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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作者: 달콤열매
혜미는 얻어맞은 채 얼어붙었다. 억울한 척하던 표정조차 굳어 버렸다. 불에 덴 듯 쓰라린 뺨 때문에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송유희가... 진짜 나를 때렸어?’

동찬도 잠시 말을 잃었다가 이내 분노가 폭발했다.

“송유회! 진짜 미쳤어?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오늘에서야 알겠다. 네가 이렇게 질투 많고 악독한 사람이었어?”

“지금 네 꼴을 봐.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며 싸우는 사람이랑 뭐가 달라?”

“아.”

“그래서?”

유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손목을 풀었다. 칼날 같은 차가운 눈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다음부터 내 앞에서 선 넘지 마. 또 건드리면 둘 다 같이 맞을 줄 알아.”

유희의 싸늘한 시선과 뺨의 통증에 혜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약한 사람한테만 센 척하는 인간...’

유희는 비웃듯 숨을 내쉬었다. 더는 역겨운 두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쓰레기통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송유희! 거기 서!”

화가 치밀어서 표정이 굳어진 동찬이 날 선 목소리로 위협했다.

“지금 나가면 평생 다시 돌아올 생각 하지 마.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출시에서도 네 이름은 빼 버릴 거야!”

협박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유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다.

쾅!

동찬은 손에 들고 있던 보석함을 바닥에 세게 내던졌다.

‘난 화해하려고 했는데, 왜 또 이렇게 된 거지?’

억지로 AI 사업부 밖까지 걸어 나온 유희는 벽을 붙잡았다. 날카롭게 찌르는 허리의 통증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팀장님.”

민아가 달려와 유희를 부축했다. 걱정으로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제가 병원에 모셔다드릴게요.”

“고마워.”

...

허리를 다친 유희는 스카이힐로 돌아온 뒤 침대에서 꼼짝없이 쉬어야 했다.

방 밖 복도, 어두운 구석.

오성재가 허리를 숙인 채 무겁게 보고했다.

“회장님, 확인했습니다. 사모님께서 FS그룹에서 강혜미 씨에게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최동찬 대표는 상황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혜미 편만 들었고요. 사모님 허리도 최동찬 대표가 밀치는 바람에 다치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섬뜩한 살기가 퍼져 나왔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그늘에 서 있는 큰 체격의 남자는 마치 저승에서 걸어 나온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자기 손을 관리할 줄 모르면, 두 손 다 못 쓰게 만들어.”

오성재는 숨을 삼켰다. 세호와 동찬은 오래전부터 사이가 험악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명령을 내린 적은 없었다.

이번에 동찬은 정말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방 안에는 다시 은은한 향이 피어올랐다.

향이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허리가 아파서 잠들지 못하던 유희는 깊은 잠에 빠졌다.

어둠 속에서 침대 한쪽이 낮게 내려앉았다.

마디가 선명한, 길고 단정한 손이 조심스럽게 유희의 옷자락을 들어 올렸다.

희고 매끈한 피부가 조금씩 드러났다.

세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피부 위에 멈춰 있던 손끝도 아주 가늘게 떨렸다.

결국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서, 세호는 연고를 손끝에 묻혀 유희 허리의 멍든 부분에 부드럽게 발랐다.

귀한 보물을 다루듯 손길에는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 번졌다.

“널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건 최동찬이야. 이제 다시는 최동찬한테 돌려보내지 않아.”

...

FS그룹, 회의실.

동찬은 왼쪽 아래쪽의 빈자리를 무겁게 바라봤다. 원래 유희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였다.

예전에는 둘이 싸워도 사흘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벌써 일주일째였다.

‘괜찮아. 내일은 무조건 돌아올 거야.’

동찬은 유희가 수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서 만든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마인드링크’를 포기할 리 없다고 믿었다.

유희가 자신을 떠날 리도 없다고 믿었다.

동찬은 시선을 거두고 평소의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내일 출시 행사는 완벽해야 해. 벨루그룹과의 협력은 무조건 따낸다. 실패는 없어.”

벨루그룹과 손을 잡아야 FS그룹이 현재의 한계를 넘을 수 있었다.

그래야 늘 자신보다 앞서 있던 사촌형 세호와 맞붙을 자본도 생긴다.

‘나도 똑같이 능력 있는 사람인데... 왜 평생 최세호보다 아래여야 해?’

세호는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는데도, 돌아오자마자 최씨 집안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 자리를 되찾았다.

동찬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벨루그룹과의 협력은 동찬이 3년 동안 참고 버티며 쌓아 온 결과였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다.

“걱정하지 마요.”

혜미가 몸을 살짝 기울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눈매는 부드러웠지만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다 준비가 됐어요. 벨루그룹과의 협력은 반드시 우리가 가져올 거예요.”

...

핸드폰이 길게 울렸다.

유희는 화면에 뜬 해외의 번호를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센터장님, 18일 울남시에서 열리는 AI 산업 포럼에 참석 가능하십니까? 저희 그룹은 그 자리에서 최종 협력사 한 곳을 선정할 예정입니다.]

[새로 부임하실 AI 연구개발센터 센터장이신 만큼 최종 결정권은 센터장님께 있습니다.]

[현재 울남시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본사에서 직접 후보들을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AI 산업 포럼...’

‘FS그룹의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마인드링크’ 출시 행사도 거기서 열리는데...’

한때 유희는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었다. 이날 동찬이 벨루그룹과의 협력을 단번에 따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협력사를 고르는 결정권자가 유희 자신이 되어 있었다.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도 없었다.

유희는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 참석할게요.”

...

18일, AI 산업 포럼이 열리는 울남컨벤션센터 앞.

유희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쪽을 향했다.

손끝이 버튼에 닿으려던 때, 뒤에서 갑자기 한 손이 뻗어 나왔다.

흰 수건이 입과 코를 거칠게 틀어막았다.

유희는 도움을 청할 틈도 없이 강한 힘에 끌려 옆의 어두운 비상계단 안으로 들어갔다.

...

같은 시각, 포럼 메인홀.

맞춤 정장을 입은 동찬은 벌써 열다섯 번째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출시 행사가 곧 시작되는데도 유희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잘생긴 눈썹이 점점 더 깊게 일그러졌다.

동찬은 분노를 억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희는 아직도 안 왔어요?”

지금도 오지 않으면 행사 전 마지막 준비 시간까지 놓치게 된다.

혜미는 한숨을 쉬며 이해해 주려는 듯 말했다.

“행사 시작까지 몇 분 안 남았는데요... 일부러 딱 맞춰서 오려나 봐요.”

“그래야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요. 동서는 가끔 정말...”

혜미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제멋대로’라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됐다.

동찬의 표정이 더 어두워지면서 짜증에 혐오까지 섞였다.

그가 차갑게 명령했다.

“모든 순서를 미리 준비해 둬요. 유희가 나타나면 바로 옷 갈아입게 한 뒤 무대로 올려요. 단 1초도 지체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혜미는 얌전히 대답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는 계획이 성공했다는 악의가 스쳤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화면을 몇 번 눌러 메시지를 보냈다.

[처리했어?]

답은 바로 왔다.

[자기야, 걱정 마. 사람은 내 손에 있어. 절대 위로 못 올라가게 할게.]

혜미의 입가에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가 번졌다. 예정된 시각이 됐으니 유희는 반드시 불참할 것이다.

무대 위의 찬사도, 마인드링크 개발자라는 타이틀도 이제 혜미의 것이었다.

‘송유희, 이제 뭘로 나랑 싸울 건데?’

‘앞으로 네가 가진 모든 것, 일도 명예도 남자도 전부 내 거야.’

“대표님, 본부장님! 시작 시각입니다. 송유희 팀장님이 아직 안 오셨는데 어떻게 하죠?”

직원 한 명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이마에는 진땀이 가득했다.

동찬의 표정은 먹구름처럼 어두웠다. 유희가 자기 3년의 노력을 버릴 정도로 제멋대로 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동서도 참... 이렇게 중요한 날에 어떻게 이렇게 분별없이 굴 수 있을까요?”

혜미는 속상한 척 발을 굴렀다. 곧 큰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동찬을 바라봤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요. 준비해 둔 대안대로 진행하죠. 제가 동서 대신 무대에 올라 발표할게요.”

혜미는 진심이 가득한 듯 동찬을 바라봤다.

“동서가 없어도 서방님을 위해서 제가 끝까지 해낼게요. 행사를 반드시 성공시키고 벨루그룹과 협력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동찬의 속은 더 답답해졌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친 듯 미간을 누르며 낮게 말했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혜미는 터져 나오려는 환희를 억눌렀다. 오늘을 위해 맞춘 값비싼 드레스를 정리하고, 이미 외울 만큼 반복해서 본 발표 대본 카드를 꽉 쥔 채 흥분을 감추며 무대로 걸어갔다.

수많은 조명이 혜미에게 집중됐다.

혜미는 달콤한 미소로 행사 순서를 소개한 뒤 ‘마인드링크’의 ‘핵심 콘셉트’와 ‘기술적 강점’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발표가 끝난 뒤 회장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약 2분 뒤, 거대한 박수가 폭발하듯 터졌다.

“정말 대단합니다! 강혜미 본부장님, 최고예요!”

“세상에, AI가 사람 감정에 맞춰 소통하는 걸 정말 구현했다고요? 시대를 바꿀 기술입니다. ‘마인드링크’가 전 세계 AI 시장을 흔들겠어요!”

“끝났네... FS그룹에 강혜미 본부장과 ‘마인드링크’가 있으면 우리가 벨루그룹이랑 협력할 가능성은 거의 없잖아.”

“받아들여야지. 우리 회사는 최동찬 대표처럼 강혜미 본부장 같은 인재를 데리고 있지 못하니까.”

“...”

여기저기서 감탄과 탄식이 이어졌다.

원래 유희에게 돌아가야 할 영광은 이제 혜미를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혜미는 조명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이 자신만 바라보고 치켜세우는 기분을 마음껏 즐겼다.

동찬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혜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행사가 성공했으니 기뻐해야 마땅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무겁고 불길한 불안이 내려앉아 있었다.

‘유희가 어떻게 3년 동안 온 힘을 쏟은 결과물까지 버릴 수 있지?’

‘설마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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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30화

    동찬이 예식장 밖으로 밀려났을 때, 마침 유정란과 혜미가 달려왔다.유정란은 넋이 빠진 사람처럼 창백한 동찬을 보자 속이 상하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닫힌 예식장 문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퍼부었다.“송유희 저 못된 것!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어?” “네가 최세호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사람과 결혼해? 일부러 네 가슴에 칼을 꽂으려는 거잖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독해!”혜미는 속으로는 샴페인이라도 터뜨리고 싶을 만큼 기뻤다.겉으로는 걱정과 불안을 가득 담은 표정을 만들고 동찬의 멀쩡한 쪽 팔을 부드럽게 붙잡았다.“진정해요.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우리 쪽도 시작 시간이 다 돼 가요. 하객들도 전부 기다리고 있는데, 이대로 늦으면 아이를 두고도 뒷말이 나올 거예요.”“그러니까 일단 돌아가서 급한 일부터 마무리해요.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요.”혜미는 동찬을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동찬은 팔을 거칠게 빼냈다.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혜미가, 상처받고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동찬을 바라봤다.동찬은 혜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텅 빈 눈이 혜미 품의 아이에게 내려갔다.예전의 다정함과 기대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잘못의 시작이 된 성가신 존재를 보는 듯 차갑고 낯선 눈이었다.“형수님, 제가 잘못했어요.”잔뜩 갈라진 동찬의 목소리는 후회로 거칠었다. “제가... 형수님하고 아이를 만들면 안 됐어요.”그는 이제야 유희가 아이의 존재를 얼마나 견디기 힘들어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혜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를 급히 품에 더 세게 안고 울먹였다.“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당신 친아들이에요!”“지금 마음이 무너진 건 알아요. 그래도 정신 차려야 해요. 우리 아이 앞날부터 생각해야 하잖아요!”유정란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히 거들었다. “맞아. 아이가 최씨 집안의 대를 이을 사람이고 제일 중요해. 다른 일은 다 뒤로 미뤄야지.”“송유희 때문에 정해 둔 발표 시간까지 놓쳐서, 아이한테 평생 말이 나오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9화

    세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주변 공기를 단숨에 바꿨다.유희 앞으로 다가간 동찬이 팔을 잡으려고 했다. 흥분한 탓에 목소리까지 달라져 있었다.“장난이 너무 지나쳤어! 유희야, 이건 선을 넘었어. 당장 나랑 돌아가!”유희는 한 걸음 물러나면서 동찬의 손을 피했다. 눈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장난? 여기까지 와서도 내가 너 상대로 장난치는 것 같아?”“이게 장난이 아니면 뭔데? 결혼은 장난감이 아니야. 형도 네가 나를 자극하려고 이용할 사람이 아니고. 정신 차려.”동찬은 견디기 힘들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넌 내 아내야. 우리 이미 결혼식도 했잖아!”“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유희는 차분하지만 잔인할 만큼 분명하게 짚었다. “그 눈 오던 밤, 네 어머니가 나를 집 밖으로 내쫓는 걸 네가 가만히 보고 있던 때부터 우리 사이는 끝났어.”“그건...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널 사랑해. 내 입장도 이해해 줘야 하잖아.”동찬은 다급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스스로 듣기에도 힘이 없었다.“미안하지만.”유희는 더 이상 동찬을 보지 않았다. 세호 쪽으로 몸을 돌려 팔짱을 살며시 끼었다. “나는 이미 세호 씨의 아내야.”“유희야, 여보... 그러지 마.”동찬이 또 손을 뻗었지만 최세호가 앞으로 나서며 가볍게 쳐냈다.세호의 시선이 서늘한 칼날처럼 동찬의 얼굴을 훑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동찬아. 내 결혼식에 들어와서 내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예의가 너무 없네.”세호는 짧게 말을 멈췄다가 한 글자씩 또렷하게 덧붙였다. “호칭도 고쳐. 이제 유희한테는 형수님이라고 불러.”“최세호!”동찬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유희가 내 아내였다는 걸 알면서 왜 결혼해? 사촌동생의 여자였던 사람을 형이 데려가 놓고 울남시 사람들이 비웃는 게 두렵지도 않아?”“사촌동생의 여자를 빼앗았다고?” 세호가 짧게 비웃었다. “그 말은 네가 할 처지가 아닌 것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8화

    동찬은 바로 고개를 세게 흔들어 터무니없는 생각을 밀어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저 사람은 지예라야.’‘오늘은 최세호와 지예라의 결혼식이잖아.’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 신부를 유희로 착각할 수 있을까?’“동찬아! 시작 시간 다 됐는데 문 앞에서 뭐 하고 있어?”유정란이 연회장 안에서 나와 못마땅하게 재촉했다. “애도 못 낳는 게 자존심 세우고 안 오겠다는데 잘됐지. 누가 그런 애한테 내 귀한 손자의 엄마 노릇 시키고 싶대? 재수 없어.”동찬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집스럽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올 거예요.”유희는 마음이 약했다. 자신이 알던 유희이라면 정말 끝까지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아이를 안고 넋이 나간 동찬을 바라보면서 혜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아이의 여린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세게 꼬집었다.“으앙!”아기는 갑자기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놀란 유정란이 아이를 얼른 받아 안았다. “아이고, 우리 귀한 손자가 왜 이렇게 울어?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가 여기 있잖아.”유정란이 동찬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봐, 아이도 울잖아. 정해 둔 시간에 아버지와 후계자 발표를 해야 좋은 뜻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데, 시간을 놓치면 애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동찬아, 유희 하나 때문에 네 아들 앞날까지 망칠 거야?”동찬은 유정란 품에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아이와 여전히 아무 답도 없는 핸드폰을 번갈아 봤다. 마음속에서 심한 갈등이 일었다.결국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유희야, 이번에는 네가 정말 너무했어.’동찬은 유정란에게 말했다. “가요. 들어가죠.”두 사람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말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시원시원한 분위기의 여자는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직 시작 안 했지? 늦은 거 아니지? 동찬아, 미란 이모, 축하해요. 조카 선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7화

    유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면서 전화를 받았다.혜미가 일부러 높인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기사 봤어? 오늘 울남시 최고급 호텔인 리안호텔에서 우리 아들 장손 공식 발표 연회가 열려.][최동찬이 울남시에서 제일 크고 화려하게 하겠대. 이름 좀 있다는 사람은 전부 올 거야.][오늘부터 모두가 알게 되겠지. 내 아들이 최동찬의 정식 장남이고 앞으로 후계자가 될 아이라는 걸.] [나하고 최동찬 사이도 누구도 못 끊어. 우리는 앞으로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살 거야.]혜미의 도발을 들으며 유희는 거울 속 웨딩드레스 차림의 자신을 바라봤다. 어이없을 만큼 우스웠다.“오늘 같은 날 굳이 나를 건드리고 싶은 거야?”유희의 붉은 입술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최동찬은 내가 그 연회에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가 지금 바로 가면 행사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혜미가 발끈했다. [네가 감히!]유희는 조용히 웃었다.“네가 불편해지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갈 수 있는데...”“내가 안 가길 원하면 핸드폰에 대고 세 번 크게 말해.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충분히 크게 말하면 생각해 볼게.”[송유희, 너!]혜미의 숨이 거칠어졌다.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릴 듯했다.유희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셋 셀 동안 안 하면 바로 갈 거야. 하나, 둘, 셋...”[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전화기 너머 혜미의 목소리가 거의 무너졌다. [됐지?]유희가 웃었다. “녹음했어.”[송유희!!!]유희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고 녹음 파일을 저장했다. 통쾌하고 차가운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옆에 있던 오성재가 웃으며 조용히 알렸다. “사모님, 결혼식 시작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문이 열리고 같은 제복을 입은 직원 네 명이 공손하게 들어왔다. 무겁고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조심스럽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6화

    말을 마치자 동찬의 핸드폰이 연달아 진동했다.친한 지인들이 모인 단톡방이었다.[동찬아, 큰 소식! 최세호가 그렇게 못 잊던 첫사랑 지예라가 돌아왔대!][내가 뭐랬어. 예전에 최세호가 지예라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을 뻔했잖아.] [지예라가 떠난 뒤에는 여자라면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하더니,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면 신부는 뻔하지. 내가 장담하는데 지예라가 맞아.][오히려 잘됐네. 최세호는 몇 년 동안 약점 하나 없이 너를 누르고 최씨 집안에서 영향력도 계속 키웠잖아.] [이제 유일한 약점이 돌아왔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정신 바짝 차리고 기회 잡아.]동찬은 화면의 글자를 하나하나 뚫어지게 읽었다. 잔뜩 당겨 놓은 고무줄 같던 긴장감이 툭 끊어지듯 풀렸다.‘지예라였구나.’‘그래. 그 일을 왜 잊고 있었지.’‘최세호처럼 냉정한 사람이 결혼까지 받아들일 상대라면 지예라 말고 누가 있겠어?’‘유희는 역시 지예라 대신 드레스를 입어 본 것뿐이야.’동찬은 자신이 너무 흥분해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고 여겼다.길게 숨을 내쉬자 안도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비서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대표님, 그럼 조사 건은...”“됐어.” 동찬이 손을 내저었다. 목소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오해한 거야. 더 알아볼 필요 없어.”혜미는 갑자기 편안해진 동찬을 보자, 속에서 질투가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아이까지 낳았는데도 동찬은 여전히 유희에게 이렇게 흔들렸다. 이대로 두면 아들까지 동찬을 붙잡아 두지 못할 것 같았다.혜미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자기 문제를 치워 줄 사람은 김민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번에도 들려온 것은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적인 안내음이었다.“젠장.”혜미는 낮게 욕하며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주먹을 쥐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독사처럼 마음을 휘감았다....결혼식 당일.리안호텔 신부 대기실.커다란 통유리를 지난 햇빛이 방 안을 따뜻하고 환하게 채웠다.유희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5화

    “너... 어떻게 내 다친 팔을...” 동찬의 목소리가 떨렸다.유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만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내가 최세호와 결혼한다는 걸 못 믿겠어? 그럼 직접 물어봐.”동찬의 팔은 여전히 뼛속까지 쑤셨고 피가 손등을 타고 흘렀다.눈앞의 유희는 동찬이 알던 사람과 너무 달라져 있었다. 혼란과 상처가 뒤엉킨 채 동찬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네가 대체 왜 이렇게 변했어? 형수가 내 아이 하나 낳아 준 게 전부잖아. 왜 끝도 없이 일을 키우는 거야?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야?”자기 말만 옳다고 믿는 동찬을 보고 있으니 유희는 지긋지긋했다.세호 쪽을 바라보니 통화가 끝난 듯 핸드폰을 내리고 있었다.‘잘됐네.’세호가 직접 말해 준다면 동찬도 더는 자기 멋대로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끝낼 수 있었다.따르릉-그때 동찬의 전화가 다급하게 울렸다.화면도 보지 않고 끊었지만 벨소리가 다시 이어졌다.동찬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뭔데?”혜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기가 이상해요. 설사하고 토하고 열이 41도까지 올랐어요! 왜 병원에 없는 거예요? 빨리 와요!]혜미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떨리고 있었다.“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동찬은 습관처럼 유희에게 손을 뻗었다. “너도 일단 나랑 병원 가.”유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한 번만 더 나한테 손을 대면, 이번에는 그 팔 진짜 다시 부러뜨려 줄 테니까.”동찬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깁스 안쪽의 통증이 유희가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줬다.동찬은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유희를 바라보다 결국 이를 악물었다.“유희야, 너 정말 너무 제멋대로야.”그 말을 남기고 동찬은 망설이지 않고 돌아섰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빠르게 매장을 떠났다.유희는 다급하게 멀어지는 동찬의 뒷모습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바로 전까지 세호가 자신에게 화풀이할까 걱정된다고 떠들더니,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 한마디에 유희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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