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3년 전 비밀결혼을 끝낸 은소예. 다시는 마주칠 일 없을 줄 알았던 전남편 신시안이 어느 날 회사의 새 대표로 나타난다. 사람들 앞에서는 처음 만난 상사와 직원처럼 행동하지만, 둘만 남으면 끝난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흔들린다. 이혼의 진짜 이유와 서로의 오해가 드러날수록, 두 사람은 다시 사랑을 선택할 기로에 선다.
view more월요일 아침부터 회사 분위기가 이상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수군거렸다. “오늘 새 대표 온대.” “진짜? 본사에서 바로 내려오는 사람이라던데.” “엄청 젊다며?” “사진 봤어?” “아니. 찾아봤는데 제대로 나온 것도 없더라.” 은소예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조용히 사원증 끝만 만지작거렸다. 새 대표가 누가 오든 상관없었다. 지난달부터 회사가 인수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경영진이 전부 바뀐다는 소문도 이미 들었다. 소예에게 중요한 건 하나였다. 괜히 구조조정 명단에만 들어가지 않는 것.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자신이 맡은 브랜드전략팀 일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소예 씨.” 옆에 있던 동료가 팔꿈치로 그녀를 툭 쳤다. “왜요?” “긴장 안 돼요?” “뭐가요?” “새 대표요.” 소예는 피식 웃었다. “대표가 저랑 밥 먹을 것도 아니잖아요.” “소문 못 들었어요? 엄청 깐깐하대요.” “대표들은 원래 다 깐깐하다는 소문부터 나요.”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소예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오전 열 시. 전 직원이 대회의실로 모이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평소라면 온라인으로 끝냈을 인사인데 굳이 전 직원을 부른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소예는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회의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앞쪽에는 임원들이 서 있었고, 중앙에는 비어 있는 자리 하나가 마련되어 있었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대표님 오십니다.” 소예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검은 정장. 흰 셔츠. 단정하게 넘긴 검은 머리. 예전보다 조금 더 날카로워진 얼굴. 사람들의 시선을 당연하다는 듯 받으며 걸어 들어오는 남자. 소예의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딱. 작은 소리였지만 그녀 귀에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소예는 숨을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왜 저 사람이 여기 있어? 옆자리에서 누군가 작게 속삭였다. “와, 진짜 잘생겼다.” 소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단상 위로 올라간 남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오늘부터 대표이사를 맡게 된 신시안입니다.” 소예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신시안.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잊으려고 몇 년을 보낸 이름이었다. 그리고 한때는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불렀던 이름이었다. 시안아. 여보. 그렇게 불렀던 남자. 소예의 전남편이었다. “앞으로 조직 전반에 변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시안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단순한 인력 감축이나 보여주기식 개편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소예는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마지막으로 그를 봤던 날만 반복되고 있었다. 가정법원 앞. 차갑게 닫히던 자동차 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고받았던 말. 다시는 보지 말자. 그게 정확히 세 해 전이었다. 소예는 정말 다시 보지 않을 줄 알았다. 서울은 넓었고. 시안은 해외로 떠났고. 소예는 완전히 다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하필. 왜. 여기였을까. “이상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소예는 한 박자 늦게 손을 움직였다. 시안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임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앞으로 걸어왔다. 소예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설마 자신에게까지 오겠어. 직원이 몇 명인데. 그런데 임원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주요 실무자들도 간단하게 소개드리겠습니다.” 소예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하필 주요 실무자. 하필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이번 분기 핵심 사업이었다. “브랜드전략팀 은소예 대리입니다.” 결국 이름이 불렸다. 소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안이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세 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 가까이에서 보니 더 확실했다. 정말 신시안이었다. 그 역시 아무 표정이 없었다. 처음 보는 직원을 대하는 대표의 얼굴. “은소예 대리님.” “네.” 겨우 목소리를 냈다. 시안이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순간 소예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결혼식을 올렸고.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고. 같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었고. 이혼서류에 나란히 이름까지 적었던 사람들이. 처음 뵙겠습니다. 소예도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손이 맞닿았다. 시안의 손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크고 따뜻했다. 소예는 최대한 빨리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시안의 손가락이 아주 잠깐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가 몸을 아주 조금 숙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잘 지냈어?” 소예의 표정이 굳었다. 시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놓았다.토요일 오후 한 시.은소예는 신시안과 함께 오래된 골목에 들어섰다.“여기 맞아?”“응. 이 골목 끝.”“생각보다 조용하네.”“예전에도 그랬어.”시안은 주변을 둘러봤다.십여 년 전과 달라진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식집이 있던 자리에는 꽃집이 생겼고, 작은 문구점은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그런데 골목 끝의 서점만큼은 그대로였다.낡은 나무문.짙은 녹색 간판.유리창에 붙은 손글씨 안내문.소예가 발걸음을 멈췄다.“와. 사진이랑 똑같아.”“그러네.”시안도 잠시 서점을 바라봤다.“없어졌을 줄 알았는데.”“들어가자.”소예가 먼저 문을 열었다.딸랑.작은 종소리가 울렸다.오래된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서점 안에는 높은 책장이 빼곡했고, 창가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어서 오세요.”계산대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인사했다.시안이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여성이 시안을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어머.”시안이 멈췄다.“혹시…….”“신시안 학생 아니에요?”소예가 놀라서 돌아봤다.“학생?”시안도 웃음을 터뜨렸다.“사장님, 오랜만입니다.”“세상에! 정말 시안 학생이네!”여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몇 년 만이에요? 십 년은 훨씬 넘었겠네.”“그 정도 됐습니다.”“이렇게 멀끔해져서 나타나면 내가 어떻게 알아봐.”소예가 웃었다.“안녕하세요. 아내 은소예입니다.”“어머, 결혼했어요?”“네.”시안이 소예의 손을 잡았다.“제 아내입니다.”여성은 반갑게 웃었다.“아이고, 잘됐네. 예전에는 여자친구 이야기 한번 안 하던 학생이었는데.”소예가 시안을 쳐다봤다.“그랬어요?”“그럼요. 늘 혼자 와서 책만 읽었어요.”시안이 머쓱하게 웃었다.“그때는 공부할 게 많아서요.”“공부는 무슨. 소설책도 많이 읽었으면서.”소예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두 사람은 서점 안쪽으로 들어갔다.소예는 책장을 천천히 둘러봤다.“여기 진짜 좋다.”“마음에 들어?”“응. 책이 많아
일요일 오전 열한 시.은소예는 주방에서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신시안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그러다 화면을 보고 웃었다.“왜 웃어?”소예가 물었다.“현욱이.”“강현욱 씨?”“응. 사진 보냈어.”“무슨 사진?”시안이 휴대폰을 돌려 보여줬다.사진 속에는 대학생 시절의 신시안이 있었다.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지금보다 조금 긴 머리.그리고 손에는 커다란 곰 인형이 들려 있었다.소예가 토스트를 내려놓았다.“잠깐만.”“왜?”“이거 당신이야?”“응.”소예는 화면을 확대했다.“곰 인형은 뭐야?”“축제 때 뽑은 거.”“당신이?”“응.”소예는 다시 사진을 봤다.평소의 시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무엇보다 사진 속 시안은 곰 인형을 품에 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이런 사진이 있었어?”“나도 잊고 있었는데.”그때 휴대폰이 울렸다.강현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시안이 스피커폰으로 받았다.“왜?”—사진 봤냐?“봤어.”—오랜만에 찾았는데 반갑지 않냐?“어디서 났어?”—예전 노트북 정리하다가.소예가 옆에서 말했다.“안녕하세요, 현욱 씨.”—어? 형수님도 계세요?“네. 사진 같이 보고 있어요.”전화기 너머에서 현욱이 웃음을 터뜨렸다.—아, 그럼 제대로 보셨네.시안이 미간을 좁혔다.“뭘 제대로 봐?”—그날 네가 얼마나 신났는지.소예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무슨 날이었는데요?”—대학교 축제요. 시안이가 인형 뽑기 부스에서 저 곰을 뽑겠다고 난리를 쳤거든요.“내가 언제 난리를 쳤어?”—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 성공했잖아.소예가 웃었다.“네 번이나 했어요?”—그것도 제가 마지막에 동전 빌려줬습니다.시안이 한숨을 쉬었다.“그건 기억 안 나는데.”—나는 기억나지. 내 돈이었으니까.소예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 곰은 어디 갔어요?”—그게 더 웃긴데요.시안이 바로 끼어들었다.“현욱아.”—왜? 사실이잖아.“뭔데요?”소예가 재촉했다.현욱이 말했다.—그 곰
“우리 도자기 만들러 갈까?”은소예의 말에 신시안이 젓가락을 멈췄다.“도자기?”“응.”“갑자기?”“전에 지나가다가 봤거든. 직접 컵 만드는 곳.”시안이 잠시 생각했다.“해본 적 있어?”“없어.”“그럼 오늘 처음이네.”“당신은?”“나도.”소예가 웃었다.“잘됐다.”“뭐가?”“둘 다 못하겠네.”시안이 헛웃음을 흘렸다.“시작도 안 했는데?”“처음이니까.”“당신이 더 잘할 수도 있잖아.”“그럼 내가 당신 것도 만들어줄게.”“그건 직접 만들어야 의미 있는 거 아니야?”소예가 계란말이를 한 조각 더 집었다.“그럼 서로 만들어주자.”“컵을?”“응. 당신은 내 거, 나는 당신 거.”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소예는 휴대폰을 가지러 침실로 향했다.그러다 문 앞에서 멈췄다.“아.”시안이 물었다.“왜?”“우리 오늘 휴대폰 안 보기로 했잖아.”“아침에만.”“그랬나?”“일어나자마자 시간 확인하지 말자고 했지.”소예가 웃었다.“맞다.”휴대폰을 가져와 근처 도자기 공방을 찾아봤다.다행히 오후 두 시에 두 명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 있었다.소예는 화면을 시안에게 보여줬다.“여기 어때?”“괜찮네.”“예약할까?”“응.”예약을 마친 소예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됐다.”“그럼 점심 먹고 나가면 되겠네.”“오늘은 컵 두 개 만들어 오는 거야.”시안이 안내문을 가리켰다.“바로 못 가져오는데?”“뭐?”“건조하고 굽는 데 시간이 걸린대.”소예가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완성품은 몇 주 뒤 수령하는 방식이었다.“아쉽다.”“오늘 만들고 나중에 받으면 되지.”“그럼 기다리는 재미도 있겠다.”오후 한 시 45분.두 사람은 작은 도자기 공방 앞에 도착했다.유리문 너머로 선반에 놓인 컵과 접시들이 보였다.소예가 문을 열었다.“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 두 분 예약하셨죠?”“네.”직원이 앞치마 두 개를 건넸다.“오늘은 손으로 형태를 만드는 핸드빌딩 수업이에요. 처음이셔도 충분히 하실 수 있어
금요일 오전 여덟 시 42분.은소예는 회사 로비에서 신시안과 헤어지려다가 그의 손에 들린 가방을 발견했다.“그거 뭐야?”“도시락.”“도시락?”시안이 검은색 보냉 가방을 들어 보였다.“응.”“누가 싸줬는데?”“내가.”소예가 걸음을 멈췄다.“당신이?”“왜 그렇게 놀라?”“아니,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난 건 알았는데.”“주방에 있었잖아.”“나는 커피 내리는 줄 알았지.”시안이 웃었다.“점심에 먹으려고.”“뭐 넣었는데?”“볶음밥.”“어제 남은 밥?”“응. 계란이랑 채소 넣어서.”소예가 가방을 내려다봤다.“내 건?”시안이 그녀를 봤다.“당신 오늘 점심 약속 있잖아.”“아.”소예는 그제야 기억했다.NEXT ONE 직원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맞다.”“그러니까 내 것만.”“그럼 나도 다음에 싸줘.”“뭘?”“도시락.”“좋아.”소예가 웃었다.“계란말이는 빼고.”시안이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 얘기 아직도 해?”“한동안은.”“이제 잘할 수 있는데.”“그럼 다음에 보여줘.”“알았어.”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둘은 각자 다른 층으로 향했다.점심시간.NEXT ONE 직원들은 회사 근처 식당에 모였다.차연이 메뉴판을 펼쳤다.“본부장님, 오늘은 뭐 드실래요?”“나는 제육.”“저도요.”주문을 마친 뒤 직원들이 주말 이야기를 시작했다.“저 이번 주말에 집들이 가요.”“누구 집?”“친구요. 결혼하고 처음 초대하는 거라는데 뭘 사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차연이 말했다.“휴지?”“너무 평범하지 않아요?”“실용적이잖아요.”소예가 물컵을 내려놓았다.“친구가 뭐 좋아하는데?”“커피요.”“그럼 원두나 드립백도 괜찮겠다.”“오, 그거 좋네요.”직원이 휴대폰에 메모했다.그러다 차연이 소예를 봤다.“본부장님은 집들이 자주 하세요?”“아니.”“대표님이랑 집에 손님 초대한 적은요?”“있지.”“요즘은요?”소예가 생각했다.최근에는 둘이 집에서 퍼즐을 맞추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
Reb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