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음원 차트의 1위보다, 너를 더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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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28
Por:  6jayActualizado ah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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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끝에 15년 전으로 돌아온 천재 작곡가 강도준. 모든 히트곡의 미래를 기억한 그는 익명의 프로듀서로 음원 차트를 뒤흔든다. 그 과정에서 버려질 위기의 연습생 윤시아를 만나고, 복수만 바라보던 그의 삶에도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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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회귀
비 내리는 밤의 강변북로는 유난히 미끄러웠다.찌그러진 폐차 직전의 국산 경차 안에서 강도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입가에서 흘러나온 피가 낡은 스티어링 휠과 조수석의 데모 테이프, 악보 위로 뚝뚝 떨어졌다.사이드미러 너머로 거대한 덤프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이 멀도록 번쩍이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 따위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경차를 밀어 강변 아래로 떨구려고 따라붙은 트럭이었다.지이잉—.대시보드 위에 금이 간 휴대폰 화면에 [태율엔터 총괄전무 강태진]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도준이 부들부들 떨리는 피 묻은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폰 너머로 얼음장처럼 차갑고 오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수고했다, 도준아. 네가 지난 10년간 골방에서 써준 30곡 덕분에 내가 이번 ‘국내 음악프로듀서상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받게 됐어.”“강태진…… 개자식아…….”도준이 핏물을 뱉고 이를 악물었다.“화내지 마라. 첩년의 배에서 태어난 근본 없는 혼외자 놈을 거둬서 밥 먹여준 게 누구 덕인데? 너 같은 그림자는 영원히 내 이름 뒤에서 대필이나 하다 조용히 사라지는 게 가문의 질서야.”태진의 비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내일 아침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될 거다. ‘태율엔터 천재 프로듀서 강태진의 전속 대필 작곡가, 상습 마약 투약 후 음주운전으로 사망.’ 죽어서도 내 이름값이나 올려. 네가 그나마 쓸모 있을 때가 그때니까.”“내가…… 널 가만둘 것 같아?!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네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거다!”“지옥에서 잘 살아봐라, 버러지 같은 놈.”뚝. 전화가 끊겼다. 25톤 덤프트럭의 묵직한 쇠 범퍼가 경차의 후미를 무자비하게 짓뭉갰다.콰아아앙—!뼈가 바스러지는 끔찍한 둔탁음과 함께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차량이 세 바퀴를 구르며 강변 난간을 뚫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부서진 차창 틈으로 쏟아지는 차가운 빗물.도준의 귓가에 지난 15년 동안 글로벌 메인 싱글 차트 TOP 100과 국내 연간 차트 1위를 휩쓸었던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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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반격
도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쩍 곯아 있던 과거의 유약한 소년의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서 팀장이 먼저 눈을 피하며 한 발 물러섰다.“너…… 눈빛이 왜 그래?”도준이 보면대 위에 놓여 있던 악보를 집어 들었다. 강태진이 자기 이름을 붙여 신인 그룹에 내놓을 예정이던 멜로디였다.쫘아악—!도준은 망설임 없이 악보를 반으로 찢어 바닥에 내팽개쳤다.“이 쓰레기 같은 곡은 강태진 전무 주지 마세요.”도준은 찢어진 악보를 발끝으로 밀어냈다. 과거에는 이 한 장을 지키지 못해 15년을 빼앗겼다. 이번에는 달랐다.“강태진 전무가 원한다는 곡은 따로 준비하겠습니다.”서 팀장이 악보 조각과 도준을 번갈아 보았다.“너, 나중에 후회하지 마.”도준은 바닥에 떨어진 악보 한 조각을 주워 구겨진 모서리를 펴 보았다. 한때는 이 종이 한 장에 자기 인생이 매달려 있다고 믿었다.“후회는 이미 충분히 했습니다.”이번에는 남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도준은 문밖에서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기침 소리에 잠깐 시선을 들었다. 누군가 복도 끝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지금은 얼굴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그 가느다란 숨소리가 귀에 남았다.바닥에 어지럽게 흩뿌려진 악보 조각들을 내려다보던 서 팀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너…… 너 지금 제정신이야?! 전무님께 들어갈 메인 데모 악보를 찢어?!”서 팀장이 삿대질을 하며 주먹을 부들부들 쥐어질렀다. 과거의 강도준이었다면 바들바들 떨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을 터였다. 첩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 당장이라도 길바닥으로 쫓아내겠다는 본가 식구들의 협박 앞에서 도준은 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림자 노예였다.하지만 지금의 도준은 지난 생 15년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었다.도준이 한 걸음 다가섰다. 184cm의 큰 체격이 가까워지자 서 팀장이 저도 모르게 턱을 뒤로 뺐다. 도준은 서 팀장의 와이셔츠 깃을 잡아당겼다.“서 팀장님.”도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강태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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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뮤즈볼트
도준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강태진 전무가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걸 신인 그룹 타이틀곡입니다. 영어 가이드까지 그대로 쓰라고 하세요. 한 글자도 바꾸지 말고.”서 팀장은 귀신에 홀린 듯 USB를 품에 안고 쫓기듯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지하 연습실에 홀로 남은 도준은 낡은 백팩에서 개인 노트북을 꺼냈다. 화면에는 전 세계 언더그라운드 작곡가들이 익명으로 음원을 투척하는 글로벌 인디 플랫폼 ‘뮤즈볼트’가 떠 있었다.도준은 조금 전 완성한 함정용 뭄바톤 버전과, 그 안에 숨겨 둔 후렴 8마디의 원곡 파일을 함께 올렸다. 파일마다 SHA-256 해시와 서버 등록 시각이 남도록 원본 인증 절차를 걸었다. 훗날 윤시아에게 줄 곡과 같은 핵심 선율이었다.강태진이 그 8마디를 자기 것이라 우기는 순간, 원본 등록 시각이 곧 덫이 된다.작곡가 닉네임 입력창. 도준의 손가락이 단 하나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타이핑했다.[MAESTRO]글자를 입력한 순간, 손끝이 아주 잠깐 멎었다.지난 생의 도준에게는 자기 이름으로 불린 시간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의 대필 작곡가, 회장의 혼외자, 강태진의 그림자. 이름 대신 늘 관계가 먼저 붙었다.그래서 이번에는 누구의 것도 아닌 이름을 하나 만들었다.MAESTRO.누군가를 눌러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음악을 자기 이름으로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였다.도준은 입력된 이름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이름이었다. 엔터를 누르자 음원이 전송 완료되었다.그때 연습실 문밖 복도 어둠 속에서 작고 가녀린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태율엔터의 메인 보컬 연습생이자, 훗날 강태진의 갑질에 밀려 성대결절로 버려졌던 비운의 천재 보컬, 열아홉 살의 윤시아였다.도준은 문손잡이를 잡은 채 멈췄다.지난 생에도 이름은 알고 있었다. 녹음실 구석에서 몇 번 스쳤고, 어느 날 갑자기 연습생 명단에서 사라진 아이. 몇 년 뒤에야 그는 시아가 목을 다친 채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때는 자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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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윤시아
도준이 건넨 생수병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아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그녀는 구겨진 악보를 뒤로 감추며 거칠게 쏘아붙였다.“동정할 거면 가세요. 그쪽도 회장님 눈치 보면서 골방에서 곡 써준다면서요. 저 불쌍한 척 안 해도 돼요.”태율엔터 바닥에서 도준의 처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도준은 물병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강태진 그 얼간이가 준 곡, 네 성대 음역대랑 전혀 안 맞아.”“……뭐?”“넌 3옥타브 후반을 목으로 밀어붙이는 고음 셔틀이 아니야. 중저음에서 결을 살리는 흉성과, 가성에서 믹스보이스로 넘어갈 때 생기는 거친 숨이 네 무기야. 강태진은 그걸 들을 귀가 없고.”시아는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목이 상한 날마다 자신도 어렴풋이 느끼던 문제였다.보컬 트레이너들은 늘 더 높게, 더 세게만 부르라고 했다. 낮은 음의 결을 무기라고 말한 사람은 처음이었다.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턱짓을 했다.“따라와요. 목 안 상하고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직접 들어봐요.”홀린 듯 도준을 따라 지하 작업실로 들어선 시아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도준은 신시사이저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도롱, 도로롱—.방금 전 강태진에게 던져준 자극적인 댄스 비트와는 차원이 다른, 가슴을 저미는 빈티지 R&B 피아노 멜로디가 좁은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2010년대 후반 음원 차트를 초토화시켰던 네오 소울 발라드의 감각적인 코드 진행과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었다.“첫 소절은 힘 빼. 노래하지 말고, 말하듯 시작해.”도준이 콘덴서 마이크를 건네며 템포를 맞췄다.시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첫 소절을 뱉어냈다.“비가 내리던 그 밤에…… 널 잊지 못해…….”첫 소절이 끝났는데도 목이 따갑지 않았다.시아의 낮은 음은 모래알처럼 거칠었고, 끝음에는 숨이 얇게 섞였다. 낡은 마이크가 그 결을 고스란히 받아냈다.시아는 자기 목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헤드폰을 붙잡았다.그녀는 같은 구절을 한 번 더 불렀다. 이번에는 도준이 시킨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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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탈출
쿵, 쿵, 쿵!얇은 합판 재질의 작업실 문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강태진의 직속 수행 매니저들의 거친 고함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시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태율엔터의 라운지는 회사의 거물 스폰서들과 정재계 임원들이 드나드는 악명 높은 술자리였다.데뷔를 미끼로 힘없는 연습생들을 접대성 술자리에 내모는, 회사 안에서도 소문난 자리였다.“도, 도준 씨…… 저 어떡해요…… 잡히면 끝장이에요…….”시아의 손끝이 눈에 띄게 떨렸다.도준은 차분하게 시아의 손목을 잡고 작업실 안쪽의 비상 탈출구 쪽으로 이끌었다.지하 배관실과 연결된 녹슨 철문이었다.“조용히. 내 뒤에 붙어요.”도준이 앞서 철문을 밀었다.시아는 그의 손에 잡힌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다. 아프지 않을 만큼만 단단한 힘이었다. 무작정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턱이 있는 곳에서는 속도를 늦췄고 어두운 계단에서는 먼저 발을 디뎠다.“여기 계단 하나 더 있어.”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시아는 지난 몇 년 동안 ‘따라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대부분 평가실이나 접대 자리,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이었다.그런데 처음으로 그 말이 안전한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도준은 비상구를 열고 시아를 데리고 건물 뒤편 쓰레기장 골목으로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강태진의 수하들이 지하 연습실을 뒤집어놓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대로변에서 택시에 올라탄 뒤였다.도준이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홍대 소극장 거리 앞, 제니스톤 레코드로 가주세요.”***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허름한 지하 스튜디오.‘제니스톤 레코드’의 간판은 녹이 슬어 불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스튜디오 안에는 1세대 인디 음악의 전설이었으나 대형 기획사의 음원 사재기와 방송 독점에 밀려 파산 위기에 처한 민성훈 대표가 소주병을 쥐고 널브러져 있었다.“누구요……? 우리 망했어. 압류 딱지나 붙이고 가쇼.”민 대표가 퀭한 눈으로 중얼거렸다.도준은 주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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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기습발매
8일 뒤인 2011년 5월 24일 정오.법률대리인은 폭언과 강요가 담긴 녹취를 첨부해 태율엔터에 연습생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회사가 대응책을 정리하는 사이, 인디 레이블 ‘제니스톤’ 명의로 신인 가수 ‘윤시아’의 디지털 싱글 《새벽 세 시의 멜로디》가 전 음원 사이트에 기습 발매되었다.대형 기획사의 수억 원대 마케팅도, 지상파 음악방송 출연도 전혀 없었다.발매 첫날,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의 일간 차트는 850위권 밖이었다.그대로 묻힐 무명 신인의 음원처럼 보였다.도준은 훗날 숏폼이라 불릴 짧은 구간 반복의 힘을 알고 있었다.미니홈피 BGM 추천 게시판과 초기 SNS 음악 페이지, 대형 음악 커뮤니티에 40초짜리 하이라이트 클립과 미리듣기 링크를 서로 다른 시간대에 나눠 올렸다.[“미친 음색 신인 떴다. 1분 20초부터 소름 돋음.”][“작곡가가 ‘MAESTRO’라는데 대체 누구냐? 비트가 외제 팝송 뺨침.”]링크는 음악 게시판 밖으로 번졌다. 누군가는 킬링 파트를 미니홈피 BGM으로 걸었고, 다른 사람은 가사 한 줄과 함께 곡 주소를 퍼 날랐다.발매 24시간 만에 재생 수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그리고 발매 사흘째인 5월 26일 저녁 7시.[실시간 음원 차트 TOP 100 - 72위 진입!]제니스톤 지하 스튜디오에서는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시아가 모니터 숫자를 세 번 새로고침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진짜…… 제 이름 맞죠?”“윤시아.”도준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네 이름 맞아.”시아는 웃다가 울었다. 급하게 등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도준은 휴지를 건네는 대신 콘솔 위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시아가 스스로 집어 들 때까지 기다렸다.그 작은 배려가 그날의 72위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같은 시각, 태율엔터 15층 전무실.자신이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걸 신인 프로젝트 발표회를 준비하던 강태진의 방문을 비서가 다급하게 열어젖혔다.“전무님! 큰일 났습니다! 방출했던 윤시아의 음원이 실시간 차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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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역주행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도 순위는 떨어지지 않았다. 《새벽 세 시의 멜로디》는 새로고침할 때마다 한두 계단씩 더 올라갔다.자정이 넘은 시각, 밤샘 공부를 하던 고시생들과 야근에 지친 직장인들의 미니홈피 BGM과 SNS 타임라인을 통해 노래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새벽에 혼자 듣다가 오열했다’, ‘음색이 그냥 인간 문화재 수준임’, ‘작곡가 MAESTRO 대체 누구냐, 신곡 언제 나오냐’]는 댓글이 수만 개씩 달렸다.새벽 1시. 72위였던 곡은 35위, 12위를 거침없이 뚫어버리더니, 급기야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의 실시간 점유율 그래프를 뚫어버리는 사상 초유의 ‘지붕킥’을 터뜨렸다.[국내 주요 4대 음원 사이트 실시간 1위 올킬(All-Kill)!]수억 원대 마케팅을 건 최정상 아이돌의 신곡들이 무명 신인의 노래 아래로 하나씩 밀려났다.***2주가 조금 지난 2011년 6월 10일 금요일, 여의도 KBN 신관 공개홀. 생방송 《뮤직스테이지》 1위 후보 대기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3주 연속 1위를 지킨 대형 기획사 보이그룹과, 데뷔 2주 만에 후보가 된 신인 시아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무대에 오른 시아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인트로 피아노가 흐르고 객석 구석의 도준과 눈이 마주치자, 시아의 손 떨림이 멎었다.리허설 때 도준은 딱 한마디만 했다.“높은 음 맞히려고 하지 마. 첫 소절만 네 걸로 만들면 돼.”이상한 주문이었다. 모두가 1위 후보 무대라며 고음과 애드리브를 걱정할 때, 도준만 첫 소절을 이야기했다.시아는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처음 지하 작업실에서 자기가 자기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순간. 그 감각만 찾으면 됐다.객석의 도준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대신 시아가 숨을 들이마시는 타이밍에 맞춰 아주 작게 손가락으로 박자를 셌다.하나, 둘.시아는 웃지 않았다. 그런데 심장은 이상할 만큼 안정됐다. 시아는 입술을 한 번 다문 뒤, 도준이 연습 때 짚어준 대로 어깨를 내렸다.무반주 첫 소절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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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표절의혹
음원 차트 1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표절 기사가 터졌다.[단독] ‘역주행 신화’ 신인 시아의 1위곡 《새벽 세 시의 멜로디》, 태율엔터 강태진 전무의 미발표 습작 표절 의혹![집중취재] 거대 자본에 맞선 흙수저 신인의 반란? 실상은 비양심적 ‘악보 도용’과 사기극!월요일 아침, 주요 포털 사이트 연예면 메인은 태율엔터테인먼트가 뿌린 악의적인 찌라시 기사들로 도배되었다. 강태진이 태율그룹의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연예부 부장급 기자 수십 명에게 거액의 촌지와 향응을 베풀고 일제히 터뜨린 저열한 언론 플레이였다.기사에는 《새벽 세 시의 멜로디》 후렴 8마디와 강태진의 미발표 뭄바톤 데모가 같은 선율이라는 비교 악보가 붙었다. 편곡과 장르는 달랐지만 핵심 톱라인은 같았다.태율엔터 법무팀은 기다렸다는 듯 제니스톤 레코드와 윤시아를 상대로 5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및 음원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중앙법원에 접수했다. 방송 출연 정지와 음원 삭제를 노린 전형적인 대형 기획사의 횡포였다.여론은 순식간에 흙탕물로 변했다. 음원 사이트 댓글 창에는 ‘믿었는데 결국 표절이었냐’, ‘역시 무명 기획사에서 1위를 할 때부터 알아봤다’는 악플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방송사 음악 PD들마저 가처분 소송 소식에 시아의 출연을 취소하기 시작했다.“도준 씨, 기사에 악보까지 떴어요. 사람들이 제가 훔쳤대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홍대 제니스톤 지하 스튜디오. 시아는 휴대전화 화면을 엎어놓았지만 손끝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민성훈 대표는 법원 서류와 내용증명을 번갈아 넘기며 이마를 짚었다.“태율엔터가 국내 굴지의 로펌 세 곳을 선임했답니다, 도준 군. 이대로 가처분 소송이 인용되면 음원 서비스가 즉시 중단되고 우린 위약금 폭탄을 맞고 파산이에요!”하지만 스튜디오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던 도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는 노트북을 열며 짧게 웃었다.“같은 8마디를 증거로 낸 순간 끝났습니다. 우리가 먼저 등록한 원본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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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인증값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태율호텔 그랜드볼룸. 수백 명의 취재진과 지상파 방송사 카메라들이 강태진의 기자회견장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말끔한 이탈리아 명품 수트를 빼입은 강태진이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단상에 올랐다.“존경하는 음악 팬 여러분. 저는 제 영혼과도 같은 피땀 어린 멜로디를 파렴치하게 도둑맞았습니다. 무명 신인 시아와 정체불명의 작곡가 MAESTRO는 제 미발표 데모 트랙을 불법 복제하여 가요계를 교란했습니다.”태진이 손짓하자, 대형 스크린에 그가 작업했다는 시퀀서 프로젝트 파일과 작업 일시가 띄워졌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태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자신이 총괄한 차기 신곡까지 홍보할 수 있는 자리였다.“따라서 저는 저작권 침해에 대해 법적 단죄를…….”지이잉, 지이잉—.태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자석의 휴대전화가 한꺼번에 울렸다. 기자단 공동 메일로 [MAESTRO 원본 검증 생중계]라는 링크가 도착해 있었다.“저 링크, 공동 화면에 띄워보세요!”기자들의 요구가 쏟아지자 진행 요원이 링크를 열었다. 호텔 대형 스크린이 검게 바뀌고, 변조된 음성이 장내 스피커를 탔다.[“강태진 전무. 남의 곡을 들고 원작자 행세를 하시는군요.”]화면에 단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OFFICIAL STATEMENT FROM MAESTRO][OFFICIAL STATEMENT FROM MAESTRO]태율호텔 그랜드볼룸 대형 스크린에 검은 바탕과 흰 글자가 떠올랐다. 기자들은 곧바로 카메라를 화면과 강태진 쪽으로 돌렸다.“뭐, 뭐야?! 당장 메인 전원 꺼! 스크린 송출 끊으라고, 이 멍청한 새끼들아!”강태진이 단상 마이크를 집어던지며 진행 요원들에게 삿대질했다. 요원이 화면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국내 동영상 플랫폼 두 곳과 해외 스트리밍 파트너 채널에서도 같은 검증 방송이 시작됐고, 기자들은 각자 노트북과 휴대전화로 화면을 열어 녹화하고 있었다.치지직—. 노이즈 뒤로 변조된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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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역폭로
강태진이 증거라며 들고 나온 프로젝트가 오히려 마에스트로의 원본을 입증하고 있었다.원본 파일을 가진 사람만 심을 수 있는 인증값이었다. 기자석 곳곳에서 질문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표절이 아니라…… 강태진 전무가 남의 곡을 통째로 도둑질한 거였잖아?!” “미쳤다! 도둑질해놓고 피해자 행세를 하며 50억 소송을 건 거야?!”태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고, 마이크와 방송 카메라가 태진의 턱밑까지 밀려들었다.“강태진 전무님! 해명해 주십시오! 마에스트로의 곡을 훔쳐 데뷔하려던 게 사실입니까?!” “무명 신인 시아를 향한 소송은 자작극이었습니까?!”“비켜! 다 비키라고, 씨발!”태진은 서류 가방으로 얼굴을 가린 채 경호원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은 이미 여러 방송사의 생중계 화면에 잡힌 뒤였다.***같은 시각, 홍대 제니스톤 지하 스튜디오. 모니터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민성훈 대표가 환호성을 지르며 도준을 와락 끌어안았다.“도준 군, 저자가 자기 입으로 원본 파일을 증거라고 내놨어. 이 정도면 가처분도 버틸 수 있겠어!”시아 역시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준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이제 제 노래, 계속 불러도 되는 거죠?”“가처분 심문은 남았어. 그래도 저 영상과 원본이면 뒤집기 어렵다.”도준은 들뜬 위로 대신 다음 절차를 먼저 짚었다.시아는 그 현실적인 대답을 듣고서야 옷자락을 놓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도준 씨.”“왜.”“아까 기자회견 보면서 무섭지 않았어요?”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시아는 그의 오른손을 봤다. 무릎 위에 얹힌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태연한 얼굴과 달리 손등에는 힘줄이 선명했다.“……무서웠구나.”도준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왔다.“뭐가.”“틀릴까 봐.”잠깐 침묵이 흘렀다.“내가 틀리면 네가 다치니까.”그 대답에 시아가 입을 다물었다.복수를 준비하는 남자의 말이라고 하기엔 이상하게 다정했다. 아니, 다정함을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의 말에 가까웠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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