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생각에 잠긴 채 가만히 있던 염구준이 주차장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가자. 총황션 만나러 가자!”총황션이라는 명성은 과연 헛된 것이 아니었다!주차장 끝에 80년대 카우보이 복장을 한 총황션이 오른쪽 허벅지에 총을 꽂은 채, 오토바이 위에 여유롭게 앉아 총탄을 위로 던졌다가 잡기를 반복하고 있었다.“형님, 준비 모두 완료됐습니다!”근육질의 거구 대머리가 총황션에게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말했다.“오부라은이 나타나는 즉시 형님께서 명령하시면 바로 해치울 수 있습니다. 7대 세력이 연합한 이상, 아무리 전신의 경지를 오른 오부라은이라도 내일의 해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7대 세력!황혼대로 8대 세력 중, 오부라은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연합해 이곳에 잠복해 있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던 오늘 반드시 오부라은과 형제들을 해치워야만 했다. 진서호한테서 거액의 사례금을 받기로 약속받은 것도 있었지만, 총황션은 오부라은이 항상 눈엣가시였다. 그는 이 기회를 틈타 오랜 숙원을 이루고자 했다.오부라은이 아무리 대비했더라도, 이 정도 인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예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왔습니다!”대머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총황션은 만지작거리던 총탄을 집어넣고 오토바이에서 내려 앞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오부라은이 아니었다!용하국 출신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성큼성큼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오부라은과 그의 형제들은 부하처럼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못 보던 남자의 출현에 총황션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곧 뭔가 생각이 났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설마 그쪽이 염구준?”총황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염구준도 같이 온 이상, 굳이 황혼대로를 나가지 않아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뜻밖의 선물이로군! 오부라은 말고도 네놈까지 올 줄이야! 오부라은을 처리하고 네놈을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알아서 자기발로 찾아오다니! 덕분에 더 쉽게 진 도련님에게 네놈의 목을 바칠 수 있게 되었구나! 하하!”
“이 정도 규모의 함정이라니, 꽤 공을 들였나 보네?”염구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진서호에게 내 머리를 바친다고 했던가? 진씨 가문의 개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시간 낭비할 필요 없겠어. 총황션, 네가 그렇게 총기를 잘 다룬다며? 기회를 줄 테니, 어디 한번 네 실력을 증명해 봐. 네놈이 쏜 총알이 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린다면, 오늘은 이 자리에 물러나 주마. 하지만 성공 못 하면, 오늘 이 자리에 온 너와 네 편들을 모조리 하나도 남긴 없이 죽일 것이다!”그 말을 들은 총황션은 입술을 꽉 깨물며 허벅지에 끼워져 있는 총을 더듬었다. 지금, 이 순간 총만큼 그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봉황국에 자리 잡은 뒤로,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러왔었다. 그는 이 권총 한 자루로 수많은 강자를 쓰러뜨리고 이 자리까지 왔다. 그는 황혼대로 8대 세력 중 하나였다. 그는 전신 경지의 강자가 오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지와 총 실력이 결합하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내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염구준에게 매복된 아군의 위치를 모두 들킨 것이었다. 아군 중에 배신자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실력으로 아군의 위치를 파악한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었다. 만약 전자라면 해볼 만하겠지만, 후자라면 염구준의 경지가 최소 전신 후기 또는 정점이라는 뜻이 된다. 아군 중에도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는 없었다. 종황션은 골치가 아팠다.“총황션, 쓸데없는 소리에 현혹되지 마시오!”20미터 정도 떨어진, 주차장 모퉁이에 매복해 있던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총황션을 향해 다가왔다. 그런 다음 염구준을 노려보면서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매복 위치를 알아냈다고 해서,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잖소! 7대 세력이 연합했는데, 전신 경지의 강자라고 한들, 어쩔 텐가? 전신 후기 경지에 있더라도, 우리 손에 죽게 되어 있소!”전신 경지에
너무나도 순식간에, 소리 소문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궁극의 기술, 총알은 놀라운 명중력으로 염구준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아무리 전신이라도 방심한 상태에서 받은 공격을 피할 수는 없을 터, 총황션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후!”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염구준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멈춘 듯, 주차장에 모든 이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반보천인, 천인합일!총알이 발산된 그 찰나, 염구준은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어 공기에 녹아 들었다. 땅과 하늘, 바람과 공기, 그 모든 것과 동기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염구준은 빠르게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당당히 군중들을 마주 보았다.짧지만 매우 강력한 증명! 염구준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노란 총알을 낀 채, 총황션을 향해 미소 지었다.“졌네?”졌다니, 졌다니!모든 공력을 담은 일격이 실패했다! 총황션은 얼빠진 얼굴로 염구준을 바라봤다. 어느새 그의 몸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공격도 이어가지 못하고 멍하니 염구준을 바라봤다. 좀 전의 일격은 그가 할 수 있는 극한의 공격이었다. 이 속도는 그가 낼 수 있는 한계였다. 그 최선이 막힌 것이다! 심지어 총황션은 염구준이 움직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 정말 눈뜬 채 코 베인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총알은 이미 염구준 손안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이것이 바로 전신의 경지인가?’ 수많은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상식 안에 있는 전신의 경지는 결코 이런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아무리 전신의 경지라도, 좀 전의 속도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총황션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전신의 경지가 아니라면, 염구준은 도대체 무슨 경지란 말인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무성경지까지 이루고 이 정도 총술까지 갖추다니, 확실히 꽤 괜찮은 자질을 가지고 있군.”염구준이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총탄을 대수롭지 않게
백전백승의 전신전 전주!“염구준, 염구준… 그래, 전신전 전주의 이름이 염구준이었어….”혼이 나간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던 총황션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수하에게 소리쳤다.“황혼대로 전면 개방, 금지구역 전면 철회! 내일이 밝기전까지 황혼대로에 있는 진씨 가문 산업들 모두 없애 버려! 그리고 염 선생님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다고 오부라은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해!”긴 밤이 마침내 지나갔다.“빌어먹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봉황국 진씨 가문 저택, 진서호는 미친 사람처럼 온갖 물건들을 부수며 소리쳤다.“당장 알아내! 당장 알아내라고! 어느 놈들이 감히 황혼대로에 있는 우리 가문 사업체들을 모두 부쉈어!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거의 발작에 가까운 분노였다. 경호원을 포함한 모든 사용인들이 숨죽이며 얼른 이 폭풍이 지나가길 빌었다. 하지만 상황은 심각해질 뿐,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한밤중, 진씨 가문에서 10년동안 고심해서 키운 황혼대로 모든 사업체들이 정체불명 세력들에 당해 처참히 파괴되었다. 여덟 구역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과장없이, 진씨 가문은 하룻밤 사이에 최소 2조를 손실 입었다!“도련님!”이때, 파괴된 진씨 가문 사업체 임원중 한 명이 헐레벌떡 들어오며 상황을 보고했다.“모두 총황션이 한 짓입니다. 제가 직접 봤어요! 그 놈이 부하들을 데리고 직접 저희 사업체들을 부수고 불태웠어요! 저도 하마터면 그 놈들한테 당해 숯 검댕이가 될 뻔했어요!”‘총황션?’진서호는 크게 충격 받은 듯, 온몸이 경직되었다.어젯밤, 총황션에게 거액을 대가로 오부라은과 염구준을 의뢰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꿈에도 총황션이 배신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그냥 배신한 것도 아니고 염구준 편에 서서 진씨 가문을 공격할 줄이야!진서호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좀 전에 보고한 사람의 신원이 너무 확실하여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진씨 가문 핵심 임원 중 하나였다. 거짓 보고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총황션, 총황션!”진서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참지 않고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총황션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리 가문을 배신한 이유가 뭐야? 염구준과 오부라은을 제거하라고 거액을 줬더니, 감히 진씨 가문의 뒤통수를 때려? 미쳤어?”이유는 당연히 염구준 때문이었다. 염구준이 전신전 전주인데, 진씨 가문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이유를 알면 뭐 어쩔 건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전화 너머 총황션의 목소리는 매우 냉랭했다.“옛정을 생각해서 충고 하나만 할게.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진씨 가문 힘만 믿고 함부로 사람 건드렸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친다. 뭐, 이미 그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마.”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겨버렸다. 진서호는 분노에 핸드폰을 든 채 자리에 부들부들 떨었다.이런 배은망덕한!처음 총황션이 황혼대로에 들어설 때만 해도 겨우 중위권 세력밖에 안 됐었다. 그런 총황션의 세력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모두 진씨 가문의 후원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진씨 가문의 돈을 먹고도 염구준을 제거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도리어 진씨 가문에 엿을 먹였다.그깟 염구준이 뭐라고!진서호는 반드시 총황션에게 진씨 가문의 위력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멍청한 놈!”이때, 갑자기 조용하던 이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진무석도 이 소식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는 망설임없이 거실로 내려와 진서호의 따귀를 때렸다. 진서호는 그 힘에 못 이겨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진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능력을 보이랬더니, 도리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진서호는 처음부터 선택을 잘못했다. 총황션에게 연락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강구했어야 했다. 진무석은 오늘 진서호에게 너무나도 크게 실망했다. “수습하라고 했더니, 사고를 쳐!”진무석이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진서호를 향해 크게 호통쳤다. “앞으로 가문을 물려받을 놈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제정신이야? 지
이건 우연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누구예요? 도대체 누가 뒤에서 이런 장난질 친 거예요!”진서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진씨 가문 상대로 이런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지?얼마 전까지 해도 화련상조회는 봉황국 최강 가문이라 할 수 있는 김씨 가문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멸문한 상태, 이정도로 회원들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한 기업도 아닌, 수십개의 기업들이 줄줄이 진씨 가문한테서 등을 돌리다니! 진서호는 도무지 짐작가지 않았다.“손가을, 염구준… 이 둘 아니면, 누구겠어!”진무석이 진서호의 무능함에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이 정도도 모르다니, 진씨 가문을 너에게 맡겼다가는 5년도 못 버티고 망하겠네!”염구준, 또 염구준이라니!그는 이를 악문 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갈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그날 연회에서 있었던 사건 뒤로, 진씨 가문과 손씨 가문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진서호는 곧바로 왕서희를 납치해 모든 죄를 염구준에게 뒤집어씌울 준비를 했으나, 도리어 아무런 손실도 입히지 못하고 진씨 가문만 기둥이 뽑히게 생겼다!“아버지,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발 한 번만요!”진서호가 무릎을 꿇은 채 진무석에게 애원했다.“제가 직접 염구준을 처리하고 이 치욕을 씻어낼게요! 아버지, 저 한 번만 믿어주세요!”아무리 못났어도, 진무석에겐 아들 진서호 하나밖에 없었다.“후….”그는 한숨을 내쉬며 분노를 가라앉힌 뒤, 진서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진서호.”그리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청동 영패를 바닥에 던졌다.“이번엔 절대로 날 실망시키면 안 된다. 꼭 제대로 이 난장판을 수습하고 손씨 그룹을 무너뜨리거라!”그 말을 끝으로 진무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진무석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진서호는 그제야 주섬주섬 일어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영패를 주
황혼대로는 이제 완벽히 오부라은의 통제아래에 들어갔으며, 용하국 상인들의 금지구역도 모두 풀렸다. 그리고 오부라은 공식적으로 손씨 그룹을 지지하는 서명까지 발표했다. 봉화국 세력 구도가 크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생존에 강한 기업들은 알아서 눈치 빠르게 라인을 바꿨다. 이제는 진씨 가문이 아닌, 손씨 그룹이 대세였다.“손 대표님.”짧은 인사말을 나눈 뒤, 한 중년 남자가 조심스레 손가을 책상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오늘 저희가 찾아온 것은 오부라은 선생님과의 협력 체결을 축하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쭙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혹시 앨리스 씨와는 어떤 관계이십니까?”그 말을 들은 손가을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손씨 그룹과 오샤나지 그룹은 공식적으로 협력 파트너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가을은 자기도 모르게 염구준 쪽을 바라봤다. “그저 일반적인 파트너 관계일 뿐입니다.”염구준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손가을 쪽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손씨 그룹과 손을 잡은 것 때문에 화련상조회에서 제제가 들어올까 봐 그러시는 거죠? 그 부분은 제가 장담하죠.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앨리스 씨 때문이 아닌, 저희 손씨 그룹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손씨 그룹은 결코 화련상조회 따위에 밀리지 않습니다!”매우 자신만만한 태도,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최근 이틀만에 활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손씨 그룹은 화련상조회의 도움 없이도 아주 보란듯이 해외에서 적응해 나갔다. 이젠 화련상조회가 제제하려고 나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염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희도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다!”중년 남자와 함께 주변에 함께 있던 여러 사람들은 비로서 안심할 수 있었다.“지난 몇 년 동안 저희가 진씨 가문에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치가 떨립니다. 봉황국이 워낙 혼잡한 터라,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사업은커녕 목숨까지 위협받아야 하는
“죄송합니다.”염구준은 손가을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잠시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모두 크게 충격 받은 모습이었다. 이때, 먼저 말을 꺼낸 노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30프로는 적습니까? 그렇다면 매년 40프로를 지급할 테니, 부디 긍정적으로….”“아니요!”하지만 염구준은 그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얼른 해명했다.“여러분 오해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는 진씨 가문이 아니며, 손씨 그룹은 누군가에게 빨 때 꽂을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서로가 서로를 돕는 시스템, 동등한 공생관계가 되길 원합니다. 어떠한 보호비도 어떠한 부당 우대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그러자 모두들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으로 염구준과 손가을을 쳐다보았다. 충분히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먼저 다른 이들을 배려해주다니, 역시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의 배포는 범인이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이들은 다시 한번 염구준과 손가을의 성품과 지혜로움에 감탄했다.“구준 씨.”약 반시간 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가 손가을이 염구준의 품에 가볍게 기대며 말했다.“이분들과 협력관계를 맺게 되면 우리한테는 유리하겠지만, 화련상조회가 크게 반발한 텐데, 괜찮겠어?”그 말에 염구준은 귀엽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화련상조회가 반발해봤자, 그에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이미 불쏘시개엔 불이 붙여졌고, 진씨 가문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회원들의 이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염구준의 예상대로 진씨 가문은 지금 아수라장이었다.진서호는 앞에 놓인 수많은 회원 탈퇴 통지서를 보고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형세가 완전히 넘어갔다!진무석에게 탈퇴를 요구하는 연락이 빗발쳤다고는 했지만, 진서호는 그것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류까지 날아오자,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화련상조회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도련님!”이때, 밖에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
비록 인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베르 일행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여러 가문을 합쳐서 겨우 20명이 살아서 돌아오고 나머지는 심해에서 전사했다.신비한 생물체가 공격하는 바람에 또 한 번 참담한 손해를 보았다.“빨리 출발해!”베르는 선박에 올라오자마자 부하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지금 그의 안색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정예병들을 잃고 강력한 조력자 세라까지 잃었는데, 고작 가짜 옥패를 찾다가 죽을 뻔했다.“출발해. 바다 화산이 곧 폭발할 거야!”“우리도 스텔라성이 복수하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다른 가문에서도 각자 선박과 잠수함을 타고 먼 곳으로 향했다.바다 밑의 움직임이 너무 커서 그들도 휘말릴까 봐 너무 무서웠다.지금 해수면에 남은 사람은 노신기와 아타의 선박뿐이었다.그들은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렸다.저런 인간들도 살아서 돌아오는데 대단한 실력을 가진 염구준은 무조건 살아서 돌아올 거라 굳게 믿었다.“문주님, 소용돌이가 나타났어요.”선박에서 누군가 소리를 쳤다.“소용돌이?”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소용돌이가 점점 거세게 번지는데 이러다 선박 세 척까지 삼켜버릴 것 같았다.또 위기가 닥치자 그들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아타 장로님, 저기…!”노신기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뒷말을 흘렸다.솔직히 그도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싶지만 이러다가 백 명의 부하들이 전부 죽을까 봐 걱정되었다.“일단 철수하고 소용돌이가 사라지면 보트로 찾으러 오죠.”아타도 급속하게 퍼지는 소용돌이를 보고 일단 명령을 내렸다.해수면이 올라오면서 작은 섬들을 완전히 삼키고, 멀지 않은 곳에서 소용돌이가 미친듯이 주변을 삼켜 버리기에 이러다 정말 전멸할 것 같았다.노신기가 베르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염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하하하, 당연히 내가 죽였지!”베르는 바다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웃으면서 빌어먹을 허영심 때문에 또 허풍을 떨었다.당시 현장은 난장판이라 제대로 본 사람은 얼마되지 않
밖에서 보면, 절벽이 곧 무너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게다가 바닥에서 진흙과 모래가 일면서 시야까지 가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방향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하하하, 염구준이 동굴에 묻혔으면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이미 추동 장치로 수십 미터 올라간 베르가 유난히 신나게 웃고 있었다.염구준이 이곳에서 뼈가 부서지고 연기처럼 사라지길 바랬다.촤아아!그런데 기뻐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한 그림자가 혼탁한 바닷물을 뚫고 나타난 것이었다.염구준이 아니면 누구일까?“흥, 추동 장치도 없는데 수천 미터나 되는 심해에서 어떻게 올라오나 보자.”베르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더니 더는 염구준을 상관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동굴 밖으로 나온 염구준은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다.검붉은 암장이 소용돌이치고 모래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사방을 헤엄치고 대왕 오징어도 균열을 뚫고 심연으로 빠져나왔다.이곳의 기괴한 생물체들도 도망치느라 인간을 봐도 공격하지 않았다.염구준은 동굴 밖에 나와서도 바다의 화산이 폭발하는 위기에 처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지금 잠수 장비와 추동 장치는 없고 산소통만 남는데 몇 숨만 쉬면 바닥날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변고로 아래로 흡수하는 암류가 사라져서 올라가기 쉬웠지만 그래도 시간이 한참이나 필요했다.어쩌면 해수면으로 올라가기 전에 암장에 삼키거나 익사해 죽을 것 같았다.‘방법이 있어.’문뜩 좋은 방법이 생각난 그는 빠른 속도로 심해 모래벌레의 둥지로 향했다.그곳에 죽은 무술인들의 잠수 장비를 찾아볼 생각이었다.슈우웅!얼마 가지 못하고 지면이 점점 격렬하게 움직이며 대량의 암장이 사방으로 흘러나왔다.바다의 화산이 제대로 폭발한 것이다.분화점에서 가장 가까운 모래벌레 둥지는 순식간에 암장이 덮쳐버렸다.“뭐야. 나랑 해보자는 거야?”왠지 모든 불리한 요소들이 전부 염구준을 향하는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심해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놀아나다가 죽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방금 전에 심해 눈물의 덕
신비한 생물체는 춤을 추듯 물속을 떠다니더니 공의 명령을 받았는지 우르르 몰려서 베르 일행을 공격했다.“공격을 멈추지 마세요!”두통이 밀려온 베르는 명령을 내리고 곧장 동굴로 도망쳤다.일부 무술인들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각자 도망치기에 바빴다.생물의 정체와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기에 일단 도망치는 것이었다.“살려줘요!”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세라는 베르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데려가길 바랐다.그런데 본인만 챙기느라 누구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일단 한 걸음만 뒤처져도 바로 죽기 때문에 누구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아악!”운이 나쁜 무술인들은 대량의 생물체에 공격당해 비명을 지르다 백골이 되어버렸다.그리고 몸에 한두 마리씩 들어간 무술인들은 경련을 일으키다 바로 기절했다.기괴한 생물체는 공격력은 약하지만 일단 몸에 닿으면 방어할 틈도 없이 살해했다.곧 도망친 사람들은 살아남고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렸다.지금 심해에 염구준이 혼자 남았으니, 반투명한 생물체들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조금만 더!”염구준은 천천히 흐르는 심해의 눈물을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여러 번이나 검기를 휘둘러 생물체를 제거했다.아무리 극한 반보천인이라고 해도 이름도 모르는 생물과 억지로 맞서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감당하지 못하면 백골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니까.슈슈슝!신비한 생물체가 죽는 족족 살아 있는 생물체들이 계속 헤엄치며 다가왔다.염구준이 검을 휘둘러 죽일 때마다 더 많은 생물들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마치 그의 피와 살을 모조리 먹어 치울 기세였다.그래도 염구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자신을 보호했다.그때 일부 생물체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몸으로 스며들었다.“이것들이 정말 끈질기네.”염구준은 체내의 불 원소의 힘으로 몸 겉면에 황금색 화염을 형성했다.심해에서 불 원소의 힘은 압박을 받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생물체를 제거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치지직!그에게 접근한 생물체는 엄청
베르는 동시에 방어한다면 염구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하나씩 파괴되는 것을 보고 괴성을 질렀다.“아아아악!”염구준의 검은 여전히 날카롭게 베르의 방어벽까지 쉽게 깨 부셨다.갑자기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했더니 구자검이 전처럼 날카롭게 움직이지 않았다.“반격!”이때다 싶어 베르는 다섯 명과 함께 기운을 끌어올려 반격에 나섰다.쿵!맹렬한 공격으로 쌍방은 각자 뒤로 물러서고 그 충격으로 수중에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동굴이 심하게 흔들렸다.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방어벽으로 막지 못해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잠수 장비가 깨지고 심해의 수압에 경련을 일으키다 익사했다.그 장면을 본 일부 무술인들은 괜히 끼어들다 죽을까 봐 한참 뒤로 물러섰다.돌기둥에 돌아온 염구준은 아직도 심해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이렇게 귀한 물건을 낭비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산소통을 빼앗아 검으로 자르고는 거기에 담기 시작했다.심해의 눈물이 워낙 밀도가 강해서 산소통의 물이 알아서 흘러나왔다.그때 전체 동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아아악!”또 갑작스럽게 닥친 변고에 다들 주변을 경계했다.베르의 표정은 가관이었다.눈앞의 강적도 죽이지 못했는데 또 알 수 없는 위험이 닥쳐서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불꽃으로 비춰!”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몇 불꽃이 위를 비추었다.대부분 부하들은 가방에 보물을 하나라도 더 쑤셔 넣으려고 전등이나 불꽃을 만드는 장비를 전부 던졌다.불꽃이 이동할 때마다 주변을 비추었는데 위험한 생물체는 보이지 않았다.대신 아무런 상처도 없는 죽은 시체가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그것을 본 순간 불길한 느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적의 정체를 모르니 아무리 힘이 있어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응?”염구준도 수상한 기운을 느끼다 갑자기 누군가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감지했다.죽은 모습은 전에 보물을 찾으러 왔던 무술인들의 시체와 증상이 똑같았다.‘엄청난 생명이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