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가 물었다.“왜? 싫어?”“......”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고은영은 여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지금 배준우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건 좋아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그와 엮이는 게 싫었다.그날 밤 강성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공포스러웠다.“알았어, 안 놀릴게.”마치 어린아이처럼 겁에 질린 그녀의 모습에 배준우는 더 묻지 않았다.그녀를 천천히 침대에 눕히고 시계를 보며 말했다.“오늘 미팅 있어서 늦게 퇴근할 것 같애.”“네, 알겠어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배준우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만족한 듯 웃으며 몸을 돌려 대기실을 나갔다.배준우가 나간 뒤, 고은영은 놀란 심장을 쓰다듬었다.아니, 대표님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오늘 벌써 두번째로.... 그것도 맨정신에....왜 자꾸 뽀뽀하는 거지?진짜 부부도 아닌데, 왜...?고민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서정우의 전화가 걸려 올 때까지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서정우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고은영, 네가 감히? 너 이러면 천벌 받아!”“......”서정우의 분노와 함께 전화기 너머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니, 아마도 경찰이 온 듯했다.천벌?서정우의 입에서 천벌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참 우스웠다.서정우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소리 질렀다.“너 네가 지금 돈 많은 남자 만났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내가 똑똑히 말하는데......”“말하는데? 네가 뭘 말하는데?”고은영이 그의 말을 끊었다.서정우가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고은영은 아주 우스웠다.고은영의 말에 바로 서정우의 기세가 눌렸다.그리고 조보은의 목소리로 들려왔다.“내가 내 딸 찾겠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난 잘못한 거 없어, 근데 니들이 왜 나를 잡아가, 이거 놔, 이거 놔!”서정우는 더 말할 겨를도 없이 핸드폰을 버리고 조보은에게 달려갔다.그러나 서준호가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가지 마!”서정우는
경찰차가 출발했다.서정우와 서준호는 동영그룹 입구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구경꾼들이 다 가자, 경비원이 그들에게 다가갔다.“계속 소란 피울겁니까?”“.....”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조금 전에 소란을 피운 결과를 봤기 때문에 더 소란을 피울 수가 없었다.서정우는 굳은 얼굴로 서준호를 쳐다봤다. 서준호는 고개를 저으며 난처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우린 소란 피우러 온 게 아니에요. 다 그 여편네 주장입니다. 우리와는 상관없어요.”서준호는 비록 도박을 좋아하고, 막 살지만, 아들에겐 늘 진심이었다.서준우는 서준호가 도와주지 않는 게 괘씸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당장 가세요!”경비원이 그들을 쫓아냈다.비록 사모님의 친정 식구들이지만 대표님의 지시가 있으니, 그 지시에 따라야 했다.그래서 배씨 가문 사모님의 아버지와 동생이라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가, 갈게요!”서준호는 서둘러 서정우를 끌고 동영그룹을 떠났다.조보은이 소란을 피운 지 30분 만에 경찰이 왔다.원래 제대로 한바탕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서정우, 서준호 두 사람만 남았다.“아까 왜 안 도와줬어요?”서정우는 말하며 서준호의 손을 뿌리쳤다.서정우는 항상 아버지보다 엄마를 더 챙겼다.그는 도박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별로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조보은이 계속했던 말과도 연관이 있었다. 지금 그들이 이토록 가난한 건 다 도박을 좋아하는 서준호 때문이라는 것.그래서 서정우는 마음속으로 항상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방금전도 서준호가 조보은이 끌려가는 걸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걸 보니 화가 치밀었다.“어떻게 도와줘? 같이 잡혀가?”서준호도 화난 얼굴로 대답했다.조보은의 이런 행동이 서준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걸핏하면 소란을 피우고, 난리를 치는 것 말이다.도시에서까지 그런 짓거리를 하니 말이다!이곳은 강성이다. 그녀가 무턱대고 덤빈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서준호의 대답에 서정우는 더욱
”내가 그딴 걸 신경 쓴다고 생각해?”“고은영, 너 그게 무슨 말이야?”서정우는 다급했다.아까전엔 다 자기 탓이라 해놓고!지금 이 말은 또 무슨 의미야?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아무 뜻 아니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다시는 전화하지마.”“내가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네 꼴을 보면 나도 역겨워!”“......”“다 우리 엄마 때문이야!”서정우는 분노하자 고은영이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내 꼴? 그럼, 예전엔 왜 나한테 전화했는데?”지금 그가 이런 말을 내뱉는건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고은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정우는 자기가 예전에 고은영에게 전화하던 태도를 생각하니, 수치심에 얼굴이 파래졌다.“다 필요 없고, 당장 엄마나 풀어줘!”“내가 잡은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풀어줘?”“야 고은영......”“그 사람이 만약 지은 죄가 없다면 알아서 잘 풀려나겠지.”고은영은 냉정하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정우는 전화가 끊기자, 화가 난 나머지 전화를 부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새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니, 진짜로 부술 용기는 없었다.“그 계집애가 뭐래?”전화를 끊는 모습에 서준호가 물었다.“뭐라고 하겠어요? 그러게, 예전에 좀 잘해주시지, 그러니까 지금 가족이고 뭐고 이렇게 대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 만족하세요?”“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 친엄마도 못 해주는걸 나한테 바래?”서준호는 불만이 섞인 말투로 말했고, 서정우의 얼굴에도 짜증이 가득했다!방금 고은영이 한 말들을 생각하니, 당장이라고 가서 그녀를 반쯤 죽여놓고 싶었다.고은영과 소통이 안 되자, 서준우는 바로 고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내일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고은지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 있어?”이혼 전, 고은지는 항상 조보은을 걱정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자기의 가정까지 파탄 낸 그녀에게 더 이상의 인내심은 없었다.“큰 누나, 엄마가 고은
서정우는 이토록 고은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의 고은지는 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긴 했지만, 가장 만만한 사람이기도 했다!그래서 그동안 무슨 일만 생기면 고은지를 찾아갔다......!하지만 이번에 고은지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다들 그녀에게 너무 지나치게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화가 풀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말투를 들으니 그렇지 않아 보였다.서정우는 고은지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누나, 우리 엄마야!”“네 엄마겠지!”고은지는 여전히 냉담하게 말했다.엄마? 고은지는 조씨 집안에 시집을 가서도, 조보은을 챙기고 생각했다.조영수가 준 생활비를 아껴 조보은에게 주었다.그런데 조보은이 그녀에게 어떻게 했나.....!그렇게 고생해서 그녀가 얻은 게 있나? 조보은이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또 손녀에게는 어떻게 했는지.고은지는 그제서야 모든 걸 정확하게 파악했다. 조보은에겐 아들 서정우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조보은은 자신의 이 아들을 위해서라면, 다른 형제들이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불효라고 생각한다.“누나, 왜 고은영이랑 똑같이 이러는 거야?”서정우는 더 다급해졌다.고은지의 태도도 고은영과 별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고은영의 말이 나오자 고은지는 씁쓸했다.“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예전으로 돌아갔다면 나도 은영이랑 똑같은 마음가짐이었 을거야.”할수 있다면, 대학교 졸업할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조보은은 여자는 일찍 시집가야 한다며 고은지를 들들 볶았다.그래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점점 더 못한 사람들뿐이었다.게다가 그때 집안이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 조씨 집안에서 1000만 원을 내놓으니 바로 그 집으로 시집갔다.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바보같았다......“누나!”서정우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너무한 거 아니야?”“너무하다고? 집구석이 이 지경이 된 건 다 너 때문이야, 지금 와서 내가
서정우는 찬바람 속에 서서 전화가 끊긴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졌다.고은영과 고은지, 두 사람 다 이렇까지 냉담한 태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서준호가 다급히 물었다. “어때? 은지가 도와준대?” 우리 지금 돈도 없어!”“......”돈이 없다는 말에 서정우의 짜증은 극에 달했고, 살기 어린 눈으로 서준호를 노려보았다.“맨날 돈 없다, 돈 없다. 나이도 있으신데 언제 철드실 거예요. 지금 집안 꼴이 이게 뭐예요?”서정우는 분노하며 소리쳤다.고은영과 고은지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서준호에게 풀었다.그런 서정우의 태도에 서준호는 순간 멍해졌다.그러고는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나한테 화풀이야? 나라고 돈 못 벌고 싶은 줄 알아?”“정말 제가 돈을 벌길 원하세요? 정말 그러셨다면, 일 년 내내 도박장에서만 보내시진 않으셨겠죠!”서준호와 같이 살고 있어도, 대부분의 시간에 그의 모습을 보긴 어려웠다.매일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집에 들어온다.예전에 잠깐 작은 슈퍼마켓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 마저 모두 서준호 때문에 말아 먹었다.이런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서정우는 눈앞의 아버지가 더욱 미워졌다.서정우의 말에 서준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돌렸다.“지금, 날 나무랄 때야?”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조보운을 어떻게든 그 안에서 빼내야 한다는 거다.그녀가 안에서 나오지 못하면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그들은 지금 며칠 동안 거의 노숙하다시피 했다.서정우는 이미 화가 나서 뭐라고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빨리 엄마를 꺼낼 방법이나 생각해 봐!”그는 더 이상 여기서 이렇게 고통 받고 싶지 않았다. 올 때는 고은영의 큰 집에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지금 보니 아예 그럴 가망이 없어 보였다!서준호가 보채는 모습에 서정우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만약 방법이 있다면 지금 이러고 있진 않겠지?“그러니까 생각해 보라고! 이대로 여기에 계속 있을 순 없잖아. 빨리
서정우은 블랙아웃된 핸드폰을 보고 화가나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다시 켜봐도30초 만에 바로 꺼졌다.다시 억지로 키면 아예 켜지지 않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왜 그래?”서정우가 전화를 들고 멍하니 서 있자 서준호가 물었다.“배터리가 다 됐어요. 아버지 핸드폰은 배터리 있어요?”“있어!”서준호는 서둘러 자신의 전화를 꺼내 서정우에게 건넸다.그러나 휴대폰을 든 서정우는 다시 멈칫했다.그가 또 멈칫하자 서준호는 답답했다.“또 왜 그래?”“번호가 기억나지 않아요!”“그럼, 네 휴대폰 다시 켜서 봐.”다시 키라고? 아까 30초 만에 바로 꺼지는 걸 보지 못했나?서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핸드폰을 켜보려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켜지기 않았다.“젠장....!”이 순간의 서정우는 화가 나서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었다.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마지막 희망도 완전히 사라졌다!“그럼 어떡해? 어디 충전할 데 없어?”서준호가 서정우에게 물었다.정말 하늘도 그들의 편이 아니다!뭘 해도 안 되는 날이다!“보조배터리를 빌려도 돈 내야 빌리죠, 지금 돈도 없는데.....!”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돈은 다 네 엄마한테 있어. 나도 돈이 없어.”서정우도 돈이 없다!강성에 온 뒤로, 모든 돈은 조보은이 관리하고 있었다.지금 조보은도 끌려갔고, 그들에겐 한 푼도 없다.“고은영이랑 고은지 번호는 기억하지?”서준호가 또 다시 물었다.“기억해요!”“전화해서 돈 좀 빌려.”서준호는 뻔뻔스럽게 말했다.지금 한 푼도 없으니. 그들이 지내는 곳뿐만 아니라, 저녁 식사까지 문제였다.설마 정말 자기들을 굶겨 죽일까 생각했다!서준호는 이 두 계집애가 이렇게까진 독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회사 시점.배준우가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6시 반이었다. 사무실 건물 밖에는 이미 네온사인들이 켜져 있었다.배준우가 사무실로 돌아오니, 소파에 누워 잠든 고은영의 모습이 보였다.그녀의 모습을 보니 날카로웠던 배준우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
배준우가 나가지 않으니, 그녀도 나갈 수가 없었다.특히 지금 안지영도 회사를 떠났으니 더 나갈 기회가 없었다.차에 타자마자고은영은 고은지의 전화를 받았다.“언니.”“서정우가 다시 전화하면 다시 상대도 하지 마.”“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또 전화한다고?”고은영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서정우에게 심한 말이란 심한 말은 다 했는데.하지만 그 가족의 파렴치함을 생각하면 전화를 다시 걸어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분명히 다시 전화할 거야!”“언니한테도 전화 갔어?”고은영이 물었다.“응, 돈 달라더라!”“......”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돈을 요구할 체면이 있다니!하긴, 양심이라곤 조금도 없으니, 뭐,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서정우 같은 사람은 그 어떤 말로도 떼어내기 힘든 사람이다고은영이 걱정할까 봐 고은지가 이어서 말했다.“나 돈 안 줬어. 다시 전화도 안 받았고. 그러니까 아마 또 너한테 연락할 거야.”“난 더 안 주지.”고은영은 단호하게 말했다.고은영은 예전에 고은지가 그들에게 돈을 줄 때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고은지가 바보라고 생각했다.지금 고은지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는데, 자기는 더더욱 그런 바보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고은지의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그래, 그럼 됐어!”이번에는 고은지의 결심이 대단해 보였다.그녀도 고은영처럼 그들을 떼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지금 그들이 고은영에게 이러는 건 다 그 집 때문이다.고은영이 지금과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들도 그 집을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두 사람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는 것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은지와 통화를 마치자마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고은영은 이게 서준호의 번호인 줄 모르고 있었다.“여보세요.”“누나.”서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고은영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려 했다.그러자 수화기 너머 서정우가 뭔가
고은영의 말에 배준우가 웃으며 물었다.“일말의 감정도 없어?”그녀에게 이렇게 단호한 면도 있는지 몰랐다.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그런 단호함 말이다.이전에 그녀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그냥 겁쟁이인 줄만 알았지,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하지만 좀 과도하게 단호했고, 과도하게 자기주장이 강했다.배준우도 그걸 금방 알아챘다. 그녀는 극단적인 반전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특히 특정된 일에서 말이다.가끔 너무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놀랄 때도 있었다."걔한테는 감정을 생각할 가치도 없어요!”돈밖에 모르는 그들에게 감정을 논할 가치가 없었다.만약 그녀가 돈이 없었다면 서정우가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을까? 조보은도 그녀를 찾아올까? 절대 아니다.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고은영의 눈에 조금의 슬픔이 보였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난 할머니 곁에 없었어요. 그때 전 중학생이었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지 사흘이 지나도록 발견한 사람이 없었어요.”“......”“예전에 이웃분한테 들었는데, 그 여자가 할머니가 아프신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대요.”할머니는 그녀에게 영원한 아픔이었다.예전에 할머니랑 둘이 살 때, 아무리 가난해도 조보은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할머니의 일은 그녀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있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조보은은 그런 할머니를 조금도 돌봐주지 않고 그렇게 쓸쓸하게 보냈다.배준우는 그녀의 울먹이는 듯한 말투에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줬다.“이제 그만 말해도 돼.”“내가 인정머리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그런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할머니한테 따뜻한 밥 한 끼만 차려줬어도 내가 그 여자한테 감사하게 생각했을 거예요.”고은영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러다 이내 눈물이 떨어졌다.할머니가 아픈 동안 그녀의 공부에 방해가 갈까 봐 걱정되어 그녀에게는 본인이 아프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그러다 그녀가 명절 연휴 때 집에 왔는데, 그때 할머니는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