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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Penulis: 수박빙수
이헌의 집 서재.

이헌은 습관처럼 919번의 메인 시스템에 접속했다. 화면에 곧 아림의 음성 파형이 나타났다.

“구구야, 너는... 남자들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

우유 잔을 들던 이헌의 손이 멈췄다.

AI에게 자동 응답을 맡기지 않았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둔 채 그대로 기다렸다.

아림은 소파 쿠션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은 채 웅얼거렸다.

“내 전남편 있잖아. 너한테 말해 줄까... 진짜 마음도 차갑고 정나미라고는 없는 사람이야.”

화면을 바라보던 이헌의 눈빛이 낮아졌다. 들고 있던 잔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랑 살 때는 늘 차갑고, 매일 가까이 가기 어려운 사람처럼 굴었어. 원래 성격이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이혼하고 지금 아내한테는 얼마나 다정하고 잘 참아 주는지...”

아림은 몸을 돌려 쿠션에서 얼굴을 빼고 눈을 가늘게 뜬 채 919번의 불빛을 바라봤다. 눈가가 술기운과 감정 때문에 붉어져 있었다.

“최지희를 정말 사랑하나 봐. 그러니까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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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어진 실은 다시 얽힌다   제100화

    명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기고 아림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빠져나갔다.두 사람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가 서로에게 남겨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였다.아림은 메뉴판을 내려놓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이헌은 로아에게 일회용 턱받이를 둘러 주고 있었다.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짧게 답했다. “응.”“지금 뭐 하는 거야?”“로아 밥 먹이려고.”아림은 이헌을 바라봤다. 가슴에 눌러 두던 화가 점점 커졌다. 결국 가방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로아야, 가자.”“근데 엄마...”이헌이 고개를 들어 아림을 바라봤다. 지나칠 만큼 차분한 표정이었고 목소리에도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로아 아직 밥 못 먹었어.”아림은 걸음을 멈췄다. 가방끈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갔다.결국 아림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도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헌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식당을 나갈 때 로아를 안고 문 앞까지 갔는데 뒤에서 이헌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그 의사는 너랑 안 맞아.”이헌은 문 안쪽에 서 있었다. 천장의 밝은 조명이 훤칠한 몸 뒤로 긴 그림자를 늘어뜨렸다.아림은 이헌의 말에 대답하지도,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명훈이 자리를 피했다는 이야기는 결국 민혜정의 귀에도 들어갔다.민혜정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냈다.[아림아, 이번에는 명희 이모가 소개해 준 사람이야. 금융 쪽에서 일하고 조건도 괜찮대. 하나 걸리는 건... 그쪽도 이혼했고 아이가 하나 있어.]아림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그리고 너무 따지지만 마. 너도 이혼했고 로아 키우고 있잖아. 직장 조건이나 수입도 그쪽이 더 낫다는데 일단 만나기라도 해봐. 얘기가 잘 통할 수도 있지.]아림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민혜정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걸

  • 끊어진 실은 다시 얽힌다   제99화

    로아는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전화 끊어진 거예요? 이모부, 이모부?”[응.]이헌은 주먹을 쥔 채 낮게 물었다. [누가 그런 말 했어?]“외할머니... 엄마 오늘 소개팅 갔는데... 잘되면 그 사람이 엄마 남자친구 된대요.” 로아는 작은 코를 찡긋거렸다. “남자친구가 뭐예요?”통화 너머가 다시 조용해졌다.“이모부...”[로아야. 다음에 엄마가 또 약속 있다고 하면 이모부한테 전화해. 그때 이모부가 남자친구가 뭔지 설명해 줄게.]이헌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통화를 끝냈다.로아는 꺼진 화면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아직 안 알려줬는데요...”...사흘 뒤.명훈은 아림에게 도심에 있는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아림은 짙은 남색 허리선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높게 묶었다. 차분하고 맑은 분위기가 두드러졌다.아림이 도착했을 때 명훈은 이미 식당에 도착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림에게 의자를 빼 주는 행동도 자연스러웠다.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킨 것만으로도 아림에게는 꽤 좋은 인상이 더해졌다.“아림 씨, 입맛을 정확히 몰라서 제가 먼저 주문하지는 않았어요.” 명훈은 메뉴판을 아림 쪽으로 밀고 직원에게 주문을 조금 기다려 달라는 눈짓을 보냈다.아림은 자리에 앉아 편하게 메뉴판을 들었다. 메뉴를 고르려던 중 시야 한쪽에 낯익은 사람이 들어왔다.키가 크고 늘씬한 남자가 짙은 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네이비색 머플러를 느슨하게 둘렀고 한 손은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다.그보다 눈에 더 들어온 것은 이헌이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아림은 놀라서 그대로 굳어졌다. 이헌과 로아였다.로아는 아림을 보자마자 이헌의 큰 손을 놓고 짧은 다리로 힘껏 달려왔다. “엄마!”명훈은 멈칫했다. 시선이 아림에게서 아이에게로, 다시 뒤따라오는 이헌에게로 옮겨 갔다.이헌은 훤칠한 체격에 선명하고 차가운 이목구비를 지녔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람을 저절로 긴장시키는 압

  • 끊어진 실은 다시 얽힌다   제98화

    토요일 오후.민혜정은 맞선 자리를 어떻게든 성사시키려고 일찌감치 아림의 아파트로 왔다.아림이 로아를 자신에게 맡기고 먹빛이 도는 회색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화장까지 마친 것을 확인하고서야 민혜정은 안심한 표정으로 로아를 데리고 나갔다.상대는 진명훈이었다. 금테 안경을 썼고 키는 180센티미터가 조금 넘었다. 오늘은 베이지색 캐주얼 재킷을 입고 있었다.아림이 도착했을 때 명훈은 이미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차분한 인상이었다.아림이 앉은 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한번 살펴보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나눴다.예상대로 명훈은 점잖고 말수가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만 말할 때는 여유 있고 분명해서 아림에게 꽤 괜찮은 첫인상을 남겼다.명훈은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림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만큼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아림 씨, 저는 말을 돌려 하는 편이 아닙니다. 아림 씨 첫인상이 정말 좋았어요. 아림 씨도 괜찮으시면 몇 번 더 만나 보고 싶습니다.”“제 기본적인 상황은 어느 정도 들으셨을 테니, 듣지 못하셨을 만한 얘기를 할게요.”아림은 찻잔을 든 채 명훈을 바라보며 차분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병원 일이 바쁘고 갑자기 수술이 잡힐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나더라도 자주 시간을 내지 못할 수 있어요.”“진명훈 씨.” 아림은 찻잔을 내려놓고 조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도 불편한 점은 없어요. 몇 번 더 만나면서 서로 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명훈의 눈빛이 밝아졌다. 안경을 한번 올려 쓰고는 배려하듯 먼저 대화할 만한 주제를 꺼냈다.이후의 분위기는 아림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식사는 거의 한 시간 반 정도 이어졌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생활 습관을 얘기했고 명훈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아림은 내내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명훈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신이 예상했던 만큼의 거부감이 없었다.명훈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 끊어진 실은 다시 얽힌다   제97화

    가장 아끼는 제자에게 환자가 고의로 상처를 입혔다. 백요한은 이 일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지희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치맛자락을 쥔 손에 긴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CCTV 영상은 안 돼. 절대로 이헌 오빠가 보면 안 돼.’그 생각이 떠오르자 지희는 목까지 차오른 불만을 억지로 삼켰다. 고개를 숙이고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힘없는 기색을 보였다.“오빠, 나... 몸이 안 좋아. 집으로 데려다줘.”이헌은 지희의 말에 바로 답하지 않고 백요한을 바라봤다.백요한은 표정이 굳은 채 이헌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이헌도 굳게 다문 입술로 가볍게 목례를 건넨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지희의 표정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결국 급히 발걸음을 옮겨 이헌을 따라 나갔다....이헌은 저녁 무렵 아림의 집을 찾아왔다.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은은한 연고 냄새가 흘러나왔다.이헌이 시선을 내리자 아림의 하얀 팔과 손등에 화상 연고가 두껍게 발라져 있는 게 바로 보였다.이헌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 입을 열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아림은 미간을 좁히며 현관 앞에 선 이헌을 바라봤다.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남자를 대하는 눈은 맑고 차갑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이헌이 손에 든 봉투를 아림 쪽으로 내밀었다.약국에서 나온 봉투였다.“화상 연고랑 소염제.”아림은 받지 않았다.“이것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거야?”이헌은 약 봉투를 현관 바닥 한쪽에 내려놓고 반걸음 물러났다. “오늘 일은 미안해.”“됐어.” 아림은 감정이 읽히지 않는 평범한 목소리로 끊었다. “나랑 최지희 사이의 일은 당신이 사과할 필요 없어.”“그동안은 지희 상태랑 치료를 생각해서 문제 삼지 않았어. 이제 내가 치료를 맡는 것도 아니고.” 아림의 표정은 차분하게 굳어 있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그땐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이헌은 입술을 다문 채 아림을 바라봤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림은 잠시 기다렸다. 이

  • 끊어진 실은 다시 얽힌다   제96화

    아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텀블러 안에 든 뜨거운 물이 오른 손등과 팔뚝 위로 그대로 쏟아졌다. 텀블러에 물이 반쯤밖에 없었던 게 다행이었지만 흰 가운의 소매가 넓게 젖어 버렸다.아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따가운 통증에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고, 곧바로 흰 가운을 벗었다.문밖에서 기다리던 이헌은 안에서 소리가 나자 바로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들어서자 반소매 셔츠 차림의 아림이 보였다. 손등부터 팔뚝까지 피부가 넓게 붉어져 있어 누가 봐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책상 위에는 엎어진 텀블러와 물에 흠뻑 젖은 기록지가 널려 있었고 바닥에도 물이 흥건했다.상황을 짐작한 듯 이헌의 미간이 저절로 좁아졌다.“무슨 일이야?”마침 그때 상담실 문이 다시 열리고 백요한이 돌아왔다.아끼는 제자의 팔이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자 백요한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게 무슨 일이야?”지희는 아림을 보며 뜻대로 됐다는 듯 아주 옅게 웃었다.하지만 곧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가를 붉히며 놀란 척 표정을 바꿨다.“언니, 죄송해요. 저,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괜찮으세요?”“너 일부러 그랬잖아.”지희는 속으로 흠칫했지만 곧 이헌의 팔을 붙잡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제가 어떻게 일부러 뜨거운 물을 언니한테 끼얹겠어요? 저 정말 실수한 거예요.”“오빠, 나 믿지?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너 방금 분명히...”“그만해.” 아림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끊었다. “지희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해.”아림은 멍하니 이헌을 바라봤다. 가슴 안쪽에 눌러 둔 상처가 조금씩 번졌다.지희는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아림을 바라보는 눈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도발이 담겨 있었다.‘이제 박이헌의 마음속... 네 위치가 어디인지 알겠지?’‘내가 일부러 그랬으면 뭐 어때?’‘이헌 오빠도 결국 나한테 뭐라고 못 하잖아.’아림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숙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등을

  • 끊어진 실은 다시 얽힌다   제95화

    아림은 군더더기 없이 논리를 정리해 말했다. 다만 아직 조금씩 떨리는 손끝만이 뒤늦게 몰려온 공포를 드러냈다.이헌은 아림을 한참 바라봤다. 목울대가 낮게 한번 움직였다.무슨 말을 하려던 때 지희가 눈물범벅이 된 채로 달려왔다. “오빠, 오빠, 괜찮아? 아까 왜 그렇게까지...”말을 끝내기도 전에 지희는 아림을 매섭게 노려봤다.‘다 저 여자 때문이야. 다 최아림 때문이라고.’‘최아림만 아니었으면 이헌 오빠가 자기 몸 생각도 안 하고 뛰어들 일은 없었어.’이헌은 지희에게 대답하지 않고 품에서 유빈을 받아 안았다.유빈은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작은 얼굴을 이헌의 목에 묻은 채 어깨를 계속 들썩였다.그때 창현도 로아를 안고 빠르게 다가왔다.창현은 먼저 아림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급히 살폈다. 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눈을 들어 이헌을 느긋하게 훑었다.이헌의 품에서 울음을 삼키는 유빈과, 옆에서 눈물 맺힌 채 이헌의 팔을 붙잡고 있는 지희를 번갈아 봤다.창현이 낮게 비웃었다. “박 대표님, 정말 바쁘시네요.”느슨한 말투에 비꼬는 기색이 섞였다. “자기 아내랑 아이 챙기기도 바쁠 텐데, 이혼한 전 아내와 아이까지 직접 챙길 여유가 있으시고요.”이헌의 표정이 가라앉았다.창현은 대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림 앞을 자연스럽게 가린 뒤 고개를 숙여 말했다. “가요, 아림 씨. 로아도 많이 지쳤어요. 뭐라도 먹으러 가죠.”아림은 더 말하지 않고 창현의 품에서 로아를 받아 안았다.“엄마...”로아는 두 팔로 아림의 목을 꼭 감싸고 얼굴을 어깨에 묻고 작은 목소리로 아림을 불렀다.창현은 자연스럽게 아림의 등 뒤로 손을 뻗어 아직 어수선한 사람들과 거리를 만들어 주며 테마파크 출구 쪽으로 걸었다.세 사람의 뒷모습은 곧 붐비는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로아가 아림의 어깨에 엎드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아까 나쁜 사람 잡으러 간 거야?”“엄마는 도와주러 간 거야.” 창현이 아림을 한번 내려다보고 대신 설명했다. “로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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