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자기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왜 심상치 않은지 대략 짐작이 갔다.“잠시 앉아 계세요. 아마 두 게임 정도 더 할 것 같아요.”주연은 그녀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었다.고은영은 웃으며 차를 건네받았다.“고마워요.”주연이 고은영에게 물었다.“준우 오빠랑은 어떻게 만났어요?”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윤설과 진승연은 고은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은영은 배준우가 자신의 존재를 이미 공개했음을 깨달았다.그녀를 부르는 형수님이라는 호칭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자기 약혼자도 올 거라고 배준우가 이미 말했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 자기를 그의 비서라고 소개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건 그를 창피하게 하는 행동이다.고은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주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말하기 불편하신 건가요? 미안해요!”이 말은 들은 진승연이 하찮은 듯한 말투로 말했다.“준우 오빠가 어디서 주웠는지도 모르지.”“승연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주연이 타이르듯 말했다.하지만 진승연은 여전히 하찮은 듯한 태도로 코웃음 쳤다.진씨 가문의 딸인 그녀의 눈엔 사촌 언니인 이미월과 배준우가 더 어울렸다. 그래서 고은영을 보니 여러모로 거슬렸다. 특히 고은영이 입은 옷이 그녀의 눈에는 형편없어 보였다.“내 비서야. 무슨 문제 있어?”배준우가 낮은 목소리로 고은영을 옹호하며 말했다.고은영은 깜짝 놀랐다.주연과 진승연의 표정도 굳어졌다.진승연은 배준우를 쳐다보며 불만스레 말했다.“오빠!”배준우가 고은영에게 말했다.“내 옆으로 안 올 거야?”배준우가 화난 모습에 진윤과 육범수, 장선명, 모두가 놀랐다.진승연의 한마디에 바로 화가 났다. 고은영을 얼마나 아끼면 이럴까.고은영은 배준우 쪽으로 걸어갔다.그녀가 다가가자마자 배준우는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고은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뭐, 뭐 하시는 거예요.”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다니.고은영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배준
고은영은 원래 포커 게임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배준우와 함께 자주 모임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나 실장의 명령하에 포커 게임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전에 함께 게임을 했던 상대는 모두 고객이었기 때문에 거의 지는 게임만 했었다.즉, 게임을 배우고 지금까지 쭉 지기만 했다는 뜻이다.“응. 이겨도 돼!”배준우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귀엽다는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모습에, 다들 다시 놀랐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이겨도 된다는 말에 고은영은 금세 흥미를 느꼈다.배준우는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고은영은 자기의 패를 살펴보았다.육범수가 고은영에게 물었다.“형수님,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나요?”그녀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다는 듯 했다.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한 번도 이긴 적 없어요.”사실이었다!이 말이 육범수와 장선명 귀에는 그녀가 초보라는 말로 들렸다.하지만 고영은 초보가 아니다! 한 판을 하고 난 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육범수가 말을 더듬었다.“아니, 이게......”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 번도 이긴적이 없다고 했는데?고은영은 배준우의 친구들 앞이라 더욱더 조심했다.하지만 배준우가 이겨도 된다고 했으니, 작정하고 해볼 생각이었다.이때 주연이 고은영의 뒤에 서서 말했다.“저 형수님이 이긴다는 것에 제 돈도 걸어요.”말하며 돈을 꺼내 고은영의 앞에 놓았다.고은영이 물었다.“제가 다 잃으면 어떡해요?”“그냥 즐겁게 놀아요. 괜찮아요.”“주연아, 나 아직 돈 다 안 잃었는데 이러기야?”육범수가 주연에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주연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지금 상황을 보면 진 거나 다름없잖아.”방금 그 한판의 게임에 다들 더 이상 고은영을 얕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고은영에게 당하고 있었다.고은영이 포커를 배운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
고은영은 배준우가 오늘 왜 자기를 그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는지 몰랐다. 그 자리는 그냥 단순히 소개만 하는 자리가 아닌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점심 메뉴는 역시나 양고기구이 이다.고은영의 입에도 그럭저럭 잘 맞았다.배준우는 밥 먹는 내내 고은영에게 양갈비를 썰어주면서 그녀를 챙겼다.하지만, 그들이 반쯤 먹었을 때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들어왔다.이미월이다.“언니.”진승연이 이미월에게 손짓했다.이미월은 배준우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은영에게 시선을 멈췄다.순간 고은영은 깨달았다. 진승연의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녀와 진승연이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이미월의 등장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다들 그 들의 사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이 정도면 돼?”배준우의 시선은 오로지 고은영에게만 머물러 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거면 돼요. 대표님도 얼른 드세요.”구운 양고기는 뜨거울 때 바로 먹어야 제맛이다. 고은영도 양갈비 한 조각을 배준우의 그릇에 덜어 주었다.배준우는 미소를 지으며 휴지를 들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이것 봐, 아직도 어린애처럼 입에 묻히면서 먹네.”고은영도 미소를 지었다. 조금 부끄러웠다.이 둘은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 자리가 매우 불편했지만 고은영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돈도 땄고 양고기도 맛있고 하니 말이다.두 사람의 모습에 이미월은 화가 치밀었다.“언니, 이것 좀 먹어봐, 여기는 양고기가 제일 맛있어.”진승연이 양갈비 한 조각을 이미월의 그릇에 덜어주며 말했다.이미월은 마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계속 배준우만 쳐다보았다.“언니, 언니?”진승연이 이미월을 불렀다.이미월은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이미 어색한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배준우,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어?”배준우가 시선 한번 주지 않자, 이미월은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배준우의 시선이 드디어 이미월에게로 옮겨졌다. 눈물을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떠났다.혼자 남은 이미월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진승연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언니, 마음에 두지 마. 저 여자 그냥 촌년이야. 형부와는 그저 연기하는 것뿐이라고!”진승연은 고은영의 뒤를 캔 적 있다. ‘오직 성적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여자가 감히 재벌 사모님이 되려고? 꿈도 야무져!’이미월은 눈물을 꾹 참았다.배준우가 갑자기 떠나자 진윤과 육범수 그리고 장선명 등 사람도 난처해졌다.육범수는 주연에게 눈빛을 보냈다.“주연아, 미월 씨 좀 챙겨”“아.”주연은 재빠르게 이미월을 위해 양갈비를 썰었다.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방문한 이미월의 행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두 사람에게 어떤 과거가 있든 지금 배준우는 이미 결혼했다.‘내가 진짜 우리 자기 때문에 봐주는 거야!’“미월 씨, 이것 좀 드세요!”주연은 양갈비를 이미월의 그릇에 담아주었다.하지만 이미월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문뜩 입을 열었다.“다들 저 여자 준우 와이프로 인정하는 거예요?”“미월 씨, 그렇게 말씀하면 안 되죠. 이건 우리의 인정이 필요 없어요!”참다못한 주연이 입을 열었다.이 자리에 있는 배준우의 친구들은 전에 배준우가 그녀와 함께 자주 만났던 친구들이다.그런데 오늘 배준우는 고은영과 함께 친구들을 만났고, 이것은 배준우가 고은영을 대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그리고 배준우는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이미월이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따지려고 들자 주연은 상당히 불쾌했다!!그녀는 스스로 떠났으면서 마치 모두가 그녀에게 미안한 짓을 한 것처럼 굴었다.주연의 거침없는 말에 이미월은 안색이 창백해졌다.진승연이 주연을 힐끔 보며 말했다.“그 입 다물어!”“내가 왜 입 다물어야 해? 입 다물 사람은 따로 있구먼.”주연은 콧방귀를 뀌며 이미월을 힐끔거렸다.주연이 물러서려 하지 않으니 진승연은 버럭 화가 났다.“돈도 이기게 해줬는데 사람이 어쩜 저렇게 지조가 없대? 저
차가운 두 글자는 배준우가 이미월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고은영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많이 울던데요.”사실 고은영은 어떻게 이미월을 평가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그런 장소에 무턱대고 따라오더니 심지어 눈물까지 흘렸다. 이건......배준우는 그녀를 힐끗 보며 물었다.“그래서 내가 이미월을 위로해 줬으면 좋겠어?”이 말을 내뱉는 배준우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고 고은영은 한기를 느꼈다.고은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요.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 완전히 끝나건 아니네요? 이 말을 묻고 싶었어요.”“결혼이 그렇게 필요했는데, 왜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어요?”이미월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녀는 전혀 배준우와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래......’“그만해!”배준우의 말투는 더 차가워졌다.고은영은 배준우의 고함에 깜짝 놀랐다.‘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저렇게 화났대?’하지만 집 문제를 생각하니 그녀도 더는 배준우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됐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불쾌한 이 화제를 넘겨버리며 배준우를 위로했다.“그래요, 그만할게요. 화내지 마세요, 네?”배준우의 쌀쌀한 눈빛에 그녀는 움찔했다.‘그래, 굳이 가슴에 묻은 사람을 내가 꺼내서 뭐 하겠어. 괜히 심기나 건드렸지.’집에 돌아가는 길은 거의 저기압이었다.하원 별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태웅이 전화를 걸어 왔다. 배준우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말해.”“병원 쪽에 상황이 생겼어요!”배준우는 병원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인데?”고은영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내 가슴이 철렁했다.전화기 저편에서 나태웅이 말했다.“오진이 아니라 안지영 씨가 그렇게 요구했다고 합니다!”고은영은 얼핏 나태웅의 말을 들었다.“휴......”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 순간 등줄기가 굳어지는 것 같았다.‘잠깐, 근데 병원 일은 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지?’백 어르신의 말로는 배준우는 오진을 절대 용납
이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백 어르신이 간 뒤로 고은영은 이 일이 이미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배준우가 진단서를 작성한 의사를 해고하라고 할 줄이야.나태웅이 곧 안지영을 찾을 거라는 생각에 고은영은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하지만 배준우의 아우라에 눌려 그녀는 찌그러진 깡통처럼 감히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은영이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준우는 더 차갑게 다그쳤다.“말해!”“모, 몰라요!”고은영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았다.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뭐 있겠는가? 어떤 말을 해도 잘못이 될 텐데.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바로...... 도피하는 것!하지만 배준우는 그녀에게 도피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스륵!”성냥이 적린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배준우는 지금 애써 화를 참고 있었고, 고은영은 당장에라도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배준우가 물었다.“모른다고?”이 네 글자에 담긴 기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사탄과 같아서 그녀는 저도 몰래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우의 아우라에 눌린 그녀는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고은영, 너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어?!”‘겁이 많은 데다가 거짓말까지?’배준우의 말투에 제대로 놀란 고은영은 울먹이며 말했다.“나 진짜 몰라요. 나 실장님 시켜서 지영이한테 물어보라고 하세요!”고은영은 머리가 복잡해졌다.하지만 확실한 건, 안지영이 그리 쉽게 인정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하여 그녀는 혹시라도 두 사람의 말이 달라질까 봐 말을 아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끝장이다.배준우는 예리하게 그녀를 노려봤다.고은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서로 꼭 잡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정말 모르는데.”차에는 온통 숨 막히는 압박감뿐이다.고은영은 더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그녀를 바라보는 배준우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으며, 고은영은 그 싸늘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은영은 배준우가 오늘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로 생각해 어떻게 안지영과
“배 안 불렀어요.”고은영은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양고기 통구이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 입맛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고은영의 말에 진씨 아주머니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 대표님은요?”진씨 아주머니가 물었다.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머리를 쿠션에 박고 말했다.“안 와요.”‘옛사랑 찾으러 갔어요.’배준우의 옛사랑을 생각하면 고은영은 어이가 없었다.‘대표님의 안목으로 어떻게 이미월 같은 여자와 사랑했을까? 너무 질척대잖아!’진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국수 말아 드릴까요?”“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국수를 좋아한다. 게다가 국수도 맛있게 잘 말았다. 하지만 배준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장 자부했던 요리 솜씨를 배준우는 부인했다.진씨 아주머니는 부엌에 들어갔다.고은영은 얼른 휴대폰을 들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갑자기 나태웅의 말이 떠올랐다.안지영은 지금 아마 나태웅의 사무실에 있을 것이다.생각하던 그녀는 메시지를 보내보기로 했다.“지영아?”답장은 오지 않았다.안 봐도 훤했다, 지금 그녀는 나태웅의 사무실에 있다.지금 이 순간 동영그룹.안지영은 나태웅을 바라보며 저도 몰래 등을 곧추세웠다.“나 실장님 할 말이 뭐예요? 저 이렇게 나와 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월급 차감 당해요.”말을 끝낸 안지영이 그제야 반응했다.‘내가 왜 나 실장님을 두려워해야지? 비록 나 실장님은 비서실 실장이지만 난 마케팅 부서잖아. 내 직속 상사도 아닌데.’나태웅은 안지영에게 쌀쌀한 눈빛을 보냈다.그녀는 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지만, 나태웅의 쌀쌀한 시선에 저도 몰래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퉁!”나태웅은 휴대폰을 사무용 책상에 던졌다.그러더니 음성 녹음을 들려주었다.“안지영 씨가 시켰습니다!”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자세히 들은 안지영은 등을 곧추세우더니 순간 온몸이 나른해졌다.‘아니지?
이 예리하고 쌀쌀맞은 반문은 안지영의 멘탈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버티며 평온하게 말했다.“당연히 문제없죠.”“그래?”‘문제없다고? 말도 잘하네. 이 여자는 입이 무거운 거야, 아니면 사태의 엄중성을 모르는 거야?’“다시 한번 말하는데, 그 진단서의 확진자는 고은영 씨야.”나태웅은 아까보다 더 날카롭게 말했다.“은영이 맞아요. 근데 제가 잘못 적었어요.”나태웅은 안지영에게 예리한 눈빛을 보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그 눈빛에 안지영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힘들었지만 애써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다.“우리 아빠가 그렇게 결혼을 강요하세요. 그래서 병원에 전화했는데, 이름을 잘못말했지 뭐예요? 의사 선생님이 아마 그래서 헷갈리셨나 봐요.”안지영은 진지하게 헛소리를 내뱉었다.나태웅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물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그의 시큰둥한 태도는 마치 안지영에게 ‘내가 그 개소리를 믿을 것 같아?’라는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안지영은 제대로 놀랐다.아무리 나태웅은 그녀의 직속 상사가 아니니 두려워할 것 없다고 자기를 설득해 보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는 것 같다.나태웅은 너무 철저한 사람이다. 그녀는 나태웅이 계속 이 일을 캐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결혼을 강요해서 암 진단을 받으려 했다가 거절당했다고?”“그러니까요. 암이라고 하면 결혼할 필요가 없잖아요.”안지영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거짓말을 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나태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런데도 회사는 계속 나오게 하시네?”“당연히 그만두라고 하시죠. 그런데 저한테 시간 많이 없으니 우리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제 말 들어주시는 거예요.”나태웅은 어이가 없었다.안지영은 빨리 이 화제를 끝맺고 싶었지만 나태웅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차를 부순 건 이 이유 때문이야?”나태웅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분명 질문인 것 같지만, 그의 어조는 이미 확신한 어조이다.그 말에 안지영은 더 놀랐다.그녀는 숨을 깊게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