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드르르륵.’현민호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덜 깬 채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다니와 친구들을 만나느라 피곤했지만 일찍 눈을 떠야 했다.자신의 옆자리에 누운 다니의 가녀린 하얀 어깨를 만지자 그녀가 작은 소리를 냈다.“민호야, 우리 더 자자…”“아줌마 더 자. 나 아버지 만나러 가.”“응? 나 때문에?”“회사 일…”“다니야, 눈 부시다. 내 마누라 하얗고 여기는 분홍색이야. 나의 공주 맞아.”“추워. 이불 내리지 마…”“아, 조금만 보고 갈게. 여기도 뽀뽀하고.”‘음마.’다니는 가슴에 닿는 그의 입술에 흠칫 놀라 눈을 떴다.“어우야, 그만… 이제 아파.”주방으로 나온 현민호는 밤새 다니와 나눈 정사 때문에 아직도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피임을 하지 않고 다니를 안은 밤은 몸이 녹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웠다.다니의 모습을 떠올리니 몸이 다시 반응하려 했다.‘나보다 운 좋은 남자가 있을까. 속궁합이 잘 맞고, 예쁘고 야한 마누라. 하하.’신다니가 자신만을 보고 교태를 부리는 것이 만족스러워 현민호는 미소를 지었다.자신이 요구하는 것들을 잘 받아주다가 민망해 입을 가리고 동그란 눈을 굴릴 때면 요염하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슬퍼 보이고 약해 보였던, 그 커다란 눈망울의 도자기 인형을 닮은 여자는 자신의 품 안에서는 하얀 장미처럼 향기롭고 부드러웠다. 다니 닮은 딸을 가지고 싶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다짐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여우 같은 마누라. 토끼는 두 마리 정도. 하하.’시원한 물병을 하나 들고 물을 마시며 한남동 아버지의 아파트로 향했다.…한남동의 아파트. 현민호는 이곳에 처음 와 보았다.자식이라도 6년을 떨어져 살았으니 아버지의 집을 모를 수도 있었지만, 서로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병으로 쉬어야 할 최민주가 외삼촌 최민성과 함께 와 있다고 했다.현일두와 현민호가 주차장에서 만났다.현일두는 왠지 마음이 급해 보였다. 현민호는 형과 함께 서둘러 엘리베이
현민호는 성우를 보라의 오피스텔 앞에 내려 주었다.그리고 동하를 수진이 어머니 댁에 데려다주었다. 오랜만에 그곳에서 동하를 재우기로 하고, 다니와 단둘이 드라이브를 나섰다.한강변에 차를 세우고 어두워진 밤하늘을 보며 둘은 무알코올 맥주를 마셨다.“신기하네, 무알코올도 분위기는 난다.”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던 다니는 겨우 첫마디를 꺼냈다.“우리 결혼은 하지 말까… 그냥 혼인신고나 하고 살까.”“내 여자를 그렇게 대우 받게 하지 않을 거야.”“봤잖아… 우리 집 꼴… 혼수는 커녕…”“너만 중심 잡아. 그리고 내가 알아서 해.”“결혼 준비를 어떻게…”“넌 드레스랑 그런 것만 준비해… 내가 장소 알아볼 테니까.”“근데 너 헤어지자고 말하려 했던 거지?”“…”“내가 울고불고 약속받아 놔서 못 한 거고.”현민호는 다니의 뺨을 두 손으로 쥐고 살짝 눌렀다 놓았다.“으이그, 너 바보냐. 나 인기도 많고 괜찮은 남자야… 왜 남을 줘? 그리고 내게 순수하게 남은 사랑은 더는 없어. 너 말고는 내가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없어.아마 최강현보다 더 계산적이 될걸.”다니는 최강현을 싫어했지만, 한 번도 그가 계산적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민호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받아들였다.“순수하게 마음을 다 바쳐 사랑한 여자가 떠났으니…내가 그러길 바라는 거 아니지?나 너 결혼 안 해 주면 회사도 그만두고, 게임만 하고 살 거야.나 게임 엄청 좋아하는데 몰랐지?뒷일 잘 생각해… 괴물 하나 만들지 말고. 돈독 오른 인간 아니면 게임 폐인. 그거 내 미래야. 너랑 동하 없다면, 너 미워하다가 몸도 다시 아플지 모르고…”현민호는 눈에 힘을 주며 다니와 눈을 마주쳤다.“넌 아마 일 년도 안 되어 남자들이 줄 서겠지. 그러면 난 폐인이 된 와중에도 데이트 방해하러 다닐 거고, 무섭지? 그때는 지킬 것도 없으니 주먹질할 거야. 나 킥도 엄청 잘하는데…”다니의 눈이 커지고 큰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자, 현민호는 눈에 힘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이
“저희 쪽에서 결혼식장 예약을 할 것인데… 괜찮으신가요? 지금 식사하는 이 호텔로 할까 생각 중입니다.혹시 생각하신 다른 장소라도 있으신가요?”‘내연녀 주제에 엄마 자리에 앉아 잘도 지껄이네. 결혼식 날도 올 수 있을까…’무슨 일이든 늘 경쟁 상대로 보는 보라 엄마가 웃으며 대답했다.“없습니다. 우리 귀한 딸 예뻐해 주세요. 사실 다니야 민호 만나 팔자 폈지요. 감지덕지입니다.”이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민호를 바라보며 턱짓을 했다.마침 동하가 몸을 꿈틀거리며 민호를 잡아당겼다.“아빠, 나 또 배 아파.”민호는 그새 음식을 많이 먹은 아들을 안았다.“성우야, 같이 나가자… 이 아래에서 아이스크림 사 줄게.”“네, 매형.”성우는 답답했는지 벌떡 일어나 매형의 옆에 섰다. 나가고 싶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세 사람이 나가자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마음속으로 할 말을 몇 번이나 되뇌던 보라 엄마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다니 결혼을 준비하기에는 우리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요… 지금 우리 보라의 11평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습니다.”보라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우리 딸이 블랑네일 대표일 때는 돈도 많이 보내 주었답니다. 하지만 사업이 잘 안돼서 지금은 유학까지 한 애가 작은 회사를 다녀요. 가족을 위해서요.”보라 엄마는 갑자기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라는 아직 민호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좁은 데 사느라 애가 너무 힘들어해서 매형을 저렇게 따르는데… 그래도 성우는 진짜 동생인데요…”신충건은 보라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식사부터 하시죠. 음식 식어요.”다들 수저를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화가 난 보라 엄마가 말했다.“지금 밥이 먹혀요? 우린 11평 오피스텔에 사는데…”이선영이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일 년간 살 집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목동에 빈 빌라가 있어요.방 세 개이고 학군도 좋은데 일 년이라면 빌려 드릴까요? 그 동네에서 제일 좋은 초등학교가 있어요. 성
신 교수는 현 회장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사부인에게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딸 가진 입장이기도 했고 그동안 두 집안이 벌인 일이 있어서였다.지난날 신충건은 보라엄마와 최민주의 사이의 분란에는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사위가 될 현민호와는 다니가 대학교 2학년이던 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다니는 아직도 그 사건은 모를 것이다.현민호와 신다니가 다시 만나기 시작하려던 시점이었다. 당시 신충건은 연희대 교수였고, 스물한 살 신다니는 집을 나가 따로 산 지 몇 년이나 된 때였다.학교 병원에서 다니가 응급실에 왔다는 말을 듣고 쫓아갔었다. 그때 김보라가 고등학교 시절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이유가 되었다는 남자를 그날 처음 보았다. 두 딸을 동시에 데리고 놀고, 공부도 안 하는 양아치 축구 선수라는 보라 엄마의 말을 믿고 있을 때였다.그 축구 선수는 공부도 하지 않는다는 말치고는 연희대에 붙었다. 무엇인가 이상했다.다니를 업고 응급실에 왔으며, 호흡곤란 증상에 잘 대처했다고 칭찬받는 것을 보니 다니를 아끼는 것 같았다. 막상 마주친 양아치라는 학생은 올려다볼 만큼 크고 잘생겨서 더 경계해야할 놈 같았다.‘교수님, 저희 그냥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저 나쁜 놈 아닙니다. 그리고 맹세코 보라를 사귄 적도 없고, 관심조차 가진 적 없습니다.'고개를 숙이고 조아리며 정중하게 애원하던, 목소리까지 남자다운 흠잡을 데 없는 친구를 앞에 두고 심한 욕을 하며 화를 냈다.신충건도 속으로는 뭔가 잘못 아는 것 같긴 했고 보라 엄마에게 속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가정을 유지하기위해 여지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시간이 많이 흘러 상견례를 앞둔 이 순간, 신충건은 현민호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현민호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딸을 위해, 그리고 오해인 줄 짐작하고도 사실을 외면한 채,욕한 것을 사과하고 싶었다.현민호는 눈을 피하면서도 손을 잡았다.신 교수는 손을 놓지 않고 기어이 사위가 될 사람과 눈을 마
다니는 대영의 직원들과 김상두 실장, 정 부장과 함께 빌딩의 식당에 들어갔다.이선영의 말이 정말 중요했다. 다니는 이제 현성에서의 자기 위치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방법은 아직 잘 몰랐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보기로 했다. 자신이 무브를 성공시킨 사람이라는 사실도 다시 떠올렸다.백반집이라 데이트 코스는 아니지만 나름 일의 연장인 것 같아 정 부장과 김 주임에게는 오히려 편해 보였다.다니는 김상두 실장을 보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친절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수다스러운 김상두는 타고난 성격도 있지만, 자신이 현일두에게 받은 대로 베푸는 것 같았다.‘김 실장님,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저런 인재를 키워낸 것은 긴 시간과 공을 들일 수 있는 사랑과 신뢰일까. 신뢰하지 못할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다니는 이제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김 주임님, 우리 정 부장님 타이도 골라 주세요. 제가 세한의류에서 타이 백 개 정도 가져왔어요.”“다니 씨. 미리 갔다 온 거야? 아니, 거예요? 말 놓으라고 하지 마세요. 사적인 자리에서는 놓을 거니까요.”김 주임은 현성의 사모님이란 이야기에 사람들 앞에서는 반말을 하지 않았다.“정 부장님은 피부가 우리 현 전 본부장님처럼 약간 어두운데 양복과 피부색을 고려해서 다크 블루 계열로 골랐어요.”김 주임이 고개를 돌려 정 부장을 바라보며 칭찬의 말을 이었다.“옷이 잘 어울리세요.”“고맙습니다.”정 부장과 김 주임의 대화가 물꼬를 트자 다니는 김 실장과 대화를 시작했다.현성의 현재 상황이 궁금했다.“형제분들 회사에서는 어떠세요?”“형수님, 두 분이 친형제라고 알고 나니 확실히 더 닮아 보이고 행동도 좀 비슷합니다. 그런 만큼 서로 친근해지고 있습니다. 질투 나더라고요.”김상두는 손을 얼굴 앞에서 흔들며 개구지게 미소를 지었다.“삼형제처럼 지내시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은우도 할머니라 부르고, 동하도 할머니라 부르고요. 게다가 은우 아버님이 절 형수
이선영의 미소가 사라졌다.“동하 아빠하고?”“네?”“다니 씨. 민호가 지금 한가하게 호텔 구경이나 다닐 상황이야?”다니가 눈을 깜빡였다.“어머, 세상에. 다니 씨, 지금 현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그저 돈 없는 변변찮은 집안의 딸 정도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회사 일조차 모른다는 것은 민호에게 자신을 도와줄 수족 하나 없다는 뜻이었다.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자신도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려 했다.“네. 경영권 때문에…”“경영권 때문에 뭐?”다니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현민호가 바쁘고 힘들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민호 씨가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요.”“그래. 우리 민호는 원래 그런 애야. 힘든 일은 혼자 짊어지고 남한테 말 안 하지.”“동하 아빠가 유능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믿고 더 묻지 않았어요.”이선영은 다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런데 부인까지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건 아니잖아.”'아...'“네, 제가 중요한 부분을 놓쳤어요. 어머니, 아직 큰 기업가의 며느리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요.솔직하게 지적해 주세요. 동하의 엄마로, 민호 씨의 아내로 그들을 지키고 싶어요.”다니는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임은영 비서와 김정호 비서, 모두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자주 연락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어쩌면 민호가 나와 친한 사람들을 비서실에 두었던 것도, 내가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나의 자리를 만들기 쉽게 해주는 배려였을 수도 있구나.'고개를 끄덕이던 이선영은 다음 말을 이었다.“이건 내 인생을 걸고 지키려 했던 민호의 미래였고 이제는 동하의 미래까지야.”…김 주임은 괜찮은 총각들이 있다는 다니의 말에 한껏 멋을 내고 나왔다.오늘 제일건설 직원들이 정장을 보러 오기로 했고, 다니가 코디를 총괄한다는 것도 알고 있







