준의 일격에 거의 스무 명의 강자들이 합심하여 만든 방어선이 단숨에 깨졌으며, 여럿이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염구준은 멈추지 않고 검결을 만들며 포스를 향해 공격했다.살기를 느낀 포스는 급히 몸을 돌려 막으면서 쇠망치를 날렸다.실력 차이가 너무 큰 지금으로서는, 그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쾅!그러나 염구준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