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기념일에 첫사랑 차유리를 집으로 데려온 남편 강재헌. 한서윤은 이혼을 선언하지만, 그날 국가과학전략청의 윤태하가 찾아와 그녀가 국가가 찾던 천재 연구자임을 밝힌다. 국가 보호 아래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서윤.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재헌은 이혼을 거부하고 위험한 집착을 시작한다. 첫사랑의 거짓말과 국가 프로젝트를 둘러싼 음모 속에서, 떠난 아내를 되찾으려는 전남편의 처절한 재구애가 시작된다.
View More한서윤은 식탁 한가운데 놓인 케이크의 초를 세 번째로 갈아 끼웠다.
처음 꽂아둔 초는 절반이나 녹았고, 두 번째 초는 강재헌에게서 ‘곧 간다’는 연락을 받은 뒤 새로 꽂았다. 그러나 밤 열한 시가 넘도록 현관은 조용했다.
결혼 삼 주년.
서윤은 그날만큼은 남편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재헌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만들고, 와인을 열고, 결혼 전 마지막 연구비로 샀던 남색 넥타이도 준비했다.
지난 삼 년 동안 재헌은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침실은 따로였고, 함께 찍은 사진이라곤 결혼식 사진뿐이었다. 그래도 서윤은 기다렸다. 죽은 첫사랑을 잊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화면이 켜졌다.
‘회의가 길어졌다.’
짧은 메시지였다.
서윤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의 신호 끝에 재헌이 받았다.
“왜.”
낮고 무심한 목소리. 뒤에서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어디예요?”
“회사라고 했잖아.”
“회사에 여자도 있어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곧 재헌이 짜증 섞인 숨을 내쉬었다.
“임원들 배우자가 함께한 자리야. 쓸데없는 의심 하지 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알아.”
“몇 시에 올 수 있는데요?”
“먼저 자.”
“강재헌.”
서윤이 이름을 부르자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녀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
“오늘만큼은 기다리게 하지 말아요.”
“한서윤, 나 피곤해.”
전화가 끊겼다.
서윤은 까맣게 변한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식탁 위 음식은 식어 있었고, 와인에서는 이미 향이 날아갔다.
그녀는 케이크의 초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소원을 빌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소원은 지난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마침내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며 재헌이 들어왔다. 검은 코트 어깨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왔어요?”
그녀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오른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재헌의 뒤에서 여자의 하이힐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느다란 발목, 흰 원피스, 젖은 긴 머리. 여자는 재헌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서 있었다.
서윤은 사진으로만 보았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다.
차유리.
죽었다던 재헌의 첫사랑이었다.
“오빠, 추워.”
유리이 몸을 떨자 재헌은 자신의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둘러줬다. 그 자연스러운 손길을 보는 순간 서윤은 손끝부터 차가워졌다.
“이 여자가 왜 여기 있어요?”
재헌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말조심해. 유리이는 환자야.”
“죽었다면서요.”
유리이 놀란 듯 입술을 가렸다.
“오빠가 그렇게 말했어?”
“유리아.”
재헌이 낮게 제지했지만 유리은 서윤에게 애처롭게 웃어 보였다.
“해외에서 오래 치료받았어요. 사고 뒤에 기억도 잃었고요. 얼마 전에야 오빠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결혼기념일에 남의 남편 팔을 잡고 그 집까지 왔어요?”
“한서윤.”
재헌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유리이는 갈 곳이 없어. 당분간 여기서 지낼 거야.”
서윤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나와 상의도 없이요?”
“내 집이야.”
그 한마디가 뺨을 때린 것보다 아팠다.
결혼 후 서윤은 자신의 연구를 멈췄다. 세계적인 연구소의 제안도 거절하고 강재헌의 아내로 이 집에 들어왔다. 시어머니의 병원 일정과 집안 행사를 챙기고, 남편의 식성과 수면 습관까지 외웠다.
그런데 이곳은 단 한 번도 그녀의 집이었던 적이 없었다.
유리의 시선이 거실 안쪽으로 향했다. 식탁 위 케이크를 발견한 그녀가 작게 탄성을 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헌도 말이 없었다.
유리은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 보다가 뒤늦게 미안한 얼굴을 만들었다.
“설마 결혼기념일이에요? 어떡해. 내가 방해했구나.”
그러면서도 재헌의 팔을 놓지 않았다.
“오빠, 나 호텔로 갈게. 언니가 싫어하잖아.”
“안 돼.”
재헌은 망설이지 않았다.
“너 혼자 두지 않아.”
그 말은 서윤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파도 병원에 혼자 갔고, 천둥이 치던 밤에도 혼자 잠들었다. 남편은 늘 바빴고, 그녀는 늘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럼 나는요?”
서윤의 물음에 재헌이 돌아봤다.
“당신 아내는 혼자 둬도 괜찮아요?”
“또 시작하지 마.”
“내가 뭘 시작했는데요? 결혼기념일에 다른 여자를 데려온 건 당신이야.”
“유리이는 다른 여자가 아니야.”
재헌은 너무도 당연하게 말했다.
서윤의 숨이 멎었다.
“그럼 나는 뭔데요?”
이번에는 재헌이 대답하지 못했다.
유리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오빠, 나 숨이 안 쉬어져.”
“유리아.”
재헌은 즉시 그녀를 안아 들었다. 서윤의 앞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서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방 준비해.”
집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느 방으로 준비할까요?”
“안방.”
서윤이 계단 아래에서 굳었다.
“거긴 내 방이에요.”
재헌이 멈췄다.
“유리이는 밤에 발작이 와. 내 방과 가까운 곳이 안전해.”
“당신 방 옆에는 손님방도 있어요.”
“환경이 바뀌면 불안해해.”
“그래서 내 방을 주겠다고요?”
재헌은 품 안의 유리을 내려다봤다.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그의 목에 매달렸다.
“잠깐뿐이야. 네가 이해해.”
결국 또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서윤이었다.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식탁으로 돌아가 케이크 상자를 닫았다. 재헌에게 주려던 넥타이도 포장째 쓰레기통에 넣었다.
계단 위에서 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많이 화난 것 같아.”
“신경 쓰지 마.”
재헌이 대답했다.
서윤은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신경 쓰지 마.
삼 년을 함께 산 아내의 마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엌 싱크대 앞에서 결혼반지를 빼려고 했다. 오랫동안 끼고 있어 손가락 마디에 걸렸다. 비누를 묻혀 몇 번이나 돌린 끝에야 반지가 빠졌다.
손가락에는 희고 깊은 자국이 남았다.
그 순간 꺼두었던 개인 휴대전화가 울렸다. 결혼 전 연구원으로 일할 때 사용하던 번호였다.
발신번호는 국가과학전략청.
서윤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서윤 박사님 맞으십니까?”
박사님.
누군가 그녀를 강재헌의 아내가 아닌 한서윤으로 불렀다.
“네, 맞습니다.”
“박사님이 대학원 시절 설계하신 에너지 저장체 원형이 국가 핵심사업으로 채택됐습니다. 해외 기관에서도 접촉 중이라 긴급 보안 절차가 필요합니다.”
서윤은 계단 위 닫힌 안방 문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남편과 그의 첫사랑이 있었다.
“연구 복귀 의사가 있으십니까?”
예전의 서윤이라면 재헌에게 먼저 물었을 것이다. 남편 일정과 집안 사정을 계산하고, 허락을 구하고, 결국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손바닥 위 결혼반지를 천천히 쥐었다.
“있습니다.”
“내일 오전 차량을 보내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복귀가 확정되면 박사님은 국가 중요인력 보호대상이 됩니다. 현재 거주지를 떠나 보안숙소로 이동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서윤은 짧게 눈을 감았다. 떠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는 문이 비로소 열린 기분이었다.
“얼마나 빨리 이동할 수 있죠?”
“박사님이 동의하시면 즉시 가능합니다.”
“동의할게요.”
수화기 너머 직원이 잠시 머뭇거렸다.
“가족분과 상의하실 시간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서윤은 위층에서 들리는 유리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곧 재헌의 낮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에게 향할 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가족은 없습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가슴 한쪽이 저렸으나, 이상하게도 숨은 편해졌다.
삼 년 동안 가족을 만들기 위해 혼자 애썼다. 이제는 혼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차례였다.
통화를 끝낸 서윤은 반지를 케이크 위에 내려놓았다. 녹아내린 생크림 속으로 반지가 반쯤 잠겼다.
자정이 지났다.
결혼 삼 주년이 끝났고, 한서윤의 삼 년짜리 기다림도 끝났다.
그녀는 차갑게 식은 촛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일 국가가 그녀를 데리러 온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강재헌은 아직 알지 못했다.
현관 밖에서는 검은 세단 한 대가 빗속에 조용히 멈춰 섰다. 국가과학전략청 표식은 보이지 않았지만, 차 안의 남자는 태블릿에 뜬 한서윤의 이름을 오래 바라봤다.
윤태하는 이어폰을 눌렀다. “보호대상자의 동의가 확인됐습니다. 내일 오전 직접 들어갑니다.” 보고를 마친 그의 시선이 불 꺼진 저택 이층에 머물렀다. 삼 년 동안 사라졌던 천재를,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윤태하의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밤, 한서윤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당신이 먼저 원한다고 말할 때까지.’강재헌은 단 한 번도 기다린 적이 없었다. 서윤이 괜찮다고 말할 때까지 밀어붙였고, 이해할 때까지 침묵했으며, 결국 포기하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태하는 달랐다. 가까이 오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면서도 그녀의 허락 없이는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서윤은 흔들리는 마음을 연구자료로 덮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오래된 결혼을 끝낼 용기였다.다음 날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강재헌 씨 측에서 협의이혼을 전면 거부했습니다.”“예상했어요.”“소송으로 가면 시간이 걸립니다. 혼인 파탄 책임을 입증할 자료가 필요해요.”서윤은 잠시 생각했다.“남편이 첫사랑을 집에 들였고 안방까지 내줬어요.”“두 사람의 부정행위를 증명할 수 있습니까?”“없어요.”“그렇다면 정서적 학대와 상해 기록을 모아야 합니다. 집에 남은 자료도 확인해보세요.”서윤은 결국 저택에 다시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재헌이 해외 계약으로 자리를 비운 시간이었다. 보안요원과 함께 서재를 정리하던 그녀는 책장 뒤에 숨겨진 작은 금고를 발견했다.비밀번호는 결혼기념일도, 재헌의 생일도 아니었다.문득 유리의 생일이 떠올랐다. 숫자를 누르자 금고가 열렸다.안에는 차유리의 사진과 편지, 말라붙은 꽃, 오래된 비행기표가 날짜순으로 보관돼 있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대학 캠퍼스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웃고 있었다.서윤은 질투보다 허탈함을 느꼈다. 자신과의 결혼사진은 거실 장식장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유리의 사진은 금고 안에 소중히 보관돼 있었다.맨 아래에는 병원 기록과 송금내역이 있었다.서윤의 손이 멈췄다.재헌은 결혼 직전 유리이 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록에는 사고 한 달 뒤부터 해외 재활병원으로 치료비가 지급된 내역이 남아 있었다. 송금인은 강재헌의 비서실이었다.그는 유리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적어도 결혼 일 년 뒤부터는.“남의 금
“그런데 왜 윤태하 옷을 입고 있어?”“비가 오니까 빌려준 거예요. 당신은 내가 추운지 더운지 관심 가져본 적 있어?”재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윤이 감기에 걸린 날도, 열이 오른 날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고 그는 묻지 않았다.“이제부터는 관심 가질게.”“필요 없어요.”“내가 달라지겠다잖아.”“차유리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달라질 생각도 없었겠죠.”재헌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빗물이 눈가를 타고 흘러 눈물처럼 보였다.“유리이를 내보냈어.”“들었어요.”“네가 원한 대로 했잖아.”“내가 원한 건 그 여자를 쫓아내는 남편이 아니라 처음부터 들이지 않는 남편이었어.”서윤의 말에 재헌의 숨이 거칠어졌다.“과거는 못 바꿔.”“그래서 미래를 바꾸려는 거예요. 당신이 없는 미래로.”태하는 우산을 서윤 쪽으로 기울인 채 두 사람의 대화를 기다렸다. 재헌이 그를 노려봤다.“우리 둘이 이야기하게 비켜.”“한서윤 씨가 원하시면 비키겠습니다.”두 남자의 시선이 서윤에게 향했다.“윤태하 씨, 같이 가요.”서윤의 선택은 분명했다.재헌이 그녀의 앞을 막았다.“오늘은 못 보내.”“또 힘으로 막게요?”“숙소에서 자는 게 싫어. 집으로 가.”“명령하지 마.”“부탁하면 갈 거야?”서윤이 멈칫했다. 재헌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그는 자존심을 삼키듯 천천히 말했다.“집으로 돌아와줘.”서윤의 눈가가 잠깐 흔들렸다. 삼 년 동안 기다렸던 한마디였다. 그러나 기다림이 끝난 뒤 도착한 말은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늦었어요.”“얼마나 늦었는데.”“내가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만큼.”재헌의 얼굴이 무너졌다.서윤은 태하에게 재킷을 건네지 않았다. 다시 어깨에 걸치고 그의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동안 재헌은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차에 오른 서윤은 창밖을 보며 손끝을 떨었다. 태하가 히터 온도를 높였다.“돌아가고 싶습니까?”“아니요.”“그런데 왜 우십니까?”그제
의무실 진료 뒤 서윤은 연구단 정원으로 나왔다. 태하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아까는 고마웠어요.”“먼저 물리력을 사용했습니다. 칭찬받을 일은 아닙니다.”“그래도 나를 위해 화내준 사람은 처음이라서.”태하가 걸음을 멈췄다.“화는 자주 납니다.”“차분해 보이는데요?”“참는 겁니다. 박사님이 불편할까 봐.”“뭘 참아요?”태하의 시선이 그녀의 손목에서 얼굴로 올라왔다.“강재헌 대표의 손이 닿을 때마다 떼어내고 싶은 마음.”서윤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나는 아직 이혼도 안 했어요.”“알고 있습니다.”“그런 말을 하면 오해해요.”“오해가 아니라면요?”태하는 다가오지 않았지만 물러서지도 않았다. 서윤이 시선을 피하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재헌이었다.“받으셔도 됩니다.”“받고 싶지 않아요.”“저 때문에 피하지는 마십시오.”“윤태하 씨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피하는 거예요.”서윤은 전화를 끄고 숙소로 돌아갔다.저택으로 돌아온 재헌은 텅 빈 안방에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서윤이 두고 간 잠옷 상자가 놓여 있었다.문밖에서 집사가 말했다.“대표님, 차유리 씨가 찾아왔습니다.”“들여보내지 마.”“사모님과 윤태하 씨의 관계를 증명할 사진이 있다고 합니다.”재헌이 문을 열었다.현관에 선 유리은 봉투를 내밀었다. 사진에는 결혼 전 학술대회에서 마주 보고 웃는 서윤과 태하가 찍혀 있었다.“오빠는 언니에게 속은 거야.”재헌은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태하의 시선은 오래전부터 서윤을 향하고 있었다.“이걸 어디서 났어?”“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두 사람은 오빠와 결혼하기 전부터—”“거짓말하면 이번에는 경찰에 넘긴다.”유리의 목소리가 멎었다.“학술대회 단체사진을 잘라낸 거지?”재헌은 마지막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행사 주최 측 인쇄번호가 남아 있었다.유리은 입술을 깨물었다.“오빠는 왜 언니 편만 들어?”“서윤이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네 거짓말에 지친 거야.”“사진 속 윤태하 눈을 봐. 저
차유리이 저택에서 쫓겨난 날, 한서윤은 국가연구단 첫 공식회의를 주재했다.“기존 설계의 냉각계통을 전부 바꾸겠습니다.”회의실이 술렁였다. 선임연구원이 난색을 보였다.“이미 정부 승인을 받은 구조입니다. 변경하면 일정이 두 달은 밀립니다.”“그대로 진행하면 실험 세 번째 단계에서 폭주합니다.”“근거가 있습니까?”서윤은 화면에 새 계산식을 띄웠다.“오늘 모의실험을 열죠. 내가 틀리면 기존안대로 가겠습니다.”윤태하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거들지 않았다. 서윤이 복도에서 물었다.“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요.”“한 박사님은 제 편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내가 틀렸을 수도 있잖아요.”“그러면 실험이 알려주겠죠. 지위가 아니라 데이터로 결정하는 것이 박사님 방식 아닙니까?”오후 실험 결과는 서윤의 예측과 정확히 일치했다. 반대했던 연구원도 먼저 고개를 숙였다.“제가 놓쳤습니다. 변경안으로 진행하겠습니다.”서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두뇌는 멈추지 않았다. 삼 년간 쓰지 않았던 칼날에 녹이 슬었을 뿐, 몇 번 닦아내자 다시 빛났다.실험실을 나오자 로비에 강재헌이 서 있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이었다.“이야기해.”“근무 중이에요.”“끝날 때까지 기다렸어.”“내가 만나겠다고 한 적 없어요.”재헌의 시선이 태하에게 향했다.“저 자식과는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남편에게 줄 시간은 없어?”“업무 관계입니다.”“밤에도 업무 관계인가?”“숙소 출입기록을 조사했어요?”“내 아내가 어디서 누구와 자는지 아는 게 잘못이야?”태하가 앞으로 나섰다.“보안시설 기록을 불법으로 조회했다면 조사 대상입니다.”“네가 서윤의 방에 들어갔어?”재헌이 태하의 멱살을 잡았다.“죽과 약을 전달했습니다. 한 박사님의 허락을 받고.”허락이라는 단어가 재헌의 신경을 긁었다. 자신에게는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서윤이 태하에게는 방 안을 허락했다.“그 손 놓아요.”서윤이 재헌의 팔을 잡았다. 재헌은 태하를 밀어놓고 서윤의 손목을 붙잡았다. 정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