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력한 정치인의 딸 공지안은 사랑하는 연인의 배신으로 차가운 겨울 바다에 추락해 세상에서 죽은 사람이 된다. 5년 후, 새로운 얼굴과 이름 '공서린'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진짜 이름과 삶을 되찾기 위해 거대한 권력과 맞선다. 복수를 위해 수혁의 회사를 이용하려는 서린과, 그녀를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삼으려는 수혁. 서로 다른 목적을 품고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그리고 서린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진실을 밝혀내고, 자신의 이름과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View More북한산 자락, 평창동의 한 고풍스러운 저택.
짙은 시가 연기로 가득한 방 안.
거대한 가죽 소파에 기대앉은 남자를 사람들은 ‘어르신’이라 불렀다.
“강민재에게 물건은 잘 전달했나.”
그의 앞에 서 있던 강태환 비서관이 고개를 숙였다.
“예. USB에 음악 파일을 넣어두었다고 전했습니다.”
여벙석은 천천히 재떨이에 시가를 비벼 껐다.
“모든 일은 티끌 하나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라앉혔다.
“작은 증거 하나가, 나중에는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는 법이지.”
여병석은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았다.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권력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강태환은 조용히 물었다.
“강민재 의원도 함께 타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같이 처리될 수 있습니다.”
“상관없어.”
여병석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유력 대선 후보의 딸과 상대당 보좌관.”
여병석이 피식 웃었다.
“비극으로 포장하기엔 딱 좋지 않나.”
그는 강태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세상은 언제나 믿고 싶은 이야기만 믿는 법이야. 특히나 이런 비극은 더 쉽게 믿지."
강태환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수많은 일을 처리해 왔다.
오늘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잠시 후,
강태환은 복도 끝 보안 통제실로 들어갔다.
모니터에는 강원도 해안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붉은 점 하나가 어두운 지도 위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헤드셋 너머로 남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 제발 내 말 좀 들어!
— 오빠를 지키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공지안의 울먹이는 목소리.
강태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됐군.”
강태환은 화면 속 차량을 잠시 바라보았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
계산은 끝났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된다.
그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커서가 작은 버튼 위에서 멈췄다.
[원격 제어 실행]
딸깍.
명령어가 전송되는 작은 소리.
그 순간.
— 어? 오빠, 차가 이상해!
— 안 돼!!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는 비명.
미끄러지는 타이어 소리.
통제를 잃고 폭주하는 엔진음.
그리고.
콰아아앙—!!
곧,
모든 소리가 끊겼다.
강태환은 헤드셋을 벗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흔적도 남지 않도록 모든 접속 기록을 삭제했다.
잠시 후, 휴대폰을 들어 짧은 문자를 보냈다.
[처리 완료했습니다.]
메시지는 곧바로 읽음 표시로 바뀌었다.
강태환은 휴대폰 화면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니터 위의 붉은 점도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날 밤.
공지안은 죽은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문득 떠오른 오래된 기억은, 동하의 밝은 목소리에 금세 흩어졌다.“과장님도 한 잔 더 하실래요? 제가 뽑아올게요.”“아니에요. 괜찮아요.”서린은 고개를 저으려다, 동하의 넉살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동하 씨 거나 뽑아 와요.”서린의 미소에 동하의 얼굴이 환해졌다.그는 신이 나서 자판기로 뛰어갔다.따스한 햇살, 달콤한 믹스커피,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서린은 아주 잠시,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이 평온한 오후에 섞여 있었다.2층의 테라스에서 수혁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1층 화단을 향해 있었다.늘 날이 서 있던 여자.무표정으로 데이터를 들이밀던 서린이, 직원들 사이에 앉아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그리고 웃고 있었다.아주 옅은 미소였지만, 수혁이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적응 잘하네.’수혁은 피식 웃었다.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자신은 저 자리에 끼지 못했다.사람을 믿지 않았고, 사람들도 자신을 믿지 않았다.그런데, 달랐다.그런데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어느새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그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그런데.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온 박동하가 서린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그리고 뭐라 재롱을 떨며 서린을 웃게 만들고 있었다.수혁의 미간이 순간 구겨졌다.‘저 자식은 일이 없나. 왜 저기서 킬킬대고 있어.’동하가 서린에게 몸을 기울이며 친근하게 구는 모습이 묘하게 거슬렸다.방금 전까지 흐뭇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동하가 뭐라고 말하자 서린이 또 한 번 웃었다.아주 잠깐이었다.하지만 그 짧은 미소가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수혁은 무심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저 미소는 자신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자신을 볼 때는 늘 일만 했다.보고서를 들고 들어올 때도, 감사 결과를 설명할 때도 늘 무표정했다.그런데 저 녀석 앞에서는 저렇게 쉽게 웃는다....이유도 모른 채 기분이 틀어졌다.“일하라고 칼을 쥐여줬더니, 친목질이나
서린이 출근을 하자마자 빠르게 정리하던 서류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밤새 데이터를 돌려 찾아낸 자금 흐름의 특이사항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아직 구체적인 재단 이름까지는 아니었지만, 특정 패턴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길목을 포착한 터였다.대표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려 하자, 책상에 앉아 있던 한지우 실장이 벌떡 일어났다.“공 과장님.”지우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안경 너머의 눈빛은 서늘했다.“보고서는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절차, 말씀드렸을 텐데요.”“긴급 건입니다.”서린은 물러서지 않았다.“자금 세탁 관련해서 추가로 확인된 사안입니다. 대표님이 직접 가져오라고 지시하셨고요.”지우는 서린의 결재판으로 손을 뻗었다.절대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완강한 태도였다.“절차는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서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에 대해 말하려던 참이었다.벌컥.문이 열리고 차수혁이 나왔다.“…….”지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수혁은 굳어 있는 지우와 서린을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공 과장, 왜 이제 와?”“지금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왔으면 들어와야지 뭐 하고 있어. 시간 없어.”수혁은 서린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그러다 문득, 서린을 막아서고 있던 지우에게 시선이 머물렀다.“아.”수혁이 미간을 문질렀다.“내가 말한다는 걸 깜빡했는데.”지우가 눈을 들었다.“앞으로 공 과장이 감사건이라고 하면 바로 들여보내. 나머지는 한 실장이 관리하고.”“하지만… 스케줄 관리상 혼선이 생길 수도 있고, 보안 문제도….”“문제없어. 내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니까, 즉시 보고 받을 수 있어야 해.”수혁의 한마디에 한 실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공식적인 절차를 건드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 과장에게만 별도의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은 분명했다.“들어와.”수혁이 대표실로 들어가자, 서린은 한 실장을 지나쳐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쾅, 하고 문이 닫혔다.지우는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손에 쥐고 있던 펜이 무의식적
“삼촌. 아니, 회장님.”수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착각하시는데, 거긴 제 회사입니다. 제가 주운 쓰레기장이라고요. 어떻게 치우든 그건 제 마음입니다.”“…….”“그리고 기획실? 관심 없습니다.”차윤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인자하던 가면이 벗겨지고, 탐욕스러운 노인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는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부모를 잃고 나면, 보통은 조심해지는데… 넌 독만 남았구나.”“…….”“괜찮다. 지금은 고개 세울 수 있지. 젊은 객기라고 봐주마.”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뒷짐을 진 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다만, 그 목줄은 누가 쥐고 있는지는 잊지 말아라. 네가 아무리 짖어도, 줄을 당기면 끌려오는 건 너야.”차윤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명령했다.“정 내 제안이 싫다면, 한 가지만 해. 그 새로 들어왔다는 경리 과장. 공서린이라고 했던가? 내보내.”수혁의 미간이 좁아졌다.“분란의 씨앗이야. 주제도 모르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모양인데, 그런 외부인은 위험해. 오늘 당장 정리해. 이게 내 마지막 배려다.”수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윤호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점심 먹으러 오라고 하시더니, 밥 대신 제 회사에 칼질을 하시려고 부르신 겁니까?”접견실 안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수혁의 질문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었다. 삼촌의 제안을, 그리고 삼촌의 권위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거부였다.차윤호가 천천히 몸을 돌려 수혁을 마주 보았다. 수혁의 도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눈빛이었다.“칼질이라….”차윤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어른의 배려를 칼질로 받아들이다니, 유감이구나.”“…….”“결국, 내 말은 못 듣겠다는 뜻이겠지.”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차윤호는 코웃음을 쳤다. 더 이상 말 섞을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못 하겠으면, 나가.”축객령이었다.“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라. 한도오토링크? 그거 공중분해 시키는 거 일도 아니야. 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지 않는다.대신, 더 큰 포식자에게 제 발로 목줄을 내민다.영업 1팀장 심재호가 그랬다.서린의 압박에 의해 횡령액 2억 4천만 원을 토해내야 할 상황.그는 돈을 갚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유흥비와 도박으로 탕진한 지 오래였다.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밀고뿐이었다.늦은 밤, 아무도 없는 비상계단 구석에서 심재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수신인은 한도오토링크가 아닌, 한도그룹 본사 비서실의 직통 번호였다.연결음이 길어질수록 심재호의 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여보세요.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재호는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비굴하게 속삭였다.“예, 실장님. 접니다. 심재호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용건만 말해요.“지금 상황이 심각합니다. 차 대표가… 예, 완전히 돌았습니다. 외부에서 근본 없는 여자를 경리 과장으로 앉히더니, 장부를 다 뒤집고 있습니다.”심재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단순한 감사가 아닙니다. 이러다가는… ‘그 자금’ 루트까지 다 드러나게 생겼습니다. 회장님께서 신경 쓰시는 그쪽 라인까지 건드리고 있다고요. 제 선에서는 이제 통제가 안 됩니다. 예, 예… 부탁드립니다.”전화기 너머는 잠시 침묵했다.심재호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대답을 기다렸다.— 알았어요.짧은 한마디뿐이었다.더 이상의 질문도, 화도 없었다.하지만 그 담담한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심재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본사 비서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움직인다는 건, 이미 회장에게 보고가 끝났다는 뜻이었다.전화를 끊은 심재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하지만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가 번졌다.흐흐 네가 아무리 독사라 해도, 회장 앞에서는 지렁이에 불과할 테니.어떻게 되나, 어디 한번 보자.***오늘도 어제와 같은 아침이었다. 수혁의 책상에는 식은 커피가 놓여있었다.짧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대표실 문이 열리더니 한지우 실장이 들어왔다.그녀의 표정은 평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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