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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作者: 달콤열매
“유희야!”

동찬은 굳은 표정으로 다른 일은 전부 제쳐 두고 빠르게 뒤를 쫓았다.

룸에서 나온 유희는 바로 오성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사님, 일이 좀 생겨서 점심은 취소됐어요. 바로 예식장 보러 갈게요. 담당자 연락처 좀 보내 주세요.”

“사모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유희가 고개를 들자, 오성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호텔에 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유희도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기 직전, 룸에서 뛰어나온 동찬은 유희와 오성재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봤다.

동찬이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오성재 집사가 왜 여기 있지?”

곁에 있던 호텔 직원이 공손하게 답했다.

“최 대표님, 오 집사님은 결혼식장 답사를 오셨습니다. 이달 말에 최세호 회장님께서 결혼식을 올리신다는 거 모르셨습니까?”

세호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자랐다. 6년 전 돌아온 뒤 냉혹한 결단으로 울남시 재계를 재편했고, 한 달 가까이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인수되는 대격변이 이어졌다.

그 일 이후 재계 사람들은 세호를 두려워하면서도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뒤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렀다.

“형이 결혼한다고?”

동찬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명문가 자제들을 몇 번이나 소개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결혼을 하다니... 대체 어떤 여자길래?’

놀라면서도 동찬은 옆 엘리베이터의 위층 버튼을 눌렀다. 유희를 빨리 데려가야 했다. 세호의 영역에 잘못 들어가 괜한 일을 겪게 둘 수 없었다.

동찬이 아는 세호는 말 그대로 위험한 사람이었다. 상대가 여자라고 해서 봐줄 사람도 아니었다.

최상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오성재가 옆으로 비켜 길을 안내했다.

“사모님, 이쪽입니다. 울남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마련된 예식장 ‘스카이가든’이 바로 앞입니다.”

유희는 오성재를 따라 꿈처럼 꾸며진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거의 같은 때 옆 엘리베이터 문도 열렸다.

동찬은 성큼성큼 복도로 나섰다. 날 선 시선으로 텅 빈 복도를 훑었지만 유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순간, 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찬은 스카이가든 입구를 무겁게 바라봤다.

‘설마 저 안으로 들어간 건가?’

하필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세호는 차갑고 잔인한 성정으로 유명했다. 심기를 거스른 사람은 누구든 처참한 대가를 치렀다.

마음이 급해진 동찬은 곧장 스카이가든 쪽으로 걸었다.

“최 대표님, 잠시만요.”

입구에 서 있던 직원이 예를 갖춰 앞을 막았다.

“안에 중요한 손님이 계십니다. 예약 없이 들어가시기는 어렵습니다.”

“비켜!”

동찬이 굳은 표정으로 문을 밀려고 했다.

“서방님!”

혜미가 동찬의 팔을 잡았다.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진정해요. 그분이 원래 서방님한테 감정도 안 좋잖아요. 결혼식장 고르는 큰일에 서방님은 갑자기 들어가면 분명히 화를 내실 거예요.”

동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유희가 안에 있어요.”

“엘리베이터 봐요. 벌써 1층으로 내려갔잖아요. 동서는 분명히 저걸 타고 이미 내려갔을 거예요.”

혜미가 조금 전 유희가 탔던 엘리베이터 표시창을 가리켰다.

숫자 1을 확인한 동찬은 팽팽했던 긴장을 조금 풀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혜미는 동찬이 안도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속에서 미친 듯한 질투가 치밀었다. 유희가 이렇게까지 제멋대로 굴었는데도 동찬은 여전히 유희부터 걱정했다.

“원래 저도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래도 서방님은 동서한테 계속 끌려다니는 건 더 못 보겠어요.”

“생각해 봐요. 동서가 그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프로젝트에 3년을 꼬박 쏟아부었잖아요.”

“이제 결실이 눈앞에 있으니, 출시만 되면 이름도 날리고 큰돈도 벌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중요한 시점에 그 모든 걸 내팽개치고 정말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겠어요?”

혜미는 확신에 차 말했다.

“그냥 고집을 피우는 것 같아요. 일부러 계약을 망쳐서 서방님한테 겁을 주고, 서방님이 달래면서 매달리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그 틈에 우리 아이까지 포기하라고 압박하려는 거겠죠. 서방님은 안 달래 주면 출시 행사가 시작될 때 동서가 먼저 초조해질 거예요.”

동찬의 불안감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다시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느꼈다.

‘형수가 한 말이 맞아. 그 프로젝트는 유희가 우리 집안에 자기 가치를 증명할 유일한 길이야.’

‘그래서 유희는 FS그룹도 떠날 수 없고, 나한테서도 떠날 수 없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동찬의 굳어 있던 어깨가 서서히 풀렸다. 얼굴에는 다시 평소의 차갑고 여유로운 기색이 돌아왔다.

‘고집을 부리면서 밀당을 하겠다면... 출시 행사 날까지 기다려 주지.’

‘그때 어떻게 수습하는지 보면 돼.’

...

어두운 방 안.

혜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갑게 굳은 표정이었다.

“어디야? 지금 바로 울남시로 와.”

전화 너머 남자가 가볍게 웃으며 추근댔다.

[왜, 자기야. 나 보고 싶었어? 임신 후반기니까 이제 우리도 다시 재미 좀 볼 수 있겠네.]

[마침 수위 높은 성인용 세트를 새로 샀는데, 임신한 여자한테 쓰면 더 자극적이겠지. 내가 제대로...]

“닥쳐!”

혜미가 싸늘하게 끊었다.

“최동찬이 아이가 네 애라는 걸 알고, 널 토막 내서 바다에 던지도록 만들기 싫으면 그런 생각부터 접어.”

[같이 놀 것도 아닌데 나더러 울남시까지 왜 오라는 건데?]

“며칠 뒤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출시 행사가 있어. 송유희를 납치해서 그날 행사장에 못 오게 해.”

유희가 출시 행사에 나오지 않으면 동찬은 더 화를 낼 것이고,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탄이 날 것이다.

혜미는 그 틈에 무대에 올라 발표를 맡고,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개발자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유희가 3년 동안 피를 말리며 만든 결과물도, 그 결과로 얻을 명예와 돈도 전부 혜미 차지가 될 터였다.

그 정도의 실적을 손에 넣으면 벨루그룹과 직접 접촉할 자격도 생긴다.

벨루그룹은 AI 업계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정상 기업이었다.

현재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은 시대를 바꿀 기술로 평가받고 있었다.

협력을 따내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만 하면 FS그룹은 AI 분야에서 단숨에 치고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혜미는 최씨 집안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예식장을 고른 뒤 유희는 차를 타고 스카이힐로 돌아왔다.

차에서 내리자 해외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송유희 씨, 방금 FS그룹을 떠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화 너머 남자는 영국식 억양으로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들떴군요. 하지만 정말 기쁜 소식이라서요. 이날을 꼬박 3년 기다렸습니다!]

[3년 전 벨루그룹이 드렸던 제안은 아직 유효합니다. 조건은 당시의 두 배로 올렸습니다.]

[글로벌 AI 연구개발센터 센터장 자리는 지금까지 계속 비워 두고 기다렸습니다.]

[송유희 씨, 저희와 함께하시죠. 작은 FS그룹 안에서 ‘감정 교감형 AI 서비스’ 같은 작은 프로젝트 하나에 묶여 계실 분이 아닙니다. 무대는 전 세계입니다.]

[벨루그룹으로 오셔서 3년 전 구상하셨던 진짜 휴머노이드 로봇을 완성해 주세요.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를 직접 여실 수 있습니다.]

3년 전 유희는 이미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념과 데이터 모델을 제시했다.

그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 만큼 기술과 기반을 갖춘 곳은 벨루그룹뿐이었다.

당시 유희는 동찬 때문에 그 꿈을 포기했다.

이제는 달랐다.

어두웠던 유희의 눈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단단하고 눈부신 빛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일게요. 다음 달 초에 해외 본사로 출근하겠습니다.”

...

혼인신고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해외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유희는 여러 번 생각한 끝에 최세호에게는 말해 두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성재를 찾아가 물었다.

“집사님, 최 회장님은 대략 언제쯤 돌아와요? 제가 그분한테 직접 해야 할 말이 있어서요.”

오성재는 오는 길에 이미 유희 손가락에 다시 끼워진 반지를 봤다. 호텔에서 동찬을 만났다는 얘기도 들었다.

세호는 유희가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정작 유희가 고른 예식 분위기는 푸른색 계열이었다. 마음을 두고 고른 선택 같지는 않았다.

조금 전에는 통화하면서 웃기까지 했다. 여러 정황을 합치면 동찬과 화해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무거운 표정으로 세호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한다.

‘상의가 아니라 결혼을 무르겠다는 얘기라면?’

오성재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복도 한쪽의 그늘을 향했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얼굴에 한껏 심각한 기색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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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30화

    동찬이 예식장 밖으로 밀려났을 때, 마침 유정란과 혜미가 달려왔다.유정란은 넋이 빠진 사람처럼 창백한 동찬을 보자 속이 상하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닫힌 예식장 문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퍼부었다.“송유희 저 못된 것!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어?” “네가 최세호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사람과 결혼해? 일부러 네 가슴에 칼을 꽂으려는 거잖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독해!”혜미는 속으로는 샴페인이라도 터뜨리고 싶을 만큼 기뻤다.겉으로는 걱정과 불안을 가득 담은 표정을 만들고 동찬의 멀쩡한 쪽 팔을 부드럽게 붙잡았다.“진정해요.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우리 쪽도 시작 시간이 다 돼 가요. 하객들도 전부 기다리고 있는데, 이대로 늦으면 아이를 두고도 뒷말이 나올 거예요.”“그러니까 일단 돌아가서 급한 일부터 마무리해요.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요.”혜미는 동찬을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동찬은 팔을 거칠게 빼냈다.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혜미가, 상처받고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동찬을 바라봤다.동찬은 혜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텅 빈 눈이 혜미 품의 아이에게 내려갔다.예전의 다정함과 기대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잘못의 시작이 된 성가신 존재를 보는 듯 차갑고 낯선 눈이었다.“형수님, 제가 잘못했어요.”잔뜩 갈라진 동찬의 목소리는 후회로 거칠었다. “제가... 형수님하고 아이를 만들면 안 됐어요.”그는 이제야 유희가 아이의 존재를 얼마나 견디기 힘들어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혜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를 급히 품에 더 세게 안고 울먹였다.“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당신 친아들이에요!”“지금 마음이 무너진 건 알아요. 그래도 정신 차려야 해요. 우리 아이 앞날부터 생각해야 하잖아요!”유정란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히 거들었다. “맞아. 아이가 최씨 집안의 대를 이을 사람이고 제일 중요해. 다른 일은 다 뒤로 미뤄야지.”“송유희 때문에 정해 둔 발표 시간까지 놓쳐서, 아이한테 평생 말이 나오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9화

    세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주변 공기를 단숨에 바꿨다.유희 앞으로 다가간 동찬이 팔을 잡으려고 했다. 흥분한 탓에 목소리까지 달라져 있었다.“장난이 너무 지나쳤어! 유희야, 이건 선을 넘었어. 당장 나랑 돌아가!”유희는 한 걸음 물러나면서 동찬의 손을 피했다. 눈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장난? 여기까지 와서도 내가 너 상대로 장난치는 것 같아?”“이게 장난이 아니면 뭔데? 결혼은 장난감이 아니야. 형도 네가 나를 자극하려고 이용할 사람이 아니고. 정신 차려.”동찬은 견디기 힘들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넌 내 아내야. 우리 이미 결혼식도 했잖아!”“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유희는 차분하지만 잔인할 만큼 분명하게 짚었다. “그 눈 오던 밤, 네 어머니가 나를 집 밖으로 내쫓는 걸 네가 가만히 보고 있던 때부터 우리 사이는 끝났어.”“그건...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널 사랑해. 내 입장도 이해해 줘야 하잖아.”동찬은 다급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스스로 듣기에도 힘이 없었다.“미안하지만.”유희는 더 이상 동찬을 보지 않았다. 세호 쪽으로 몸을 돌려 팔짱을 살며시 끼었다. “나는 이미 세호 씨의 아내야.”“유희야, 여보... 그러지 마.”동찬이 또 손을 뻗었지만 최세호가 앞으로 나서며 가볍게 쳐냈다.세호의 시선이 서늘한 칼날처럼 동찬의 얼굴을 훑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동찬아. 내 결혼식에 들어와서 내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예의가 너무 없네.”세호는 짧게 말을 멈췄다가 한 글자씩 또렷하게 덧붙였다. “호칭도 고쳐. 이제 유희한테는 형수님이라고 불러.”“최세호!”동찬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유희가 내 아내였다는 걸 알면서 왜 결혼해? 사촌동생의 여자였던 사람을 형이 데려가 놓고 울남시 사람들이 비웃는 게 두렵지도 않아?”“사촌동생의 여자를 빼앗았다고?” 세호가 짧게 비웃었다. “그 말은 네가 할 처지가 아닌 것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8화

    동찬은 바로 고개를 세게 흔들어 터무니없는 생각을 밀어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저 사람은 지예라야.’‘오늘은 최세호와 지예라의 결혼식이잖아.’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 신부를 유희로 착각할 수 있을까?’“동찬아! 시작 시간 다 됐는데 문 앞에서 뭐 하고 있어?”유정란이 연회장 안에서 나와 못마땅하게 재촉했다. “애도 못 낳는 게 자존심 세우고 안 오겠다는데 잘됐지. 누가 그런 애한테 내 귀한 손자의 엄마 노릇 시키고 싶대? 재수 없어.”동찬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집스럽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올 거예요.”유희는 마음이 약했다. 자신이 알던 유희이라면 정말 끝까지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아이를 안고 넋이 나간 동찬을 바라보면서 혜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아이의 여린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세게 꼬집었다.“으앙!”아기는 갑자기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놀란 유정란이 아이를 얼른 받아 안았다. “아이고, 우리 귀한 손자가 왜 이렇게 울어?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가 여기 있잖아.”유정란이 동찬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봐, 아이도 울잖아. 정해 둔 시간에 아버지와 후계자 발표를 해야 좋은 뜻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데, 시간을 놓치면 애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동찬아, 유희 하나 때문에 네 아들 앞날까지 망칠 거야?”동찬은 유정란 품에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아이와 여전히 아무 답도 없는 핸드폰을 번갈아 봤다. 마음속에서 심한 갈등이 일었다.결국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유희야, 이번에는 네가 정말 너무했어.’동찬은 유정란에게 말했다. “가요. 들어가죠.”두 사람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말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시원시원한 분위기의 여자는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직 시작 안 했지? 늦은 거 아니지? 동찬아, 미란 이모, 축하해요. 조카 선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7화

    유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면서 전화를 받았다.혜미가 일부러 높인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기사 봤어? 오늘 울남시 최고급 호텔인 리안호텔에서 우리 아들 장손 공식 발표 연회가 열려.][최동찬이 울남시에서 제일 크고 화려하게 하겠대. 이름 좀 있다는 사람은 전부 올 거야.][오늘부터 모두가 알게 되겠지. 내 아들이 최동찬의 정식 장남이고 앞으로 후계자가 될 아이라는 걸.] [나하고 최동찬 사이도 누구도 못 끊어. 우리는 앞으로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살 거야.]혜미의 도발을 들으며 유희는 거울 속 웨딩드레스 차림의 자신을 바라봤다. 어이없을 만큼 우스웠다.“오늘 같은 날 굳이 나를 건드리고 싶은 거야?”유희의 붉은 입술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최동찬은 내가 그 연회에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가 지금 바로 가면 행사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혜미가 발끈했다. [네가 감히!]유희는 조용히 웃었다.“네가 불편해지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갈 수 있는데...”“내가 안 가길 원하면 핸드폰에 대고 세 번 크게 말해.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충분히 크게 말하면 생각해 볼게.”[송유희, 너!]혜미의 숨이 거칠어졌다.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릴 듯했다.유희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셋 셀 동안 안 하면 바로 갈 거야. 하나, 둘, 셋...”[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전화기 너머 혜미의 목소리가 거의 무너졌다. [됐지?]유희가 웃었다. “녹음했어.”[송유희!!!]유희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고 녹음 파일을 저장했다. 통쾌하고 차가운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옆에 있던 오성재가 웃으며 조용히 알렸다. “사모님, 결혼식 시작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문이 열리고 같은 제복을 입은 직원 네 명이 공손하게 들어왔다. 무겁고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조심스럽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6화

    말을 마치자 동찬의 핸드폰이 연달아 진동했다.친한 지인들이 모인 단톡방이었다.[동찬아, 큰 소식! 최세호가 그렇게 못 잊던 첫사랑 지예라가 돌아왔대!][내가 뭐랬어. 예전에 최세호가 지예라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을 뻔했잖아.] [지예라가 떠난 뒤에는 여자라면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하더니,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면 신부는 뻔하지. 내가 장담하는데 지예라가 맞아.][오히려 잘됐네. 최세호는 몇 년 동안 약점 하나 없이 너를 누르고 최씨 집안에서 영향력도 계속 키웠잖아.] [이제 유일한 약점이 돌아왔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정신 바짝 차리고 기회 잡아.]동찬은 화면의 글자를 하나하나 뚫어지게 읽었다. 잔뜩 당겨 놓은 고무줄 같던 긴장감이 툭 끊어지듯 풀렸다.‘지예라였구나.’‘그래. 그 일을 왜 잊고 있었지.’‘최세호처럼 냉정한 사람이 결혼까지 받아들일 상대라면 지예라 말고 누가 있겠어?’‘유희는 역시 지예라 대신 드레스를 입어 본 것뿐이야.’동찬은 자신이 너무 흥분해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고 여겼다.길게 숨을 내쉬자 안도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비서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대표님, 그럼 조사 건은...”“됐어.” 동찬이 손을 내저었다. 목소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오해한 거야. 더 알아볼 필요 없어.”혜미는 갑자기 편안해진 동찬을 보자, 속에서 질투가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아이까지 낳았는데도 동찬은 여전히 유희에게 이렇게 흔들렸다. 이대로 두면 아들까지 동찬을 붙잡아 두지 못할 것 같았다.혜미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자기 문제를 치워 줄 사람은 김민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번에도 들려온 것은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적인 안내음이었다.“젠장.”혜미는 낮게 욕하며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주먹을 쥐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독사처럼 마음을 휘감았다....결혼식 당일.리안호텔 신부 대기실.커다란 통유리를 지난 햇빛이 방 안을 따뜻하고 환하게 채웠다.유희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5화

    “너... 어떻게 내 다친 팔을...” 동찬의 목소리가 떨렸다.유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만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내가 최세호와 결혼한다는 걸 못 믿겠어? 그럼 직접 물어봐.”동찬의 팔은 여전히 뼛속까지 쑤셨고 피가 손등을 타고 흘렀다.눈앞의 유희는 동찬이 알던 사람과 너무 달라져 있었다. 혼란과 상처가 뒤엉킨 채 동찬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네가 대체 왜 이렇게 변했어? 형수가 내 아이 하나 낳아 준 게 전부잖아. 왜 끝도 없이 일을 키우는 거야?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야?”자기 말만 옳다고 믿는 동찬을 보고 있으니 유희는 지긋지긋했다.세호 쪽을 바라보니 통화가 끝난 듯 핸드폰을 내리고 있었다.‘잘됐네.’세호가 직접 말해 준다면 동찬도 더는 자기 멋대로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끝낼 수 있었다.따르릉-그때 동찬의 전화가 다급하게 울렸다.화면도 보지 않고 끊었지만 벨소리가 다시 이어졌다.동찬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뭔데?”혜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기가 이상해요. 설사하고 토하고 열이 41도까지 올랐어요! 왜 병원에 없는 거예요? 빨리 와요!]혜미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떨리고 있었다.“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동찬은 습관처럼 유희에게 손을 뻗었다. “너도 일단 나랑 병원 가.”유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한 번만 더 나한테 손을 대면, 이번에는 그 팔 진짜 다시 부러뜨려 줄 테니까.”동찬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깁스 안쪽의 통증이 유희가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줬다.동찬은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유희를 바라보다 결국 이를 악물었다.“유희야, 너 정말 너무 제멋대로야.”그 말을 남기고 동찬은 망설이지 않고 돌아섰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빠르게 매장을 떠났다.유희는 다급하게 멀어지는 동찬의 뒷모습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바로 전까지 세호가 자신에게 화풀이할까 걱정된다고 떠들더니,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 한마디에 유희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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