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례는 기회가 생겼을 때 증거를 없애면 자신에게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성도민이 번개같은 속도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고, 살짝 힘을 주어 그의 손목을 꽉 쥐었다.황석례는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시후는 말했다. "성도민 씨, 손을 부러뜨리지는 말아요. 손이 쓸모 없어지면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니까."황석례는 시후가 말한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성도민의 힘을 이미 보았기에, 그가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자신의 오른손은 완전히 부러질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시후의 말 덕분에 그는 일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시후의 말을 들은 성도민은 고개를 숙이며 시후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고, 더 이상 힘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이 놈을 묶어!"그러자 블랙 드래곤의 대원이 곧바로 다가와 황석례의 두 손을 단단히 뒤로 묶었고, 그의 다리를 발로 차서 황석례를 다시 무릎 꿇게 만들었다. 시도에서 실패한 황석례는 마치 싸움에서 패배한 수탉처럼 기운을 잃고 자신의 운명을 그저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안드레는 녹음을 찾아내 최대 음량으로 재생했다. 녹음 속에서 황석례는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하하하!! 리치 씨, 다 끝났습니다. 네 명이 마실 와인과 음료에 수면제와 독약을 탔습니다. 수면제는 약 한 시간 후에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독약은 한 시간 반 후에 효과가 있을 겁니다. 수면제 덕분에 먼저 깊은 잠에 빠질 것이고, 독약이 호흡계를 마비시켜 모두가 결국 산소 부족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안드레가 물었다. "네 명? 다섯 명이 아니었나?"황석례는 서둘러 말했다. "클라우디아는 오늘 저녁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모임이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걔는 아마 늦게 들어올 거라서 가족들이 모두 잠들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안드레는 냉정하게 말했다. "말은 쉽지! 만약 그녀가 가족들이 독살당한 것을
안드레는 완전히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그는 시후가 황석례를 정말 조직의 보스로 삼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황석례의 태도로 볼 때, 자신은 곧바로 끝장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이 일을 완전히 폭로하기로 결심했고, 황석례가 쉽게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이 선명한 녹음은 본래 안드레가 황석례를 견제하기 위해 남겨둔 비장의 카드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 녹음을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사실 황석례도 알고 있었다. 이런 일에서 안드레가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범죄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서 충성을 맹세하는 일은 결국 자신에게 약점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결코 흠이 없는 상태일 수 없다. 모두가 살인과 강탈을 일삼는 도적들인데, 자신만 깨끗하고 무결하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믿지 않을 것이며 자기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몇 명 죽이고 그들의 목을 들고 와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약점을 알려주지 않으면 조직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안드레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어느 날 이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서, 모든 일이 자신에게 덮어 씌워질까 봐 완벽한 증거를 남겨두었다. 황석례의 소행임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이 순간, 황석례는 이미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 해졌다. 그는 이제 자신이 완전히 끝장났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시후가 자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할 뿐이었다.이때 현장에 있던 모든 이탈리아 조직원들은 조직의 이전 보스 일가가 사실 황석례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당시 황석례가 보스 일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길거리에서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감사하는 마음은커녕 친척 관계에 있는 보스 일가를 모두 살해했다. 이런 악독한 자는 그야말로 조직 내에서도 전무후무했다. 평소에 악
"오 그런가?" 시후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떻게 해서 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렸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고." 시후는 이어서 황석례에게 말했다. "일단 기다려. 피해자를 불러오도록 하지." 시후는 성도민을 향해 말했다. "성도민 씨, 데리고 와요.""네, 은 선생님!" 성도민은 고개를 숙이며 존경스럽게 대답하고, 곧바로 옆방에서 클라우디아를 데리고 나왔다.이때 클라우디아는 이미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 그녀는 방금 옆 객실에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고, 황석례와 안드레의 녹음을 듣게 된 후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황석례를 직접 처단하고 싶었다. 클라우디아는 성도민을 따라 들어오며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황석례에게 소리쳤다. "황석례! 네가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 부모님이 널 받아주고 살 길을 열어줬어! 그런데 왜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든 거야?!"클라우디아를 본 황석례는 당황하며 말했다. "클라우디아... 나... 나도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한 거다... 전부 안드레 놈이 날 유혹해서 그렇게 만든 거야! 저 놈이 아니었으면 나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안드레는 곧바로 분노에 차 외쳤다. "황석례! 이 개 같은 자식, 날 모함하려고 해?! 처음에 네가 나를 찾아왔고 가족을 죽이자고 제안한 건 너였잖아! 네가 그들을 다 죽이고, 내가 보스 자리에 오르면 내 2인자가 되기로 했으면서! 이 모든 건 네 계획이고, 네가 직접 한 일이야! 난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황석례는 안드레가 자신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 그럼 왜 내 제안을 받아들였어? 네가 원래부터 보스를 죽이고 싶었으니까 그렇겠지!"시후는 그때 황석례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황석례, 너희 둘은 여기서 싸울 필요 없어. 난 지금 네가 아까 말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 뭐였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황석례는 눈물과
황석례가 이소분으로 자신을 협박하자, 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냉소하며 물었다. “뭐? 네가 죽기 전까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소분으로 날 위협할 능력이 있어?” 황석례는 지금 속으로 확신은 없었지만, 이것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후를 향해 악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도박장에서 돈을 걸고 있을 때, 난 이미 부하들에게 이소분을 잡아오라고 지시했어! 네가 날 죽이면, 이소분은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거다!” 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이소분을 납치하려고 한 거지? 소분이는 한낱 힘 없는 소녀일 뿐인데, 네게 무슨 쓸모가 있다고? 아니면 네가 지금 일어나게 될 일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건가?” 황석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일부 부유층들의 세계에서는 이소분 같은 여자들이 가장 값비싼 통화야! 금이나 보석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지! 이소분처럼 외보가 뛰어나고 또 순결한 소녀는 부자들 사이에서 적어도 수백만 달러에 팔릴 수 있다고!” 그러면서 황석례는 악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경매에서 여자들을 사가는 부자들은 대부분 문제가 좀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 아마 그들에게 넘어가면 분명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고통받고 학대당할 걸?! 많은 여자들이 그들에게 넘어가면,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리기도 하거든. 운이 좋은 사람은 2~3년을 버티지만, 부자들이 질리면 그 다음엔 죽거나 유럽으로 다시 팔려 가서 범죄 조직에 의해 몸을 팔며 돈을 벌게 되는 거지!” 황석례는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어이, 말해두지만, 유럽에서 아프리카나 동유럽 출신의 범죄 조직 손에 넘어가면, 이소분은 극도로 비참하게 살게 될 거야! 그 놈들은 여자들을 감금하고 폭행하며, 마약으로 그들을 통제하지! 그 놈들의 손에 들어간 여자들은 보통 5년을 넘기지 못해! 네가 이소분이 그런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당장 날 풀어줘! 내가 캐나다를 무사히 떠나기
황석례는 이소분을 보자, 마음속에 있던 모든 희망이 그 순간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품고 있었던 모든 환상이 깨졌고, 이제 남은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시후가 어떻게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았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시후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두 번이나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것도 일부러 연기를 했던 건가..?” 시후는 비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낚시를 하려면 미끼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황석례는 경악하면서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해가 안 가.... 캐나다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걸 알 수 있었지?! 이건 우리 조직 내부의 기밀인데.. 조직 내에서도 아주 일부만 알고 있었다고! 그들은 너를 모를 뿐더러, 네게 정보를 넘길 리도 없잖아!” 옆에 있던 클라우디아가 냉정하게 말했다. “황석례, 네가 그동안 해온 짓들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네가 이씨 아주머니 집 앞에 남긴 표식, 내가 이미 발견했다고! 그리고 그 표식의 의미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시후 오빠에게 알려서 캐나다에 와 소분 언니를 보호해달라고 한 거야!” 황석례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클라우디아를 노려보고는, 이를 갈며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네가 문제였구나! 클라우디아, 오늘이 오기 전까지 네가 내 손으로 네 가족을 죽였다는 걸 모를 거라 생각 했는데.. 네가 잠시 실종되었다가 돌아왔을 때, 네 얼굴이 화상으로 이렇게 엉망이 되었으니 불쌍해서 살려줄까 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빨리 널 죽였어야 했는데!” 클라우디아가 오른쪽 귀 뒤쪽에 손을 대고 살짝 힘을 주자, 오른쪽 뺨에서부터 목까지 이어진 흉터가 모두 뜯어져 나갔다. 그리고 가짜 흉터 아래에는 동서양 미인의 장점을 모두 갖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황석례는 온몸이 떨리며, 충격에 휩싸여 물었다. “너.... 너 그
황석례는 클라우디아의 말을 듣고 나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갑자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말했다. "클라우디아!! 흐흑.. 내가 그때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어. 제발 나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줘! 목숨만 살려준다면 무슨 일이든 할 게! 우리는 그래도 피가 섞인 친척이잖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알지?! 제발 이 관계를 통해 나를 한 번만 살려줘!" 클라우디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황석례, 말하면서도 우습지? 친척이라는 혈연 관계를 무시하고 내 가족 네 명을 죽였는데, 지금 와서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매일 밤 꿈에서 너를 수없이 죽여왔어. 언젠가 너를 직접 죽일 날을 고대하며 살아왔다고. 지금 마침내 그 기회를 얻게 된 거야. 차라리 너와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너에게 자비를 베풀지는 않아!" 황석례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이 오늘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알아 차렸다. 그러자 그는 곧 비굴하게 구걸하는 태도를 거두고,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생각지도 못했네...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독할 줄은 몰랐어.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네가 돌아온 날 바로 너를 죽였을 텐데... 네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지..."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클라우디아가 손에 든 가짜 흉터를 가리키며 감탄했다. "클라우디아, 정말 모든 것을 계산했구나. 네 얼굴이 불에 타지 않았다는 걸 내가 알았더라면, 너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어딘가에 팔아버렸을 테니까. 네가 이토록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고, 전 이탈리아 그룹의 수장의 딸이라는 신분까지 있다면.. 너는 이소분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렸을 거야..." 황석례는 한숨을 내쉬며 후회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생각지도 못하게, 결국 너 같은 어린애에게 당할 줄은..." 황석례는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클라우디아... 내가 졌어. 목숨을 살려달라고는 안 할게. 다만 제발 고통 없
남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냉정하고 단호한 성격은 분명히 장점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서 악인들에게 기회를 주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의 클라우디아는 지금 적어도 적에게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시후는 성도민에게 말했다. "성도민 씨, 이 짐승 같은 놈을 데리고 가세요. 그리고 나머지도 다 묶어서 화물창고로 끌고 가고요. 잠시 후에 그들이 황석례가 재로 변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할 겁니다." 성도민은 곧바로 공손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블랙 드래곤의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대원들은 튼튼한 나일론 끈으로 이탈리아 조직의 모든 구성원의 손을 등 뒤로 묶어 한 줄로 세우고는 화물창고로 보냈다.화물선의 화물창고는 마치 철로 만들어진 깊숙한 구덩이와 같았다. 깊이는 거의 10층 건물에 달하며 내부 공간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게다가 지금은 배가 완전히 비어 있었기 때문에 창고 안은 매우 넓고 탁 트여 있었다. 200~300명의 이탈리아 조직원들은 이곳으로 온 뒤 창고 가장자리에서 여러 줄로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무장한 블랙 드래곤 대원들이 이들의 양옆에 서서 계속해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곧 성도민의 두 부하가 황석례를 끌고 들어왔다. 그 뒤에는 두 명의 블랙 드래곤 대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두 사람이 합쳐서 겨우 들 수 있는, 두껍고 무게가 약 7~800kg 정도 되는 쇠사슬을 들고 있었다. 이 거대한 쇠사슬은 화물선에서 교체된 닻줄의 한 부분으로, 매우 두껍고 무거웠다. 황석례는 화물창고 중앙으로 끌려왔고, 뒤따르던 두 대원은 그 쇠사슬로 황석례의 발목부터 시작해 그의 하반신을 단단히 감아 묶었다. 7~800kg의 무거운 쇠사슬에 꽁꽁 묶인 황석례는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이곳이 자신의 처형 장소가 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순간, 황석례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그를 단단히 묶은 쇠사슬이 없었다면, 그는 이
황석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클라우디아, 제발...! 날 빨리 죽여줘! 총으로 한 방에 끝내 달라고! 부탁이야! 만약 날 불태워 죽인다면, 너는 평생 그 그림자 속에서 살게 될 거다! 너 역시도 밤낮으로 괴로움에 시달리는 걸 원하지 않겠지?!" 클라우디아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갈 거야. 그리고 평생을 증오 속에서 살고 싶지도 않아. 네가 불에 타서 재가 되는 것을 직접 봐야, 내가 더 이상 너를 미워하지 않게 될 것 같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몇 달 동안 준비했던 라이터를 꺼냈다.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라이터였고, 뚜껑을 열면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그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가 또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아버지에게 다가가 몇 마디 타박을 하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같은 종류의 라이터를 하나 샀다. 그녀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가장 그리울 때마다 그 라이터를 꺼내 익숙한 소리를 들으며 라이터의 불을 바라보았고, 가족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 의미 깊은 라이터로 황석례와 함께 죽을 계획도 세워 두기도 했다.이제, 그녀는 라이터의 금속 뚜껑을 조심스럽게 밀어 올렸다. 라이터는 다시 한번 '땅'하고 소리를 냈다. 그 맑은 소리가 넓은 화물창고 안에 울려 퍼지며 묘하게 여운을 남겼다. 그 순간, 클라우디아는 세상이 천천히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라이터 측면에 있는 가느다란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불꽃이 그녀의 눈앞에서 천천히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 다음, 불꽃은 라이터에서 나온 가스에 점화하며 '펑'하는 소리와 함께 길고도 굵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흔들리는 불빛을 통해 그녀는 극심한 공포로 인해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진 황석례의 얼굴을 보았고, 그의 히스테리컬한 울부짖음도 들을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고개를 들어 불빛에서 눈을 떼고, 황석례를 바라보며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시후의 외할머니가 시후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배유현은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여러분들을 살려주신 은인께서는 행방이 일정하지 않으셔요. 이번에도 저에게 약을 전달해주신 후,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다며 바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배유현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시후는 정말 자주 이동했기 때문에 행방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캐나다, 미국, 홍콩, 멕시코를 오가는 터라 시후의 구체적인 계획은 배유현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시후는 이미 페이셔스 그룹의 냉동 센터를 떠난 상태였다. 그는 지금 버킹엄 호텔로 돌아가, 이토 그룹과 하영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배유현의 말을 듣고 매우 아쉬운 듯 말했다. “그분께서는 우리 집안 구성원들을 모두 구해주셨고, 이번엔 제이크 한 경감까지 살려주셨어요. 이처럼 큰 은혜는 우리 자손 대대로 다 갚지 못할 만큼 대단한 것인데, 그분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지 않으셔서...”배유현은 위로하듯 말했다. “사모님,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은인께 큰 은혜를 입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보답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그분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곁에서 도울 수 밖에요.”이때 안충주가 말을 이었다. “배유현 회장, 예전에 한국의 경매장에서 당신의 할아버지인 전 회장님께서 갑작스레 몸져 누우셨고, 그 틈을 타서 당신의 큰아버지가 권력을 빼앗았죠. 그런데 전 회장님께서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셨고, 당신과 함께 뉴욕으로 돌아오셔서 결국 페이셔스 그룹을 다시 맡으셨는데... 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그 당시 우리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 당신 역시 도와주신 겁니까?”“네 맞습니다.” 배유현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제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목숨을 부지하셨다 해도, 저와 함께 큰아버지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안충주는 눈빛이 번뜩이며 말
안산과 안충주는 재빨리 두 사람을 AB 빌딩 안으로 데리고 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안산은 제이크 한을 이끌고 회의실로 향했다.현재 Samson 그룹의 구성원들은 안산의 뜻에 따라, 모두가 배유현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응접실에 모여 있었다. 안산이 응접실의 문을 열자, 그 안에 앉아 있던 Samson 그룹 구성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들은 문 너머로 들어오는 사람이 배유현이 아니라, Samson 그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제이크 한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제이크 한을 본 순간, Samson 그룹 식구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제이크 한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그것도 Samson 그룹과 관련된 일에 휘말려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이크 한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 현장에 있던 모든 Samson 그룹 사람들은 마치 사고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얼어붙고 말았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앞으로 다가가 안산에게 물었다. “여보... 이... 이 사람이 정말 제이크 한 그 친구가 맞아요? 아니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혹시 내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요?”“맞아. 제이크 한 그 친구가 맞다고!” 안산은 흥분하여 말했다. “정말로 제이크 한이 맞아! 이 친구가 살아 있었어! 배유현 회장이 데려온 거요!”그제야 가족들은 뒤따라 들어온 배유현을 발견했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된 표정으로 배유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배유현 회장...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를 살려준 분께서는 제이크 한은 이미 살릴 수 없는 상태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배유현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때 그 분은 제이크 한 경감의 뇌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셨어요. 하지만 신체의
배유현은 안산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곧바로 공손하게 말했다. "회장님, 요즘 건강은 괜찮으시지요?"안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유현 회장 덕분에 요즘 꽤 잘 지내고 있습니다."배유현은 재빨리 말했다. "안 회장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나이도 많이 어리고, 그런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그러자 안산의 곁에 있던 안충주도 이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배유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배유현 역시 공손히 인사했다. "안충주 선생님, 안녕하세요."안충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배유현 회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친구 제이크 한은 지금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가능하시다면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만간 찾아가 조의를 표하고 싶어서요.”배유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옆에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한 남자가 갑자기 소리쳤다. "충주! 나 제이크 한은 아직 안 죽었어!"그 말이 떨어지자, 안충주와 그 곁에 있던 안산은 모두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그 목소리가 분명 제이크 한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이가 제이크 한이 맞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듯했다.왜냐하면 그날 체육관에서 Samson 그룹 최정예 경호원들이 암살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을 때, 그들은 직접 시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먼저 총알에 맞은 제이크 한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을 구해준 시후도 분명히 제이크 한이 이미 죽었으며, 신 조차도 그를 살릴 수 없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떻게 제이크 한이 죽은 뒤 살아 돌아왔다는 걸 믿을 수 있겠는가?제이크 한은 Samson 그룹의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참지 못하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확 벗으며 외쳤다. "나야! 나! 아직 안 죽었다고!""이런 젠장!" 안충주는 너
안충주는 서둘러 휴대폰으로 인터넷에서 배유현의 사진 몇 장을 검색해 안산에게 보여주었다.안산은 몇 번 사진을 훑어본 후 휴대폰을 돌려주었지만, 순간적으로 멍하니 한 사람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충주야... 제이크 한, 그 친구를 배유현 회장이 데려간 거 아니었나?”안충주는 놀라며 되물었다. “아버지, 제이크 한을 기억하신 거예요?”안산은 멍하니 말했다. “조금 전 머릿속에 뭔가 스치듯 지나갔어. 그날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 ‘제이크 한은 이미 죽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재빨리 물었다. “충주야, 그날 그 은인이 그러지 않았니? 제이크 한의 시신은 자신이 사람을 보내 정중히 장례 치르겠다고?”안충주는 아버지가 그날의 일부를 기억해낸 것에 놀라면서도,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 은인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그 일을 배유현 회장에게 맡긴 것 같아요.”그러자 안산은 눈가가 붉어지며 자책했다. “나는 제이크 한 그 친구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 그 친구의 부친에게도, 그 친구의 아내와 딸에게도... 나는 그들에게 모두 죄인이나 마찬가지야...”안충주는 서둘러 위로했다. “아버지, 이건 아버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 집안 전체가 큰 빚을 진 거니까요.”안산은 다시 물었다. “그럼 제이크 한의 아내와 딸은 어떻게 됐냐?”안충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쪽은 제가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날 은인이 분명히 당부했었으니까요. 제이크 한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고...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도요. 그래서 제이크 한의 아내가 저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남편의 행방을 묻고 있는데, 저도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은 모른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아마도 이미 경찰에 실종 신고까지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뉴욕 경찰은 아직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하아...” 안산은 깊게 한숨을 쉬며 당부했다. “방법을 좀 찾아서, 그의
안산의 갑작스러운 분노 섞인 외침에 Samson 그룹 삼형제는 일제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모두가 이미 같은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아버지인 안산이 직접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안태풍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저 자들이 우리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20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우리를 노린 거죠?”안재남도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집안이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큰 잘못을 저지른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동안 우리 집안의 자산 대부분은 당시 엔젤투자에서 비롯됐고, 게다가 누나는 실리콘밸리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던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누가 우리와 그렇게 원한 관계에 있다는 거죠?”안충주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걸 수도 있지.”안재남이 물었다. “형 말은... 돈을 노린 다는 거야?”“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안충주가 말했다. “하지만 저들이 이토록 정교하고 집요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단순한 증오심이나 원한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그러자 안산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굳이 우리 전부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니? 요즘은 대부분 자산을 디지털 형식으로 가지고 있기에 은행 계좌나 증권 계좌, 신탁 계좌에 숫자로만 남아 있다. 그러니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그 자산이 그들 손에 들어가는 건 아닐 것 아니냐!”안충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네 사람은 곧 깊은 침묵에 빠졌다.그때, 막내딸 안유진이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말했다. “아버지, 배유현 회장이 조금 뒤에 찾아 뵙고 싶다고 전화가 왔는데요.”“배유현...?” 안산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배유현 회장이 누구냐?”안충주가 얼른 말했다. “아버지, 또 잊으신 거 아니죠? 아침에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사건을
그 순간, 안태풍, 안충주, 그리고 안산 모두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안태풍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큰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너는 권아현을 만났고... 권아현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네 곁에서 무려 19년 동안 숨어 지냈어... 우리를 죽이려 한 자들과 누나가 그 해에 죽었던 일은 분명 관련이 있는 거야!”안산은 경악하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놈들은 예선이와 은 서방을 죽이고도 모자라, 재남이 곁에 무려 19년이나 묵혀 놓은 시한폭탄을 이번에 터뜨린 셈이군... 대체 이 놈들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만약 우리 집안을 없애는 게 목적이라면, 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거냐고?”“그러게 말입니다...” 장남 안충주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면, 뭔가 깊은 원한을 품고 있을 때 진작에 손을 썼겠죠. 굳이 지금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을 텐데...”안산이 말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자들이 우리에게 대체 얼마나 큰 복수심을 품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큰 판을 벌이는 건지 말이야...”안재남은 참다 못해 말했다. “아버지, 형님들... 꼭 제 아내를 19년 전에 그 조직에서 일부러 저에게 심어놓은 인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잖아요? 중간에 회유되었거나,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그럴 리 없어.” 안충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네 아내가 중간에 회유된 것이라면, 그 집안 가족들 역시 그때 함께 배신했겠지. 그런데 그 집안의 일련의 행동들은 그런 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잖아. 그러니 나는 오히려 권아현과 그 일가 전체가 애초부터 철저하게 설계된 함정이라고 판단한다.”안태풍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이어서 안재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재남아, 너와 권아현이 처음 만났을 때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겠어?”안재남은 말했다. “그 당시 내가 석사 2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아내는 막 석사에 입학했었지. 신입
유럽과 미국에서는 가족 신탁 상품이 매우 신뢰할 수 있는 자산 보호 방식으로 여겨진다.한국에는 ‘부자는 삼대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부모 세대가 어렵게 일군 부를 자손 세대가 사치스러워 함부로 낭비하고, 눈은 높지만 능력은 부족하여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쉽게 가족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하룻밤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이것은 자손 세대의 능력과 인품이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단 능력이나 인격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가문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인재 외에도 천재지변 같은 변수도 존재한다.그러나 가족 신탁은 이러한 인재와 천재지변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먼저 자신의 자산을 신탁에 넣는 순간, 겉으로 보기에는 본인조차 해당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자산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자녀나 지정된 상속인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훗날 중대한 문제가 생겨 가문이 빚더미에 앉게 되거나 파산을 하게 되더라도, 이 가족 신탁은 정부나 채권자에 의해 임의로 처분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유럽과 미국에 있는 유서 깊은 가문들이 여러 세대, 심지어는 수십 세대에 걸쳐 부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것이다.비록 권아현 집안 식구들은 현재 모두 자취를 감췄지만, 그들의 자산은 이미 모두 가족 신탁으로 옮겨졌다. 이는 더없이 안전한 보관 방식으로, 권아현의 집안 식구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기업 운영에는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길 걱정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돈은 신탁에 들어가 있는 이상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방 정부조차 이 자산에는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이런 행동은 곧 권아현 집안 식구들, 혹은 그들 뒤에 있는 그 미스터리한 조직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입장은 바로 잠적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인 전략적 후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밤 외가 식구들은 나를 만났고, 내가 부른 사람들이 당신을 데려갔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죠. 그러니 당신과 외가 식구들이 다시 만났을 때, 어떤 정체불명의 인물이 알약 하나를 먹인 뒤 당신을 구했다고만 알려주고, 이후 배유현 양에게 당신을 그들에게 데려다 주라고 했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하시고요.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살린 사람과 자신들을 살린 사람을 연결 지으려 할 거고, 그 뒤는 외가 식구들이 스스로 추측하게 내버려 두면 됩니다.”“알겠습니다, 도련님!” 제이크 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고 배유현을 불러들였다. “배유현 씨, 헬기를 좀 준비해주시고, 제이크 한 경감을 맨해튼의 AB 빌딩까지 모셔다 드리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먼저 내 외삼촌께 연락을 드려 방문 의사를 전해주시고요. 그 날 그들을 구한 후 현장을 수습한 사람은 배유현 씨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배유현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바로 Samson 그룹 측에 연락하겠습니다.”......같은 시각, 맨해튼 AB 빌딩.Samson 그룹은 함께 모여 회의를 열고는 최근 각종 정세를 종합하여 토론하고 있었다. 안산은 최근 알츠하이머 증상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와 자식들은 그에게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오랫동안 설명해주곤 했다. 다행히도 안산은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인물이라, 그날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식들의 설명을 들으면 곧바로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 날 암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 Samson 그룹 사람들은 줄곧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가족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지만,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안산은 당분간 가족
이야기를 들은 제이크 한은 매우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이전의 경력 때문에 블랙 드래곤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영구 거점을 건설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용병 조직에게 있어 영구 거점을 보유한다는 것은, 단번에 다른 용병 조직들에 비해 훨씬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병이라는 존재는, 이화룡이 거느리는 조폭들에 비해 각국 사법기관이 훨씬 더 경계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용병 조직은 세계 각국에서 길거리의 쥐와 같은 존재로 비밀리에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직 정부와 깊이 협력하는 조직이 아니라면 절대로 대놓고 간판을 걸고 활동하지 못한다.물론 미국에도 용병 조직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백악관과 협력하며 그들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은밀히 활동할 수밖에 없다. 용병 조직의 대다수는 미국 퇴역 군인 출신으로, 본국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개개인으로 위장 생활을 하다가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곤 한다. 예를 들어, 한 용병 조직은 100명 남짓한 구성원들에 불과한데 그들은 평소 각자 합법적인 직업과 신분으로 위장하여 일반 시민처럼 지내다가 임무가 떨어지면 관광객을 가장해 출국을 한다. 비록 이들이 본국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무장 전투 요원이기 때문에 정부의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용병 조직의 성장이 제한되는 것이다.하지만 용병 조직이 대놓고 합법적인 영구 거점을 보유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와 협력했을 당시 미국 CIA는 그 이유를 조사했는데, 조직이 시리아에서 너무 빨리 성장하는 걸 우려해 개입까지 시도했었다. 하지만 시리아는 블랙 드래곤과의 협력을 고수했고, 그 뒤에는 시리아 내 영향력 있는 반정부 인사 하미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