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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作者: 달콤열매
“사모님, 이번에 회장님이 처리하시는 일이... 아주 까다롭습니다. 며칠은커녕 보름 안에 돌아오실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유희는 말문이 막혔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건 어려워졌다.

메시지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썩 예의 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도 없었다.

유희는 핸드폰을 꺼내 세호와의 카톡 대화창을 열었다.

[바빠요? 잠깐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요? 할 말이 있어요.]

전송 버튼을 눌렀다.

메시지 옆에 노란 숫자 ‘1’이 떠올랐다.

그제야 유희는 대화창 위에 뜬 세호의 프로필을 바라봤다.

사진도, 상태 메시지도 모두 사라진 채 회색 기본 프로필만 남아 있었다.

유희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분 가까이 지나서야 자신이 차단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내 납득했다는 듯,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럴 만도 하지.’

‘최세호가 나와 결혼한 건 동찬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

‘나라는 사람은... 예전처럼 멀리하고, 어쩌면 싫어할지도 몰라.’

‘내가 해외로 가든 말든 최세호에게 굳이 알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유희는 말없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갔다.

손가락의 반지를 빼서 침대 옆 협탁에 던져두었다.

시간이 나면 명품 중고 매장에 팔 생각이었다.

혜미에게 빼앗긴 4억 원 성과급을 메우는 데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사모님, 숙면에 도움이 되는 아로마입니다. 오늘은 편하게 주무실 수 있을 거예요.”

직원이 향을 피우자 은은하고 맑은 향기가 빠르게 방 안에 퍼졌다.

유희는 오래 지나지 않아 깊이 잠들었다.

...

고요한 밤, 닫혀 있던 방문이 바깥에서 천천히 열렸다.

키 큰 ‘검은 그림자’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남자의 시선은 협탁 위 반지에 머물렀다.

길고 단정한 손가락이 반지를 집어 들더니 손바닥 안에 꽉 움켜쥐었다.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손마디마저 하얗게 질렸다.

보기 싫은 반지를 그대로 부숴 버리려는 듯했다.

꽉 쥔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조금씩 배어 나왔다.

날카로운 통증이 눈 안에서 들끓던 폭력적인 집착을 아주 조금 가라앉혔다.

그는 자조하듯 소리 없이 웃었다. 곧바로 손목을 가볍게 들고 피 묻은 반지를 쓰레기통 안으로 던졌다.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조심스럽게 잠든 유희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어둠 속 남자의 시선은 질척할 만큼 깊고 집요했다.

“유희야... 다시는 나한테서 떠날 생각 하지 마.”

...

정식 출근은 다음 달이었지만, 유희는 그때까지 시간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지금부터 연구 데이터를 정리하기로 했다.

손에 익은 프로그램과 방대한 자료는 회사에 둔 개인 소유의 노트북에 저장돼 있었다.

그 노트북을 가져와야 했다.

유희는 FS그룹으로 향했다.

유희가 FS그룹 사옥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곧바로 대표실까지 올라갔다.

“대표님, 송유희 팀장님이 회사에 오셨습니다.”

동찬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예상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고집을 꺾었네.”

서랍에서 고급 벨벳 보석함을 꺼냈다.

“이거 유희한테 갖다줘. 방금 경매에서 산 핑크 다이아 목걸이야. 저녁에는 둘이 먹을 수 있게 식당도 예약하고...”

그러다 말을 멈춘 동찬은 곧바로 생각을 바꿨다.

“아니, 됐어. 내가 직접 갈게.”

...

AI 사업부.

유희는 안으로 들어서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바로 알아차렸다.

예전에 자신을 보조하던 비서 민아가 필사적으로 눈짓을 보냈다.

예상대로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혜미가 보였다.

혜미는 유희에게 맞춰 제작했던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 송 팀장. 너 해고된 거 아니었어? 무슨 낯으로 다시 왔어? 난 송 팀장이 대단한 자존심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혜미는 멸시 어린 말투로 여전히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돌아왔다고 이 사무실을 다시 쓸 생각은 하지 마. 난 본부장이고 네 직속 상사야. 제일 좋은 자리는 당연히 내 거지.”

“넌...”

혜미는 유리창 밖을 살피더니, 가장 구석에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책상을 가리켰다.

“저기 앉아.”

개인 사무실을 빼앗기고 창고처럼 쓰는 구석 자리로 옮기는 건 누가 봐도 모욕이었다.

유희는 의기양양하게 비웃는 혜미를 보면서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어차피 버릴 사무실이고 곧 껍데기만 남을 부서인데. 갖고 싶으면 가지라고 해.’

유희는 무심하게 물었다.

“내 노트북 어디 있어?”

“저기.”

혜미가 입술을 삐죽이며 쓰레기통 쪽을 악의적으로 바라봤다.

“낡은 노트북을 아직도 찾네? 그렇게 아까우면 직접 주워.”

유희는 시선을 따라갔다. 자신의 노트북과 사무실에 두었던 개인 물건들이 전부 쓰레기통 안에 처박혀 있었다.

노트북 위에는 빵 부스러기와 커피 얼룩까지 잔뜩 묻어 있었다.

유희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송유희.”

불룩한 배를 받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혜미가 유희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각도에 서자, 곧바로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사나워졌다.

“나갔으면 그냥 나가 살지 왜 다시 와? 내 남편은 죽었어. 이제 네 남편이 내 아이 아빠고 내가 의지할 사람은 네 남편뿐이야.”

“그런데 넌 왜 자꾸 달라붙어서 나랑 최동찬을 두고 싸우는 건데? 눈치 좀 챙기고 나한테 넘겨주면 안 돼?”

유희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런 논리면 강도도 와서 언니라고 부르겠네.’

혜미가 목소리를 낮췄다.

“너 모르지? 나랑 네 남편은 시험관 시술 같은 거 한 적 없어. 우린 수없이 많은 밤을 같이 보냈어.”

“처음에는 네 남편도 죄책감이 있었는지 눈을 가린 채 내 몸을 안고 네 이름을 불렀지. 그런데 나중에는 거울 앞에서도 날 끌어안고 숨을 헐떡였어...”

“그러니까 네 남편도 진작에 내 남자가 됐어. 내가 있는 이상 최씨 집안에 네 자리는 없어.”

말을 끝낸 혜미는 갑자기 유희의 손목을 잡더니 자기 뺨을 세게 때렸다.

그 힘을 따라 일부러 뒤로 넘어졌다.

“악!”

혜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금 전의 사나운 표정을 지운 채, 뺨을 감싸고는 다시 억울하고 가련한 사람처럼 변했다.

“송유희!”

사무실 밖에서 거친 고함이 터졌다.

동찬이 곧바로 들어와서 혜미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유희를 거세게 밀쳤다.

“임신한 사람이야! 뱃속에 내 아이가 있어!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어?”

밀친 힘이 너무 강했다. 버티지 못한 유희의 허리가 책상 모서리에 강하게 부딪혔다. 곧바로 허리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유희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면서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하지만 동찬의 관심은 혜미에게만 쏠려 있었다. 유희를 향해 매섭게 호통을 쳤다.

“이리 와. 형수님한테 사과해.”

혜미는 동찬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 눈에는 뜻대로 됐다는 쾌감이 가득했지만, 입으로는 억울하고 너그러운 척했다.

“서방님... 동서 탓하지 마요... 전 괜찮아요...”

“동서가 화나는 것도 당연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최씨 집안의 대를 잇는 일만 아니었으면... 저도 서방님의 아이를 갖지 않았을 거예요.”

“동서, 진짜 화가 풀린다면 나 몇 번을 더 때려도 괜찮아.”

동찬은 눈물을 머금고 참는 혜미를 보다가 차갑게 서 있는 유희를 바라봤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 유희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매정해 보이기 시작했다.

유희를 향한 동찬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혐오까지 섞여 있었다.

서로 끌어안은 두 사람을 보자 유희는 속이 뒤집혔다. 역겨움과 가슴의 통증이 허리에서 올라오는 고통마저 덮을 정도였다.

“내가 몇 대를 때려도 괜찮다고?”

유희가 차갑게 되묻더니 곧바로 손을 들었다.

짝! 짝!

두 번의 거센 따귀가 혜미의 반대쪽 뺨에 정확하게 꽂혔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맞고 싶다고 먼저 부탁하는 사람도 있고. 두 대면 됐어? 모자라면 몇 대 더 공짜로 때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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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30화

    동찬이 예식장 밖으로 밀려났을 때, 마침 유정란과 혜미가 달려왔다.유정란은 넋이 빠진 사람처럼 창백한 동찬을 보자 속이 상하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닫힌 예식장 문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퍼부었다.“송유희 저 못된 것!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어?” “네가 최세호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사람과 결혼해? 일부러 네 가슴에 칼을 꽂으려는 거잖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독해!”혜미는 속으로는 샴페인이라도 터뜨리고 싶을 만큼 기뻤다.겉으로는 걱정과 불안을 가득 담은 표정을 만들고 동찬의 멀쩡한 쪽 팔을 부드럽게 붙잡았다.“진정해요.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우리 쪽도 시작 시간이 다 돼 가요. 하객들도 전부 기다리고 있는데, 이대로 늦으면 아이를 두고도 뒷말이 나올 거예요.”“그러니까 일단 돌아가서 급한 일부터 마무리해요.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요.”혜미는 동찬을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동찬은 팔을 거칠게 빼냈다.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혜미가, 상처받고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동찬을 바라봤다.동찬은 혜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텅 빈 눈이 혜미 품의 아이에게 내려갔다.예전의 다정함과 기대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잘못의 시작이 된 성가신 존재를 보는 듯 차갑고 낯선 눈이었다.“형수님, 제가 잘못했어요.”잔뜩 갈라진 동찬의 목소리는 후회로 거칠었다. “제가... 형수님하고 아이를 만들면 안 됐어요.”그는 이제야 유희가 아이의 존재를 얼마나 견디기 힘들어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혜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를 급히 품에 더 세게 안고 울먹였다.“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당신 친아들이에요!”“지금 마음이 무너진 건 알아요. 그래도 정신 차려야 해요. 우리 아이 앞날부터 생각해야 하잖아요!”유정란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히 거들었다. “맞아. 아이가 최씨 집안의 대를 이을 사람이고 제일 중요해. 다른 일은 다 뒤로 미뤄야지.”“송유희 때문에 정해 둔 발표 시간까지 놓쳐서, 아이한테 평생 말이 나오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9화

    세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주변 공기를 단숨에 바꿨다.유희 앞으로 다가간 동찬이 팔을 잡으려고 했다. 흥분한 탓에 목소리까지 달라져 있었다.“장난이 너무 지나쳤어! 유희야, 이건 선을 넘었어. 당장 나랑 돌아가!”유희는 한 걸음 물러나면서 동찬의 손을 피했다. 눈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장난? 여기까지 와서도 내가 너 상대로 장난치는 것 같아?”“이게 장난이 아니면 뭔데? 결혼은 장난감이 아니야. 형도 네가 나를 자극하려고 이용할 사람이 아니고. 정신 차려.”동찬은 견디기 힘들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넌 내 아내야. 우리 이미 결혼식도 했잖아!”“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유희는 차분하지만 잔인할 만큼 분명하게 짚었다. “그 눈 오던 밤, 네 어머니가 나를 집 밖으로 내쫓는 걸 네가 가만히 보고 있던 때부터 우리 사이는 끝났어.”“그건...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널 사랑해. 내 입장도 이해해 줘야 하잖아.”동찬은 다급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스스로 듣기에도 힘이 없었다.“미안하지만.”유희는 더 이상 동찬을 보지 않았다. 세호 쪽으로 몸을 돌려 팔짱을 살며시 끼었다. “나는 이미 세호 씨의 아내야.”“유희야, 여보... 그러지 마.”동찬이 또 손을 뻗었지만 최세호가 앞으로 나서며 가볍게 쳐냈다.세호의 시선이 서늘한 칼날처럼 동찬의 얼굴을 훑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동찬아. 내 결혼식에 들어와서 내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예의가 너무 없네.”세호는 짧게 말을 멈췄다가 한 글자씩 또렷하게 덧붙였다. “호칭도 고쳐. 이제 유희한테는 형수님이라고 불러.”“최세호!”동찬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유희가 내 아내였다는 걸 알면서 왜 결혼해? 사촌동생의 여자였던 사람을 형이 데려가 놓고 울남시 사람들이 비웃는 게 두렵지도 않아?”“사촌동생의 여자를 빼앗았다고?” 세호가 짧게 비웃었다. “그 말은 네가 할 처지가 아닌 것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8화

    동찬은 바로 고개를 세게 흔들어 터무니없는 생각을 밀어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저 사람은 지예라야.’‘오늘은 최세호와 지예라의 결혼식이잖아.’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 신부를 유희로 착각할 수 있을까?’“동찬아! 시작 시간 다 됐는데 문 앞에서 뭐 하고 있어?”유정란이 연회장 안에서 나와 못마땅하게 재촉했다. “애도 못 낳는 게 자존심 세우고 안 오겠다는데 잘됐지. 누가 그런 애한테 내 귀한 손자의 엄마 노릇 시키고 싶대? 재수 없어.”동찬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집스럽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올 거예요.”유희는 마음이 약했다. 자신이 알던 유희이라면 정말 끝까지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아이를 안고 넋이 나간 동찬을 바라보면서 혜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아이의 여린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세게 꼬집었다.“으앙!”아기는 갑자기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놀란 유정란이 아이를 얼른 받아 안았다. “아이고, 우리 귀한 손자가 왜 이렇게 울어?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가 여기 있잖아.”유정란이 동찬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봐, 아이도 울잖아. 정해 둔 시간에 아버지와 후계자 발표를 해야 좋은 뜻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데, 시간을 놓치면 애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동찬아, 유희 하나 때문에 네 아들 앞날까지 망칠 거야?”동찬은 유정란 품에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아이와 여전히 아무 답도 없는 핸드폰을 번갈아 봤다. 마음속에서 심한 갈등이 일었다.결국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유희야, 이번에는 네가 정말 너무했어.’동찬은 유정란에게 말했다. “가요. 들어가죠.”두 사람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말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시원시원한 분위기의 여자는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직 시작 안 했지? 늦은 거 아니지? 동찬아, 미란 이모, 축하해요. 조카 선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7화

    유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면서 전화를 받았다.혜미가 일부러 높인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기사 봤어? 오늘 울남시 최고급 호텔인 리안호텔에서 우리 아들 장손 공식 발표 연회가 열려.][최동찬이 울남시에서 제일 크고 화려하게 하겠대. 이름 좀 있다는 사람은 전부 올 거야.][오늘부터 모두가 알게 되겠지. 내 아들이 최동찬의 정식 장남이고 앞으로 후계자가 될 아이라는 걸.] [나하고 최동찬 사이도 누구도 못 끊어. 우리는 앞으로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살 거야.]혜미의 도발을 들으며 유희는 거울 속 웨딩드레스 차림의 자신을 바라봤다. 어이없을 만큼 우스웠다.“오늘 같은 날 굳이 나를 건드리고 싶은 거야?”유희의 붉은 입술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최동찬은 내가 그 연회에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가 지금 바로 가면 행사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혜미가 발끈했다. [네가 감히!]유희는 조용히 웃었다.“네가 불편해지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갈 수 있는데...”“내가 안 가길 원하면 핸드폰에 대고 세 번 크게 말해.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충분히 크게 말하면 생각해 볼게.”[송유희, 너!]혜미의 숨이 거칠어졌다.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릴 듯했다.유희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셋 셀 동안 안 하면 바로 갈 거야. 하나, 둘, 셋...”[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전화기 너머 혜미의 목소리가 거의 무너졌다. [됐지?]유희가 웃었다. “녹음했어.”[송유희!!!]유희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고 녹음 파일을 저장했다. 통쾌하고 차가운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옆에 있던 오성재가 웃으며 조용히 알렸다. “사모님, 결혼식 시작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문이 열리고 같은 제복을 입은 직원 네 명이 공손하게 들어왔다. 무겁고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조심스럽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6화

    말을 마치자 동찬의 핸드폰이 연달아 진동했다.친한 지인들이 모인 단톡방이었다.[동찬아, 큰 소식! 최세호가 그렇게 못 잊던 첫사랑 지예라가 돌아왔대!][내가 뭐랬어. 예전에 최세호가 지예라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을 뻔했잖아.] [지예라가 떠난 뒤에는 여자라면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하더니,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면 신부는 뻔하지. 내가 장담하는데 지예라가 맞아.][오히려 잘됐네. 최세호는 몇 년 동안 약점 하나 없이 너를 누르고 최씨 집안에서 영향력도 계속 키웠잖아.] [이제 유일한 약점이 돌아왔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정신 바짝 차리고 기회 잡아.]동찬은 화면의 글자를 하나하나 뚫어지게 읽었다. 잔뜩 당겨 놓은 고무줄 같던 긴장감이 툭 끊어지듯 풀렸다.‘지예라였구나.’‘그래. 그 일을 왜 잊고 있었지.’‘최세호처럼 냉정한 사람이 결혼까지 받아들일 상대라면 지예라 말고 누가 있겠어?’‘유희는 역시 지예라 대신 드레스를 입어 본 것뿐이야.’동찬은 자신이 너무 흥분해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고 여겼다.길게 숨을 내쉬자 안도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비서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대표님, 그럼 조사 건은...”“됐어.” 동찬이 손을 내저었다. 목소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오해한 거야. 더 알아볼 필요 없어.”혜미는 갑자기 편안해진 동찬을 보자, 속에서 질투가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아이까지 낳았는데도 동찬은 여전히 유희에게 이렇게 흔들렸다. 이대로 두면 아들까지 동찬을 붙잡아 두지 못할 것 같았다.혜미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자기 문제를 치워 줄 사람은 김민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번에도 들려온 것은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적인 안내음이었다.“젠장.”혜미는 낮게 욕하며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주먹을 쥐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독사처럼 마음을 휘감았다....결혼식 당일.리안호텔 신부 대기실.커다란 통유리를 지난 햇빛이 방 안을 따뜻하고 환하게 채웠다.유희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5화

    “너... 어떻게 내 다친 팔을...” 동찬의 목소리가 떨렸다.유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만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내가 최세호와 결혼한다는 걸 못 믿겠어? 그럼 직접 물어봐.”동찬의 팔은 여전히 뼛속까지 쑤셨고 피가 손등을 타고 흘렀다.눈앞의 유희는 동찬이 알던 사람과 너무 달라져 있었다. 혼란과 상처가 뒤엉킨 채 동찬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네가 대체 왜 이렇게 변했어? 형수가 내 아이 하나 낳아 준 게 전부잖아. 왜 끝도 없이 일을 키우는 거야?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야?”자기 말만 옳다고 믿는 동찬을 보고 있으니 유희는 지긋지긋했다.세호 쪽을 바라보니 통화가 끝난 듯 핸드폰을 내리고 있었다.‘잘됐네.’세호가 직접 말해 준다면 동찬도 더는 자기 멋대로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끝낼 수 있었다.따르릉-그때 동찬의 전화가 다급하게 울렸다.화면도 보지 않고 끊었지만 벨소리가 다시 이어졌다.동찬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뭔데?”혜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기가 이상해요. 설사하고 토하고 열이 41도까지 올랐어요! 왜 병원에 없는 거예요? 빨리 와요!]혜미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떨리고 있었다.“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동찬은 습관처럼 유희에게 손을 뻗었다. “너도 일단 나랑 병원 가.”유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한 번만 더 나한테 손을 대면, 이번에는 그 팔 진짜 다시 부러뜨려 줄 테니까.”동찬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깁스 안쪽의 통증이 유희가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줬다.동찬은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유희를 바라보다 결국 이를 악물었다.“유희야, 너 정말 너무 제멋대로야.”그 말을 남기고 동찬은 망설이지 않고 돌아섰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빠르게 매장을 떠났다.유희는 다급하게 멀어지는 동찬의 뒷모습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바로 전까지 세호가 자신에게 화풀이할까 걱정된다고 떠들더니,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 한마디에 유희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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