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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9 07:57:52

같은 시각, 서울 구치소 접견실.

차가운 철문이 열리며 죄수복 차림의 심재호가 들어왔다.

헐렁한 소매가 손목을 덮고 있었고, 걸음은 느긋했다.

이미 바깥 소식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여유였다.

맞은편에는 수혁과 민우가 앉아 있었다.

심재호는 의자에 앉자마자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셨나, 대표님.”

시선이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꼴 보아하니 회사 꼴이 말이 아니던데. 침수차라니, 아주 화끈하더라.”

그는 일부러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톡톡 두드리며,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수혁은 말없이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유리벽에 붙이는 동작조차 군더더기가 없었다.

“네 짓인 거 다 알아.”

건조한 한 문장.

심재호의 눈이 서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뭘 안다는 거지?”

수혁의 시선이 서류 하단을 가리켰다.

“구형 정비 이력서. 업데이트 이전 양식.”

“그리고 결재란 오른쪽 하단 도장 자국.”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정확했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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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6화.

    서린의 입이 막혔다.‘뭐라고 둘러대지? 회사 후배? 동네 동생?’불안한 눈으로 도윤을 돌아보는데.그가 먼저 움직였다.서린이 옆자리로 와서 그녀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둘렀다.“제 여자친구예요.”공기가 잠깐 멎었다.“……!”서린의 눈이 커졌다.강민재의 손이 의자 등받이에 걸린 채 멈췄다.“... 여자친구?”강민재가 되물었다.도윤은 태연하게 웃으며 서린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네. 만난 지 좀 됐어요. 아직 집에는 말씀 안 드렸거든요. 형도 아시잖아요. 우리 집 분위기.”장난스럽게 덧붙였다.“비밀 좀 지켜 주세요.”도윤의 연기는 완벽했다.서린은 차마 도윤을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기대지도 못했다.어깨에 둘러진 팔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 어색함조차 들켜서는 안 됐다.결국 입술을 꾹 다문 채 도윤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췄다.‘비밀 연애’라는 설정은 그들이 왜 외진 카페 구석에 있었는지, 왜 서린이 당황했는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잠시 정적이 흘렀다.강민재가 서린을 빤히 쳐다보았다.그리고 이내,“푸하하하하!”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카페 안의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였다.“와, 이거 진짜…… 대박이네.”강민재는 눈물까지 닦으며 웃었다.그리고는 서린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의외입니다, 공 부장님.”“……뭐가 말입니까.”“아니, 며칠 전에는 차수혁 대표가 남자친구라고 나서지 않았습니까? 내 여자 앞에서 꺼지라면서.”강민재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그런데 오늘은 또 이런 그림이라.... 설마, 양다리였습니까?”서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모욕적이었다.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사생활입니다.”서린이 싸늘하게 대꾸했다.“그러시겠죠.”강민재는 혀를 찼다.“그런데 좀 서운하네요. 나한테는 일말의 기회조차 안 주더니. 차 대표에, 도윤이에…… 공 부장님 취향이 참 다양하십니다?”그는 서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예전의 애틋함은 사라지고, 경멸과 흥미가 뒤섞인 눈빛이었다.“이건 뭐,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5화.

    같은 시각, 서울 구치소 접견실.차가운 철문이 열리며 죄수복 차림의 심재호가 들어왔다.헐렁한 소매가 손목을 덮고 있었고, 걸음은 느긋했다.이미 바깥 소식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여유였다.맞은편에는 수혁과 민우가 앉아 있었다.심재호는 의자에 앉자마자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렸다.“여기가 어디라고 오셨나, 대표님.”시선이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꼴 보아하니 회사 꼴이 말이 아니던데. 침수차라니, 아주 화끈하더라.”그는 일부러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톡톡 두드리며,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수혁은 말없이 서류 한 장을 꺼냈다.유리벽에 붙이는 동작조차 군더더기가 없었다.“네 짓인 거 다 알아.”건조한 한 문장.심재호의 눈이 서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뭘 안다는 거지?”수혁의 시선이 서류 하단을 가리켰다.“구형 정비 이력서. 업데이트 이전 양식.”“그리고 결재란 오른쪽 하단 도장 자국.”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정확했다.“도장 찍고 오른손으로 한 번 더 눌러서 각이 살짝 틀어지는 버릇. 네 습관이잖아.”순간, 심재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했다.그러나 곧 비웃음으로 덮었다.“그래서? 그게 증거야?”그는 의자에 몸을 깊이 기대며 말했다.“심증만으로 여기까지 온 거면 헛걸음이네. 나 곧 나가. 변호사 잘 썼거든.”“그 변호사, 누가 사줬을까.”민우가 끼어들었다.“네 계좌로 들어온 자금. 가족 명의로 생긴 오피스텔. 자금 흐름 다 추적 중이야.”“꼬리 자르기 당할래, 아니면 우리랑 손잡고 형량 줄일래?”공기가 잠시 가라앉았다.그러나 심재호는 하품을 했다.“마음대로 해.”심재호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여기서 몇 년 더 사나 덜 사나, 나한테는 같아. 나가면 떵떵거리고 살 돈이 있는데 내가 왜 니들 말을 들어?”수혁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었다.제대로 물었나보네 이 새끼.후우-호흡을 길게 내 뱉은 수혁이 천천히 일어나려는 순간—“쳐 봐.”심재호가 고개를 들었다.“쪼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4화.

    “안에서 이 정도 판을 짜는 게 가능해? 기사 하나 흘리는 수준도 아니고, 내부 문건까지 만들어서 커뮤니티에 뿌리고 언론까지 한꺼번에 움직였잖아.”민우가 미간을 좁혔다.“밖에서 손발이 되어주는 놈이 있다는 얘긴데.”수혁의 손가락이 핸들 위를 천천히 두드렸다.“그러니까 직접 물어보러 가는 거야.”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심재호가 입을 열든 말든,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돕는 놈이 누군지 알아내러.”민우가 팔짱을 풀었다.“확신 있어?”수혁이 짧게 웃었다.“그 위조문서 서명란 봤어?”“어.”“도장이 오른쪽 아래로 살짝 기울어져 있더라.”민우가 고개를 갸웃했다.“그게 뭐.”“심재호 결재 버릇이야. 도장 찍고 항상 오른손으로 한 번 더 눌렀어. 그래서 오른쪽 아래가 번지면서 미묘하게 기울어져 보여.”민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와… 소름 돋네. 넌 그런 걸 다 기억하냐?”수혁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내 뒤통수친 놈들 습관은 안 잊어버려.”심재호.차윤호의 끄나풀이었고,강민재 쪽으로 자금이 흘러가던 고리.누군가가 옥중의 그를 접촉해 움직이고 있다면—목적은 분명했다.나와 회사를 무너뜨리는 것.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일까?뭐가 됐든.오늘, 그 썩은 연결고리를 뿌리째 끊어낼 기회였다.같은 시각.강민재는 개인 사무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화면 속에서는 수혁의 기자회견 장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회사를 접겠습니다.]강민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세게 나오네.”그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꺼버렸다.화면이 검게 꺼지며 방 안이 고요해졌다.불안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내부 조력자? 밝혀지면 뭐 어때. 돈이면 가족까지 파는 놈인데, 입 막는 건 일도 아니지.”강민재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었다.“지저분한 건 밑에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지금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건 회사의 주가도, 여론도 아니었다.“보고 싶네.”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3화.

    한도오토링크 로비는 터질 듯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고,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일렁였다.단상 위에 선 수혁은 그 소란을 잠재우듯 마이크를 잡았다.그의 표정은 차분했다.변명하러 나온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반갑습니다. 한도오토링크 대표 차수혁입니다.”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로비에 울려 퍼지자,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먼저, 불미스러운 논란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짧게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준비된 원고 대신, 그는 정면의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지금 제기된 침수차 판매 의혹, 그리고 정비 이력 조작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부 사실무근입니다.”기자석이 술렁거렸다.“증거가 나왔는데 무슨 소리냐!”“해명 말고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질문이 빗발쳤다.수혁은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책임지겠습니다.”짧고 단단한 한마디.순간 셔터 소리가 멎었다.“지금 이 시각부터 3년간 판매된 전 차량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합니다. 외부 감사 기관, 소비자 단체, 그리고 언론이 지정하는 제3의 기관까지 모두 참관시키겠습니다.”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만약, 단 한 대라도 침수차가 발견되거나 정비 이력을 고의로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다면—”잠시 숨을 골랐다.“그 즉시―”말을 멈추고 기자들을 쭈욱 훑어본 수혁이 다시 말을 이었다.“대표직 사퇴가 아니라...”“회사를 접겠습니다.”헉-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 하나가 펜을 떨어뜨렸다.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또각, 울렸다.대표직 사퇴가 아니었다.폐업이었다.“이야- 이거 정말 큰 껀인데?”“진짜 저거 조작이라고 할 수가 없겠는데?”기자들이 웅성대고 여기저기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결백하지 않고서는 던질 수 없는 카드였다.“그리고 조작된 증거에 대한 해명은 실무 책임자가 직접 설명하겠습니다.”수혁이 옆으로 물러섰다.모든 시선이, 단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2화.

    “악성 민원이 아니야. 내부를 아는 사람이야. 아니면 이렇게 못 만들어.”회의실 밖에서는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항의, 취재 요청, 주주 문의까지—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었다.“법무팀은?”“저 문건이 위조라는 걸 입증하려면 서버 포렌식이 필요합니다. 최소 일주일은…”일주일.그 한마디가 공기를 더 무겁게 가라앉혔다.일주일이면 주가는 바닥을 치고,딜러들은 계약을 보류하고,협력사는 눈치를 본다.서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누군가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다.그리고 그 타겟은—너무도 정확했다.한도오토링크가 그동안 지켜왔던 것.‘신뢰.’수혁은 침수차 문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현장에서 직접 점검하고, 속임수를 쓰는 딜러는 가차없이 정리하고,거래처를 끊어가며 뼈를 깎듯 쌓아 올린 신뢰였다.그게 지금, 정면으로 무너지고 있었다.“공 부장.”상석에 앉아 묵묵히 화면을 응시하던 수혁이 입을 열었다.“네, 대표님.”“이 문건, 우리 시스템에서 출력된 거 맞나?”“전산 기록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만…내부 구조를 정확히 알고 만든 문서로 보입니다.”수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 부분은 나하고 공 부장이 체크한다.”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회의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왜 다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어.”수혁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그런데도 회의실 공기를 단번에 팽팽하게 당겨 세웠다.그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시선을 들었다.“우리가 침수차 팔았나?”“……아닙니다.”“우리가 정비 이력 조작했어?”“절대 아닙니다.”“그럼 고개 들어.”그의 말은 명령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까웠다.수혁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지지 마. 우린 떳떳했고, 그걸 세상에 증명하는 것만 남았다. 이런 비열한 수작 하나 벌어졌다고 우리가 무너질 것 같아?”공기가 서서히 바뀌었다.패배감과 당혹감 대신,억울함에서 비롯된 단단한 분노가 자리 잡았다.직원들의 시선이 수혁에게로 모였다.그는 곧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1화.

    서린은 유정과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헤어졌다.집에 들어가서야 수혁에게서 부재중 전화 2통과 문자가 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곧 퇴근한다][시간 되면 전화해]서린은 그대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가자마자 곧바로 수혁의 목소리가 들렸다.“왜 이렇게 늦어.”“미안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가…….”“누군 좋은 시간을 보냈네.”“무슨 일 있으세요?”“내가 뭐,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나?”퉁명스러운 척하지만 묘하게 다정한 목소리.“그게 아니라…….”“집이야? 이제 들어온 거야?”“네.”“그럼 쉬어. 내일― 아니, 지금 집 앞으로 갈게. 얼굴 보자.”“네? 지금요?”“곧 도착해. 10분 후에 내려와.”“10……?”수혁은 전화를 받자마자 이미 핸들을 돌려 서린의 집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정확히 10분 후.다시 전화가 울렸다.서린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신발을 신었다.현관문을 열고 뛰다시피 나갔다.“대표님, 지금 도착하신 거예요?”“어. 내려와.”담담한 수혁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서린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1층으로 내려가니 수혁이 주차해 놓고 그 앞에 서 있었다.어둠 속에서도 그의 넓은 어깨와 꼿꼿한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왔다.서린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빠른 걸음으로 수혁에게 다가갔다.“천천히 와.”육성과 핸드폰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들렸다.“아까 통화로 해도 되는데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보고 싶어서.”그 말을 듣는 순간, 서린의 걸음이 멈췄다.‘보고 싶다’는 그 말이,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고 그녀의 심장에 깊숙이 꽂혔다.서린이 움직이지 않자, 수혁이 천천히 발을 뗐다.한 발.한 발.천천히 오던 걸음이 빨라졌다.순식간에 서린의 바로 앞까지 왔다.수혁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손을 들어 서린의 볼을 살며시 감쌌다.그의 손이 서린의 어깨를 지나 팔을 타고 내려와그녀의 손을 잡았다.서린은 자기 손을 잡은 수혁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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