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천륜 앞에서 그에게는 다른 일이나 사람이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 “김 여사는 참 복도 많으시네요.” 량천옥이 비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웃음이 가득했던 장면이 한순간에 멈췄다. 집사는 량천옥의 뒤에서 서서 그의 얼굴을 보며 후회의 표정을 지었다. 아까 그녀가 이곳의 여주인이었던 것을 잊고 막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배항준이 량천옥이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배항준은 량천옥이 나타나자 얼굴이 바로 차갑게 굳었고 김다정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스며들어 있었다. 량천옥은 둘의 변한 표정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제가 배윤을 낳았을 때 당신은 바쁘다고 집에 얼굴도 비추지 않았잖아요. 이제 와서야 가족의 기쁨을 느낄 줄 안다니. 참 다행이네요.” 그녀가 배윤을 낳았을 때 배항준은 최고의 영양사와 육아 전문가를 불러 모아 그녀와 아이를 돌보게 했다. 그때 그녀는 배항준이 자신에게 정말 잘해준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가 직접 돌봐주는 것이 진정으로 특별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란 집에 머무르지 않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여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한때 그녀는 유청이 자신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장면을 보니 예전에 자기가 빼앗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량천옥은 문득 서글퍼졌다. 배 씨 가문에서 모든 계략을 다 써봤지만 결국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냥 평범한 한 사람도 놓쳤다는 생각에 자신이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반면 김다정은 쉽게 모든 것을 얻은 셈이었다. 배항준은 아이를 김다정에게 안기며 말했다. “아이가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가게.” “아, 네!” 김다정은 다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그녀는 배항준 곁에서 공개되지 않은 존재였고 지금은 정식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오랜 세월 이곳의 여주인으로 지냈던 량천옥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김다정은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그런 차가운 시선이 량천옥을 더욱 숨 막히게 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윤이가 나태현에게 잡혀갔어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이 순간 배항준이 모르고 있었다고만 해준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랬겠지...! 하지만 그의 모든 마음이 김다정의 아이에게만 쏠려 있는 모습을 보니 량천옥의 마음은 미칠 듯이 아파졌다. 자신에게 아무리 무정하다 해도 어떻게 윤이를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을까? 윤이 역시 그의 아들 아닌가! 배항준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더니 곧바로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지?” 나 씨 가문과 배 씨 가문은 몇 년간 다소 마찰이 있었지만 큰 갈등은 없었다. 특히 나태웅과 배준우가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덕에 많은 오해가 해소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래서 이걸 몰랐단 말이에요?” 량천옥은 비꼬듯 말했다. “당신 눈엔 이제 김다정의 아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요.” 배항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량천옥은 그의 어두운 눈빛을 느끼며 상황의 전말을 모두 털어놓았다. 윤이 또한 그의 아들이기에 자신 혼자만 애쓰고 싶지 않았다. 배항준이 나 씨 가문에 가서 윤이를 돌려달라고 하면 나 씨 가문도 거부할 수 없을 터였다. 그렇지 않다면 두 가문은 진정으로 적대 관계에 돌입할 것이다! 배항준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더욱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네 말은 나태현이 고은영의 언니 고은지를 마음에 품고 있고 네 골수와 고은지의 골수가 일치한다는 거지?” “맞아요!” 량천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항준은 다시 물었다. “그리고 나태현이 윤이를 납치한 이유는 네가 고은지에게 골수를 기증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거고?” “그래요!” 배항준의 날카로운 사고가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량천옥의 몇 마디 말만으로 배항준은 사건의 내막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배항준은 말했다. “골수를 기증하면 해결될 일인데 왜 거절한 거지?” 량천옥은 말없이 그를
이 여자는 그동안 자신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하며 자만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매번 그녀가 문제를 일으켜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그가 나서서 수습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뿐이었다. ‘이 여자는 정말로 자기 힘만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지금 배 씨 가문도 자신도 없는 그 여자가 과연 무슨 수단이 남았단 말인가?’ “제가 이번에 무슨 문제를 일으켰든 간에 배윤은 당신의 아들이고 그가 나태현에게 끌려간 것도 사실이에요. 당신이 상관할 거예요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할 거예요?” “배윤의 일은 당연히 내가 상관해야겠지. 하지만 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어.” 배항준의 차가운 대답에 량천옥은 이전에 없던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도 수년간 부부로 지내온 사이인데 이렇게 무심하게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다니, 너무도 차갑게 느껴졌다. “이건 너와 그들 사이의 문제일 뿐이야. 윤이도 네 탓으로 끌려간 거니까 네가 이 일을 잘 해결하길 바란다. 알겠지?” 량천옥은 말없이 배항준을 바라보았다. 배항준이 자신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마저도 모른 척할 정도로 냉정했다. 이 집을 떠날 때의 여유와 자신감이 지금의 무력감과 절망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배항준 씨, 정말 대단하네요. 아주 대단해요.” ‘아이가 생기고 나서 다른 건 다 잊은 거예요? 아니면 저과 유청이 당신의 진정한 마음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아이를 낳아도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량천옥은 문득 자신이 너무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유청이 배항준의 장남을 낳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 배준우는 배 씨 가문 전체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김다정, 그 여자를 배항준이 자신의 노력으로 철저히 감췄던 것은 바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녀가 배항준의 마음속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어 낳은 아들은 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하지만 자신과 그녀가 낳은 배윤
김다정은 말을 잇지 못했고 량천옥은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말을 마친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떠났다. 여전히 예전처럼 꿋꿋하게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롭고 강렬한 뒷모습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받은 냉정함을 그녀는 마음에 새겼다. ‘배항준, 네가 나에게 무정하다면 나도 너에게 의리를 지킬 이유가 없겠지...' 량천옥은 배 씨 가문을 떠나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연이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모두 배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나태현과 얽혀 있어서 많은 이들이 괜히 엮이기를 꺼려 했다. 실망만 남긴 몇 통의 전화 후 그녀는 차분히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량일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량천옥은 담담히 대답했다. “나 씨 가문에 다녀올 거예요.” 이번에는 배 씨 가문에서의 분노와 절규 대신 차갑게 식어버린 어조였다. 오늘 그녀가 받은 냉담함과 절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배항준이 자신의 아들마저 돌보지 않다니, 그는 정말 너무도 무정했다. 량일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배항준이 자신의 아들도 안 돌본다고?” “아들?” 량천옥은 차갑게 웃었다. “배항준 씨에게는 아들이 넘쳐나잖아요.” 그 웃음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량일은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가슴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이런 게 바로 예전부터 내가 권했던 결혼 상대인가? 이렇게나 냉혹함이 극에 달한 재벌가란 말인가?’ 량일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나 씨 가문에 가서 누구를 만날 생각이야?” “지금 윤이가 나태현의 손에 있어요...”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녀는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나태현은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 겨우 그 병약한 고은지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인질로 삼다니! 나태현의 이런 행동을 나 씨 가문의 나태범은 알고 있는 걸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변 사람들은 나태현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발을 빼려 했고 그녀가
10분 후, 량천옥이 차를 나씨 가문 방향으로 돌리자마자 량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전화를 받은 그 순간 량일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천옥아, 빨리 와.”그녀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량천옥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빨리 와.”량일이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윤이한테 일이 생겼어. 우리 윤이. 으악!”량일이 목놓아 울부짖었다. 두려움 속에 담긴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량천옥이 굳은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여러 번이나 물었지만 량일은 말을 잇지 못했고 들려오는 건 비통한 울음소리뿐이었다.그녀의 울음소리에 량천옥도 마음이 불안해졌다.“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나씨 가문에 곧 도착하지만 량일이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울부짖는 바람에 다시 차를 돌리기로 했다.‘집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안 그러면 엄마가 이렇게 울 리가 없잖아.’량천옥은 울면서 집으로 달려갔다.30분 후, 량천옥이 별장에 도착해 보니 량일이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량일은 그 박스를 보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량천옥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지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박스를 확인한 순간 그녀마저도 놀라서 입을 막고 소리를 질렀다.“으악, 으악!”비명이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고 량일은 더욱 비통하게 울었다.“이게 다 업보야, 업보.”업보라는 걸 아예 믿지 않았던 량천옥이었지만 얼마 전에는 믿었다. 그런데 최근 한동안은 분노 때문에 믿지 않았다가 지금은...량일이 계속 업보라는 둥 인과응보라는 둥 여러 번 말하자 량천옥도 걱정이 밀려왔다.부들부들 떨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나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두 번 정도 울린 후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태현이 입을 열기 전에 량천옥이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네 짓이야?”“여사님, 이젠 내가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어요?”“
“왜.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또 뭘 잘못했다고!”량천옥은 단지 천의를 되찾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예전에 이런 상황이 생기면 량일이 나서서 도와줬지만 지금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량천옥이 말했다.“다들 내가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됐겠어? 날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다고.”량천옥은 거의 울부짖으며 말했다.지금 그녀는 절망과 분노에 깊이 빠져버렸다. 배씨 가문을 떠나면 이런 일이 닥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배항준은 그녀는 물론이고 아들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데 진짜로 이렇게 모질까?량천옥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피범벅인 박스를 찍은 다음 배항준에게 사진을 보냈다.자기 아들까지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매정한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그 시각 나태현의 별장.이지훈이 전화 한 통을 받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배준우 씨가 가장 잘하는 의료팀을 불러서 란완리조트에 보냈다고 합니다. 우린 계속 찾아야 하나요?”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지훈은 보스가 대체 왜 고은지를 이렇게까지 감싸고 도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녀의 딸마저도 무척이나 신경 썼다.이번에 배윤을 데려간 건 량천옥이 고희주에게 용서 못할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나태현이 화를 내면 한 마리의 맹수가 따로 없었다.나태현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이지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배윤이랑 고은지 검사 결과 나왔어?”“나왔는데 맞지 않는답니다.”이지훈이 고개를 내저었다.나태현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어머니가 맞아서 그도 맞을 줄 알았는데 결국 골수가 맞는 사람은 량천옥뿐이었다.나태현은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려고 두 눈을 감았다.“량천옥 잘 지켜봐. 지금 이때 무슨 짓이라도 하면 안 되니까.”적어도 고은지의 수술이 성공하기 전에는 량천옥이 그녀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게 해선 안 되었다.이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나태현이
그날 밤, 고은지는 오랜만에 푹 잤다.이튿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태현의 모습은 없었고 고은영이 찾아왔다.‘어젯밤 그거 꿈이었나? 그래. 꿈이겠지. 나 대표님처럼 귀한 분이 여기 왜 오겠어? 게다가 물까지 먹여줬다는 게 말이 돼?’생각만 해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은영이 말했다.“아침에 주방에 부탁해서 만든 죽이야. 조금이라도 먹어. 응?”골수에 관한 일은 나태현이 해결하고 있기에 고은영은 고은지를 보살피는 것 말고는 신경 쓸 게 없었다.고은지가 말했다.“요즘 보살펴주는 사람 있으니까 너도 푹 쉬어. 이 병 급해봤자 소용이 없는 거 알잖아.”지난번에 고은영이 타이른 후로 고은지는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고 전처럼 그렇게 짜증을 내지 않았다.전에는 언제 퇴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 무척 괴로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녀의 말에 고은영이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드디어 생각이 바뀌었어?”“네 말이 맞아. 믿을 만한 사람 아니야.”고은지가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고희주의 친아버지가 량천옥, 그리고 조보은 같은 사람이라면 고희주에게는 악몽이 될 것이다. 고희주의 미래를 누구에게도 맡겨선 안 되었다.고은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고은지에게 말할지 말지 망설였다. 고은지에게 고희주의 친아버지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나태현의 태도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배준우도 잠시는 고은지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그녀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말하지 않기로 했다.“그렇게 생각해서 다행이야. 그러니까 꼭 나아야 해. 알았지?”병마의 최대의 적이 살려는 의지라고 했다.“희주 공부 잘하고 있어?”고은지가 물었다. 지금 몸 상태라면 흥분해서는 안 되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는 운명에 달렸다. 그전까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었다. 고희주 옆에 하루라도 더 있기 위해서.그런데 고희주의 얘기가 나오자
하룻밤 심사숙고한 끝에 량천옥은 현실에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배항준은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나태현이 움직일 때마다 량천옥은 그 대가를 감당하지 못했다.“기증할게. 기증할 테니까 윤이 건드리지 마.”량천옥이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어젯밤에 소파에서 잠이 든 량일은 량천옥이 울부짖는 소리에 놀라서 깨고 말았다. 티테이블 위에 못 보던 박스가 하나 더 생긴 걸 보고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바로 깨달았다.‘우리 윤이...’“고맙습니다. 그럼 지금 모시러 갈까요?”“아니야. 병원은 내가 알아서 갈게. 그전에 우리 윤이 좀 볼 수 있을까?”량천옥이 고통스러워하며 말했다.‘어르신 어쩜 이렇게 매정해? 어떻게 친아들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 김다정 이 여우 같은 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량천옥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배윤은 수술이 끝나면 보낼게요. 그전에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나태현이 뒷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협박이 섞인 말투에 량천옥은 너무도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않아. 으악!”지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봤자 마음속의 울분만 토해낼 뿐이었다.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족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량일의 얼굴이 핏기라곤 없이 창백했다. 그녀는 소파에 축 늘어진 채 량천옥에게 말했다.“그냥 골수 기증하면 안 돼?”“다 죽여버릴 겁니다. 고은지 절대 가만 안 둬요.”량천옥이 무섭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고은지를 죽이고 싶었다. 고은지 때문에 나태현이 배윤을 잡아갔고 그녀의 골수도 기증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량천옥은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량일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제발 얼른 병원에 가. 내가 이렇게 빌게.”배항준에게 불만이 많긴 했지만 외손자만큼은 끔찍이도 아꼈다. 박스 안에 담긴 게 배윤의 몸의 일부라는 생각만 하면 량일은 칼로 도려내듯 가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