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全部章節:第 1 章 - 第 10 章

30 章節

제1화

“여보, 형님 뱃속 아이... 그 아이... 당신 아이야?”송유희는 새하얗게 질린 채 자신이 들은 말을 믿지 못했다.7개월 전, 최동찬의 친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잃은 데다 임신까지 한 형님 강혜미가 안쓰러워서, 송유희는 날마다 몸보신 음식을 챙겼고, 산부인과 검진에도 빠짐없이 동행했다. 그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돌아온 것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배신이었다.손에 쥔 보물처럼 아끼고 목숨보다 사랑한다던 최동찬이 자신을 배신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제대로 설명해.”유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파에 앉은 동찬을 똑바로 바라봤다.조명 아래 짙게 찌푸린 동찬의 눈썹에 그늘이 졌다. 평소의 여유롭고 고고한 분위기 대신 숨이 막힐 듯 무거운 기색만 내려앉아 있었다.동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진정해.”“우리 집안에는... 후계자가 필요해.”그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처럼 유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3년 전, 유희는 동찬을 구하다 자궁을 크게 다쳐서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당시 동찬은 병상 곁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난 너만 있으면 돼. 아이가 뭐가 중요해? 아이는 평생 없어도 상관없어.”“...”“후계자가 필요해?” 유희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참아 온 눈물이 끝내 뺨을 타고 떨어졌다. “그래서 네 형수랑 아이를 만든 거야? 최동찬, 어떻게 이렇게까지 역겨울 수 있어?”짝!거센 손바닥이 유희의 뺨을 후려쳤다.시어머니 유정란은 혐오와 독기를 숨기지 않았다. “버릇없는 것! 네 남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우리 큰애가 죽었으니 동생이 집안의 대를 잇는 게 당연하지. 네가 여기서 소리칠 일이 아니야.”“애도 못 낳는 주제에 무슨 낯으로 따져? 네 남편이 널 내쫓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살아야지!”‘애도 못 낳는 여자?’유희는 화끈거리는 뺨을 감싼 채 동찬을 바라봤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동찬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감사하게 살라고?’‘최동찬이 날 버리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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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유희가 돌아온 이유는 짐을 가져가기 위해서였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평소 농담 한마디도 하지 않던 동찬이 혜미 옆에 앉아서, 썰렁한 농담까지 해 가며 기분을 풀어주고 있었다.“에취.”강혜미가 가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재채기를 했다.“추워요?” 동찬은 바로 긴장한 표정이 됐다. 값비싼 재킷을 벗어 혜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걸쳐 줬다.혜미가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코끝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주변 공기가 잠깐 굳어 버린 듯 고요해졌다.둘만 아는 듯한 끈적한 분위기가 말없이 번져 갔다.유희는 현관에 서서 소리 없이 입꼬리를 비틀었다.‘내가 정말 눈이 멀었었네.’ 동찬이 혜미를 지나치게 살피고 챙기는 모습을 그저 형이 세상을 떠난 뒤 느낀 책임감이라고만 생각했다.사실 두 사람은 훨씬 전부터 선을 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동서?”혜미는 유희를 보자 놀란 토끼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죄책감과 당황한 기색을 얼굴에 가득 담은 채 말을 더듬었다. “오, 오해하지 마. 동찬이 그냥 내가 추울까 봐 걱정해 준 것뿐이야...”‘걱정?’유희는 속으로 비웃었다.‘난방이 이렇게 잘되는 집에서 재채기 한 번 했다고 저 난리야?’‘어젯밤 내가 얇은 옷만 걸친 채, 눈밭에서 얼어 의식까지 흐려졌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됐어. 이제 아무 상관 없어.’더는 두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유희는 말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3년 동안 쌓인 물건은 많았지만 유희가 챙긴 짐은 캐리어 하나뿐이었다.동찬이 준 결혼기념일 다이아몬드 목걸이, 생일마다 받은 한정판 가방, 기념일의 보존화, 연애할 때 쓴 편지와 둘만의 기념품까지 전부 쓰레기통에 넣었다.‘사람부터 더러워졌는데 이런 걸 남겨 둬서 뭐 해.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힐 텐데.’유희는 혼인관계증명서를 캐리어 안쪽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막 몸을 일으키려던 때, 강한 어지럼증이 덮쳐 왔다.비틀거리던 유희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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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특실 병동의 최고급 병실.혜미는 침대에 기댄 채 동찬이 따라 준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마셨다. “서방님, 집에서 들었는데... 동서가 아침에 최고급 세단을 타고 돌아왔다면서요. 어젯밤엔 아예 안 들어왔고... 화가 난다고 아무나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니겠죠?”“그럴 리 없어요.”동찬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사과 껍질을 깎았다. 그의 말투에는 확신이 있었다. “유희는 저한테 그런 짓 할 사람이 아니에요. 오늘도 저랑 혼인신고 하려고 했고요.”“둘이 혼인신고 하려고 했어요?”혜미는 놀란 척했지만 눈 안쪽에는 지독한 질투가 번졌다.‘내 남편은 죽었고 이제 동찬이 내 아이 아빠인데...’‘송유희는 왜 자꾸 내 걸 빼앗으려는 거야?’‘그냥 깨끗하게 최동찬을 나한테 넘기면 안 돼?’그때 전화벨이 울렸다.동찬이 전화를 받자 유정란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동찬아! 유희 쟤 지금 무슨 짓이야? 캐리어까지 끌고 나갔잖아! 유희가 없으면 집안일은 누가 하고 혜미 보양식은 누가 챙겨?]“유희가 나갔다고요?”사과를 깎던 동찬의 손이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혼인신고까지 하겠다고 했는데, 유희가 또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동서는 왜 저렇게 성질이 센 걸까요? 서방님은 혼인신고까지 해 준다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에요?”“서방님한테 그렇게 사랑받으면 행복해야죠... 저는 남편도... 이제 없는데...”혜미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침대 시트 위로 떨어졌다. “서방님, 얼른 가서 동서를 달래 줘요. 전 아프면 간호사 부르면 돼요. 간호사분들도 많이 바쁘시겠지만... 어떻게든 저는 혼자서 견딜 수 있을 거예요.”애써 약한 모습을 감추며 양보하는 혜미를 보다가 며칠째 소란을 피운다고 여긴 유희를 떠올리자, 동찬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어머니 말씀이 맞아. 내가 유희를 너무 받아 줬어.’혜미는 임신 중이었다. 그런데 유희는 이해하고 챙겨 주기는커녕 이런 때까지 질투하고 제멋대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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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다음 날, FS그룹 대표실.동찬은 짜증스럽게 서류를 책상 위에 던졌다. 손가락으로 고급 원목 책상을 두드리며 물었다. “유희 아직도 출근 안 했어?”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네, 대표님. 송유희 팀장님은... 사흘째 출근하지 않았습니다.”동찬의 미간이 더 깊게 일그러졌다.‘돈 한 푼 없이 이틀을 어떻게 버틴 거지? 굶고 있나? 밖에서 자나?’‘길고양이처럼 어디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쓰였다.‘내가 너무 받아 줘서 저렇게 고집이 세진 거야.’‘고생하면서도 먼저 숙일 줄을 모르잖아.’동찬은 피곤한 듯 눈썹 사이를 눌렀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양보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어디 있는지 알아봐. 내가 데리러 갈게.”“서방님!”대표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임신 7개월인 혜미가 다급한 표정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손에는 눈부신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려 있었다.“방금 친구들이랑 쇼핑하다가 어떤 여자 손에 이 반지가 있는 걸 봤어요. 딱 보자마자 동서의 결혼반지라는 걸 알았어요.”“서방님이 유명 주얼리 디자이너한테 따로 맡겨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반지잖아요.”“그래서 바로 그 여자한테 어디서 났냐고 물어봤는데요...”혜미는 말을 잇기 어려운 척 표정을 흐렸다. “명품 중고 매장에서 샀대요.”뚝!동찬이 쥐고 있던 고가의 만년필이 손안에서 부러졌다.곧이어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지면서 관자놀이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이를 악문 채 목소리가 한 글자씩 새어 나왔다. “송유희, 정말 잘하는 짓이다.”동찬은 밖에서 고생하고 있을 유희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유희는 두 사람의 결혼반지를 팔아서 돈으로 바꿨다.“다 제 탓이에요... 저만 아니었으면 서방님이랑 동서가 이렇게까지 싸우지도 않았을 텐데...”혜미는 눈물을 닦으며 가슴 아픈 표정을 지었다. “결혼반지는 둘의 사랑을 의미하는 거잖아요. 그걸 팔았다는 건... 정말 서방님이랑 끝내겠다는 뜻 아닐까요?”“끝낸다고요?”동찬은 터무니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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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유희야!”동찬은 굳은 표정으로 다른 일은 전부 제쳐 두고 빠르게 뒤를 쫓았다.룸에서 나온 유희는 바로 오성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사님, 일이 좀 생겨서 점심은 취소됐어요. 바로 예식장 보러 갈게요. 담당자 연락처 좀 보내 주세요.”“사모님, 이쪽으로 오십시오.”유희가 고개를 들자, 오성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이미 호텔에 와 있었던 모양이었다.유희도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문이 닫히기 직전, 룸에서 뛰어나온 동찬은 유희와 오성재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봤다.동찬이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오성재 집사가 왜 여기 있지?”곁에 있던 호텔 직원이 공손하게 답했다. “최 대표님, 오 집사님은 결혼식장 답사를 오셨습니다. 이달 말에 최세호 회장님께서 결혼식을 올리신다는 거 모르셨습니까?”세호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자랐다. 6년 전 돌아온 뒤 냉혹한 결단으로 울남시 재계를 재편했고, 한 달 가까이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인수되는 대격변이 이어졌다.그 일 이후 재계 사람들은 세호를 두려워하면서도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뒤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렀다.“형이 결혼한다고?”동찬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명문가 자제들을 몇 번이나 소개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결혼을 하다니... 대체 어떤 여자길래?’놀라면서도 동찬은 옆 엘리베이터의 위층 버튼을 눌렀다. 유희를 빨리 데려가야 했다. 세호의 영역에 잘못 들어가 괜한 일을 겪게 둘 수 없었다.동찬이 아는 세호는 말 그대로 위험한 사람이었다. 상대가 여자라고 해서 봐줄 사람도 아니었다.최상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오성재가 옆으로 비켜 길을 안내했다. “사모님, 이쪽입니다. 울남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마련된 예식장 ‘스카이가든’이 바로 앞입니다.”유희는 오성재를 따라 꿈처럼 꾸며진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다.그와 거의 같은 때 옆 엘리베이터 문도 열렸다.동찬은 성큼성큼 복도로 나섰다. 날 선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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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사모님, 이번에 회장님이 처리하시는 일이... 아주 까다롭습니다. 며칠은커녕 보름 안에 돌아오실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유희는 말문이 막혔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건 어려워졌다.메시지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썩 예의 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도 없었다.유희는 핸드폰을 꺼내 세호와의 카톡 대화창을 열었다.[바빠요? 잠깐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요? 할 말이 있어요.]전송 버튼을 눌렀다.메시지 옆에 노란 숫자 ‘1’이 떠올랐다.그제야 유희는 대화창 위에 뜬 세호의 프로필을 바라봤다. 사진도, 상태 메시지도 모두 사라진 채 회색 기본 프로필만 남아 있었다.유희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1분 가까이 지나서야 자신이 차단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내 납득했다는 듯,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럴 만도 하지.’‘최세호가 나와 결혼한 건 동찬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나라는 사람은... 예전처럼 멀리하고, 어쩌면 싫어할지도 몰라.’‘내가 해외로 가든 말든 최세호에게 굳이 알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유희는 말없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갔다. 손가락의 반지를 빼서 침대 옆 협탁에 던져두었다. 시간이 나면 명품 중고 매장에 팔 생각이었다. 혜미에게 빼앗긴 4억 원 성과급을 메우는 데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사모님, 숙면에 도움이 되는 아로마입니다. 오늘은 편하게 주무실 수 있을 거예요.”직원이 향을 피우자 은은하고 맑은 향기가 빠르게 방 안에 퍼졌다.유희는 오래 지나지 않아 깊이 잠들었다....고요한 밤, 닫혀 있던 방문이 바깥에서 천천히 열렸다.키 큰 ‘검은 그림자’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남자의 시선은 협탁 위 반지에 머물렀다.길고 단정한 손가락이 반지를 집어 들더니 손바닥 안에 꽉 움켜쥐었다.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손마디마저 하얗게 질렸다. 보기 싫은 반지를 그대로 부숴 버리려는 듯했다. 꽉 쥔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조금씩 배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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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혜미는 얻어맞은 채 얼어붙었다. 억울한 척하던 표정조차 굳어 버렸다. 불에 덴 듯 쓰라린 뺨 때문에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송유희가... 진짜 나를 때렸어?’동찬도 잠시 말을 잃었다가 이내 분노가 폭발했다.“송유회! 진짜 미쳤어?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오늘에서야 알겠다. 네가 이렇게 질투 많고 악독한 사람이었어?” “지금 네 꼴을 봐.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며 싸우는 사람이랑 뭐가 달라?”“아.”“그래서?”유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손목을 풀었다. 칼날 같은 차가운 눈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다음부터 내 앞에서 선 넘지 마. 또 건드리면 둘 다 같이 맞을 줄 알아.”유희의 싸늘한 시선과 뺨의 통증에 혜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약한 사람한테만 센 척하는 인간...’유희는 비웃듯 숨을 내쉬었다. 더는 역겨운 두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쓰레기통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송유희! 거기 서!”화가 치밀어서 표정이 굳어진 동찬이 날 선 목소리로 위협했다. “지금 나가면 평생 다시 돌아올 생각 하지 마.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출시에서도 네 이름은 빼 버릴 거야!”협박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유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다.쾅!동찬은 손에 들고 있던 보석함을 바닥에 세게 내던졌다.‘난 화해하려고 했는데, 왜 또 이렇게 된 거지?’억지로 AI 사업부 밖까지 걸어 나온 유희는 벽을 붙잡았다. 날카롭게 찌르는 허리의 통증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팀장님.”민아가 달려와 유희를 부축했다. 걱정으로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제가 병원에 모셔다드릴게요.”“고마워.”...허리를 다친 유희는 스카이힐로 돌아온 뒤 침대에서 꼼짝없이 쉬어야 했다.방 밖 복도, 어두운 구석.오성재가 허리를 숙인 채 무겁게 보고했다. “회장님, 확인했습니다. 사모님께서 FS그룹에서 강혜미 씨에게 모욕을 당하셨습니다.”“최동찬 대표는 상황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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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대표님, 송유희 팀장님이 왔습니다!”혜미의 비서가 당황한 채 달려왔다. “출시 행사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다들 강혜미 본부장님을 ‘마인드링크’ 개발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때 송유희 팀장님이 들어와서 사실을 밝히면, 벨루그룹과 협력은 물론이고 FS그룹도 업계의 웃음거리가 됩니다!”“결국 왔네.”동찬의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은 조금 풀렸지만, 대신 화가 다시 치밀었다. 몸을 돌린 동찬은 빠른 걸음으로 메인홀 밖을 향했다.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던 혜미는 그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급히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뒤를 따라갔다.걸으면서 미친 듯 메시지를 보냈다. [쓸모없는 놈! 송유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사람 하나 제대로 못 봐? 어디야!]메시지는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메인홀 앞에 도착한 동찬은 한눈에 유희를 발견했다.복도에서 유희는 깔끔하게 정리된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몸은 전보다 조금 마른 듯했지만 걸음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천천히 메인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자세히 보니 안색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호흡도 평소보다 가빴다.“이제야 와? 지금 와서 뭐가 달라지는데?”동찬의 말투에는 책망과 실망이 가득했다. “출시 행사는 이미 끝났어. 다행히 형수가 대신 발표해서 사고 없이 마무리됐고.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마. 네가 늦어서 생긴 일이니 결과도 네가 감당해야지.”유희는 눈을 들어 동찬을 바라봤다. 시선은 뼛속까지 차갑고 조소로 가득했다.비상계단으로 끌려갔을 때부터, 혜미가 ‘마인드링크’를 빼앗으려 한다는 건 알아챘다.애초에 FS그룹을 떠나기로 한 뒤에는 ‘마인드링크’를 가져갈 생각도 없었다. 회사 소유 프로젝트라 들고 나갈 수도 없었다. 오히려 ‘벨루그룹의 글로벌 AI 연구개발센터 센터장이 직접 개발한 ‘마인드링크’’라는 이름이 붙으면, FS그룹의 수익은 열 배 이상 뛸 수 있었다.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유희의 원칙이었다.더구나 출시가 끝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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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바로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메인홀 문이 거칠게 열렸다.압도적인 분위기의 사람들이 줄지어 밖으로 나왔다. 맨 앞에는 키가 크고 냉정한 인상의 영국인 남자가 있었다. 날카로운 안목과 강경한 협상 방식으로 유명한 벨루그룹 AI사업부 글로벌사업본부장, 토머스 스미스였다.토머스 스미스 일행이 나타나자, 말하지 않고도 주변을 눌러 버리는 위압감이 퍼지면서 복도는 조용해졌다.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메인홀 안에 있던 참석자들도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혜미는 잠깐 멈칫했다가 엄청난 기쁨에 휩싸였다. 벨루그룹의 고위 임원들이 직접 나왔다.‘분명 나를 만나러 나온 거야!’혜미는 곧바로 완벽한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하이힐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다가갔다. 목소리도 달콤하고 자신감이 넘쳤다.“본부장님, 안녕하세요. ‘마인드링크’ 개발자 강혜미입니다. 직접 나와 주시다니 정말 영광...”토머스는 걸음을 살짝 늦추더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으로 혜미를 한번 봤다. 시선은 곧 혜미를 지나쳐서, 경호원에게 붙잡힌 채 창백해진 유희에게 정확히 꽂혔다.유희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확인하자, 토머스의 표정은 폭풍 직전의 하늘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지금 뭘 하는 겁니까?”혜미는 가슴이 철렁했다. 다 잡은 기회를 유희 때문에 놓칠 수는 없었다.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안타까움을 가득 실었다.“이런 모습을 보여 드려 죄송해요. 제 동서인 송유희이에요.” “제가 ‘마인드링크’ 개발에 성공하자, 질투가 났는지 집안에서 자기 입지가 떨어질까 봐... 제 연구 데이터를 훔쳐서 여기서 개발자인 척하려고 했어요.”혜미는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집안일이라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는데 여러분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네요.”‘연구 데이터 절도’라는 말은 악의적이면서도 치명적이었다. 유희가 원본 데이터를 보여 줘도 혜미가 먼저 의심을 심어 놓은 이상 쉽게 믿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곧 술렁이기 시작했다. 경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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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동찬의 안색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유희만 똑바로 바라본 채 몸까지 돌처럼 굳어졌다.‘유희가 어떻게 벨루그룹의 글로벌 AI 연구개발센터 센터장일 수 있어?’“아니에요... 말도 안 돼요! 송유희가 벨루그룹의 글로벌 AI 연구개발센터 센터장일 리 없어요!”가장 먼저 무너진 사람은 혜미였다. 유희를 손가락질하며 비명을 질렀다. 애써 지켜 온 우아한 모습도 잊은 채, 극도의 공포와 광기만 드러내며 토머스에게 물었다.“본부장님, 사람을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송유희는 FS그룹에서 해고된 팀장일 뿐이라고요! 송유희는...”“강혜미 본부장.”토머스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송유희 센터장님은 저희 벨루그룹이 3년 동안 계속 영입을 시도했고, 최종적으로 회장님께서 직접 나서서 큰 정성을 들여서 모셔 온 글로벌 AI 연구개발센터의 수석연구원입니다.”“그 자리는 누구도 함부로 의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강혜미 본부장이 하는 말이 더 황당한 것 같습니다.”혐오와 조롱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벨루그룹 글로벌 AI 연구개발센터의 수석연구원이 FS그룹 강혜미 본부장의 연구 성과를 훔치려고 했다고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이 다 있습니까?”“벨루그룹의 핵심 프로젝트인 ‘바이오 뉴럴 매트릭스’도 송유희 센터장님이 이론적 기반과 핵심 구조를 직접 세웠습니다.”“‘마인드링크’ 정도의 응용 기술은 송유희 센터장님에게 어렵지도 않은 작업입니다. 그런 분이 훔칠 게 뭐가 있습니까? 웃기는 얘기죠.”토머스의 시선이 심판하듯 창백해진 동찬과 휘청거리는 혜미를 훑었다. 결국 동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한마디씩 힘주어 말했다.“FS그룹, 잘 알겠습니다. 오늘 송유희 센터장님께 저지른 일은 저희 쪽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지금 이 시간부터 벨루그룹의 전 세계 모든 사업 부문은 FS그룹과 진행 중인 협의를 중단하며, 앞으로도 어떤 협력 제안도 받지 않겠습니다.”털썩-혜미는 뼈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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