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급히 달려가는 고은영의 뒷모습에 배준우는 복잡하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 다 자기처럼 돈만 좋아하는 줄 아나 봐.’고은영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조영수는 초조한 얼굴로 응급실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고은영이 조영수를 불렀다.“형부.”조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고은영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오늘 밤 일은 도대체 어떻게 발생한 건지, 그들은 현장에 없었으니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날 때 그 칼은 분명 고은지의 손에 들려있었다. 만약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고은지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발악했고, 상황이 극도로 치달으면서 이런 일이 생겼을 것이다.시간은 점점 지나갔다!이내 의사가 응급실에서 나와 마스크를 벗었고, 조영수는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선생님, 제 아내 지금 어떤가요?”조영수의 절박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실했다.고은영은 평소에 조영수와 진여옥을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오늘 밤 고은지가 응급차에 오를 때, 그녀는 그제야 이 두 사람이 어쩌면 그녀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의사가 말했다.“상처는 깊지 않은데 과다출혈로 몸이 아주 허약해진 상태입니다.”“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상처가 깊지 않다는 말에 조영수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고은영이 물었다.“의식은 있어요?”“네, 의식은 찾았으니 곧 나올 겁니다.”“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고은영도 얼른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고은지가 깨어났다는 말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의사가 가고, 고은지는 간호사에 의해 응급실에서 밀려 나왔다.고은영이 달려갔다.“언니!”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은지를 불렀다.조영수도 앞으로 나와 고은지의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었고 고은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조영수를 바라봤다.조영수는 한숨만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줄곧 조보은에게 시달렸고, 오늘 진여옥의 말을 듣고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다.병실!고
고은영은 조영수가 돌아올 때까지 고은지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한참 뒤 올아온 조영수가 고은지의 옆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고은영은 비록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병실을 떠났다.고은지도 그녀를 계속 가보라고 재촉했다!병원에서 하원 별장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이미 새벽 네 시를 넘어섰다!고은영은 많이 피곤했는지 소파에 드러누워 그대로 자려고 했지만 배준우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씻고 자.”고은영이 거부했다.“싫어요.”그녀는 정말 피곤한 데다가 고은지의 걱정까지 더해져 아무 힘도 나지 않았다.배준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씻겨줘?”배준우는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라 아무리 고은영이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고 해도 소파를 더럽힐 것 같았다.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아니요, 씻을게요.”말을 끝낸 그녀는 다급히 욕실로 돌진했다!반쯤 씻었을 때, 그녀는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옷을 갈아입지 않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깨끗이 씻고 나서 입었던 더러운 옷을 다시 입고 나올 수는 없다.그녀는 이렇게 꼼꼼하지 못한 자기의 뺨을 치고 싶었다!결국 그녀는 비스듬히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고, 배준우는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배준우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친 그녀는 빼꼼 내밀었던 머리를 움츠리고 말했다.“대표님.. 나 잠옷 안 들고 왔는데..”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모깃소리와도 같았다.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에 어이가 없었다.회사에서 그녀의 이런 꼼꼼하지 못한 결점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는 그녀가 자기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했을 것이다.결국 배준우는 고은영에게 대충 잡히는 잠옷을 가져다주었다.잠옷을 받는 고은영의 손은 떨고 있었다.“고, 고마워요, 대표님.”배준우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휴대폰을 들고 보니 백 어르신에게서 메시지가 한 통 왔다.메시지를 확인하니 전부 제비집에 관한 내용이다.낮에 백 어르신이 고은영에게 제비집을 많이 먹으라고 했던
설령 그렇다 해도 고은영은 배준우의 침실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저기, 제가 알아서 할게요.”고은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배준우의 눈빛이 번쩍였다.“열이 나면 아무것도 못 하면서 어떻게 알아서 할건데?”사실이었다!그녀는 저번에 열이 났을 때도 거의 일어나지 못하고 죽은 듯이 잤다. 그런 상태에서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고은영이 말했다.“이번엔 괜찮을 거에요. 두 번이나 그랬던 경험이 있잖아요.”저번에 두 번 열이 났을 때 배준우가 자신을 어떻게 보살펴 주었는지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뼛속까지도 불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배준우의 그녀의 우물쭈물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모습에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 낮은 소리로 물었다.“요즘 인테리어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고 있어?”그의 말에 고은영은 긴장했다.왜 갑자기 지금 인터리어 얘기를 꺼내는지 의문이었다.그 집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그에게 순종적이지 않았다면 그 집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던 말 말이다.순간 고은영은 목구멍까지 숨이 막혔다.“저, 안방 침대가 푹신해 보이네요, 갈게요!”말하고는 배준우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의 방 쪽으로 뛰어갔다.고은영의 마지못해 순종하는 모습에 배준우는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미소를 지었다.고은영은 안방 문 앞에 멍하니 서서 침대와 소파를 쳐다보고 있었다.잠시 생각하다가 결심한 듯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고은영이 소파에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배준우는 차갑게 말했다.“내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무서워?”이건 강성 여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 아닌가? 하지만 그녀한테는 아닌듯했다.고은영은 이불을 움켜쥐고 말했다.“대표님 같은 분이 저한테 그럴실 리가 없잖아요.”“글쎄, 너도 내 곁에 있더니 많이 배웠네”“네? 뭘 배워요?”고은영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배준우가 왜 갑자기 자기를 칭찬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배준우는 침대에 누우며
고은영은 겁에 질린 눈으로 말했다.”대, 대표님, 제가,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배준우의 눈빛은 날카로웠다.고은영은 두려움에 말을 삼켰다.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자기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진짜..... 미칠 노릇이다.배준우가 말했다.“다리 뺄 거야, 안 뺄 거야?”고은영이 대답했다.“뺄게요, 뺄게요. 당연히 빼야죠!”고은영은 서둘러 자기의 가느다란 다리를 뺐지만, 여전히 불안했다.잠이 든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뛰어내렸다. 또 무슨 바보짓을 할지 두려웠다.어젯밤 분명히 그와 같은 방에서 잘 수 없다고 말했는데!열은 안 났는데 몽유병이 생겼나!그녀 마음속 그의 이미지는 너무 차갑고, 금욕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라, 자기를 침대로 데려간 사람이 배준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죄송해요, 대표님.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죄송해요.”그렇게 말하고 고은영은 황급히 방을 뛰쳐나갔다.그녀의 허둥지둥한 뒷모습에 배준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뭐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지. 또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같이 자는 게 그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일인가?고은영에겐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배준우는 저기압 상태로 식탁에 앉았다.진 씨 아주머니는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방에서 나온 배준우를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주머니는 배준우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고은영이 죽을 담으러 주방에 들어갈 때 재빨리 따라 들어갔다.“사모님, 제가 할게요.”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이것은 배준우와 고은영,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확실해졌음을 뜻한다.고은영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 아주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진 씨 아주머니가 그녀가 배준우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아주머니는 그녀의 손에서 그릇을 받으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도련님 기분은 왜 안 좋으세요?”“저, 저도 몰
배준우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의아해 했다.고은영이 이어서 말했다.“금방 식으니 얼른 드세요.”배준우가 코웃음을 치고는 앞에 놓인 죽을 한 입 떠먹었다.고은영은 그의 차가운 코웃음에 그의 화가 아직은 덜 풀렸다는 것을 느꼈다.“화 풀어요…”고은영이 또다시 달랬다.그 말에 배준우가 물었다.“내가 왜 화가 났는데?”“제가 대표님 침대에서 자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저 진짜 맹세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됐어!”고은영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준우가 낮은 소리로 꾸짖었다.그의 차가운 말에 고은영은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왜 달래면 달랠수록 더 화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하지만 뭐라고 더 말할 용기는 없었다.“알겠어요. 말 안 할게요. 그럼 화 푸는거에요?”그녀는 더 이상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다. 입이 닳도록 달래도 소용이 없는 듯했다.배준우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발은 안 아파?”“네, 안 아파요.”화상이었지만 즉시 치료했고, 또 배준우가 의사를 불러 가장 좋은 약을 썼기 때문에이젠 아프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았다.하지만 발등의 흉터는 아직 남아 있었다. 아마 새살이 올라와야 나을듯했다.배준우는 고은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안 아프면,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해.”“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휴가 기간 인사팀에게 연락받진 않았지만, 월급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렸다.배준우는 오늘 고은영을 데리고 고객을 만날 계획이었지만 그녀가 언니 걱정에 시름이 놓이지 않아 하자 더 강요하지 않았다.아침 식사 후. 배준우는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준 뒤 곧장 고객을 만나러 갔다. 고은영에게 점심때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도착하라고도 했고, 고은영은 알겠다고 했다. 고은영이 고은지의 병실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진여옥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은영은 재빨리 걸음을 멈추고 진여옥이 고은지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은지야, 넌 좋은 애야. 난 널 싫어한 적도 너에게 일부러 못되게
“네 엄마 좀 봐. 1년 동안 희주를 보러 온 적도 없잖니. 어쩌다 보러 올 때면 사탕 한 알도 안 사왔어. 가끔은 네 엄마가 친엄마가 맞는지도 의문이야!”친자식이라면 어떻게 자기 딸과 손녀에게 그렇게 냉정할 수 있을까?그 사탕 한 알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인데 조보은은 그럴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자기가 조씨 집안에서 뭘 얻을 수 있는지만 생각했고, 자기는 조금도 베풀려고 하지 않았다.그녀의 이러한 행동이 조 씨가문의 불만으로 이어졌다.고은지는 울며 말했다.“죄송해요.”지금 이순간, 그녀는 사과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왜냐면 지난 몇 년 동안 조보은의 존재가 그와 그의 아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왔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하지만 고은지도 조보은의 성화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진여옥이 말했다.“과거가 어떻든 간에 다 지나간 일이니까 괜찮아.”한숨이 섞인 말투였다.전에는 그나마 작은 액수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조보은이 서정우를 장가보낼 돈을 고은지에게 요구하려 하고 있었다. 진여옥은 그런 조보은의 생각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돈을 줄 때까지 들러붙을 게 뻔했다. 진여옥은 두려웠다.“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고은지는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지의 대답에 진여옥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이어서 말했다.“희주는 우리가 키울게. 희주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보러와.”“안 돼요. 희주는 제가 키워야 해요.”고은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조희주가 그녀의 마지막 버팀목이었기에 보낼 수 없었다.그러자 진여옥이 말했다.“그럼, 먼저 네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다시 데려가.”조희주의 양육권에 대해선 진여옥도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조씨 집안 사람들이 고은지와 조보은에게 인내심이 얼마나 바닥나있었는지 알 수 있다.진여옥이 병실에서 나왔을 때 복도에 서 있는 고은영과 마주쳤다.진여옥은 다소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들어가서 네 언니랑
고은영은 조보은에 대해 더욱 큰 혐오감을 느꼈다.아까 오는 길에 경찰서에서 전화 온 것도 조보은의 일일게 뻔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합의를 해주던 뭐든 간에 고은영은 조보은의 일을 해결해 줄 생각이 없었다. 고은영은 조보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소란을 피우고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절대 원하는 걸 얻을 순 없다는 걸 말이다.“은영아, 나중에 혹시 결혼하게 되면, 나처럼 이렇게 바보같이는 살지마.”고은지는 말할수록 서러웠다.“꼭 나처럼 살지 마!”고은지는 조보은의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번마다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그렇다.그녀조차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인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그만 울어!”고은영이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고은지가 대답했다.“너까지 이 구렁텅이로 끌어들여서 미안해. 하지만 네 도움이 없었다면 나도 여기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거야.”지난 2년 동안, 고은영이 서정우의 생활비를 내주고 있었다. 도저히 고은지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 많은 걸 고은지 혼자서 다 감당했었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도 없었을 것이다.“이혼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그래. 내가 이혼해야 돈 달라고 의지할 사위가 없어지는 거니까.”고은지는 덤덤하게 말했다.고은영에게 당부하긴 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은영은 합당한 이유 없이 조보은의 요구를 다 들어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예를 들어, 이번 일 같은 경우에도, 만약 경찰서 연락을 받은 사람이 고은지 였다면 그녀는 당연히 가서 조보은을 도왔을 것이다.하지만 고은영은 아니다. 조보은에게 똑똑히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자신이 얼마나 냉정하고 모진 사람인지. 감히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은영아, 난 가끔 네가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게 부러웠어.”비록 생활은 힘들었지만, 할머니는 고은영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었다.그때, 조영수가 돌아왔다. 얼굴을 보니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오는 길에 진여옥을 마주
하룻밤 사이에 고은지의 삶이 완전히 변했기에 그녀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말이다.고은영은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은지의 쓸쓸한 뒷모습에 입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전화해.”“은영아.”고은영이 일어나려고 한 순간 고은지가 몸을 돌려 그녀를 불러세웠다.고은영이 물었다.“왜?”고은지가 말했다.“우리는 네가 모든 걸 다 줄 만큼 좋은 가족이 아니야. 그러니 네 인생만 열심히 살아. 그러면 돼.”그렇다. 고은영의 가족들은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그녀의 인생에 문제거리만 던져줄 그런 존재들이었다.그녀가 모든 걸 걸 만큼 좋은 가족은 아니었다.하지만 고은지는 다르다. “하지만 언니는 아니야. 언니는 나한테 좋은 가족이야.”고은지는 유일하게 그녀를 아껴주는 가족이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고은지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고은영에게 이렇게까지 단호한 말투로 말한 건 이번이 처음 이었다.예전에 조보은의 일에 있어서 항상 어쩔 수 없는 태도였지만, 자기 엄마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고은영이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은영이 말했다.“알겠어. 알겠으니까 일단 몸조리에만 신경 써.”“응.”고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더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뭔가 결심한 듯한 확고한 태도였다. 이전처럼 우물쭈물한 태도가 아니었다.고은영은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영이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를 꺼내보니 배준우였다.“대표님.”“병원에서 나왔어?”“네. 나왔어요.”“지금 출발해.”배준우가 말했다.“네, 지금 갈게요.”고은영은 전화를 끊고 택시를 불렀다.오늘 점심 약속 장소는 승마장이었다. 전에 고은영도 가본 적이 있었다.택시에 올라타자마자 또 다시 전화가 울렸다.전화를 꺼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여보세요.”“고은영 너 많이 컸다?”화가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