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서준은 남설아에게 밀려 연달아 뒷걸음질 쳤지만 그의 눈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저 광기 어린 남설아를 무표정하게 지켜볼 뿐이었다.문밖으로 밀려난 뒤, 배서준은 냉소를 머금은 채 남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너 진짜 미쳤구나.”한때는 매일같이 이런 배서준의 비웃음과 조롱, 정신적인 폭력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나날이 있었다.남설아는 그 모든 것을 참아냈고 저항 한 번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그 시절의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다.남설아는 바닥에 벗어놓은 하이힐을 움켜쥐고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배서준의 얼굴을 향해 힘껏 던졌다.이제는 말로 감정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이렇게 물리적인 방식으로 내던지는 게 오히려 속에 쌓인 분노와 울분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방법이었다.배서준은 그제야 얼굴을 찌푸리며 더는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고 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떠났다.가던 길에도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남설아, 너 진짜 미친년이야! 지금 그냥 히스테리 부리는 거라고!”“꺼져, 이 개자식아!”남설아는 있는 힘껏 하이힐을 그의 등에 던졌다. 그러고는 쾅 소리 나게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그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듯 미끄러져 내려갔다.이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자 그녀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싼 채 조용히 울음을 터뜨렸다.소리 내지 않아도 그 분노와 억울함은 온몸으로 뿜어져 나왔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숙자는 가슴이 미어져 급히 남설아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와 그녀를 부축했다.“설아 씨,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남설아는 이 집에 따로 나와 살게 된 뒤부터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했다.모두가 자신을 ‘설아 씨’라고 부르길 바랐다.남설아는 눈물을 대충 훔치더니 갑자기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아주머니, 저 속상하지 않아요. 나 봤죠? 방금 그 얼굴에 하이힐 제대로 한 방 먹였잖아요. 지금 속이 다 시원해요.”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소파에 앉아 케이크를 한
배서준을 한 대 후려친 후, 남설아는 온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케이크까지 먹고 나서는 바로 노트북을 꺼내 프로젝트 자료를 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배서준이 조건을 받아들였으니 이제부터는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내야 할 차례였다.위화 그룹의 기본 정보는 사실 강연찬이 이미 예전에 건네준 적이 있었기에 남설아는 지금 위화 그룹이 뭘 원하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목표가 분명해지면 그에 맞게 방향을 잡는 건 훨씬 수월해지는 법이다.조금만 생각을 정리하곤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두 손은 쉴 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내일은 기술팀 사람들과 첫 대면이 있는 날이었다. 이런 개발자 쪽 사람들은 대체로 단순한 편이고 실력으로 승부 보는 분위기라서 누가 실력이 있느냐에 따라 말발도 달라지는 세계였다.그러니 첫 만남부터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남설아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밤새 프로그램을 붙잡은 끝에 대략적인 모델이 완성됐다.남설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집에서 전업주부 생활을 하며 먹고 자고만 반복할 땐 늘 무기력했는데 일하느라 밤을 새운 지금이 훨씬 정신이 맑았다.확실히 배서준은 사람 기운 빠지게 만드는 재수 없는 인간이었다.‘다 그 인간 탓이야.’남설아는 블랙커피를 가득 따라 마신 뒤, 잠이 확 깨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차에 올라 회사로 향했다.배건 그룹은 아직 전환기 초입에 있었지만 기술팀의 구성은 상당히 고급이었다. 그만큼 배건 그룹이 이번 전환에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그리고 동시에 배서준이 지난번에 계약을 빼앗겼을 때 얼마나 분통 터졌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그 분노에 자기도 한몫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사무실 문을 열고 남설아는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오늘부로 기술팀의 새로운 팀장을 맡게 된 남설아입니다.”이름이 나오자마자 한원준이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남설아? 혹시.. 제일대 남설아 선배님?”“왜요? 나 알아요?
“고마워요.”남설아는 가볍게 웃고는 손뼉을 쳤다.“자, 이제 우리 본격적으로 일해봐요. 다들 이리로 모여봐요. 우선 회의부터 시작하죠!”말을 마치자마자 옆에 있던 한원준에게 USB를 건넸다.“이거 좀 도와줘요, 부탁해요.”“네. 금방 할게요!”한원준은 말 끝나기 무섭게 강아지처럼 바로 USB를 들고 세팅을 시작했다.곧 대형 화면에 USB 안의 자료가 띄워졌다.“제가 기술팀에 온 건 얼마 안 됐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위화 그룹과의 협업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이건 어젯밤에 제가 만든 초기 모델이에요. 한번 자세히 봐주세요. 각자 의견도 말해주시고요. 오늘 이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좀 더 구체화시켜 봅시다.”남설아는 주저 없이 바로 업무에 돌입했다.여기 있는 이과 남자들은 인간관계나 눈치 보는 건 형편 없었지만 수치로 소통하는 건 아주 능했다.처음엔 다들 남설아를 그냥 도식 몇 개만 만들어놓은 낙하산쯤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그녀가 보여준 결과물을 보고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 프로젝트는 이미 한 주 넘게 이들 손에 있었지만 아무도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 상황.그런데 남설아는 단 하루 만에 뚜렷한 로직과 모델까지 짜서 들고 나타났으니 그야말로 충격이었다.그들은 정말 믿기 힘들었다. 젊은 여성이, 그것도 이런 분야에서 이렇게까지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말이다.“왜 다들 나만 쳐다봐요? 화면 보세요.”남설아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원준 씨, 먼저 얘기해볼래요? 어떤 생각 들어요?”그녀는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그 시각, 사무실 밖.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문 앞에 서 있는 배서준은 방 안에서 열정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남설아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그 모습은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 옆에 서 있던 서유라는 배서준의 표정을 살피며 얼굴빛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결국 조심스럽게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서준아, 우리 동생... 정말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거지?”“응, 변호사가
남설아는 알고 있었다.자신이 더 잘 해낼수록 배건 그룹도 더 잘될 거라는 걸.그리고 배건 그룹이 잘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들 역시 훨씬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걸.명확한 목표가 생긴 이후로 그녀의 움직임은 더욱 체계적으로 변해갔다.주원 그룹.“강 대표님, 지금 설아 씨가 기술팀에 들어갔다는 거 아세요?”서진영은 다급한 표정으로 강연찬을 바라봤다.강연찬은 그런 서진영의 표정이 우습기까지 해 눈을 깜빡이며 웃듯 말했다.“왜 그래? 전엔 그렇게 싫다더니 몰래몰래 사람 소식 챙기고 있었나 보네?”그 말에 서진영은 바로 발끈했다.“난 그 사람 자체는 신경 안 써요. 하지만 기술팀에 들어가서 배서준이랑 안팎으로 손잡기라도 하면 우린 정말 속수무책이에요!”남설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그런 서진영을 보며 강연찬은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듯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다.“그야 당연하지. 내가 좋아한 여자가 아무나겠어? 우린 꽃 한 송이만 보는 게 아니라 꽃밭을 만드는 거야. 나랑 잡담할 시간에 너도 실력부터 키워. 괜히 어린 애 하나 붙잡고 질투하지 말고.”“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질투한다는 거예요? 근데 대표님 원래 이렇게 감정에 휘둘리는 스타일이었어요? 몰랐네요.”이쯤 되자 서진영은 정말로 열이 올랐다.‘분명하게 말해줬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태연하게 넘기다니. 이게 말이 되나? 이게 맞는 건가?’“일해.”강연찬은 바로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그의 태도는 단호했다.남설아에 대한 문제라면 그 어떤 계산도 방어선도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사전에 막는다거나 견제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하지만 서진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강 대표님, 설령 회사 생각만 하더라도 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어요.”“그 애한테 손대면, 나랑 끝이야.”눈빛이 매서워진 채로 강연찬은 서진영을 정면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남설아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는 절대 양보하지
배서준과 결혼한 이후, 남설아가 받아온 건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시선뿐이었다.그의 주변 사람들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남설아를 아래로 보는 건 기본이었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그들 상류층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게 공공연한 분위기였다.시간이 지나면서 남설아 자신조차 정말로 자신이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하지만 지금 한원준의 존경 어린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남설아는 문득 깨달았다.그녀는 늘 빛나고 있었지 단 한 번도 모자란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그저 배서준과 그 주변인들이 눈이 멀어 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열심히 해봐요. 다 끝나면 내가 한 번 더 정리해서 마무리해줄게요. 괜찮죠?”남설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오전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남설아는 이미 업무 전반을 정리해 놓았다.단지 앞으로의 방향만 설정한 게 아니라 각자 맡아야 할 영역까지 세세하게 나눠서 정리했다.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움직일 수 있었다.그야말로 이상적인 팀장이었고 혼란스러웠던 기술팀은 단숨에 체계적인 조직으로 바뀌었다.한편, 천기준은 기술팀 상황을 그대로 배서준에게 보고했다.그 안엔 남설아에 대한 칭찬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그 여자, 정말 능력 있네.”배서준은 냉소적으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 남 팀장님, 정말 대단하세요.”천기준은 진심을 담아 답했다.배서준이 비꼬는 걸 모를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칭찬을 해줘야 마땅한 거 아니야? 근데 왜 회사에 빚이라도 진 것처럼 말하시지?’서유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정말 대단하네, 남 팀장님.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너도 이렇게 정신없이 고생 안 했을 텐데.”그 말에 배서준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기분이 상한 듯 투덜거렸다.“내가 보기엔 일부러 튕기는 거야. 능력 있으면 왜 진작 말 안 했겠어? 사람 바짝 엎드리게 만들고 싶었던 거지.”그 순간 천기준
“대표라는 사람이 제대로 못 하면 당연히 욕 좀 먹는 게 맞죠. 천 비서님처럼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욕하는 거야 당연한 권리예요. 솔직히 나도 욕하고 싶다니까요?”남설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욕만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괜히 말 잘못했다가 자기만 손해니까요.마음 좀 가라앉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생각해봐요.”“아, 맞다. 아까 보니까 보너스 깎였다고 했죠? 걱정 마요. 그건 내가 챙겨줄게요. 직원이 실망하면 안 되잖아요, 안 그래요?”남설아는 조용히 걸어와 물티슈를 뽑아 들더니 책상 위에 쏟아진 커피 자국을 말끔히 닦아냈다.‘어차피 어디 가든 일하는 건 마찬가지지. 누구 밑에서 일하든.’천기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생각에 잠겼다.사무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남설아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오히려 천기준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남설아는 알고 있었다.자신이 기술팀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 보너스는 문제없이 나갔을 거라는 걸.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자신이 기술팀에 있고 서유라는 배서준의 곁에 있다.그러니 배서준이 마음이 있어도 서유라가 어떻게든 막으려 들것이었다.직장인들의 공통된 목표는 결국 ‘돈’이다.보너스가 날아간다면 팀원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그렇게 판단한 남설아는 아예 자기 돈을 털어 보너스를 지급했다.“선배님, 이제 막 오셨는데 보너스를 먼저 챙겨주시다니... 진짜 감동이에요!”한원준은 두툼한 봉투를 받아 들고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다른 직원들 역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예전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오늘이 제가 입사 첫날인데 마침 보너스 지급 시기랑 겹쳐서요. 두 가지를 한 번에 축하해야죠. 오늘 저녁, 다 같이 샤브샤브 먹으러 가요! 제가 쏩니다.”남설아가 핸드폰을 흔들며 말했다.“와아아!”기술팀은 다시 한번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남 팀장님 만세!”“남 팀장님, 저희 진짜 사랑합니다!”기술팀은 어느 때보다도
예전이었으면 남설아는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걱정해서 도와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서유라의 비꼬는 말투가 무슨 뜻인지는 남설아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서유라를 신경 쓰지도 않고 곧장 배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준 씨도 그렇게 생각해요?”“회사에 출근하는 이상 직원으로서 회사 규정을 따라야 해. 특별 대우는 있을 수 없어.”배서준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배서준의 그런 모습을 본 남설아는 코웃음을 치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좋아요. 그렇다면 대표님께서도 솔선수범해 주세요. 내가 알기로는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기술팀에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약속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오늘 결재 서류를 올렸을 때 서준 씨가 거부했죠. 그건 무슨 뜻이죠? 내가 기술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 업무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명확한 설명을 해주세요. 이 보너스가 도대체 뭐가 규정에 어긋난다는 거죠?”남설아는 한 마디 한 마디 논리를 펼쳐가며 말했다. 공사 구분해서 업무를 본다고 하니, 그야말로 반가운 소리다. “그런 게 아니야. 서준이는 너무 바빴을 뿐이야. 일부러 지급을 안 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직원들 마음을 사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다고 해도 이렇게 월권행위를 해서는 안 되지.”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배건 그룹을 위해 걱정하는 줄로 오해할 것이다. “나는 내 돈으로 보너스를 지급했어. 이게 회사 규정을 어긴 건가? 나를 문제 삼으려고 온 거라면 먼저 사실부터 정확히 조사하는 게 맞지 않아? 재무팀에 가서 내 지출 증빙과 결재 서류를 확인해 봤어? 아니면 회사 장부에서 돈이 사라지기라도 했나?”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하고는 자신의 계좌 이체 명세를 꺼내 보였다. 이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녀를 몰아세웠지만, 그녀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본인 돈이라고?’서유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설아를 쳐다봤다.“
“서준 씨, 지금 여기서 비서랑 이렇게 쓸데없이 얽매일 시간은 있으면서 정작 보너스 서류는 결재할 시간이 없어요? 이게 대표이사가 할 짓이에요?”남설아는 서유라에게 쏘아붙인 후 다시 배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지금 당장 결재해요. 보너스는 한 푼도 빠짐없이 지급해야 합니다.”“남설아, 그렇게 날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 보너스야 별거 아니지만, 계약을 못 따내게 되면 네가 계속 이렇게 날뛸 수 있을지 두고 보겠어.”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남설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서유라의 손을 잡아끌고는 자리를 떠났다.서유라는 새침하게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가는 내내 훌쩍였다.“서준아,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너까지 난처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그저 네가 걱정돼서 그런 거야. 설아 씨가 아직도 우리한테 앙심을 품고 있어. 게다가 저렇게 많은 걸 쥐고 있으니, 너한테 해코지할까 봐 너무 걱정돼.”서유라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눈물을 흘렸고 얼굴엔 깊은 자책과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남설아가 가진 것들로는 나를 건드리지 못해.”배서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에게는 그것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결국 배씨 가문의 재산은 배씨 가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남설아 같은 외부인은 단 한 푼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서유라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남설아가 할아버지에게서 금고 두 개를 상속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회사 지분은 당장 현금으로 쓸 수 없지만, 금고 안에는 진짜 돈이 있을 것이다.그 생각이 들자, 서유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의 금고는 원래 네 것이어야 해. 설아 씨가 뻔뻔하게 그걸 차지한 거야. 서준아, 다 내 잘못이야. 나만 없었더라면 설아 씨가 널 이렇게 괴롭히지는 않았을 텐데.”“바보야, 남설아가 뭔데 어떻게 나를 괴롭힌다는 거야?”배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서유라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됐어. 걱정하지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
“과거 일은 이제 그만 잊자.”배서준이 말했다.“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해.”“하지만 자꾸만 생각나.”서유라의 목소리엔 억울함과 미련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때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은 분명 나였을 거야. 설아 씨가 아니라.”“유라야...”배서준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말을 잇지 못했다.“예전엔 이런 생각도 했었어. 우리가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세상엔 만약 같은 건 없잖아. 놓쳐버린 건 그냥 놓쳐버린 거지.”“아니야, 우린 아직 끝난 게 아니야.”배서준이 갑자기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이렇게 다시 함께하고 있잖아.”“그렇지만 우리 사이엔 너무 많은 게 가로막고 있어.”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너무 많은 사람과 일들이 있었잖아. 우리가 과연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왜 안 된다는 거야?”배서준은 반문했다.“우리가 서로를 여전히 사랑한다면 그 어떤 것도 우릴 막을 수 없어.”“하지만 설아 씨는...”서유라는 말을 흐렸다.“그 여자는 우리 사이를 막는 존재가 될 수 없어.”배서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모든 건 내가 처리할 테니까.”강연찬의 부상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남설아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병실을 지켰다.혹시 작은 이상이라도 생길까 눈을 떼지 못했다.다행히도 강연찬은 체력이 좋아 며칠간의 휴식 끝에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그날, 강연찬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문서를 들여다보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그때 수프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 남설아가 그의 얼굴을 보고 다가가 물었다.“선배, 무슨 일 있어? 회사에 문제 생겼어?”“배건 그룹의 재무제표에 좀 이상한 점이 보여.”강연찬은 문서를 남설아에게 건넸다.“여기, 그리고 여기. 명백한 허점이 있어.”남설아는 문서를 받아 들고 꼼꼼히 살펴봤다.볼수록 놀라움이 커졌다.이 허점들은 누가 의도적으로 만든 게 분명했고 금액 또한 심각할 정도로 컸다.배건 그룹이 휘청일 정도였
“그래서?”남설아가 물었다.“내가 생각한 건 그 양아치들이 숨어 있는 곳을 몰래 장악한 다음, 경찰에 익명으로 제보해서 전부 한꺼번에 잡히게 만드는 거야.”강연찬은 행동이 빨랐다.증거를 확보하자마자 곧장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즉시 출동해 그 일당을 전원 검거했다.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그들 계좌에 최근 거액의 입금 내역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경로를 추적한 끝에 그 돈이 서유라의 동생 서도현의 계좌에서 송금된 것임이 밝혀졌다.이 소식을 들은 모두가 충격을 받았고 송우민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서도현 그 멍청한 놈, 지난번 당한 걸로는 부족했나 보지. 이번엔 확실하게 값을 치르게 해주지.”그의 눈엔 분노가 타올랐다.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걸 불태워버릴 듯한 기세였다.“우민아, 진정해.”남설아가 그의 손을 잡고 진정시키려 했다.“너 화난 거 나도 알아. 나도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지금은 서유라와 정면으로 부딪힐 때가 아니야.”“하지만...”송우민이 뭔가 말하려는데 남설아가 먼저 말을 이었다.“네가 날 위해 복수하고 싶어 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배건 그룹을 장악하는 거야.”남설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하고 흔들림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수수의 복수를 할 수 있고 서유라와 서도현에게도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만들 수 있어.”“그럼 그 서도현이라는 놈은 그냥 이렇게 놔두자는 거야?”송우민은 여전히 쉽게 수긍하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럴 리 없지.”남설아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경찰에 맡길 거야. 법적으로 죗값을 받게 만들 거고 난 그 과정을 끝까지 지켜볼 거야.”남설아의 눈빛에 다시금 날이 섰다.“절대로 서도현이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거야. 끝까지 추적할 거야. 반드시 법정에 세우고야 말 거라고.”“이게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야.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계획 전체를 망칠 순 없잖아.”“알겠어.”송우민은 마지못해 한숨을 쉬고 고
남설아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국수를 강연찬 앞에 놓아주고 그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천천히 먹어. 데일라.”부드럽게 건네는 말투는 꼭 다정한 아내 같았다.“응.”강연찬은 국수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설아야, 네가 끓인 국수 진짜 맛있다.”“맛있으면 더 먹어. 앞으로 매일 끓여줄게.”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지.”강연찬은 고개를 들어 남설아를 바라봤다. 눈빛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그럼 약속한 거다.”강연찬의 시선을 받자 남설아는 조금 부끄러워진 듯 고개를 숙이고 작게 말했다.“누가 선배랑 약속한대?”“하하하.”강연찬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넌 여전히 말과 마음이 다르다니까.”볼이 살짝 붉어지며 남설아는 강연찬을 째려보며 말했다.“국수나 어서 먹어. 이러다 식겠어.”“알겠어, 알겠어. 명령대로 하겠습니다.”강연찬은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큼큼.”그때, 송우민이 일부러 두어 번 헛기침을 하며 둘 사이의 달달한 분위기를 깼다.“남설아,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남설아는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이미 천 비서님한테 비밀리에 연락해서 배서준이랑 서유라의 움직임을 감시하게 했어.”“천 비서?”강연찬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 사람 믿을 수 있는 거야?”“걱정 마, 선배.”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천 비서님은 예전엔 배서준 쪽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우리 편이에요. 본인이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그렇다면 다행이네.”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도 조심해야 해. 배서준은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니까.”“응.”남설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어.”“참, 남설아.”송우민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방금 소식이 들어왔는데 배서준이 서유라를 데리고 회사를 빠져나가서 어떤 프라이빗 리조트로 갔다고 해. 서유라 상태가 안 좋아져서 요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말했잖아요, 전 그런 일 한 적 없다고요!”강연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지금 이건 명백한 조작이에요!”“강연찬 씨, 진정하세요.”형사가 말했다.“저희는 절차에 따라 조사 중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전 제 변호사를 부르겠습니다.”강연찬은 단호하게 말했다.“변호사 도착 전까진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습니다.”강연찬의 강경한 태도에 경찰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를 임시 유치장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남설아는 경찰서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혹시나 강연찬이 억울한 대우를 받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대표님, 너무 걱정 마세요.”곁에 있던 천기준이 위로하듯 말했다.“강연찬 씨는 운도 따르는 분이잖아요.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그랬으면 좋겠어요.”남설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제발 큰 고통은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그때, 송우민이 급히 걸어왔다.“남설아!”그가 말했다.“강연찬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찾았어.”“정말?! 너무 잘됐네!”남설아는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어디 있어? 얼른 보여줘!”송우민은 준비해온 서류를 그녀에게 건넸다.문서를 받은 남설아는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이건...!”남설아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이게 바로 선배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야!”“맞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서류만 있으면 경찰에 정식으로 석방 요청할 수 있어.”“잘됐다!”남설아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지금 바로 가자.”그렇게 두 사람은 그 증거를 들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를 찾아갔다.“형사님, 이게 강연찬 씨의 결백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풀어주세요.”형사는 서류를 받아 꼼꼼히 읽어보았다.하지만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게... 이게 어떻게...”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 자료 어디서 나신 겁니까?”
남설아는 꿈에도 몰랐다.배서준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비열해질 줄은.무고한 강연찬을 덫에 빠뜨리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이걸 어쩌면 좋지...”남설아는 마치 불에 달궈진 솥 위의 개미처럼 초조하게 사무실 안을 서성였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강연찬의 성격을 잘 알았다.그런 사람이 기업 기밀을 유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고 분명 배서준이 꾸민 계략이다.“대표님,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천기준이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강연찬 씨를 반드시 구해낼 수 있어요.”“대표님, 지금은 침착하셔야 해요.”천기준이 진정시키려 애썼다.“우선은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요.”남설아가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송우민이 급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남설아! 강연찬 잡혀갔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야?!”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다 배서준 그 비열한 놈이 한 짓이야!”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날 무너뜨리겠다고 선배까지 끌어들였어. 기업 기밀 유출 혐의로 덮어씌운 거야. 진짜 너무 뻔뻔하지 않아?!”“그 자식,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송우민도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가자. 당장 경찰서로 가서 따져보자. 배서준 그 자식, 자기가 진짜 법 위에라도 있는 줄 아나 본데?”송우민은 말하자마자 남설아의 손을 잡고 나가려 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걸음을 멈췄다.“잠깐만.”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지금 당장 달려가는 건 좋지 않아. 그럼 배서준만 신나게 해주는 꼴이야.”“그럼 어쩌자는 거야?”송우민이 물었다.“강연찬이 억울하게 잡혀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그럴 순 없지.”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우리 쪽에서 먼저 증거를 찾아야 해. 선배가 억울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증거라니... 어디서 그런 걸 찾는다는 건데?”송우민은 고개를 저었다.“배서준 그 여우가 얼마나 치밀한데.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을 거야.
“안 돼요!”남설아는 단호했다.“확실한 증거 없이는 누구도 선배 데려갈 수 없어요!”“설아 씨, 이거 지금 공무집행 방해하시는 겁니다!”간호사가 다급해졌다.“상관없어요!”남설아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증거 가져오기 전엔 누구든 손도 못 댈 거예요!”“설아야, 이러지 마.”강연찬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말했다.“잠깐 가서 설명하면 돼. 금방 끝날 거야.”하지만 남설아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그녀의 눈빛엔 여전히 깊은 불신과 걱정이 가득했다.“정말 괜찮아.”강연찬이 조용히 위로하듯 말했다.“여기서 기다려줘. 금방 돌아올게.”“선배”남설아가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강연찬이 먼저 말을 이었다.“말 들어.”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나 믿어줘.”남설아는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응, 기다릴게. 꼭 돌아와.”그렇게 강연찬은 경찰과 함께 병실을 나섰고 남설아의 가슴엔 불안이 가득 밀려들었다.“배서준, 당신의 진짜 비열하고 더러운 짓을 끝까지 봐줄 줄 알았어?”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곧장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천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천 비서님, 누가 선배 뒤통수쳤는지 당장 찾아봐요.”남설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세세한 내막까지 다 밝혀야 해요.”“네, 대표님. 지금 바로 조사해보겠습니다.”천기준은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전화를 끊은 남설아의 눈빛은 분노로 불타올랐다.한편, 강연찬이 경찰에게 끌려간 이후 배씨 가문 쪽도 평온하지 않았다.서유라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된 것이다.그녀는 병상에 누운 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배서준의 손을 꼭 쥐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나... 나 정말 죽는 거 아니야?”“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절대 그렇게 안 놔둘 거니까.”“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