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호주 시드니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윤청하가 탄 비행기는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고, 관련 소식은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한 청하는 놀란 가슴도 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연 순간. 거실에 남편 심재언과 방송국에 새로 들어온 인턴 아나운서 한다미가 다정하게 붙어 앉은 모습을 마주했다. 청하를 발견한 다미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재언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애 놀라잖아.” 그날, 청하는 결심했다. 알고 지낸 지 7년. 결혼한 지 3년. 이제는 전부 끝내기로. 재언은 청하가 내민 이혼합의서를 받아 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다 말해. 이런 일로 너한테 붙잡혀 있을 시간 없어.” 청하는 담담했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난 동윤이만 데려갈게.” 청하가 절대 자신을 떠날 리 없다고 믿었던 재언은 망설임조차 없이 서명했다. 늘 자신만 바라봤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자기 곁에 남을 여자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몰랐다. 오랫동안 얌전히 자신의 곁을 지키던 여자가 정말로 뒤돌아설 줄도, 어느 날 가로등 아래에서 다른 남자를 바라보며 미소 짓게 될 줄도... 그 모습을 본 순간, 재언의 안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뒤틀렸다. 체면도 버렸다. 자존심도 버렸다. 약한 척, 불쌍한 척 연기하고, 급기야 연적의 앞길까지 막아 가며. 오직 청하가 다시 한번 자신을 바라봐 주기만을 바랐다. “심재언,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던 선과 원칙은 다 어디 갔어?” 청하의 차가운 물음에 재언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위태롭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다 필요 없어.” 곧이어 시선이 청하에게 깊이 박혔다. “네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그런 건 전부 없어도 돼.”
Ver más동윤은 그제야 만족한 듯 눈을 감고 얌전히 누웠다.그렇게 청하와 재언은 다시 한 침대에 누웠다. 동윤은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고, 청하는 아들의 등에 한 손을 올린 채 가볍게 토닥여 잠을 재웠다.평소보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웠다. 청하는 이제 막 잠든 아이가 깰까 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어두운 방 안에서 재언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로 다른 숨소리만 잔잔하게 뒤섞였다. 듣고 있자니 슬슬 저절로 졸음이 밀려왔다.얼마쯤 누워 있었는지도 모른 채 청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무거워진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고, 의식도 차츰 흐려졌다. 호흡은 어느새 고르게 가라앉았다.완전히 잠들기 직전, 곁에서 재언이 몸을 일으키는 듯한 기척과 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재언이 방을 나갔다. 그가 자리를 뜨자 청하의 몸을 짓누르던 긴장도 금세 풀렸다. 그제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새벽 3시가 되어 재언이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와 아들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동윤은 팔다리를 사방으로 벌린 채 자고 있었고, 작은 이불은 발치까지 차 내려가 있었다.동윤이는 원래 잠버릇이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지난 두 달 동안 아들과 단둘이 지내며 재언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아이 옷 하나 제대로 벗겨 줄 줄 몰랐지만, 이제는 동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수 있게 됐다.가끔 둘만 남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재언도 새삼 깨닫곤 했다. 아이 하나를 돌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정말 어려운 일이었다.재언은 손을 뻗어 아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고개를 들던 재언의 시선이 잠든 청하에게 머물렀다. 청하는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한쪽 팔은 베개 곁에 힘없이 놓여 있었고, 희미한 달빛이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잠든 모습은 더없이 차분하고 평온해 보였다.청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어쩌면 ‘온화함’
‘안경 아빠? 앞치마 엄마?’‘대체 무슨 소리야?’재언은 미간을 찌푸리고 청하를 바라봤다. 청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설명했다.“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물들이야.”그대로 시선을 거두려던 재언은 청하의 붕대가 피에 젖은 것을 발견했다. 잠시 침묵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동윤아, 가서 구급상자 가져와.”동윤이는 말을 듣자마자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자기 머리보다도 큰 구급상자를 품에 안고 달려왔다. 짧고 통통한 다리인데도 달리는 건 제법 빨랐다.“아빠, 여기!”재언은 구급상자를 받아 들고 청하에게 손을 내밀었다.“손.”청하는 아이 앞에서는 두 사람 사이가 지나치게 냉랭해 보이지 않도록 늘 조심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다친 손을 내밀었다.예전에 선수 생활을 했던 탓인지 재언은 이런 작은 상처를 수도 없이 처리해 본 사람이었다. 손놀림은 익숙했고 처치도 수준급이었다.사실 전화 한 통이면 주치의가 10분 안에 올 수 있었다. 다만 재언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청하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재언은 붕대 끝을 단단히 묶었다.“됐어. 이틀 정도는 손 함부로 쓰지 마.”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동윤이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엄마, 아직 아빠한테 고맙다고 안 했잖아!”“고마워.”청하는 잠깐 말을 멈췄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해 끝내 한마디를 덧붙였다.“저기...”지나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를 들었지만 재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표정이 한층 더 무심해졌을 뿐이었다.“아니야...”평소에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만큼 바쁘던 재언이 웬일인지 그날은 한가했다. 재언이 떠나지 않으니 청하도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동윤의 성화에 못 이겨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 올해 새로 나온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을 함께 봤다. 따뜻하면서도 아이가 배울 만한 교훈이 담긴 작품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같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청하는 화면을 진지하게 보며 동윤이 이해하기
점심 무렵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오후 촬영은 예정대로 이어졌다.청하의 손은 사실 크게 다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국장이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기로 했다.“국장님, 저 정말 괜찮아요.”“윤 PD, 이번에는 내 말 들어. 이참에 집에서 푹 쉬면서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말고.”국장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덧붙였다.“걱정하지 마. 방송국에는 네 편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한다미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지는 못해.”‘내 편? 참 따뜻한 말인데...’청하는 미소를 띠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청하가 떠난 뒤, 국장은 웃음을 거두고 조연출을 불렀다.“그 한다미라는 친구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굳이 내가 가르쳐 줄 필요 없겠지?”조연출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뜻을 알아챘다.“국장님, 설마 일부러 띄워 줬다가 스스로 무너지게 하시려는 겁니까?”“누가 일부러 무너뜨린대.”국장이 미간을 찌푸렸다.“방송국에서 줄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은 제대로 줄 거야. 그걸 한다미가 받아낼 실력이 있는지는 본인 몫이지. 못 버티고 사라진다 해도 우리 방송국 책임은 아니잖아.”조연출은 뜻을 완전히 알아듣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국장님, 더 말씀 안 하셔도 알겠습니다.”국장은 길게 숨을 내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언을 정면으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라도 다미가 현실의 벽을 직접 부딪쳐 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청하가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윤도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다. 이번에는 재언이 직접 데려온 모양이었다. 아이는 현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목소리부터 들려왔다.“엄마! 엄마! 오늘은 왜 동윤이 데리러 안 왔어?”재언이 턱짓으로 안방 쪽을 가리키자, 동윤이는 곧장 안방으로 뛰어갔다.청하의 손에 감긴 붕대를 보자마자 작은 눈썹이 잔뜩 찌푸려지고 입술도 삐죽 튀어나왔다.“엄마, 왜 다쳤어? 많이 아파?”집에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아이가 있으니, 아픈
용현은 마지못해 짧게 대답을 한 뒤, 동료 몇 사람에게 이끌려 자리를 떴다.청하는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멀어지는 용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가족 간의 정, 사랑, 우정. 살아오는 내내 청하에게 늘 부족했던 것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별다를 것 없는 삶이었고, 굳이 꺼내 말할 만한 것도 많지 않았다.그래도 다행이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났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비좁은 대기실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재언은 청하의 입가에 남은 웃음을 바라봤다. 표정에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지만 말투는 유난히 건조했다.“네 손 데었을 때 바로 내가 데리고 가서 흐르는 물에 손부터 식혀 줬고, 의료진도 내가 불렀고, 치료비도 내가 냈는데. 서용현 PD가 대체 뭘 안심한다는 거지?”청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귀에 익게 들어 온 냉랭한 말투였다.“심 대표님 말씀은... 제가 비용을 정산해 드려야 한다는 뜻인가요?”부드럽고 담담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날이 서 있었다. 재언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이 여자 눈에는 내가 그렇게 돈이나 밝히는 쪼잔한 사람으로 보이나?’청하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다. 말다툼할 생각조차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준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문을 열고 나갔다.문이 닫히자 준환은 왕진 가방을 정리하며 물었다.“너희 둘, 대체 무슨 일이야?”재언은 대답하지 않았다.때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와.”문이 살짝 열리며 한다미가 얼굴을 반쯤 내밀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대표님, 룸에 음식 새로 차려 놨어요. 아까 거의 못 드셨잖아요. 지금이라도 조금 더 드시겠어요?”재언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아까 마음 한구석을 아주 미세하게 건드렸던 감정이, 대체 누구의 발걸음이 되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인지 재언 자신도 알 수 없었다.준환은 멀어지는 한다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남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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